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12.15 목
용봉산龍鳳山
밤이면 눈이 내리리라는 예보가 있었지만 며칠 간 그 곳은 눈이 없었던 곳이다. 혹시나 싶어 아이젠은 준비했다가 차에 두고 내렸다. 4시간 정도의 산행에 300m 내외의 비교적 안전한 바위길이라 ...
이리 저리 즐기면서 보다 보니 약속 시간에 겨우 들어 왔다.
12:29 용봉초등학교앞
12:35 이정표[용봉초등학교 0.1, 용도사미륵불 0.5, 최고봉 1.2km]
12:41 이정표 [용봉초등학교 0.6, 최고봉 0.7]
12:43 미륵불
12:52 정자
13:04 돌탑
13:07 투석봉, 이정표[용봉초등학교 1.12, 최고봉 0.23]
13:14 최고봉, 이정표 [투석봉 0.22, 노적봉 0.23]
13:24 이정표 [최고봉 211m, 최영장군활터 105m]
13:26 정자, 최영장군 활터, 이정표[정상 0.3, 청소년수련원 0.6km]
13:33-47 정상 100m 아래쪽에서 중식
13:53 이정표 [정상 0.3, 노적봉 0.1, 수련원 0.7]
13:55 노적봉 [정상 0.4, 악귀봉 0.3]
14:05 악귀봉 이정표 [노적봉 0.23, ...]
14:07 전망대, 두꺼비바위
14:09 물개바위
14:10 삽살개바위
14:15 정자
14:19 정자
14:23 이정표 [최고봉 0.7, 악귀봉 0.5, 마애석불 0.2]
14:26 마애석불, 용봉사 203m
14:31 대피소, 정자
14:32 용봉사, 이정표 [병풍바위 0.2, 구룡대 0.5]
14:37 이정표 [용봉사 280m, 병풍바위 111m]
14:41 병풍바위, 이정표 [용봉사 0.2, 구룡대 0.6, 용바위 0.3]
14:56 용바위, 이정표 [최고봉 1.2, 악귀봉 0.7, 병풍바위 0.3, 전망대(덕산)]
15:02 전망대, 이정표 [덕산온천지구 3.5, 돌탑 3.2, 석조보살입상3.2]
15:15 이정표 [팔각정 0.3, 덕산온천지구 3.2]
15:23 가루실고개, 이정표 [용봉산 3.5, 수암산정상 1.0, 덕산면둔리(좌), 삽교읍신리(우)]
15:37 부부바위
15:40 정자
15:58 솔바람길, 얼굴모양 바위, 솔바람길이라고 이름 붙은 곳부터는 아주 편한 산책길이 이어진다.
16:06 수암산 정상, 정자
16:09 돌탑 2기
16:12 이정표 방향들만 나타냄, 좌로 돌아 덕산온천 방향으로 내리막
16:23 산길 끝, 솔바람길 안내가 있고 두 곳으로 철계단이 오르고 있음
큰 도로에 이어지는데 지하통로를 이용해서 건너면 곧 바로 징검다리를 건너는 하천이 있으며 이어서 온천지구로 연결됨
16:30 약속된 시간에 주차장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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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초입은 이 학교 부근에서 하차하여 용도사 방향으로 간다. 1947년에 분교로 시작, 57년에 개교.
홍성 상하리 미륵불(洪城 上下里 彌勒佛)
오랜 건물인데 여기도 불사를 일으키려고 한다.
홍성 상하리 미륵불(洪城 上下里 彌勒佛)
홍성 상하리 미륵불(洪城 上下里 彌勒佛)
홍성 상하리 미륵불(洪城 上下里 彌勒佛)
유형문화재 제87호 (1979.7.3 지정)
위치 : 홍성군 홍북면 상하리 산1-2
미륵불은 먼 훗날 이 땅에 추련하여 중생을 제도하는 미래의 부처이다. 이 미륵불은 용봉산(龍鳳山) 서쪽 기슭에 있는 절벽 밑에 우뚝 솟은 자연암석을 활용하여 조각한 입상(立像)이다.
머리는 정수리 부분이 평평하며, 귀는 직선으로 턱 밑까지 내려왔다. 가늘고 긴 눈, 넓적하고 낮은 코, 입은 비교적 작으나 얕게 평면적으로는 돋을새김한 응은한 미소는 자비로움이 잘 표현되어 있다.
신체는 얼굴에 비해 더욱 평면적이어서 가슴부분에 두 손을 아래위로 나란히 대고 있는데 오른손을 가슴에 대고 왼손은 약간 떨구었다.
이 외에 광배(光背)나 신광(身光), 대좌(臺座) 등의 다른 부분은 생략하였다.
고려 중기에 조성된 충청도 지방의 불상 양식이 잘 표현되어 있다.
오르는 길은 이렇게 편하다
완경사..안전하다는 말이 나올만 하다.
투석봉
용봉산
정상 표석
정자에 오르면 아래쪽으로 마을이 보인다. 여기가 활터
활터 안내..여기에는 표적지나 표적판이 없다. 제법 황당한 이야기를 남긴 곳..
최영(崔瑩)장군 활터
최영 장군이 소년시절에 애마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서 내기를 했다고 한다. 화살을 쏘아서 말이 빨리 가면 큰 상을 내리고, 화살이 빠르면 말 너의 목을 치겠다는 내기였다.
