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행열차는 역마다 세운다//김천 황악산 산행 2011.3.10. 목
날씨가 너무 좋다.
정상에서 3℃에, 서풍 4m/s 정도의 바람도 차게 느껴지지 않을 만큼 땀에 젖었다.
하차시간은 11:07이며 주차장 도착 시간은 16:49으로 아래 적힌 시간은 3분이 빠르게 적혀 있어 기록에서 3분을 빼면 실제 시간이 된다. (총시간은 5시간 42분으로 식사 25분 및 휴식 포함으로 후미의 느린 산행 시간, 총거리는 괘방령에서 직지사까지 11.5km, 주차장까지 가면 12km 이상이 된다)
11:10 괘방령 하차[표고320m]//괘방령은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 된다.
11:42 휴식
11:48 여시골산 620m,[괘방령1500m, 황악산 4200m] 괘방령에서 황악산까지는 5.7km
12:00 여시굴
12:20 운수봉 680m, 백두대간 [황악상 2600m, 여시골산 1600m, 괘방령 3100m]
12:33 운수골로 하산하는 안부 갈림길 [황악산 2260m] 여기서 몇 명은 하산했다.
12:50-13:15 중식(25분간) 기다려도 오지 않는 분을 휴대전화로 확인하니 운수골 갈림길로 하산했다.
13:28 [황악산 1580m]
13:35 [황악산 1070m]
13:43 [황악산 1000m]
13:57 [황악산 610m]
14:15 돌탑
14:16-14:18 눈 쌓인 대간길//완행열차가 정거장마다 쉰다는 고바우님의 핀잔을 받으며 촬영 재촉.
14:20 정상헬기장, 황악산 정상 1111.4m
14:40 형제봉 1040m,(555산에는 1035m) [황악산 정상 0.9km, 바람재 1.3km]
14:51 신선봉 갈림길 995m, [바람재 0.8km, 황악산 정상 1.4km]
15:14 신선봉 944m, [황악산 정상 2800m, 직지사 3000m]
15:53 [황악산 정상 4400m, 신선봉 1600m, 직지사 1400m]
15:58 망봉 597m, (555산에는 망월봉), [황악산 정상 4600m, 신선봉 1800m, 직지사 1200m]
16:25 직지사, [황악산 정상 5800m, 신선봉 3000m]
16:35 직지사 일주문 앞
16:47 직지문화공원 입구
16:52 주차장
16:30 하산 시간보다 약 20분이 지체되었다. 기다린 분들께 죄송한 마음으로 ...
황악산(1,111m)은 추풍령을 잠시 가라앉힌 백두대간이 서남쪽 멀리 지리산을 향하다가 첫번째로 산릉을 다시 치켜 올려 놓은 산이다. 황악산은 해발 1,111m 비로봉을 중심으로 백운봉(770m), 신선봉 (944m), 운수봉(740m)이 치솟아 직지사를 포근히 감싸준다.
충북 영동과 경북 금릉의 경계를 이루는 황악산은 옛날 학이 많이 찾아와서 일명 황학산(黃鶴山)으로도 불리어 왔다. 황악산의 모든 명소와 고적은 동쪽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그러니까 경북 땅인 김천시가 황악산 들목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황악산의 백미인 직지사도 김천에서 들어가게 된다.
직지사는 오래된 절이다. 신라의 눌지왕 때 고구려의 아도화상이 세웠다니까 대충 1,600여년의 내력을 갖고 있으며, 그후 태조 19년(939년) 능여대사가 중건했다. 또한 사명대사가 5년간이나 이 절에서 수도했다는 것도 유명하다.
직지사라는 이름도 좀 독특한 것인데, 직지라는 사명(寺名)은 '직지인심 견성성불' 이라는 조사어록에 근거한듯 하지만, 아도스님이 신라에 불도를 전하러 왔다가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좋은 절터라고 한데서 유래한다는 설이 가장 유명하다. 또는 나중에 이 절을 중건한 능여대사가 자를 쓰지 않고 손으로 쟀다고 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는 설도 전해온다.
괘방령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길, 충북 영동군의 경계 표지가 보인다.
이 돌탑이 얼마 전에 TV에 나온 어느 분이 정상에 쌓았던 그 탑이던가...돌 모양이 아닌 듯하다.
괘방령(掛榜嶺)
이 곳은 충북과 경북의 경계지역으로 조선시대부터 괘방령(掛榜嶺)이라 불리고 있다.
