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30 여 년 만에 처음 가진 부부동반 4박 5일의 외출

benel_jt 2010. 11. 6. 22:37

11월 1일(월)은 서울을 향하여 출발하였다.

승용차로 가는 김에 가고 싶은곳을 몇 곳 고르다가 시간에 맞추어 조정한 것이

영주와 영월을 거쳐 가기로 작정하였다.

처음엔 6시 경에 출발할까 했는데 결국은 8시 10분 전 쯤에야 집에서 출발했다.

11시경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 여기는 조선말기 부터 이어오는 고택들이 안내판을 달고 있었다. 대부분의 기와집들이 입구(口)字 형태를하고 있는 게 특징이다.

차를 주차하고는 우측으로 가면서 반남박씨네 정자로부터 안내판이 붙어있는 가옥들을 둘러보았다.

거의 마지막 정도 갔을 때 할머니 한 분이 먼저 온 관광객들과 잠시 이야기를나누고 있었다. 봉화에서 오셨다고 한다. 바로 이웃이네요.

그 할머니께 이 집이 미음(ㅁ)자 형이냐고 물었더니 미음이 아니고 입구 字란다. 요즘은 모두 한글을 쓰니까 미음이라고 하는데 본래 입口 字라고...

내가 찾고 싶었던 집은 마지막에 돌아와서 주차한 곳 바로 앞에서 찾았다.

집집마다 사람이 없어 안쪽은 거의 지나쳐버렸다.

주변의 경치가 너무 수려하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삼면이 물이 흐르는데 안동의 하회마을을 연상케 한다.

낙동강의 상류에 해당하는 내성천이 삼면을 휘돌아 흐르는데 그 물이 맑기가 수정 같고 냇가에 암벽이 또한 수려함에 감동할 만 하였다. 게다가 하얀 모래 사장은 정말 드물게 넓고 깨끗하다.

지난 주에 무섬마을 외나무다리 축제가 있었던지 현수막이 아직 걸려 있고 마을에 들어가는 긴 다리에는 깃발들이 군대의 행렬이 지나가는 것 같았다.

외나무다리도 아직 남아있고 어느 집들의 창고에는 축제기간에 사용했던지 민속놀이 기구들이 보이기도 했다.

순흥읍내리 벽화 고분은 길가에 안내판이 있어 바로 들어갔다. 넓지는 않아도 주차할 공간도 있었고, 바로 위에 고분이 있는데 안내판에는 10여기가 있다는데 하나 밖에 보이지 않았다.

입구는 열려 있고, 내부에는 네 코너의 상부에 전등이 달려 있었지만 하나만 센서의 작용인지 왔다 갔다 했다. 몇 장의 사진을 찍으면서 이건 복원한 것인가 싶을 정도로 선명한 것이 좀 마음에 걸렸다.

그 부근에 소수서원과 가까운 곳에 금성대군신단이 있었는데 네비게이션이 이상한 골목길로 안내를 하여 몇 차례 돌아 남의 과수원 샛길로 들어 갔다가 나왔다. 금성단이 이런데 있을 리가 없는데...나중에 포기하고 바로 영월로 넘어가려고 했는데 또 산너머 뒷길로 안내를 받아 순흥지라는 저수지를 돌아 나갔다. 덕분에 산길과 단풍을 즐겁게 감상하였다.

큰 길로 나가니 바로 소수서원이 있다.

소수서원은 몇 해 전에 보았기에 잠시 쉬고 바로 갔다. 갈 길이 멀어..그런데 바로 앞에 금성대군신단이 있어 들렸다.

입구에 작은 주차장이 있고 공원이 자그마하게 조성되어 있으며, 담장 안에 들어서면 좌우측에 사우가 하나 씩 있고 정면에는 금성대군신단과 諸臣들의 단, 그리고 부사의 단이 있었다.

길을 재촉하여 김삿갓 유적지로 설정하여 떠났는데 부석사가는 길을 선택했다.

고속고로로 단양으로  가는 길은 대형 버스가 갈 수 있는데 부석사 가는 길의 영부로(아마도 영춘과 부석을 잇는 길이라는 뜻)는 산 입구에서 "이 곳은 버스가 통행할 수 없음"이라고 안내를 했는데 이 안내는 영부로 입구의 다리목 정도에는 있어야겠다.

초입에 승용차 한 대를 만나 입구에서 기다리는 정도는 좋았는데 산을 넘을 때까지 다섯 대의 차를 만났다. 아마도 한 대는 산행을 위해서 마구령 고갯마루에 주차해 둔 것인데 그 곳은 길이 넓어 주차할 만 하고 그 외는 교행이 쉽지 않은 시멘트로 만든 소로였다. 간간이 아스팔트 포장이 있었으나 좁기는 마찬가지였다.

