樂山

대궐터와 금돌성이 있는 백화산을 찾아서 2011.11.5 토

benel_jt 2011. 11. 6. 17:36

대궐터와 금돌성이 있는 백화산을 찾아서 2011.11.5 토

 

어제까지만 해도 비가 온다고 예고 되었었는데 새벽 예보에 부산은 비가 오고, 영동, 상주는 구름많음이었다. 비가 오지 않는다는 말.
가는 길에 구미 부근에 지날 때 해가 환하게 비추었다.
11:11 옥동서원을 길 건너편에서 보고 지남(보고 싶었던 곳인데..)
11:14 보현사 입구 하차, 체조 등을 마치고
11:23 산행 시작 (하산16:20 예고)
11:26 보현사
11:28 잠수교1
11:34 잠수교2
11:40 잠수교3
11:41 '차단성'이라는 안내가 있긴 하지만...
11:42 사방댐
11:45 이정표 [대궐터 1.7km/50분, 수봉리 1.9km/50분, 우측 옥류대]
여기서 임도가 끝나고 다리를 건너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11:48 밧줄, 벼락바위
11:55 밧줄
12:18 이정표 [금돌성 1.3km/40분]
12:19ㅡ21 이정표 [한성봉 정상 2.5km/1:20] 잠간 휴식
12:22 내성
12:24 이정표 [대궐터 0.3km/10분, 수봉리 3.3km/1:40, 보문암터 0.6km/20분] 대궐터 방향으로
12:28 우측에 무덤1기, 한양조씨
12:33 대궐터(측면 2단으로 보이는데 모서리 일부가 붕괴되었다)
12:39 대궐터를 뒤돌아 보니 앞쪽의 석축은 4단으로 쌓였다. 정면은 급경사지이며 전방의 산 능선이 대궐터보다 약간 높게 보이며, 뒷면은 바위들이 있고 능선까지는 제법 올라야 한다.
12:45 보문암 부속터, 이정표 [금돌성 0.5km/15분, 대궐터에서 0.3km/10분, 좌측 보문암터 방향]
13:02-13:25 중식, 금돌성, 이정표 [포성봉(정상) 1.7km, 보문사터 1.5km. 대궐터 0.8km/50분]
13:38 장군바위
13:45 밧줄, 능선 뾰족한 바위능선 옆으로 줄이 있음.
14:00 백화산 정상, 포성봉, 한성봉, 한성봉이라는 이름이...
이정표 [금돌성에서 1.2km/1시간, 주행봉, 봉화터]
14:22 이정표 없는 안부를 지나다가 일부 그 곳에서 하산하기에 되돌아 내려 갔다.
15:03 부들재를 거쳐 내려온 선두팀과 조우(이 쪽이나 그 쪽 모두 길이 험했다고 ... 낙엽이 덮여 길 찾기가 힘들어)
15:30 정자, 편백숲 갈림길, 이정표 [한성봉 3.2km, 부들재 2.1km, 편백숲(한성봉으로 가는 다른 길) 0.1km]
15:33 이정표 [한성봉 3.4km, 부들재 2.3km, 반야교 0.3km] 등산안내판.
15:35-50 탁족
15:55 반야교, 주차장(반야사는 다리 건너 한참 올라가야..)산행지도들이 잠수교라 표시했지만 튼튼한 다리가 만들어져 있다.

 

 

휴식과 식사 등을 포함해서 약 4시간30분.. 무리하지 않는 적당한 코스에 볼거리까지 좋은 백화산이었다.

 

 

 

 

 

 

 

“대궐터” 혹은 “대궐안” “궁궐터”라고 불린다. 


 이 지점은 白華山 정상에 가까워서 사방으로 뻗은 능선이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데 이 대지는 약간 완만한 곳을 택하여 능선에서 골짝에 가깝도록 축대를 쌓아올려 평지를 마련한 곳이다.
 

 

 

 

금돌성...660년 백제 정벌군은 이제 돌격하라는 성이었나..