괘방령(掛榜嶺)이라는 지명은 조선시대 이 고개를 넘어 과거를 보러 가면 급제(及第)를 알리는 방(榜)에 붙는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인근의 추풍령(秋風嶺)이 국가 업무 수행에 중요한 관로(官路)였다면 괘방령(掛榜嶺)은 과거시험 보러 다닌던 선비들이 즐겨 넘던 과거(科擧)길이며 한성과 호서에서 영남을 왕래하는 장사꾼들이 관원들의 간섭을 피해 다니던 상로(商路)로서 추풍령 못지 않은 큰 길이었다.
또한 이 곳은 임진왜란 때 박이룡(朴以龍) 장군이 왜군을 상대로 격렬한 전투를 벌여 승전을 거둔 격전지로서 북쪽으로 1km 떨어진 도로변에는 장군의 공을 기리기 위해 지은 황의사(黃義祠)라는 사당이 있다.
비록 이 곳이 해발 300m의 낮은 고개이지만 민족정기의 상징인 백두대간의 精氣가 잠시 숨을 고르다 黃鶴山으로 다시 힘차게 뻗어 오르는 곳이며 금강과 낙동강의 분수령이기도 하여 북쪽으로 흐르면 금강으로, 남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으로 흘러가는 지리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2005.10.1 영동군수
괘방령, 과거장에서 이름이 걸리는 고개라는 뜻의 고개, 이 곳은 낙동강과 금강의 분수령이 되는 곳이다.
괘방령과 달리 죽령은 과거보러 가는 선비들이 피하는 길이라고 한다. 주욱 미끄러진다고....
추풍령도 추풍낙엽을 연상하는 길이었다니...문경새재가 과거길로 부상했었던가 보다.
추풍령과 괘방령은 거리가 가깝다. 그렇지만 죽령과 조령은 옛사람들의 길로는 한참을 돌아야 하는데..
남동쭉으로 뻗은 저 길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의 경계, 옛 고개길이 이제는 가마가 아니라 대형버스로 올랐다.
산행 초입부터 계단이 시작되어 신선봉, 망봉으로 이어지는 하산길도 계단이 많았다.
320m 높이의 괘방령에서 300m 정도 올라 숨을 고른다.
이 쯤에서 일행들에게 알렸던가. 정상까지 3시간 정도 계산하여 2시까지 정상 도착하면 계속하고 아니면 중간 탈출을 ..
여시골산까지는 대장과의 시간차가 별로 나지 않았었는데...
백두대간을 밟으며, 오른발은 충북 땅을, 왼발은 경북 땅을 밟았다.여기에 떨어진 빗물의 형제들은 양쪽으로 나누어지면 서해와 남해로 갈라지면서 태평양에서나 만나게 될까.
여시골산의 여시굴 표지, 난 어린 시절에 야시라고 불렀는데...
어린 시절 앞산에서 들리던 여우 울음 소리가 아직도 생생한데, 지금은 흔적도 없다.
680m의 운수봉까지 올랐다. 1111m까지는 아직도 한참을 올라야 한다.
이 팀의 원칙은 정상에서 식사하는 법이 없다. 특히 겨울 산의 정상은 더 춥다. 그리고 일행 중에 누구든지 가장 먼저 배가 고프다고 하면 내가 그렇지 않다고 해도 함께 식사를 한다. 약한 자를 배려하는 팀웤..실제로 재작년 하동의 형제봉에서 겪었던 체험에 근거한 조치다.
대장의 연락 내용...중간탈출로인 내원계곡갈림길은 통제되었다.
잘 되었다. 핑계대고 끝까지 가야겠다. 아마 후미를 이끌고 가면 30분 정도의 지각은 각오해야겠지만...
직지사를 품은 능선이 조망된다, 형제봉에서 신선봉으로 이어지는 산의 모습
대간의 능선에 쌓인 1m 높이의 설벽雪壁, 여기서 고바우님께 정거장마다 서는 완행열차라는 핀잔을 듣게 된다.
그렇지만 산행은 즐기면서 하는 기여... 이게 우리의 산행 철학이니 선두로서는 답답해질 수 밖에....
그런데 달리는 님과 즐기는 님들 중에 어느 쪽이 더 건강하다고 장담은 금물이지.
그리던 황악산 정상이다. 옛 기억으로는 황학산이었지. 정상의 다른 이름은 비로봉이다.
