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백암산의 백학봉과 백양사 2010.11.18 목

benel_jt 2010. 11. 19. 12:04

산행 계획은 전남 장성군 북하면의 백양산이다. 백양산은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하며 산 아래의 골을 경계로 하여 전라남북도가 갈리고 장성과 정읍이 갈라진다.

좌로부터 우로 돌아 산행을 하도록 된 계획은 사자봉, 상왕봉, 도집봉, 백학봉, 백양사 코스였다. 1진을 따라 그 방향을 갔을 때 시간에 쫓겨 중간 탈출을 한다면 마지막에 있는 백학봉의 절경과 영천굴 등을 놓치게 되고 백양사를 느슨하게 돌아볼 여유가 없으리라는 계산이 있어 백학봉을 먼저 잡고 시간에 따라 조정하기로 했다.

백양사 앞의 쌍계루에서 출발한 시각은 12시 경이다.

선조와 헌종이 나라 일로 제사를 지냈다는 국기단이 오르는 길에 있었는데 일행이 지나치기에 잠시 불러 세워 함께 보고, 비오는 날의 잠수교 같은 시멘트 다리 옆에 그보다 1m 정도 높였을까 하는 다리를 하나 만들어 놓은 곳으로 마른 냇물을 건너 시멘트 포장된 길로 조금 더 가니 우측으로 이정표가 있었다. 영천굴 500m다. 400m에 약사암, 500m에 영천암과 함께 있는 영천굴이다.

오르는 길이 좀 가파르지만 늦은 단풍은 절경을 이루어 감탄이 연발이다.

약사암의 뒤 암벽이나 석간수의 생김이 지난 6월에 갔던 괴산군 수산면의 미인봉(저승봉) 부근의 정방사의 그것과 너무나 닮은 분위기였다.

다시 내려 가는 듯 하면서 올라간 영천굴은 아랫층의 샘이 있고, 위층은 불단으로 조성을 했다.

여기서 부터는 오르막의 나무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관리번호 백학1부터 백학5까지 있었고 그 위쪽으로는 관리번호는 보이지 않고 길고 가파른 3개의 계단이 있어 숨을 몰아 쉬게 만든다. 중간 정도에 의자를 둔 쉴 공간까지 있다. 백학봉까지 오르는 과정이 월출산의 영봉을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래에서 볼 때도 하얀 바위가 벽을 쌓은 듯 하더니 오르면서 보아도 거의 수직인 듯한 바위가 버티고 있었다. 백암산의 멋은 백학봉이 모두 가진 듯하다.

다음 코스는 눈으로 보기에도 거의 육산이라 무리가 없을 듯한데 상왕봉까지 갔다가 남창골재에서 하산하면 백양사를 보고도 시간 내에 하산하리라 생각했는데 모두들 중간 탈출을 합의했단다.

고집부릴 상황이 못되어 따르기는 했지만 결국 북도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象王峰에서 주변의 산들을 조망할 기회도 놓쳤다.

곧 바로 임도가 되고 시간이 넉넉하기에 700m 위쪽의 운문암 방향으로 길을 잡았으나 운문암은 객의 출입을 금한다고 200m 앞에 안내를 했다.

 

내려와서 백양사를 돌아보았다.

보리수가 명물이라고 하여 보았지만 가지들만 남았다.

대웅전의 배경이 백학봉이다.

백양사는 내장산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1400여년 전 백제 무왕33년(632)에 여환조사에 의해 백암산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고려 덕종 3년(1034) 중연선사가 중건하면서 정토사로 불리었다가, 선조 7년에 이르러 환양선사에 의해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다. 전설에 따르면 환양선사라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할 때 꿈에 백양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설법을 듣고는 본래 자신은 하늘의 신선이었는데 죄를 짓고 쫓겨왔다며 죄를 뉘우치고 환생하여 다시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였고, 이튿날 영천암 아래 흰 양이 한 마리 죽어 있었으며 그 후 절의 이름을 백양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양사는 31본산의 하나로 오랜 연원과 함께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 있다. 소요대사부도,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을 포함하여 청류암의 관음전, 경관이 아름다운 쌍계루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백양사 오른쪽 뒷편에는 선조 36년인 1603년과 현종 3년인 1662년에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특별히 제사를 올렸다는 국기단이 있다.

 

백양사에서 나와 500m 정도 북동쪽으로 소맷골을 따라 가다가 백학봉에서 내리는 천진암골로 갈라지는 곳에 있는 천진암을 찾았다. 그 곳에서 눈에 띄게 인상적인 것은 허리 높이보다 낮은 담장이 쳐진 절집들, 그리고 기둥에 새겨진 법문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다는데 놀라웠다.

천진암은 고려 충정왕 2년(1351)에 각진국사가 창건하였고 6.25 때 소실된 것을 비구니 정공스님(~1971)의 공덕 등으로 지금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쌍계루는 약수동계곡과 소맷골의 합수점에서 남쪽으로 약수천을 바라보며 지어진 누각인데 고불총림백양사라는 백양사 홍보 팜플렛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고 가람배치도에 25번이 부여되어 쌍계루라는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약수천에 쌓은 보들이 직사각형의 연못을 이루어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쌍계루의 정면을 보기 위해 보에 서서 보니 백학봉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백양사 백학봉의 설명에 쌍계루에 대한 글이 한 줄 은닉하듯 적혀 있다.

