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보물을 건진 동악산의 형제봉 2011.10.27 목

benel_jt 2011. 10. 28. 23:30

 보물을 건진 동악산의 형제봉 2011.10.27 목

 

날씨가 너무 좋았다.

곡성 나들목에서 700m  채 못가서 주유소가 있는데 유턴 코스 설명하다 지나쳐 서계리에서 되돌려와서 다시 유턴을 했다. 다행히 먼 거리가 아닌지라.. 횡단보도를 20명이 건넌다면 안전에 문제가 우려되었기에...

11:10 상기주유소 앞에서 1진 20명 하차
11:20 서계리 원효교에서 2진12명 하차(4명은 원점회귀 코스 선택)
11:23 녹주맥반석건강랜드 앞
11:35 채석장 앞(15분 정도는 시멘트 포장길 이용)
12:53 헬기장(2.2km/1:18) 후미 대기 등, 휴식이 길어 예정 65분 보다 13분 정도 늦었다.
헬기장에서 중식 후 10명은 형제봉 방향으로 가서 하산하고, 대장봉 방향으로 2명만 감.
헬기장에 도착했을 즈음 1진 선두는 최악산 도착, 1진 후미는 716.5봉 도착.
식사 후 아랫길을 이용하여 대장봉 방향으로 이동할 때 1진 선두는 대장봉 도착, 그 후 선두 9명은 배너머재 경유하여 동악산으로 돌아 길상골갈림길 삼거리로 하산.
서봉갈림길까지 안내대로 11분 거리, 대장봉까지, 다시 헬기장까지도 안내된 시간에 거의 맞으며, 대장봉에서의 지체 시간 포함하여 35분 정도 소요됨.
13:46-52 대장봉(서봉) 751m, 1진 후미 일부 만남
13:59 다시 헬기장 680m
14:09-17 성출봉(동봉) 755m, 1진 후미 모두 만남
14:20 형제봉(제2봉) 750m
14:30 동봉 철계단 아래 660m
14:34 부채바위(길상암터까지 400m 구간을 우측길 선택했는데 좌측길이 더 편했을 듯. 아마도 움막마저 그 곳에 있었던 것 같다. 움막엔 흔적만 있었단다.)
길상암터까지 내려오는 길은 길도 아니 듯 했지만 길은 길.

15:00 약수터(한 방울씩 나오는 물이라 음수불가, 야생동물을 위해 두고 가야할 듯)
15:28 동악산 갈림길 삼거리 230m
15:35 철다리 제2교
15:36-50 第八曲의 암반에서 탁족(이 곳의 글씨에 새긴 인명 중에 매천야록의 저자인 황매천이라는 이름이 보였다. 조선말의 황현이다.
매천야록은 고종원년인 1864년부터 순종4년인 1910년까지 47년간의 역사를 편년체로 기술한 역사책이다. 나라가 기울어가는 모습을 본 그 시대인들의 의지와 정신이 새겨진 글들이 청류동 계곡의 바위와 계곡바닥에 새겨져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이다.
100여년의 역사를 가진 글씨들이다. 400여년 된 비석의 명문이 마모되어 잘 보이지 않을 만큼 되는데 이렇게 선명한 글씨들이 100년을 냇바닥에서 견디었다. 이게 다 사라지기 전에 박혜범 그 분이 사진과 해석으로 재현해 두었으니 얼마나 고맙고 다행한 일이랴...
15:53 도림사
15:57 단심송
16:02 매표소 앞
16:05 도림산장 앞 주차장