동으로 95도 방향의 금오산은 약 30km, 하늘이 맑았으나 지면의 옅은 안개가 시정을 선명하지 못하게 했다.
동북동 방향 110도 정도로 보인는 김천 시가지는 선명하게 보인다.
남서쪽 230도 방향의 약 15km에 있는 민주지산 1241.7m는 비교적 선명하게 보인다.
저기 보이는 민주지산 [岷周之山]은 우리 산악회 10년史에 3번을 갔다(2005.6.30, 2008,6,19, 2009,4,2).
산행경력이 日淺한 나로서는 당연히 못 가본 산이다. 올해는 저 곳을 한 번 볼 기회가 올까. 기대가 된다.
정상석을 정면에서 보면 김천시를 바라본다. 충북 영동을 바라보니 해를 등지지 않아 다시 한 번...정면은 고바우님께서,
형제봉 표지, 저 아래쪽으로 보이는 시가지가 김천시
백두대간은 여기서 우리와 헤어진다.
신선봉, 신선바위는 없고 그저 土山이다.
망봉, 555산 지도에는 망월봉이라 했다. 이 아래 어디멘가 정종 대왕의 태실지가 있었을까....
80년대에 보았던 직지사의 느낌은 사라졌다. 궁전을 걷는 느낌이 든다.
사찰의 건물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가 뭘까.
일주문은 옛모습을 간직한 듯 한데....
직지사
예로부터 학이 자주 찾아와 황학산으로 불리웠고, 지도상에도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직지사의 현판을 비롯, 택리지등에 황악산으로 명기되어 있다.
황악산 동쪽 산기슭에 자리한 직지사는 신라 눌지왕 2년 (418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하였고 문화재로는 보물 제319호인 석조약사여래좌상과 보물 제606호인 삼층석탑등 국가지정문화재 7점이 있으며, 암자로는 운수암, 은선암, 백련암이 있다.
전체적인 산세는 특징없이 완만한 편이나 온 산에 수림이 울창하고 산 동쪽으로 흘러내리는 계곡은 곳곳에 폭포와 소를 이뤄 그윽한 계곡미를 이루고 있다.
특히 직지사 서쪽 200m지점에 있는 천룡대에서부터 펼쳐지는 능여계곡은 이 산의 대표적인 계곡으로 봄철에는 진달래, 벚꽃, 산목련이 볼만하고 가을철 단풍 또한 절경을 이룬다.
※ 사명대사와 천왕문앞 돌에 얽힌 일화
직지사는 임진왜란때 나라를 구한 호국선사 사명대사의 출가득도 사찰이다.
사명대사(1544-1610)는 경남 밀양 태생으로 본관은 풍천임(豊川任)씨로 속명은 응규(應奎), 법명은 유정(惟政), 호는 사명당(四溟堂)이다.
13세에 황악산아래 유촌마을(현재의 직지사앞 상가일대로 추정)의 황여헌 선생 문하에서 공부하다 15세에 모친을 여의고 16세에 부친을 여의게 되자 직지사로 출가하여 신묵(信黙)대사의 제자가 되었고 18세에 승과에 합격하고 30세에 직지사 주지가 되었다.
32세에 봉은사 주지로 천거되었으나 이를 사양하고 묘향산 보현사로 휴정(休靜,서산대사)를 찿아가 제자가 되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의승병을 조직해 승병장으로서 명승을 떨쳤다.
※황여헌(黃汝獻.1486-1566) 장수황씨로 황희의 현손(황희2남의 손자) 이조정랑,울산군수 역임. 울산군수재임시 사건에 연루되어 퇴임후 김천에 은거
※ 사명당과 신묵대사의 첫대면에 얽힌 전설
어느날 오후 신묵대사가 참선을 하던 도중 꿈에 천왕문옆 은행나무에 황룡이 서려있는 것을 보고는 깨어나 기이하게 여겨 꿈에 본 장소로 가보니 한 소년이 잠을 자고 있었는데 신묵대사가 소년의 사연을 듣고 거두어 제자로 삼았는데 이 소년이 바로 사명대사이다.
당시의 은행나무는 1800년 만세루 소실 때 불타 없어졌고 천왕문앞 돌은 소년 사명당이 누워 자던 돌이라고 전해진다.
천왕문앞 돌은 소년 사명당이 누워 자던 돌이라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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