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봉 방향으로 오르면서 만난 서울인의 말 "이 산에 뭘 볼 게 있다고 그 먼 곳에서 예까지 왔나요." "그래도 우린 몇 년을 벼르고 준비해서 온 거랍니다."
우리 산님 중에 백운대 부근에서 전화하는 말 "야, 월출산보다 더 좋다..." 감탄의 연속이었다.
성곽을 따라 걷는 길이 약간 지루하다는 말도 있었지만, 오히려 성곽을 따라 걸으면서 우리 조상들의 삶의 애환을 그려보는 여유도 한 번 느껴보았으면 어떠리.
마음으로는 한없이 오고 싶었으나 오지 못한 님들께 송구한 뜻마저 전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처음 생각으로는 진달래 능선을 따라 용암문으로 가서 정상이나 밟고 올까 했는데 비봉의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버리기가 아까워 1진을 선택했다. 체력이 미치지 못하면 용암문에서 탈출, 아니면 위문에서 탈출을 염두에 두었는데 용암문까지 가니 약간의 시간이 여유가 있었다. 위문까지 가니 바로 코앞에 정상을 두고 버리기가 너무 아까웠다. 백운대를 밟고는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산 시간이 5시 30분이다. 그런데 약속을 지키기가 만만치 않다.
약간 속도를 내었지만 5분 정도 지각이다.
약 400km를 달려야 하는데 시간을 맞추어야 하는 부담때문에 2진을 선택했다면 언제 다시 북한산비를 볼 수 있을까. 창령비는 자연석 같은 곳에 새겼는데 여기는 잘 갈아 만든 빗돌에다 새겼다.
비봉 정상의 순수비 진품은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니 이건 복제품이다. (국보 제3호, 비의 크기는 높이 1.54m, 너비 69㎝) 그래도 그 뜻을 충분히 생각할 수 있을지고.
남북이 통일되고 자유로운 왕래가 허용된다면 황초령비와 마운령비도 어루만져 보고 싶다.
아래 지도는 한국의 산천에서 빌림, 코스와 시간은 필자의 느린 산행 과정임
거리를 고려하여 평시보다 한시간 앞당겨 6시10분에 부산덕천역에서 출발하고 중간 지점을 최소화해 명동방향 대신 삼랑진IC로 진입했다. 서울에서는 속도가 줄었다.
11:50 하차(이북5도청 조금 위쪽) 비봉통제소 입구
12:01 목정굴 입구
12:02 금선사 입구 비봉 1.3km
12:48 비봉 아래서 진흥왕의 북한산순수비를 바라봄
12:49 비봉 안내판(추락위험지역 출입 허용기준)
13:00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
13:18 사모바위
13:30 승가봉
13:42 중식(20분간)
14:02 중식 후 이동 시작
14:09 비봉에서 1.5km, 문수봉 0.2km. 여기서 우회로 선택함
14:25 비봉에서 1.8km, 대남문 0.3km
14:26 청수동암문(성벽이 이어지기 시작함)
14:36 대남문
14:39 종로구 경계
14:40 성벽에 이어진 돌문
14:45 대성문
14:57 산성 주능선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조망(여기서 정상 주변의 노적봉, 백운대, 만수봉, 인수봉이 보인다. 백운대, 만수봉, 인수봉을 합하여 삼각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
15:01 보국문(세시간 넘어 걸었다고 성벽 위에 길게 휴식을 하시는 님들도..)
15:03 헬기장
15:05 칼바위 능선 갈림길이 성벽의 일부를 거쳐 나가고 있다.
15:11 대동문(소귀천계곡에서 진달래능선을 타고 2진이 이 곳으로 오르기로 했는데 모두들 용암문으로 가게 되었나)
15:21 동장대
15:25 위문 2km 남은 거리
15:38 용암사지 석탑
15:41 용암문
15:53 병풍암
15:57 노적봉
16:20 위문
16:38 백운대 정상
16:53 위문
17:00 하루재
17:35 도선사 주차장
11.4km 정도를 5시간 45분 동안 걸었다.
천안으로 가서 버섯전골로 식사를 하고 부산에 도착한 시간은 날짜를 바꾸어 0:30 경이었다.
비봉쪽에서 바라본 향로봉
비봉에 세워진 신라 진흥왕의 북한산 순수비
비봉은 위험 구간이다. 보조 설비 하나도 없다. 통제를 하지만 자세히 보니 조건부 허용...
부산 등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흐림이라는 예보에 약간 걱정했으나 시계 양호. 정말 멋진 산행을 도운 하늘. 중앙의 사모바위
이게 순수비다. 복제품이고, 원본은 박물관에 보관 중이다. 우리 역사에 산성은 국가 수호를 위한 중요 시설이었다.
北漢山 新羅 眞興王巡狩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호로 지정되었다. 비신(碑身)의 높이 1.54m, 너비 0.69m, 두께 0.16m이다. 파손이 우려되어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견된 4기(基)의 진흥왕순수비 중 하나로, 화강암으로 된 이 비석의 형태는 다른 비와는 달리 직사각형으로 가공된 석재를 사용하여 자연암반 위에 2단의 층을 만들고 세웠다. 비신의 상단(上端)에 1단의 촉을 만든 것으로 보아 원래는 개석(蓋石)을 덮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비문은 비신을 연마(硏磨)한 후 정면에 12행을 새겼으나 윗부분은 심하게 마멸되었고 제12행은 판독이 불가능하며, 그 밖에도 자획이 분명하지 않은 곳이 많다. 따라서 1행의 자수(字數)도 확실하지 않으나 30자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자체(字體)는 육조(六朝)식의 해서(楷書)이고 자경(字徑)은 3cm이다.
