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들을 거리 볼거리와 얘깃거리가 많은 봉화의 달바위봉 2011.12.10 토

benel_jt 2011. 12. 11. 13:16

 봉화의 달바위봉 (1,094m月巖峰)

조선조 단종 사후 백성들이 태백산에 입산한 단종의 영혼을 천도하고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태백산 망경재에서 제를 올리던 중 음력 8월 보름경에 동쪽을 바라보니  푸른 산속 위에 암석봉우리가 우뚝 솟아 있어 멀리서 바라보면 달같이 둥실 떠있는 기묘한 형상으로 보여 달바위봉이라고 명명되었다한다

 

한국의 산천 홈페이지에 소개된 봉화의 달바위봉은 제법 볼거리와 얘깃거리를 갖춘 산이다.

눈도 만만치 않게 있을텐데...의아한 생각도 없지 않으면서 따라 붙었다.

BC산악회는 인터넷 카페에서 예약하지만 항상 만차에다 예비번호까지 6-7명, 취소하는 사람이 있으면 대체하여 들어가기 때문에 조금 늦으면 포기해야 한다. 그래서 일지감치 예약해 두었다.

2년 반을 다니고 있는 KM산악회는 70대가 주류를 이루고 나로서는 중간이지만, 여기는 대체로 젊은이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래서 과감한 도전을 한 것일까.

내가 MC산악회의 산행계획에서 통제되는 산에 대한 정보를 주면 대체로 계획을 바꾸는데...

달바위봉은 6-10월에만 산행이 허용되는 곳이다.

 

정상석이 있는 바위의 조망은 일품이다.  태백산, 함백산, 일월산 등 멀고 가까운 준봉들이 눈을 이고 있는 모습이 맑은 하늘 아래 장관을 이루어 오르는 이들마다 탄성을 그치지를 못한다.

정상 옆의 넓지 않은 공간에서 식사를 했는데  그 곳이 바로 유명한 소무덤이다.

 

정상석이 있는 바위를 건너는 곳은 오르고 내림의 교행이 되지 않아 기다려야 한다. 눈도 쌓여 있어 엄청난 조심이 필요하다. 정상석에서 내려오는 로프에서 한바퀴 회전하는 모습을 두 번이나 보았다.

정상석을 포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게다가 달바위봉 정상에서 작은달바위봉 방향으로 가는 길은 안전을 위해 통행금지라는 안내가 있는 곳이었다.

사실 여기서부터는 칠성암에서 오르는 길보다 더 난코스였다. 암봉 옆으로 난 협로에 약한 자일 하나로  버티고 간다. 바위를 오르 내리는 구간에 다리 길이가 짧아 바닥에 닿지 않아 바위 벽에 닿으면서 피부에 긁히는 자국들이 생긴다. 

하산의 처음 주눅들게 하는 곳은  가는 자일이 걸쳐있는 곳, 위는 약간의 경사가 있어 매듭 없는 자일로, 바로 이어지는 아래는 수직바위에 매듭이 한 팔 간격으로 있어 잡으면서 내려간다. 무리들 중에 조금 먼저 갔기에 뒤따르는 이들의 발 짚을 곳을 유도하며 기다렸다가 내려갔다. 다음 구간은 손목 굵기의 로프에 거의 수직이다. 처음은 매듭이 없다. 두 사람을 두고 먼저 내려가는데 첫 부분은 발 닿을 곳이 있어 조금 안전하다고 할까. 바로 아래는 매듭이 두 개 있는 곳이지만 발이 닿을 곳이 마땅찮다. 손아귀에 힘이 빠져 우측 팔에 줄을 감아 저항을 만들려고 하는데 여의치 않다. 발에 S자로 감기도 어렵다.순전히 손아귀의 힘만으로 버텨야 한다.

1968년 원주의 간현 유격장에서 90도 등판을 오를 때의 요령으로 하강을 하려는데 5m 정도에서 손이 미끄러진다. 위에서 보는 이들을 놀라게 해서 정말 미안스럽게 생각되어 손을 흔들며 재빨리 일어났다. 약간의 충격은 있었지만... 여기서 빠진 팔 힘이 끝까지 가는 동안 긴장하게 만들었다.