"백양사 창건 역사를 전하는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를 비롯하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면앙정 송순 등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유명인사들이 찾아와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남기는 등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명승지이다."

유림들의 이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산에는 입구에서 부터 시작되는 갈참나무들과 함께 비자나무 숲이 유명하다.

백양사 일원에 5,000여 그루의 비자나무 숲이 형성된 유래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각진국사가 당시 유일한 구충제였던 비자나무 열매로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절 주변에 심었다고 하며 실제로 1970년대까지도 스님들은 이 열매를 거두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 153호이며 현재 서식지로 북방한계선이라고 한다.

산행 계획은 전남 장성군 북하면의 백양산이다. 백양산은 내장산국립공원에 속하며 산 아래의 골을 경계로 하여 전라남북도가 갈리고 장성과 정읍이 갈라진다.

좌로부터 우로 돌아 산행을 하도록 된 계획은 사자봉, 상왕봉, 도집봉, 백학봉, 백양사 코스였다. 1진을 따라 그 방향을 갔을 때 시간에 쫓겨 중간 탈출을 한다면 마지막에 있는 백학봉의 절경과 영천굴 등을 놓치게 되고 백양사를 느슨하게 돌아볼 여유가 없으리라는 계산이 있어 백학봉을 먼저 잡고 시간에 따라 조정하기로 했다.

백양사 앞의 쌍계루에서 출발한 시각은 12시 경이다.

선조와 헌종이 나라 일로 제사를 지냈다는 국기단이 오르는 길에 있었는데 일행이 지나치기에 잠시 불러 세워 함께 보고, 비오는 날의 잠수교 같은 시멘트 다리 옆에 그보다 1m 정도 높였을까 하는 다리를 하나 만들어 놓은 곳으로 마른 냇물을 건너 시멘트 포장된 길로 조금 더 가니 우측으로 이정표가 있었다. 영천굴 500m다. 400m에 약사암, 500m에 영천암과 함께 있는 영천굴이다.

오르는 길이 좀 가파르지만 늦은 단풍은 절경을 이루어 감탄이 연발이다.

약사암의 뒤 암벽이나 석간수의 생김이 지난 6월에 갔던 괴산군 수산면의 미인봉(저승봉) 부근의 정방사의 그것과 너무나 닮은 분위기였다.

다시 내려 가는 듯 하면서 올라간 영천굴은 아랫층의 샘이 있고, 위층은 불단으로 조성을 했다.

여기서 부터는 오르막의 나무 계단이 조성되어 있는데 관리번호 백학1부터 백학5까지 있었고 그 위쪽으로는 관리번호는 보이지 않고 길고 가파른 3개의 계단이 있어 숨을 몰아 쉬게 만든다. 중간 정도에 의자를 둔 쉴 공간까지 있다. 백학봉까지 오르는 과정이 월출산의 영봉을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래에서 볼 때도 하얀 바위가 벽을 쌓은 듯 하더니 오르면서 보아도 거의 수직인 듯한 바위가 버티고 있었다. 백암산의 멋은 백학봉이 모두 가진 듯하다.

다음 코스는 눈으로 보기에도 거의 육산이라 무리가 없을 듯한데 상왕봉까지 갔다가 남창골재에서 하산하면 백양사를 보고도 시간 내에 하산하리라 생각했는데 모두들 중간 탈출을 합의했단다.

고집부릴 상황이 못되어 따르기는 했지만 결국 북도 땅을 밟아보지도 못하고 象王峰에서 주변의 산들을 조망할 기회도 놓쳤다.

곧 바로 임도가 되고 시간이 넉넉하기에 700m 위쪽의 운문암 방향으로 길을 잡았으나 운문암은 객의 출입을 금한다고 200m 앞에 안내를 했다.

 

내려와서 백양사를 돌아보았다.

보리수가 명물이라고 하여 보았지만 가지들만 남았다.

대웅전의 배경이 백학봉이다.

백양사는 내장산 가인봉과 백학봉 사이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다. 1400여년 전 백제 무왕33년(632)에 여환조사에 의해 백암산 백암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는데, 고려 덕종 3년(1034) 중연선사가 중건하면서 정토사로 불리었다가, 선조 7년에 이르러 환양선사에 의해 백양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한다. 전설에 따르면 환양선사라가 영천암에서 금강경을 설법할 때 꿈에 백양 한 마리가 하늘에서 내려와 설법을 듣고는 본래 자신은 하늘의 신선이었는데 죄를 짓고 쫓겨왔다며 죄를 뉘우치고 환생하여 다시 천국으로 가게 되었다고 하였고, 이튿날 영천암 아래 흰 양이 한 마리 죽어 있었으며 그 후 절의 이름을 백양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백양사는 31본산의 하나로 오랜 연원과 함께 수많은 문화유산들을 간직하고 있다. 소요대사부도,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을 포함하여 청류암의 관음전, 경관이 아름다운 쌍계루 등이 바로 그것이다. 백양사 오른쪽 뒷편에는 선조 36년인 1603년과 현종 3년인 1662년에 나라의 평화와 안녕을 위해 특별히 제사를 올렸다는 국기단이 있다.