어지간하면 아직 이 길은 다니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았다.

산을 넘어 가니 소백산 국립공원 입구였고 영주시에 속한 남대리였다.

그 곳부터는 2차선의 아스팔트 길이다.

국립공원을 좌측으로 끼고 돌아가니 경치는 그만이다.

영춘면 가까이 가니 우측으로 김삿갓로의 이정표가 있었는데 네비게이션이 잠시 후 우회전이라는 말이 나오고 이정표가 보이는데 우측길은 좀 전에 산길을 넘은 것과 비슷하다.

의아했지만 내려가니 길을 잘못 들었다.

똑똑한 네비게이션이 좌로 돌려라는 길을 보니 역시 논두렁길 비슷하다.

알고보니 차를 너무 빨리 우로 돌린 것이었다. 김삿갓로는 양호한 2차선 포장도로다.

몇 년 전에 왔을 때는 이 길이 없었는데....

김삿갓 문학관은 문이 닫혀 있었다. 오늘이 월요일이라 그런가.

그냥 가기가 아쉬워 나오는 길에 잠간 묘역에 다녀 왔다.

그 곳에서 애마의 앞 범퍼가 살짝 밀려 흠집이 생겼다. @#$%^&*

청령포까지 이동하여 공용주차장이 있어 주차를 하고 청령포는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50명 정원의 배를 타고 들어갔다. 선착장에서 뒤로 돌면 바로 건너편 선착장이다.

청령포 부근의 단종 관련 유적들이 몇 곳 있는데 여유 있게 찾아보지 못하고 청령포만 둘러보았다.

거리를 계산해보니 약 3km로 10분이면 도착할 수 있는데 아쉽기만 하다. 그렇지만 청령포금표, 관음송, 복원한 단종어소 등을 돌아보았지만 장릉, 관풍헌, 단종역사관 등을 놓치고 갈 수 밖에 없었다. 서울 도착 시간도 제한되고... @#$%^&*도 ...

오피스텔로 바로 가려다가 양재 부근의 정체시에 전화를 받았는데 차를 가져가지 않은 아들이 교총회관에 있다기에 그 곳으로 네비게이션의 지원을 받아 갔다가 오피스텔로 갔다.

 

11월 2일(화)

아침식사 후에 지하철로 남부터미널 역에서 경복궁 역으로 갔다.

바로 5번 출구가 고궁박물관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옛날에 중앙청이 국립박물관이었을 때에 아이들과 잠시 보고는 처음인가 싶다.

자격루가 한 방을 차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사진 촬영을 허락하고 있었다.

마침 징을 울리는 시각이어서 동영상으로 녹화할 수 있었다.

마당을 한바퀴 돌면서 북관대첩비(물론 사본이겠지만)도 보고..

광화문 앞으로 해서 광화문 광장. 그리고 이동하여 청계천..지난 번 산악회가 본 때는 시간이 너무 짧아 입구에만 있다 왔는데 입구의 구조물이 다슬기 모양이라는 걸 오늘에야 알 수 있었다. 축제가 있었던지 종이로 만든 각종 민속 놀이나 동물, 곤충의 형상들이 물에 띄워져 있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축제는 우리가 귀가한 날에 있어서 뉴스로 보았단다.

중간에 올라가 삼일공원(옛 탑골공원, 파고다 공원)을 돌아보고 밖으로 나오니 인사동 풍물거리로 이어졌다. 날씨가 너무 추워 인사동의 한 백화점같은 상가에 들러 구경하면서 몸을 녹이고는 간단한 점심을 해결, 이 거리를 탈출하여 안국역에서 다시 지하철로 오피스텔로 돌아와서 잠시 쉬고는 옷을 덧입고 교대역에서 선릉역까지 3구간을 가서 성종과 성종계비, 중종의 능을 한 바퀴 돌았다.

이미오후 5시가 되었기에 곧 어둠이 올 것이라 어둡기 전에 사진이라도 남기려고 했는데 좀 전에 집에 들러 배터리 충전하려고 두었다가 잊고 나온 걸 알았다.

어쩔 수 없이 폰카를 이용하였다.

한바퀴 돌고 나니 어두워져 길바닥에 깔린 등이 빛을발하기 시작했다.