말은 자신있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소년 최영은 말을 타고 건너편 남동쪽 5km 지점의 홍성읍에 있는 은행정 방향으로 화살을 쏘았다. 동시에 말과 함께 바람처럼 달렸다.
최영이 말과 함께 단숨에 목적지에 도착했지만 화살은 보이지 않았다.
최영은 약속대로 사랑하는 애마의 목을 칼로 내리치는 순간 화살이 피융하며 지나가는 것이었다.
최영은 자신의 경거망동을 크게 후회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나라를 위해 큰 일을 하자고 약속했던 애마를 그 자리에 묻어주었다.
지금도 홍성읍 국도변 은행정 옆에 금마총이라고 부르는 말무덤이 있다.
여러분이 서 있는 이 곳은 바로 최영 장군이 무술 연마를 하며 활을 쏘았던 곳이다.
삽살개 바위, 꼬리부분에 그늘이 생겼다.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洪城新耕理磨崖石佛)
홍성 신경리 마애석불(洪城新耕理磨崖石佛)
국가지정보물 제355호(1963.1.21지정)
홍성군 홍북면 신정리 산81
자연암석의 앞면을 파서 감실(龕室)을 만들고 그 안에 立像을 조각하였다.
얼굴은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을 띠고 있고, 얼굴에 비해서 하체로 내려갈수록 묘사한 선이 약화되었다.
손 모양은 오른손을 내려서 다리에 붙이고 왼손을 들어 중생의 모든 두려움을 없애고 평안을 주는 모양인 시무외인(施無畏印)을 표현하였다.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은 2줄의 돌출선으로 표현했다. 불상의 하단에 놓인 대좌(臺座)는 ㅂ려도의 돌로 되었으며, 옆면에 2겹의 연꽃잎을 조각하였다.
이 불상은 조각양식으로 보아 고려초기에 건립된 마애불(磨崖佛)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불상 아래에서 기와조각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이 곳에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절을 옮기게 했다는 명당에 세운 비석과 묘
용봉사(龍奉寺)
용봉사(龍奉寺)
홍성군 홍북면 산경리
용봅산 중턱에 위치한 용봉사는 1988년 전통사찰 제67호로 지정된 곳이다. 대한불교조계쫑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절의 연혁이 전해지지 않아 자세한 역사는 알 수 없으나 전하는 유물로 보아 백제말에 창건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용봉사는 돌축대 위에 자리잡고 있는데 지금 절은 원래 있던 자리가 아니다. 현재 자리 서쪽으로 조금 높은 곳에 절이 있었는데 그 터가 명당이라 하여 평양 조씨(平壤趙氏) 일가가 묘를 쓰겠다고 절을 폐허화시켜 밀려 내려온 것으로 이 때 마을 주민들이 현재의 위치로 절을 옮겼다.
현재 용봉사에는 대웅전, 지장전, 산신각, 적묵당, 일주문 등의 건물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내부에 1689년에 제작된 아미타삼존불과 후불탱화 등 5점의 탱화가 모셔져 있다.
유물로는 보물 355호 마애석불, 보물 1262호 용봉사영산괘불탱, 유형문화재 118호 용봉사마애불, 문화재자료 162호 용봉사지석조(마애, 석구, 석조), 문화재자료 168호 용두사부도가 전해지고 있는데 문화재로 지정한 것들이 많아 대찰의 면모를 보여준다.
용봉사 영산회상 괘불탱화(龍鳳寺靈山會上掛佛幀畵)
보물 제1262호
(1997.8.8지정)
홍성군 홍북면 신경리 산80-4
용봉사의 괘불은 일체 번뇌(燔惱)와 마왕(魔王)으로부터 항복을 받고 정각(正覺)을 드러내는 모양인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한 석가모니와 팔대보살(八大菩薩), 십대제자(十大弟子), 사천왕,(四天王), 제석천(帝釋天), 범천(梵天), 벽지불(辟支佛)을 그린 불화(佛畵)이다. 구도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상단 3줄의 종렬(從列)로 이루었다.
석가모니불의 형상은 거신광배(擧身光背)를 지고 수미산(須彌山)에 있는 원만한 모습을 단아하게 표현하였다.
팔대보살 가운데 문수,보현보살은 수미산 옆에 각기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고, 관음보살은 화불(化佛)이 든 보관(寶冠)을 쓰고 나머지 보살들은 각기 정병(淨甁), 경책(經冊), 연꽃가지나 여의(如意)를 들고 모두 석가모니 본존을 향하고 있다.
십대제자 가운데 아난, 가섭존자는 흑갑사(黑甲紗)의 두관(頭光)을 지고 합장(合掌)한 자세를 하고 나머지 목련존자 등은 녹색과 흑갑사 두광을 지고 있는 모습이다.
사대천왕은 석가모니의 오른편에 서.남천왕(西.南天王)이, 왼편에 북.동천왕(北.東天王)이 배치되었다.
제석천은 화관(花冠)을 쓰고 조복(朝服)을 입은 제왕(帝王)의 모습이다.
이 幀畵는 조선 왕실의 불교신앙에 의한 것으로, 조선 숙종 16년(1690) 5월에 화사(畵師) 진간(鎭干)에 의해서 그려졌는데, 괘불탱화(掛佛幀畵)의 크기는 593x550cm로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幀畵 중의 하나이다.
용봉사에서는 매년 4월 초파일에 이 괘불탱화(掛佛幀畵)를 대웅전 앞의 석축 위에 걸어놓고 초파일 의식을 봉행한다.
의자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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