합장바위를 지나 철탑에서 방향을 좌로 바꾸고 진주강씨묘까지 가는 동안의 급경사는 짧은 거리에 비해 엄청난 에너지를 사용하게 했다. 배낭 옆에 끼워 두었던 귤 하나가 뭉크러지고 냉기에 얼었지만 그 단맛이 피로를 싹 풀어주는 듯하다.

 

1968년 12월 유격훈련장에서의 기억.. 200명 대원 중에 30명만 넘었다. 몸이 약한 편이었던 나는 이것도 넘지 못하면 전투에서 살아남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사력을 다해 넘어야겠다는 의지가 발동했다. 170명이나 탈락한 이유는 자세가 흐트러지면 아래서 조교가 줄을 흔들어 떨어뜨린 것이다. 물론 나도 자세가 흐트러졌고 흔들렸다. 그 때 부터 좌우측 손목에 교대로 로프를 감으면서 넘어갔던 것이다.

그 날 밤 170명은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알철모와 소총, 팬티만 입고 섬강물에 잠수를 해야 했었다.

그런데 달바위봉 로프의 무게와 굵기가 팔에 감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눈 때문에 로프가 약간 미끄러웠을 것과 장갑의 문제도 있었다고 본다.

 

경북이지만 강원도의 태백에 더 가까운 곳이다.

봉화까지 가는 동안 소백산 이외의 산에는 눈을 거의 볼 수 없었던 것 같은데...석포면 부근에 들어서야 눈이 보이기 시작하는 것 같다.

나의 속도로 4시간 정도 걸린 산행이다. 식사하고, 사진 찍고, 기다리고..등의 느린 산행인데 여기에는 나보다 뒤에도 적지 않아 꼴지라는 별명은 듣지 않겠다.

 

11:43 대현교에서 하차

11:57 천주교대현교회와 문수암이 나란히 있는 곳

12:08 주차장

12:12 칠성암

12:21 이정표 [월암봉1.9km] 누군가 원본을 지우고 매직으로 고친 흔적

12:53 이정표 [월암봉0.8km] 여기도 매직으로 지운 흔적, 매직으로 0.8, 원본은 1.2 아니면 0.2

13:05 계단

13:19 전망바위

13:30 정상 옆의 소무덤

13:36-37 정상(소무덤 바로 옆인데 하산하는 행렬을 기다렸다가 오름)

13:38-14:00 다시 소무덤 부근에서 중식, 일행 기다리는 시각까지.

14:01 통행금지, 이 쪽으로 하산한다고...

14:04 가는 로프 2단(여기서 일행의 안전 도모 위해 착지 유도로 지체)

다음에 이어 팔목 굵기의 2단 로프로 하강(보조 자일이 필요하다) 낙하..구르기

14:33 위험구간은 끝나고..이정표 [칠성암 2.5km, 정법사] 전체 거리는 약 8.5 km 정도

14:47 삼거리 이정표 [달바위, 속세골, 성황골]

14:55 합장바위

15:30 철탑

15:32 들것, 로프 등을 준비하고 올라가는 의용소방대원을 만남, 이들은 봉화의 지역 주민들로 구성되었다.

15:45 진주강씨묘

15:48 등산로 표지

15:50 정법사 입구

15:59 속세골 쉼터 도착, 하산 종료

 

전체거리 약8.5km, 들머리-주차장-칠성암 : 2km, 칠성암-정상넘어 : 2.5km, 정상-속세골 4km

 

 

 

내 산행도

 

정상 아래 쪽 전망대에서

정상석

정상에 서서

일월산 방향을 배경으로

 

 

 대현리의 등산 안내도에 적힌 시간은 내 걸음과 비슷한 듯

시작 지점에서 본 맑은 하늘 

천주교 대현교회 앞에 문수암의 안내판, 성당과 절이 나란히 있어서 

문수암 건물..앞의 도랑을 건너면 성당이다. 

천주교대현교회 철문..관리하지 않는 곳인 듯 한데.. 

오르는 길 우측에 창고처럼 지어졌는데 웬 금줄이 쳐져 있기에.. 

주차장과 월암봉 이정표 

 절집이긴 한데...

위성 안테나와 그랜져...밤에 다시 왔을 때 너무 추워 안의 도움을 받으려고 들여다 보니 기도한는 듯... 

대웅전이 자그마하게 있는데 우측으로 비켜서 산길이 나 있는데 중간 중간에 소나무가 쓰러져 길을 막고 있었다.