배낭을 맨 채로 도림산장 옆에 조성된 화단을 잠시 둘러보고는 식당을 경유해서 들어가는데 식당에서 혼자 식사를 하는 허연 머리를 한 사람의 뒷 모습을 보면서 혹시 오늘 내가 꼭 만나고 싶었던 그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스쳤다.
식단 주인에게 그 분의 성함을 대며 물었더니 "바로 이분입니다."
2년 전 2009.7.23 동악산을 방문하기 전에 읽었던 "원홍장과 심청전"의 저자인 박혜범 선생을 극적으로 만난 것이다.
그 분을 통해서 그 해 청류9곡의 암반 글씨들을 추척하다 다 찾지 못했는데 그 내용들과 역사를 찾아 밝힌 동악산항일동립운동의 비사라는 부제를 단 책 한 권을 다른 책 한 권과 함께 귀중한 선물로 받았다.
작년11월에 초판 출간한 책이었다.
오래 전부터 곡성 지역에 인연이 적지 않았음을 또 한 번 실감하며, 다시 제대로 동악산과 청류동계곡을 찾을 기회를 만들고 싶다. 달리지 않고 천천히...

 

 

 

임도가 끝날 무렵, 채석장 부근에서 ...글쓴이와 새긴이의 정보가 있다. 

 

짙은 단풍 사이로 

  

 

 

 

대장봉(서봉)에서 

초악신 방향을 조망하며 

 

 

 

 

성출봉에서 약간 떨어져 형제봉(제2봉)이라고 다시.. 

 저 아래 부채바위가 있는 능선을 바라보니 공룡능선..본래 1진을 저 능선으로 가도록 계획했는데 동악산으로 간 분들이 9명, 2009년7월23일에 탐방한 기억을 더듬어 가려나봐..

 철계단에서 본 부채바위

 

 

 

 저 쪽으로 동악 정상이 보인다.

 

 

 기대했지만 물은 먹을 수 없었다. 여기 길상암은 19세기 후반에 창건되었다는데 흔적만 남았으니.

 

 

 

 8곡앞의 암반에서, 표한 곳에 황매천(황현의 호가 매천)이라고 새겨져 있다.

 팔곡 해동무이를 배경으로

 

 이 돌확은 길상암의 것이 아니라 의병들이 사용하던 것이라고 하는데..내 생각에는 혹시 길상암을 의병들이 사용한 것이 아니었을까하는데...19세기 후반에 창건한 길상암의 터가 폐허가 된 연유?

 단심송. 저 계곡 건녀편에 단심대라고 새김돌이 보이는데

 내려오는 길에 도림산장 위쪽 맞은 편 식당에 큰 화분에 여러 그루가 자라는데..기이하게도 고추같은 열매가 맺혀 있는데 기다란 흰 꽃이 나팔처럼 생겼다.

 산행 뒷날 도림산장 김선오 사장님께 전화로 물어보니 "천사의 나팔"이라고 하는 외래종이라고 한다. 

 

도림산장에서 우연히 만난 "원홍장과 심청전"의 저자이신 박혜범 선생님을 만났다. 

박선생님과 한 컷.  

 도림산장 바로 앞에 있는 "一曲 鎖煙門"(일곡 쇄연문)

 그냥 찍으니 잘 보이지 않는다.

바로 박선생님이 안내해 주셨기에 찾았다. 이 산장 부근의 몇 가지 유적들이 있는데

승차 시간에 쫓겨 아쉬움을 남기고 다음을 기약하였다.

주신 두 권의 책 귀하게 읽겠습니다. 

 

 

친필 사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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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는 2009.7.23 목의 산행기 중에서 일부를 골라 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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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척산악회는 동악산으로 올랐다.

動樂山은 여러가지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淸流溪谷의 1곡부터 9곡까지는 암반에 새겨진 싯귀들이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새겨두었다.

曲( 굽을 곡 ) ㉠굽다 ㉡굽히다 ㉢도리()에 맞지 않다 ㉣바르지 않다 ㉤불합리하다 ㉥정직하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 ㉧그릇되게 하다 ㉨자세하다(--) ㉩구석 ㉪가락 ㉫악곡 ㉬굽이 ㉭재미있는 재주

굽을곡을 썼는데 악곡이라는 뜻이 있다.