 

백양사에서 나와 500m 정도 북동쪽으로 소맷골을 따라 가다가 백학봉에서 내리는 천진암골로 갈라지는 곳에 있는 천진암을 찾았다. 그 곳에서 눈에 띄게 인상적인 것은 허리 높이보다 낮은 담장이 쳐진 절집들, 그리고 기둥에 새겨진 법문들이 모두 한글로 되어 있다는데 놀라웠다.

천진암은 고려 충정왕 2년(1351)에 각진국사가 창건하였고 6.25 때 소실된 것을 비구니 정공스님(~1971)의 공덕 등으로 지금은 비구니 수행도량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한다.

 

쌍계루는 약수동계곡과 소맷골의 합수점에서 남쪽으로 약수천을 바라보며 지어진 누각인데 고불총림백양사라는 백양사 홍보 팜플렛에는 별다른 설명도 없고 가람배치도에 25번이 부여되어 쌍계루라는 이름만 적혀 있을 뿐이다. 약수천에 쌓은 보들이 직사각형의 연못을 이루어 물고기들이 살고 있다. 쌍계루의 정면을 보기 위해 보에 서서 보니 백학봉을 배경으로 한 폭의 그림을 이루고 있다.

백양사 백학봉의 설명에 쌍계루에 대한 글이 한 줄 은닉하듯 적혀 있다.

"백양사 창건 역사를 전하는 정도전의 정토사교루기를 비롯하여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하서 김인후, 사암 박순, 면앙정 송순 등 고려말부터 조선시대까지 많은 유명인사들이 찾아와 백학봉과 쌍계루의 풍광을 읊은 시와 기문을 남기는 등 예로부터 자연경관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명승지이다."

유림들의 이름이 있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

 

이 산에는 입구에서 부터 시작되는 갈참나무들과 함께 비자나무 숲이 유명하다.

백양사 일원에 5,000여 그루의 비자나무 숲이 형성된 유래는 고려 고종(재위 1213-1259) 때 각진국사가 당시 유일한 구충제였던 비자나무 열매로 가까운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절 주변에 심었다고 하며 실제로 1970년대까지도 스님들은 이 열매를 거두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 비자나무 숲은 천연기념물 제 153호이며 현재 서식지로 북방한계선이라고 한다.

 

쌍계루,,뒷산이 백학봉이며 앞 내가 약수천

 

 

雙溪樓 (쌍계루)


圃隱 鄭夢周 (포은 정몽주)


求詩今見白巖僧 구시금견백암승 지금 시를 써 달라 청하는 백암사(현 백양사) 스님을 만나니
把筆沈吟傀不能 파필침음괴불능 붓을 잡고 생각에 잠겨도 능히 읊지 못해 재주 없음 부끄럽구나.
淸叟起樓名始重 청수기루명시중 청수스님이 누각을 세우니 이름이 더욱 중후하고
牧翁作記價還增 목옹작기가환증 목은 선생이 기문을 지으니 그 가치가 도리어 빛나도다.
烟光縹緲暮山紫 연광표묘모산자 노을빛 아득하니 저무는 산이 붉고
月影徘徊秋水澄 월영배회추수징 달빛이 흘러 돌아 가을 물이 맑구나
久向人間煩熱惱 구향인간번열뇌 오랫 동안 인간 세상에서 시달렸는데
拂衣何日共君登 불의하일공군등 어느 날 옷을 떨치고 그대와 함께 올라 보리.

 

고려시대 당대 최고의 문인 포은 정몽주 선생이 백양사를 방문하여 지은 작품으로 고려말기 어지러운 시기에 "어느 때에 편안한 마음으로 임금님(그대)을 모시고 쌍계루에 오를 수 있을까?"하며 임금과 나라를 걱정하는 시. 

백학봉 올라가는 입구에서 바라본 모습..

백양사의 대웅전도 배경이 백학봉이다

비구니 도량인 천진암..한글로 쓴...

천진암 돌계단 앞에 감나무가 파란 하늘과 어울려..

백양사에서 내려오는 길에 되돌아 본 백학봉

입구의 갈참나무

갈참나무

백양사의 비자나무 분포 북한지대 안내

비자나무

비자나무

국기단의 홍살문과 국기단...안에는 텅 빈 단이 있을 뿐이지만

국기단 안내판

백학의 비상

채색 단풍이 영롱하다

 

영천굴에서..위쪽의 불단이 있는 곳

 

아랫쪽의 영천 약수..바가지 가 있는 곳은 3m 정도 떨어졌을까...

 

계단에서 바라본 암벽은 수직벽이다. 계단이 많고 길고 급경사라 조심... 

 

백학 정상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