산책하러 나오신분들이 많기에 입장료 천원을 내고 들어 온 우리들과는 다른 주민들인가 싶었는데 주민들도 월 일만원을 내고 필요시에 산책을 한다고 한다.

우리 동네는 산이 있어 한 두시간의 산책은 돈 내고 하지 않아도 되는데...

 

11월 3일(수)

이 날은 승용차로 움직였다. 강화도 가는 길에 행주산성이 옆에 있기에 미리 설정을 했다.

그런데 한강을 건너기 전에 차선을 잘못 들어 다시 한참을 남쪽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오피스텔을 나선지 한 시간이 지난 10:50에 행주산성에 도착하여 한시간 넘게 돌아보다가 고려역사관을 찾아볼까 했는데 너무 늦을 지도 몰라서 일단 강화로 갔다.

고려궁지를 먼저 돌아보고, 바로 아래에 있던 철종의 잠저였던 용흥궁을 찾아보고, 덕분에 110년 역사를 지닌 성공회교당을 보았는데 처음엔 무슨 궁터인가 했었는데 알고보니 성당, 역시나 건축자가 궁궐 건축자라고 한다.

용흥궁 바로 앞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아마도 어느 학교의 축구부에 지원을하는 분이 주인인 듯 하였다. 코치인 듯 한 분과의 대화 내용으로 보아서... 들으려고 한 건 아닌데 목소리가 어찌나 큰 지...

강화유적박물관이 갑곶돈대에서 고인돌공원으로 옮겼다는데 거꾸로 생각하고 그 곳에서 갑곶돈대로 나왔다. 강화도에서 볼 것 다 보았다는 얘기 때문에...나 혼자라면 교동이 보이는 곳까지 갔다가 마니산 부근, 그리고 동막해변, 전등사까지 보고 가고 싶은데...

아들의 6시 퇴근에 맞추어 저녁을 해주어야 한다면서 시간을 재촉하는 바람에...갑곶돈대도 혼자 들렀다가 나왔다.

바로 옆의 천주교 순교성지도 답사를하고 왔다. 순교자 세 분과 순교자를 도운 한 분의 묘소만 보고는 나왔다.

고려역사박물관, 통일동산을 찾으려고.... 그런데 나중에 그 부근에 있는 통일전망대를 보면서 입구의 직원에게 물어보니 고려역사박물관은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사의 자료는 왜 그렇게도 없는 건지.....아무리 개경이 북에 있다고 하나 그토록...

그래서 2년 후에 교동 들어가는 대교가 완공될 때 쯤엔 마무리가 될까.

억지로 데리고 들어간 통일전망대에서는 북한땅을 보았다고 잘 왔다니 다행이다.

오늘은 총거리가 174km였다.

파주의 오두산 통일전망대에서 서울로 돌아 오는 길은 정체가 극심하였다.

길도 잘 모르는데 오로지 네비게이션만 의지하고 다녔으니...

어느 차선으로 진행해야 할 지 판단이 어려웠다. 차선 바꾸기가 쉽지 않아서...

내일이 아들 녀석 생일이라고 작은 케익 하나 준비하고 들어왔다.

 

11월 4일 (목)

날씨가 제법 풀렸다.

차를 가지고 남이섬을 가려고 했으나 어제의 피로도 풀리지 않았는데 또 운전...

게다가 완전히 상업적인 프로그램으로 가득찬 남이섬이라니...내가 보아야 남이장군이나 찾아보고 산책하면서 사진 몇 장 찍으면 족할텐데 입장료가 8천원씩이라니....

차라리 서울 시내에서 지하철이나 타고 다니지..

남부터미널에서 독립문까지 지하철로 이동하였다.

국적도 애매한 서재필의 동상이 서 있었다.

독립문공원이라고 잘 꾸며져 있었다.

생각지도 않은 서대문형무소역사관을 관람하게 되었다.

독립문, 서대문형무소, 경희궁을 차례로 돌아보는 동안 일제에 대한 적대감만 쌓여갔다.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모두 "일본놈"이라는 말을 거침없이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 문화재들을 말살하고, 궁궐까지 분해하여 절 만드는데 주고, 그 자리에 학교를 만들고....

독립문에서 서대문형무소는 붙어 있었고, 되돌아와서 경희궁까지 걸어서 이동, 경희궁에서 덕수궁으로, 덕수궁에서 경복궁까지 도보 행진을 했다.

걷는 동안에 아이폰의 네비게이션 덕을 많이 보았다.

오늘 속리산 산행에 결석한 댓가를 도보 여행으로 대신 치룬 셈이다.

 

11월 5일 (금) 서울에서 내려오는 날이다.