동악의 움직일동과 풍류악, 즐길락으로 읽지 않는 동악산의 풍류와 구곡의 악곡이라는 해석...

차라리 골곡(谷)을 썼다면 전혀 이의가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어쨌던 청류계곡은 다른 어떤 곳보다 빼어난 곳이다.

 

 

 

 

 

수석 절경이 삼남 제일이라는 청류동()은 도림구곡(), 청류구곡으로 불린다. 제1은 쇄연문(), 제2는 낙악대(), 길상사청계동 갈림길에 9곡 별유비인간()이 있다. 임진왜란양대박(:1544∼1592)과 병자호란의 김감(:1566∼1641) 의병장이 활약한 별천지 무릉도원, 천혜의 요새로 4km에 걸쳐 있는 폭포·소·담이 굽이치는 반석들이 지방기념물 제101호이다.  제2의 낙악대라고 한 곳을 어느 곳에서는 요요대(臺)라고 읽는다.

위의 사진에는

二曲
盈科後進 放乎四海

이곡
영과후진 방호사해

라는 글귀가 선명하고 글쓴이의 이름까지 나타나 있는데.......

 

[盈科而後進 영과이후진] 구멍을 가득 채운 뒤에 나간다는 뜻으로,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于先) 그곳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흘러간다는 말. 곧 사람의 배움의 길도 속성(速成)으로 하려 하지말고 차근차근 닦아 나가야 한다는 말

 

 

 여기서는 요요대라고 했는데 어떤 곳은 낙락대라고하네요. 동락이라 하지 않고 굳이 동악이라 하더니...

 단심송...우측 물 건너 반석에 단심대라는 새김글이 있고 우측에는 또 싯귀가 적혀 있다.

 

 

 도림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통일신라 헌강왕 2년(876) 도선국사가 고쳐 세웠는데 이 때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어 절 이름을 도림사(道林寺)라 하였다고 한다.(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익대사 등 도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도인숲을 이루었다고)  현재 절 안에는 작은 규모의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지장전, 약사전,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이 절에는 조선 숙종 9년(1683)에 제작된 도림사 괘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을 보관하고 있다.

 도림사  위쪽 곁문 바로 옆에 있는 바위에 6곡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부 마모되어 잘 나타나지 않지만 1곡에서 9곡까지 이 계곡에 있다는데 일부만 찾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계곡탐사를 한 번 하고 싶다.  동악정상만 바라보고 치닫느라고 이런 흔적들을 놓치기 쉽다. 계곡의 널따란 암반이 멋있다 싶은 곳엔 모두 싯귀가 음각되어 있다. 내려 오는 길에 보니 물이 흐르는 바닥에도 보였다. 물이 적으면 그 글씨는 노출이 되겠지만...

 

 

 

 

 1시간 30분 정도에 동악을 정복, ...산이 너무 낮습니다.... 그래도 물은 매우 깊죠.

 탑꼭대기에 배와 심청, 뱃사람들이...인단수에 뛰어들기 전의 심청의 모습이다.

곡성군의 캐릭터는 심청, 고속도로 곡성 다음이 옥과. 옥과에서 남쪽으로 가는  15번 국도를 따라 화순 방향으로 5~6킬로미터를 가면 곡성군 오산면 신세리의 심청공원이라는 조그만 길가의 쉼터 같은 곳을 만날 수 있는데 가는 동안 온통 심청의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신세리에서 마을을 지나 동쪽의 산쪽으로 10리길을 가면 관음사를 찾을 수 있는데 그 관음사 창건기에 심청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심청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고 심청에 대응되는 이름은 원홍장, 심학규는 원량이라는 맹인, 화주승의 이야기까지..인단수는 황해가 아니라 남해 먼바다일 거라고...이 산에 와 보려고 며칠 전에 읽은 책 원홍장과 심청에 있는 그 책의 저자 박혜범 님의 생각도 포함되었을 것이지만... 그는 도림사의 원효 창건설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이 산 어딘가 살고 있을 분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