글뜻은 다른 3비의 비문으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전반부는 순수의 사적(事蹟)에 관한 것이고, 후반은 수행한 인명(人名)을 열기(列記)한 듯하다.
비석 측면에는 1816년(순조 16)과 그 다음해에 완당(阮堂) 김정희(金正喜)가 실사내독(實査來讀)한 사실이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丙子七月金正喜金敬淵來讀, 己未八月三十日李濟鉉龍仁人, 丁丑六月八日金正喜趙寅永同來審定殘字 六十八字'로 기록되어 있으며, 이후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많은 부분이 절단 또는 손상되어 있고, 비신의 뒤쪽에는 무수한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비문에 명기(明記)되어 있었을 연호 간지(干支)가 마손되어 건립연대는 확실하지 않다.
진흥왕 16년 왕이 북한산에 순행(巡幸)한 사실이 있으나 이를 곧 비의 건립연대로 보기는 어렵고, 남아 있는 글자의 내용을 검토하면 568년(진흥왕 29) 이후 진흥왕 생존시의 일로 추정된다.
新羅眞興王巡狩碑가 발견된 곳은 4곳이다.
사모바위
중앙은 비봉, 우측은 사모바위 저 멀리 보이는 향로봉, 좌측 아래 보이는 승가사, 처음 계획은 저 길을...그런데 비봉으로 바꿨다.
멀리 삼각산이 보인다. 만경대, 백운대, 인수봉..... 그리고 앞쪽에 노적봉도.
승가봉..그냥 지나치는 볼품없는 봉우리였나.
저 봉우리가 우회해 버린 문수봉인 듯 하다.
비봉능선의 이 통천문은 한 시간 뒤에 성벽에서 만나는 돌문보다 규모가 약간 크다.
비오는 날 또는 흐린 날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 서울의 북한산 주변 조망은 선명하기만 하다.
이 청수동암문은 문수봉을 우회하는 길에 있는 것이다. 여기서 북한산 정상으로 가는 이정표가 확실하지 않아 의상봉으로 향할 뻔했다. 문수봉을 한바퀴 돌아서 가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바퀴 돌아서 대남문에 도착했을 때까지도 회장님은 정상인 문수봉에 도착하지 못했다. 우리보다 먼저 출발한 대장 팀은 대남문을 지날 때 쯤 문수봉에 도착.
문수봉에 오르는 길은 매우 험했다고 문신님이 폰으로 찍은 사진을 폰으로 전송해 주셨다. 감사....
북한산성 청수동 암문(北漢山城 靑水洞 暗門)
暗門은 城郭에서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상출입구로 북한산성에는 청수동 암문을 비롯하여 西暗門, 東暗門, 白雲洞 暗門, 龍岩 暗門, 扶旺洞 暗門, 袈裟堂 暗門 등이 있다.
북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격전지로 조선시대에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외침을 당하여 한양도성을 수비.방어하고자 숙종 37년(1711)에 石城으로 수축되었다. 승려 聖能이 지은 北漢誌에는 북한산성의 축조과정이 기록되어 전하고 있다.
1990년부터는 훼손된 大南門, 大城門, 大東門, 輔國門, 龍岩 暗門, 靑水洞 暗門 및 성벽을 보수하고 東將臺를 복원하였다.
문수봉에 오르는 님들을 문신님의 폰으로 포착, 10분 전에 식사 끝내고 저 봉우리를 정복하려니 부담도 되고 여기서 힘을 소비하면 백운대를 포기해야할 것 같은 예상때문에 우회하면서 힘을 비축하고 소화도 시키고....조금 시간과 힘을 벌어 백운대까지...
北漢山城
사적162호, 소재지 :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1-1 외
북한산 능선을 따라 쌓은 석축산성으로, 백제가 위례성에 도읍을 정할 때 고구려의 남진을 막기 위해 개루왕 때(132년) 처음 쌓은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신라가 백제와의 동맹을 어기고, 한강지역을 차지하면서 진흥왕이 북한산 순수비를 세웠다.
고려 고종 19년(1232) 몽고군의 2차 침입시 고려 현종이 태조의 위패를 이 곳으로 옮긴 일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 이전에도 성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산성에 대한 대대적인 수축 및 증축이 이루어진 것은 숙종 37년(1711)이며, 지금 남아 있는 성벽은 그 때의 것이다.
성에 이어진 돌문 하나..
대성문의 문루
동장대에서
龍岩寺址 石塔
北漢誌에 따르면 용암사는 북한산성을 쌓기 시작한 1711년(숙종 37년) 이후에 87칸의 규모로 창건되었다고 한다.
용암봉 암문 일대의 산성 수비와 승병들의 훈련장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나 승병을 강제 해산한 갑오개혁(1894년) 즈음 폐사된 것으로 보인다.
이 곳이 용암사 터임을 보여주는 증거로 탑재가 대피소 근처에 남아있다. 현재 갑석과 탑신석, 옥개석 일부만 남아 있는데, 남은 탑재를 볼 때 높이가 3m 이상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통일신라말~고려초에 건립된 것으로서, 이 탑을 통해 용암사가 1711년(숙종37)에건립되었다는 사료의 기록과 달리 이미 이전부터 있었음을 알 수 있다.
* 석탑재는 이후의 복원을 위하여 보존되고 있다.
백운대 가는 길은 매우 험한 길로 시작된다. 오늘은 사람이 많지 않았기에 다니기에도 편하다.
백운대에서 앞에는 인수봉, 멀리 도봉산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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