게다가 1254년 몽고의 군사들을 저승으로 보낸 저승골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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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산(白華山) 금돌성(今突城) 관계 기록

1) 삼국사기 신라본기 무열왕 (三國史記 卷第五 新羅本紀 第五 太宗武烈王)條에

“七年…….七月…….命太子與大將軍庾信 將軍品日欽春等率五萬應之 王次今突城 秋七月九日 庾信等進軍於黃山之原…….十三日 義慈率左右夜遁走 保熊津城 義慈子 隆與大佐平千福等出降 云云 十八日 義慈卒太子及熊津方領軍等 自熊津城來降 王聞義慈降 二十九日 自今突城至所夫里城 遣弟監天福 露布於大唐......”

 2) 동사강목(東史綱目) 第4上 庚申

夏六月 新羅王出屯南川停 遺太子法敏及金庾信 會唐兵于德勿島 云云 七月十日…….又遣法敏與 庾信 及 將軍品日欽春 師精兵五萬應之 進次今堗城(今尙州白華山)
新羅王會蘇定方于泗沘城 遣使告捷于唐 王自南川進次突城(今未詳) 聞百濟降 自今突至泗沘 云云

3) 중산지(中山誌)

 1969년 상주지구답사(尙州地區踏査) 당시 이곳 玉洞書院을 代表하고 있는 黃遺玉氏 (지금의 ‘백화산을 사랑하는 모임’ ‘상주항몽대첩비건립추진위원회’의 사무국장 황인석씨의 엄친)로부터 다음과 같은 중요한 증언을 청취하여 ‘中山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즉 황유옥씨는 이곳이 고향인데 6.25 동란 전까지는 개인 장서를 많이 소장하였었다 한다. 
 황씨는 약초도 캐고 수양도 할 겸 가끔 이 백화산(白華山)산을 오르내리기를 수 십 년 간 하였으므로 山 전역을 잘 파악하고 있는바 이곳에는 고성지(古城址)가 있어 본래 신라가 백제를 정벌할 때 쌓은 ‘今突城’이 바로 이 石城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하였다.
 황씨가 이 古城을 주목하게 된 것은 先祖代부터 전해오는 장서 중에서 ‘중산지(中山誌)’ 혹은 ‘중모지(中牟誌)’ 속에서 古城에 관계된 기록을 찾아 읽은 적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곳 일대는 본래 新羅 時代의 中牟縣으로 이곳 地方誌를 종합한 책자를 중산지(中山誌)라 하여 인문, 지리, 역사 등 일체를 수록한 縣邑誌였다고 한다.
 이 책자는 印出한 것이 아니라 묵기(墨記)한 필사본(筆寫本)이었기 때문에 유일한 것이었는데 동란 때 다른 古書들과 함께 분실한 뒤로는 찾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황씨는 이 중산지(中山誌)를 읽었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음을 말하였다.
 白華山에는 古城이 있는데 신라시대 김흠(金欽)이 쌓은 今突城으로서 신라 국왕인 태종무열왕(太宗武烈王)이 이곳에 친히 나와 김유신장군을 격려하여 곧 백제를 정벌하게 하였다.
 이 내용에서 보면 황씨는 白華山의 古城이 今突城이 분명함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황유옥씨의 안내로 白華山 일대를 각 골짝마다 다니면서 모든 유적지를 확인 조사할 수 있었으니 그 중요한 내용들이 용문사지(龍門寺址), 보문지(宝門址), 대궐터, 今突城의 내.외 석성(內.外 石城)들이다.

 

 

 

 

 

 

 

 

 

 가져갈 수는 없으니 사진으로나마 보면서 화분대로...

 저승골, 고모담은 다음을 기약하고..

여기 한성봉은 漢 한수 한, 한나라 한을 썼다.

큰 성이 있는 제일봉이라는 뜻으로.

그런데 어떤 곳은 恨 한, 원통함을 나타내었던데..

몽고군사들의 원통함을??

성을 포획하는 봉이라고...어디 이 이름 뿐이랴..이 노옴들.... 

 

 

낙엽의 깊이가 스틱의 아랫단을 묻을 정도다. 그러니 미끄러워서.. 

반약 앞의 펜션(?)에서 나무를 때는지 연기가 오른다. 해질녘이다.

 

 

 

어두워지면서 바람의 방향이 바뀌어 가는 것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