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상산 [赤裳山] 1,034m
전북 무주군 적상면
적상산은 사면이 절벽으로 둘러싸여 가을 단풍이 붉게 물들면 여인네의 치마와 같다 하여 적상이라는 이름이 붙어졌다. 가을뿐만 아니라 철따라 독특한 개성미를 가득 뿌린다. 적상산에는 장도바위, 장군바위 등 자연 명소와 함께 최영 장군이 건의하여 축조했다는 적상산성(사적 제 146호)이 있다.
현재의 성은 조선 인조6년(1628년) 다시 쌓은 것으로서 둘레가 8.143㎞에 이른다. 적상산성 안에는 고찰 안국사 등 유서깊은 문화유적이 운치를 더해 준다. 적상산은 적상면 중앙에 솟은 향로봉과 基峰 두 봉우리를 주봉으로 한다.
북쪽 향로봉과 남쪽 基峰이 마주하고 있는 정상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라 원시림을 방불케 할 정도로 나무가 울창하다. 하지만 지면에서 800-900m 가량되는 산허리 까지는 층암절벽이 병풍처럼 겹겹이 둘러싸고 있는 바위산이다.
험한 바위산인 탓에 등산로는 서창리 지소 쪽이나 조금 아래 쪽으로 내려가서 안국사로 오르는 적상교가 일반적이나 안국사로 오르는 길은 돌비탈을 지나야 하고 길도 애매해서 지소 쪽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 좋다.
장도바위
적상산성 서문아래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이 바위는 고려 말 최영장군이 적상산을 오르다가 길이 막혀 장도를 내리쳐 길을 내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다.
안렴대
고려시대 거란병이 쳐들어왔을 때 지방장관이었던 안렴사가 이곳으로 피난왔다고해서 붙여진 절벽 위 전망대
안찰사[按察使], 안렴사 : 고려 최고 지방행정구획인 5도의 장관.
《고려사(高麗史)》백관지 외직 안렴사조에는 현종 3년(1012) 절도사(節度使)가 혁파된 후 안찰사가 설치된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그러나 실제로 안찰사가 처음 기록에 나타난 것은 정종(靖宗) 3년(1037)이었다. 이후 충렬왕 2년(1276)에 안렴사(按廉使)로 개칭되고, 충선왕 즉위 후 제찰사(提察使)로 바뀌었다가 다시 충숙왕 후년에 안렴사로 환원되는 과정을 밟았지만 제도로서는 고려말까지 계속되었다.
학자에 따라서는 5도안찰사제를 부정하고 고려의 도(道)가 행정기구의 기능을 갖게된 것은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였다고 해석하기도 하나 명종 18년(1188) 제(制)에서 명시된 안찰사의 직능이나 우왕 4년(1387) 헌사의 상언에 명시된 안렴사의 직을 검토해보면 이들은 각 도의 주현을 순안(巡按)하면서 ①수령의 현부(賢否)를 살펴 출척(黜陟)하는일, ②민생의 질고(疾苦)를 묻는 일, ③형옥의 심치(審治), ④조부(租賦)의 수납, ⑤군사적 기능 등을 맡아보았던 것이 확인된다.
이들은 각 주현(州縣)의 수령을 통할하여 중앙정부와 연결하는 중간기구의 위치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상급 행정관이면서도 그 관품이 보통 5품내지 6품으로 낮았고, 전임관이 아니라 행정기구를 갖추지 못했으며, 또한 6개월만에 교대하므로 임기가 짧았었다. 때문에 고려후기에는 이를 시정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는데, 먼저 우왕 5년(1379)에는 안찰사의 임기가 1년으로 연장되었으며, 창왕 즉위년(1388)에는 안렴사를 도관찰출척사(都觀察黜陟使)로 승격하고 재추로 임명하였다. 또 공양왕 원년(1389)에는 도관찰출척사에게도 행정기구인 경력사(經歷司)를 설치하였다. 또 다음해에는 양계지역에도 도관찰출척사가 설치되었는데 이는 전국의 지방통치기구가 일원화되었음을 의미한다.
[출처] 안찰사[按察使] 네이버 백과사전
적상산 산정호수
적상산 분지(해발 800m)에 위치한 인공호수로 양수 발전소에 필요한 물을 담아두기 위해 만든 댐으로 적상호라 명명되었다.
