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청화산 산행 2011.10.13 목

benel_jt 2011. 10. 16. 13:21

 

상주, 문경, 괴산 땅을 밟고 간 청화산 산행

20111013 목 무척


날씨가 제법 선선하다.

등산 티 하나만 입고 가기엔 좀 서늘했던지, 감기가 덤벼들려고 하는 겄 같다.

늘재에서 산행을 시작한 건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옥양동에서 올라 조항산을 가려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서울의 모 산악회는 청화산을 갔다가 도로 그 길로 내려간단다. 그들의 표현대로 이정표가 너무나 부실하다고는 하지만....

늘재에서의 오름길은 청화산에서 옥양동으로 바로 내려가는 길보다 크게 힘들지는 않았던 것 같다.

조금만 서둘렀으면 처음 생각했던데로 갓바위재에서 하산했을텐데... 조항산은 처음부터 포기했던터라.

하산 후에는 지난 번 백악산을 가지 못해 볼 수 없었던 옥양폭포가 산행종점 주차장에서 300m 거리라 잠시 볼 수 있었다.

왕소나무는 사전 정보도 가지지 못했고, 하산길에 트럭들의 왕래로도로 우측을 주의깊게 살피지 않아 천연기념물을 놓치고 왔다가 하산식사 자리에서 신선바위님의 이야기를 듣고 속히 그 기록을 살피려다가 삼송교회 옆의 느티나무까지 가서 먼 빛으로 보고 돌아와 버렸다. 고바우님과  신선바위님이 오죽 챙겼으랴 하고. 먼저 탑재하신 고바우님의 사진으로 대충 보았다. 600년 노송의 사적을...

화서에서 화북으로 국도를 이동하는 동안에 갈령(葛嶺)을 만났다. 어찌나 반가운지..처음 무척산악회를 따라 산행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채 되기 전 쯤에 청계산을 산행할 때 만난 그 기점이 갈령이다. 우린 그 때 갈재라고 했었지.

그 때 청계산에는 견훤성터가 있었는데 제대로 안내된 자료를 만나지도 못하고 하산했던 기억이 새롭다.

청화산에 오르면서 내내 그 생각에 젖어 뒤돌아 산의 모습을 머리 속에 그려보았다.

 

산행 시간 (조항산까지 타는 일진을 생각하며 5시간을 여유롭게 쉬엄쉬엄 걸었다. 돌아보고 또 돌아보면서...)

11:36 하차
11:40 성황당
11:47 [늘재 0.4, 청화산정상 2.4]
12:09 정국기원단(나라가 편할 것을 기원하는 단)
13:43 정상
16:25 옥양교 (오름길 2.8km/2:09, 내림길 ??/2:42)지도에 나타난 하산길로는 가장 먼저 있는 탈출로이지만 길은 만만치 않으리라는 예상대로였다.)

 

 

빨강색이

나중에 바라 본 왕솔

초입인 늘재에 있는 낙한 분수령 표지,

건물의 형태가 성황당 답지 않은 게 관의 손이 탄 흔적이 뚜렸하였다. 성황당에 웬 현판이며, 맞배지붕의 규모가 민속적 냄새 이하라면 틀린말일까...

白頭大幹 城隍堂 由來碑

백두대간의 정기 받은 영역 늘재에 당(堂)이 있으니 백두대간 성황당이다. 이 당은 원리 탑의 신앙과 산신신앙을 홍성한 서낭신앙에서 유래하여 신라 고구려 때는 횡액 질병을 막고 길손의 무사 여행을 기원하는 소박한 민간 토속이었고 조선에 이르러 동제(洞祭)로 발전하여 오다가 잦은 국난을 당하면서 국태민안을 위해 성황신을 백신(白神)의 장으로 모시고 관민이 신봉하는 전통 신앙으로 승화되어 당(堂)도 지지(地誌)에 등재되어 왔다. 이러한 유서를 지닌 신당이므로 그 위치가 환경 유적과 사실(史實)이 찬연하다. 이를 개관하면 이 늘재는 낙한(落漢) 양대강의 분수령이다. 강의 원류 따라 개통된 도로는 동남으로 영호남, 서북으로 충청도와 서울로 통하는 장정(長程)의 기점이며 고대에 라제(羅濟)의 국경으로 각축지대라 견훤산성이 축성되었고 근세에는 정기룡(鄭起龍) 장군의 임란전첩지가 용화동에 있으며 세조대왕께서 백관과 함께 노니신 문장대와 용화온천을 비롯하여 고승(高僧)과 명장(名將)이 수련한 유적이 있다. 특히, 한말 경술국치 후의 의사(義士)들이 창의하고 만세운동이 전개될 때 통로가 되고 쉼터이며 도창의대장 이강년(李康秊)선생의 묘소가 지척에 있다. 그리고 때맞추어 늘티에 전상석(全相錫)처사가 우국일념으로 이 성황당을 창건하여 동민과 함께 지성기도하여 지금에 이르렀다. 백여년이 지난 이제 그의 증손 충환(充渙)이 유지를 받들고 이상배(李相培) 국회의원과 김근수(金瑾洙) 상주시장이 산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당(堂)을 중창하여 선인들의 애국정신을 후세에 수범하고 후진의 교육장이 되게 하여 백두대간의 영기(靈氣)를 실감나게 하였다. 이에 그간의 유래와 성황당 중창의 경위를 약기하여 비를 세워 영원히 기념하는 바이다.

 

 

 

 

정국기원단, 나라의 편안을 기원히는 제단이라..

남쪽으로 높이 보이는 봉우리가 2007년7월에 다녀온 청계산인 듯 하다.

 

 

 

 

 

 

 

 

 

 

 

 

 

 

 

 

 

 

 

 

 

 

 

 

 

 

 

옥양교에서 청화산의 반대편으로 300m 올라가 찾은 옥양폭포, 수량을 줄었지만...

 

 

==의상저수지 아래 옥양동의 왕산은 무척산악회 신선바위님의 사진을 빌었다==

 

 

4:41.왕소나무 입석.

 

왕소나무 모습.(충북,괴산군,청천면 삼송리)

둘레가 약 5미터나 되는데다 높이 15미터에 가지를 드리운 폭이 20미터가 넘는다. 줄기 모습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 보인다

하여 용송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주변에 아름드리 노송 20여주를 부하처럼 거느리고 있어 왕소나무로 불리기도 한다.

천연기념물 제 290호로 지정된 이 노거수의 수령은 약 600여 년 쯤으로 추정된다.

개울쪽으로 비스듬이 가지가.

 

소나무 유래.

 

천연기념물 290호로 지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