 

아치형으로 굽은 가지를 눈이 덮어 있다. 

 눈길 급경사를 밧줄로 이었는데 대부분이 아이젠을 늦게 착용하고 어떤이들은 내리막길에 가서야 이이젠을 착용한다.

정상 부근의 철다리 

 철다리에서 뒤돌아보니...이 쪽이 일월산이라고 얘기한 분이 오늘의 대장이었던가..

 정상의 무덤..눈에 덮여있는 게 소무덤이란다. 여기서 중식을..



달바위봉의 전설


달바위봉의 높이는 1092m 이다.
태백산 문수봉의 남쪽에 위치한 지맥으로 백천계곡 맞은 편에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월암봉, 또는 장군봉이라 부르며, 푸른 산 속 위에 암석으로 된 봉우리가 달 같이 둥실 떠 있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봉이다.
이곳 속세골은 억새가 많아 얻은 지명으로 예전에는 집집마다 호랑이 새끼를 잡아다 기를 정도로 호랑이가 많이 살아 그에 대한 전설도 많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한다.
어느 해 지독한 가뭄에 먹을 것을 찾기 힘든 호랑이가 사람들까지 해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 마을 주민 전체가 호랑이가 두려워, 아예 대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날 우연히 마을을 방문하게 된 스님이 암수가 한 몸에 있는 소를 데리고 달바위봉에 올라 처음 삼일 동안은 백천계곡의 열목어를 먹인 후 호랑이에게 보내라고 이른다.
이에 촌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사님의 당부를 따랐고,
그날 밤 하늘을 가르는 듯한 호랑이와 소의 울음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퍼져 밤이 새도록 끊이지 않았다.
밤새 밀고 밀리며 계속된 호랑이와 소의 싸움의 흔적은 달바위봉을 이어 백천계곡을 따라 이십리 길을 이루게 되었고 두 짐승은  나란히 용소에 누워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라들은 달바위봉 꼭대기에 호랑이와 소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이후로는 주민들을 해치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곳의 등반로는 예전 주로 호랑이가 많이 다니던 길을 따라 정비가 되었으며 오르는 길이 험하긴 하나 능선의 풍경은 금강산과 비길만 하다고 한다.
또한 전설 속 두 짐승의 싸움 흔적으로 만들어진 백천계곡 깊은 가을에 환상적인 단픙터널로 유명하며 특히 물이 차고 깨끗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열목어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상석은 좁은 바위에 있고 여기를 건너기는 매우 험한 곳이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작은 달바위봉은 보는 것으로 끝이다. 

 식사 후에 하산하는 길 앞에 이런 것이...되돌아 갔다면 어땠을까. 여기서 부터는 험난한 구간이 연속된다.

 이 정도는 내가 사진을 찍을 여유가 있을 만큼 편한 곳이다.

 

 

가는 자일이 안전 시설이다.  

바위와 절벽 밧줄의 연속이다. 가는 자일의 2단 위험 구간에서 질겁을 하는 이들도 있었다. 먼저 내려 발을 지켜주다가 지체하고..

내려서 돌면 내 팔목 굵기의 굵은 밧줄 2단 구간.. 윗줄은 매듭 없이... 아랫줄은 두 개의 매듭이 있지만 매듭 구간이 너무 멀었다.

둘째 매듭 부근에서 스르르...쿵...놀람  일어나며 안전함을 알리고..놀라게 해서 죄송....그런데 이미 더 큰 일이 있었다.

 

 올라온 길도 만만한 길이 아니었건만 내려가는 길도 만만치 않다. 그래도 여기 쯤에서 위험구간 끝이라고 지도에 나타내고 있다.

 

 

이 바위가 합장 바위,,, 

 

 

 

 

철탑

철탑 바로 아래서 의소대원들과 조우..이 즈음 영주 소방대원들은 칠성암 방향으로 올라갔다고 한다.

 

 진주강씨묘도 눈을 덮고 있다.

 정법사 입구에 등산로 안내판이..

신고 받고 올라 온 구급차 

속세골 약수터의 유래

예로부터 속세골에 위치한 산사에는 물을 얻기가 어려워 이 곳을 찾는 사람들은  물을 길러와 부처님께 공양을 드렸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스님의 꿈에 천등과 같은 우뢰소리와 땅이 갈라지는 소리가 들려 깜짝 놀라 잠을 깨어 밖을 보니 지금의 약수터에서 차고 깨끗한 물이 넘쳐 흘렀다고 한다.
지금은 지장수라고도 불리는 이 약수는 물맛이 좋아 지역 주민과 이 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인기가 좋다고 한다. (약수터는 정법사 경내)

 

 

벌써 산 그림자가 가려지기 시작한다. 