산림청 100명산 선정사유
o 가을에 마치 온 산이 빨간 치마를 입은 여인네의 모습과 같다 하여 이름이 붙여질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며 덕유산 국립공원구역인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o 고려 공민왕 23년(1374) 최영 장군이 탐라를 토벌한 후 귀경길에 이 곳을 지나다가 산의 형세가 요새로서 적지임을 알고 왕에게 건의하여 축성된 적상산성(사적 제146호)과 안국사 등이 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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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0 경에 서창마을에 도착하리라 예상했는데 뜻밖에 안국사 방향이다. 2진을 배려한 건가 착각했는데 천일폭포 앞의 주차장까지 갔다가 되돌렸다.
조금만 더 가면 적상호 주차장인데... 그러면 오늘 산행은 매우 짧아지지만 적상호 전망대부터 赤裳山 史庫址 등을 훑어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고 침묵을 지켰더니 웬 걸..되돌아 간단다. 그럴 줄 알았으면 처음 돌릴 때 귀띔해 줄 걸 그랬지.
그래도 김기사님, 김회장님, 김대장님, 김총무님 모두들 감사합니다. 안국사 계곡길의 화려한 단풍을 눈요기할 기회를 얻었으니...
12:11 버스 하차, 서창향토박물관 부근
12:15 산행 기점 [이정표] 서창마을 0.1km, 안국사 3.2km
12:20 [이정표] 서창통제소 0.8, 향로봉 2.3, 안국사 2.4
12:28 [이정표] 서창통제소 1.1, 향로봉 2.0, 안국사 2.1
12:35 [이정표] 서창통제소 1.4, 향로봉 1.7, 안국사 1.8
13:00 장도바위
13:04 서문지 [이정표] 서창통제소 2.1, 향로봉 1.0, 안국사 1.1
13:15 지름길로 향로봉 방향 20m 정도 앞에 갈림길 이정표 있음
13:26 향로봉
13:30-14:00 점심 식사
14:09 서문 삼거리 [이정표] 서창통제소 2.8, 향로봉 0.5, 안국사 1.0
적상산 정상에는 통신시설 등이 있어 우회하여 이동함
14:21 [이정표] 안렴대 0.3, 향로봉 1.3, 안국사 0.2
14:28-30 안렴대
14:40-46 안국사, 성보박물관
14:48 적상산성, 일주문
14:49 [이정표] 치목마을 3.7, 향로봉 1.5, 안렴대 0.5
14:58 안렴대가는 삼거리 [이정표] 안렴대 0.3, 향로봉 1.3, 안국사 0.2
15:11 서문 삼거리 [이정표] 서창통제소 2.8, 향로봉 0.5, 안국사 1.0
15:20 서문지 [이정표] 서창통제소 2.1, 향로봉 1.0, 안국사 1.1
15:23 장도바위
16:04 [이정표] 서창통제소 0.8, 향로봉 2.3, 안국사 2.4
16:13 산행 기점의 공원, 석재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 팔각정자
16:20 의병대장 장지현의 묘
16:27 서창종합관광안내센터(이게 지도상의 서창향토박물관...위치상 확실함)
16:42 교량 아래 버스 대기, 산행 마침
▲ 적상산의 단풍
▲ 장도바위
▲ 장도바위
▲ 서문지
▲ 서문지
▲ 서문지
▲ 적상산 단풍
▲ 향로봉
▲ 안렴대에서 내려다 본 풍경
▲ 성보박물관 입구
▲ 안국사 범종각
▲ 안국사 극락전
▲ 안국사 일주문의 안쪽
▲ 안국사 일주문의 바깥쪽
▲ 의병장 장지현의 묘소
▲ 의병장 장지현의 전공비 후면 기록
장지현 의병장
본관 구례(求禮)
호 삼괴(三槐)
별칭 자 명숙(明叔)
활동분야 군사
본관 구례(求禮). 자 명숙(明叔). 호 삼괴(三槐). 1590년(선조 23) 천거로 전라도병마절도사 신립(申砬)의 부장(部將)이 되고, 이듬해 감찰에 올랐으나 사직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경상도관찰사 윤선각(尹先覺)에게 용맹을 인정받아 그의 비장(裨將)이 되어 이듬해 부하 수천 명을 거느리고 황간(黃澗)의 추풍령(秋風嶺)에서 적을 요격하던 중 금산(錦山) 방면에서 진격해 오던 적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 군사의 협공을 받아 분전 끝에 전사하였다. 병조참의사 추증되고 영동(永同)의 화암(花巖)서원에 배향되었다.
[출처] 장지현 [張智賢 ] | 네이버 백과사전
▲ 의병장 장지현 묘소 앞의 420년생 소나무
▲ 적상산 안내
▲ 안내가 없어...
▲ 이건 통시(측간)
▲ 치마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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