내 상각 같으면 몇 군데 들렀다 와야 하는데 그 놈의 야생고양이들 먹이 챙긴다고 6시 이전에 도착하자니....두 군데 잡았다가 하나는  포기해 버렸다.

전봉준 녹두장군의 테마로 하려다가 순창부근까지 가면 너무 돌아가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서해로 가다가 해미읍성 하나만 보았다. 아들 차로 가겠다는 걸 억지로 끌고 왔는데 차라리 혼자였다면 해미읍성은 들리지 않았을 것이다. 옛날에 들린 곳이니... 그런데 지금은 많이 꾸며져 있었다. 제대로 남아 있다 싶은 건 그 교수목으로 사용했던 나무만 있었고 대부분은 복원된 것에다가 이번에는 초가집 몇 채 더 지어놓고 아전의 집, 농부의 집, 부농의 집이 있고 그 외에도 짓고 있는 집들이 있었다. 말도 키우는데 아마 관광객 유치를 위한 게 아닐까.

순창까지 가려던 길을 익산 방향으로 돌려 진안 장수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함양 진주를 거쳐서 왔다.

안개가 자욱하여 속도를 많이 줄여야 했고 한 번은 길을 잘못들어 고속도로에서 한 구간을 더가서 돌린 일이 있었다. 익산 방향으로 들어갈 때도 같은 길을 세 번이나 지난 일이 있었지만 4시 55분에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4박 5일의 짧지 않은 기간인데도 알뜰한 여행이 될 수 없었다. 취향이 같지 않은 사람이 동행한다는 게 쉽지 않은 것.

상경시에는 전적으로 나의 취향, 수도리 무섬마을의 전통 가옥, 순흥 읍내리 벽화 고분,

단종 테마로는 금성대군 신단, 영월 가는 길에 김삿갓 묘소, 영월의 단종 유배지인 청령포, 그런데 차의 작지 않은 흠 때문에 청령포만 갔다가 단종역사박물관과 장릉, 엄홍도 정려, 관풍헌을 꼭 보고 와야 하는데....너무 답답하다. 다음 기회에 혼자 가야겠다. 청령포도 나 혼자 들어 갔다. 정말 썰렁.....

둘째 날은 서울 시내의 고궁박물관, 광화문 광장, 청계천, 삼일공원, 인사동 거리..이건 대체로 아내의 취향에 맞추어 준 거다.

세째 날은 강화도(아내의 관심은 섬 자체였다. 그런데 다리 건너 대륙 같은 느낌으로 섬을 느끼지 못한 듯)의 고려궁터, 갑곶돈대와 갑곶진의 천주교 순교성지를 돌아보았지만 갑곶진은 혼자 들어 갔다.

강화도 가는 길에 행주산성을 들렸다. 한시간 이상 소비했다. 전체를 다 돌아 보았으니.

강화도에서 교동을 바라볼 수 있는 곳까지 갔다가 마니산, 동막해변, 전등사 등을 보고 초지대교로 갈 생각이었으나 빨리 가자는 성화에 다른 곳은 역시 생략하고, 파주로 가서 오두산 통일전망대를 보기로 했다. 실은 그보다 고려역사박물관을 보고 싶었는데 아직 개장을 하지 않았다고 하니 바로 맞은 편에 있는 통일전망대가 딱이다.

북한 땅을 보았다고 좋았단다. 여기까지는 차를 가지고 갔다. 퇴근 시간에 맞추어져 강변북로가 엄청나게 밀렸다. 어느 다리에서 우로 돌아야 하는 지도 모르는데 다리는 엄청나게 많기도 했다.

강화도로 간 김에 고려와 몽고의 싸움에서 있었던 흔적들, 영창대군과 광해군, 인조반정에 얽힌 흔적들, 외세와의 급박했던 관계 등을 제대로 음미하고 싶었다. 그리고 40여년 전 함께 했던 전우의 고향 삼산면....류ㅇㅊ하사의 안부도 궁금하였다.

 

네째 날에는 다시 서을 시내 코스를 지하철 3호선으로 가고 왔다. 2호선은 항상 복잡하다고 한다. 먼저 독립문공원, 여기에는 서대문 형무소 역사관도 붙어 있다. 계속 걸어서 서울 땅을 지신밟기를 하면서 경희궁, 덕수궁, 경복궁까지 돌았다. 경복궁은 문 앞까지만 갔다가 옛날에 둘 다 본 곳이라 아들 퇴근하기 전에 간다고 일찍 들어갔다.

 

마지막 날은 해미읍성 하나 밖에 건진 게 없다.