 

 정상 바로 아래서 약 4km를 내려 왔다. 정상에서 부터 2시간이 걸렸다.

6월에서 10월까지만 개방한다고 한다. 그런데... 

달바위봉에 얽힌 전설 

달바위봉에 얽힌 전설
달바위봉의 높이는 1092m 이다.
태백산 문수봉의 남쪽에 위치한 지맥으로 백천계곡 맞은 편에 위치한 우뚝 솟은 바위산이다.
월암봉 또는 장군봉이라 부르며, 푸른 산 속 위에 암석으로 된 봉우리가 달 같이 둥실 떠 있는 기묘한 형상의 바위봉이다.
이 곳 속세골은 억새가 많아 얻은 지명으로 예전에는 집집마다 호랑이새끼를 잡아다 기를 정도로 호랑이가 많이 살아 그에 대한 전설도 많이 있다. 그 중 하나를 소개 한다.
어느 해 지독한 가뭄에 먹을 것을 찾기 힘든 호랑이가 사람들까지 해치는 불행한 사건이 일어나, 마을 주민 전체가 호랑이가 두려워, 아예 대문 밖을 나가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날 우연히 마을을 방문하게 된 한 스님이 암수가 한몸에 있는 소를 데리고 달바위봉에 올라 처음 삼일동안은 굶기고 다음 삼일은 백천계곡의 열목어를 먹인 후 호랑이에게 보내라고 이른다.
이에 촌장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거사님의 당부를 따랐고 그 날 밤 하늘을 가르는 듯한 호랑이와 소의 울음소리가 마을 전체에 울려 퍼져 밤이 새도록 끊이지 않았다.
밤새 밀고 밀리며 계속된 호랑이와 소의 싸움의 흔적은 달바위봉을 이어 백천계곡을 따라 이십리 길을 이루게 되었고, 두 짐승은 나란히 용소에 누워 마지막 숨을 거두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달바위봉 꼭대기에 호랑이와 소의 무덤을 만들어 주었는데, 그 이후로는 주민들을 해치는 호랑이가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곳의 등반로는 예전 주로 호랑이가 많이 다니던 길을 따라 정비가 되었으며 오르는 길이 험하긴 하나 능선의 풍경은 금강산과 비길만하다고 한다.
또한 전설 속 두 짐승의 싸움 흔적으로 만들어진 백천계곡 깊은 가을에 환상적인 단풍터널로 유명하며, 특히 물이 차고 깨끗하여 지구상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열목어 서식지로 천연기념물 제74호로 지정되어 있다.
 

 

 하신식을 한 장소..

추운 날 밖에서 하산식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았습니다.

 

음력16일 달이 밝기는 하지만 들것에 뉘어 모포로 싸여 내려오는 부상자의 고통과 들고 도우며 오는 분들의 고통을 저 달은 알려는지..

저 달도 오늘은 마음이 아픈지 우리가 부산으로 내려오기 전부터 빛을 잃었다가 찾는다. (개기월식 20:31.8분-02:31.7분까지)   

밤 8시 전후해서 칠성암 방향으로 하산한다는 후송팀의 영접을 위해 칠성암에 갔을 때 보니 영주119의 차량이 주차해 있었다.

환자는 후송하고 버스에 있는 대부분은 먼저 부산으로 보낸다는 결정으로 내려오는 회장님과 함께 내려왔다. 차량의 탑승 인원 제한과 시간 조절 관계로 ..봉화의소대에서 올라와 상황을 보고 다시 대원들을 소집하여 오고 영주 소방서에서도 추가 인원과 앰블런스가 올라왔다.

이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더 어렵고 힘든 길이 되었을 것이다. 뜨거운 감사를 드린다.

봉화의소대와 영주119에서 구조활동을 마치고 21:45에 인사를 하고 떠난다. 부산 도착한 시각은 01:50.모두의 노고에 감사드리며 쾌유를 기원


1년 후

이 사고로 입원해있던 렉스털보님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삼가 조의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