만일 혼자였다면 가지 않았을 곳이 대부분이다. 고려궁터, 갑곶돈대, 오두산전망대, 해미읍성, 김삿갓 묘소 등은 모두 두 번째가 되는 셈이다.

김삿갓은 마대산 산행을 위한 답사였다고 보는 게 낫겠다.

 

  

수도리 무섬마을의 고택들 

해우당 고택의 설명 

 내성천의 푸른 물과 모래 사장

순흥 읍내리 벽화고분 설명 

 순흥 읍내리 고분

 벽화의 일부분

금성대군 신단의 설명 

 금성대군 신단

김삿갓 유적지,, 화장실을 정방, 정낭이라고 했는데 이게 바로..

시선 난고 김삿갓의 묘 

 김삿갓면의 단풍

 나루터에서 본 청령포

 청령포 금표

노산대, 여기서 망향의 설움을 달랬다는데... 약간 위쪽에 망향탑까지 쌓으면서.

 내려다 본 물은 맑고 깊으며 멀리 뵈는 산은 험하고 험하다.

 여기서 대군을 수종드는 시녀들이 활동하고 있었단다.

 청령포의 단종어소에서

 광화문거리의 세종대왕상

 삼일공원(손병희선생상)..여긴 노인들이 참 많았다.

 

선릉(성종대왕릉) 

 

행주산성의 권율장군 동상 

권율장군의 사당 충장사로 들어가는 입구 홍살문 부근에 단풍이 한창이다

충장사, 현판의 글씨체가 눈에 익었다.  

강화도의 고려궁지에서 강화부 종각 

강화부 동헌의 재현 

강화부 동헌 

 용흥공원에서 궁지의 반대편 언덕에 있는 성당, 처음엔 무슨 궁인가 했는데.. 110년 된...

강화대교의 저 그물은 ... 

 갑곶돈대의 성벽...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

 갑곶돈대의 주인공 대포

통일전망대의 고당 조만식 선생 동상 

 통일전망대에서 바라 본 고려역사박물관, 아직 미개장, 이걸 찾으러 왔는데....

개장되지 않았으니 이름이 나타날 리가 없었지, 고려대전, 통일동산 등올 검색하다가 결국 통일동산***라는 곳으로 찾았는데 결국 허탕, 다행히 부근이라 통일전망대를 찾았다.

전망대에서 서쪽으로 김포지역이 북측에 가깝게 보인다. 

북한의 초등학교 1학년 교실 

교재의 내용이.... 

 수학책까지도...

전망대에서의 일몰, 먼 곳 우측으로 한강과 임진강의 합수점이다 

 문을 닫을 때에야 나온 오두산 통일전망대

  전망대 오르는 길의 단풍이 절정이다

 

독립문과 바로 앞의 영은문 석주 

 서재필 동상

미국에 세워야 하나.. 

단풍이 짙은 독립공원 

 이진아 기념 도서관

서대문형무소 뒷벽 

 서대문형무소

서대문형무소가 생기기 전에는 유배형이 있었는데 오히려 그게 더 인간적일까. 

폭행을 당하는 모습.. 

 간수의 모습

한센씨병 수감동은 난방이 들어 간단다. 정말 그랬을까..

 독립유공자들의 추모 조형물인데 저 철편 하나하나에 이름이 새겨져 있고

앞으로 발굴되는대로 추가로 새겨서 넣을 수 있게 빈 철편들도많이 있다.

철편 한개의 모습 

이 시설의 내부는 사진찰영 금지다. 사형장의 끔찍한 모습 때문일까.....

안에서 소개된 글 중에 보니 언젠가 촬영을 했는데 사진에 사람의 모습이

찍혔더라는 이상한 소문이 있었단다. 그래서일까..... 얼마나 억울했으면.. 

사형장 앞의 그 미류나무...너무 높아서 아랫 부분만 

 사형장 설명

경희궁의 숭정문 

경희궁지 안내

 

 

경희궁의 정문 

 출동 직전

덕수궁 돌담길의 여인 

 해미읍성의 진남루 안쪽에 황명 홍치 4년 신해년에 지었다고 적혀 있다.

홍치 4년은 1491년, 조선 성종 22년이다.

교수목으로 쓰였던 그 나무 

 

 

 옥사 안에 갇힌 ...

 

 

 교수목으로 사용되었던 회화나무와 옥의 모습이다.

 

 서리의 집에 있는 이 사람이 ...

 

 

 으악. 사진 찍지마세요....

해미 읍성의 안쪽에서 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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