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장군묘(南怡將軍墓)
경기도 기념물 제13호인 남이장군묘는 경기 화성시 비봉면 남전리 산145에 있다.
조선 초기의 무신인 충무공 남이(1441∼1468) 장군의 묘소이다.
세조 3년(1457)에 무과에 장원급제하여 세조의 총애를 받으면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세조 13년(1467)에는 이시애의 난을 토벌하여 적개공신 1등에 봉해진 후, 여진을 토벌하여 이등군공에 올랐으며 26세의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그러나 1468년에 예종이 즉위하자 유자광의 모함으로 역모를 꾀한다하여 28세 때 처형당하였다. 그 뒤 순조 18년(1818)에 복직되었으며, 서울 용산의 용문사 및 충민사에 배향되었다.
현재 묘역에는 장군과 부인이 합장되어 있고 봉분은 2기이며, 봉분 아랫부분은 둘레석이 둘러져 있다. 묘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고, 좌우에는 문인석과 망주석이 1쌍씩 있다.
남이장군의 묘에 대한 네이버 백과사전의 내용이다. 그런데 남이섬에도 남이장군의 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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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섬선착장이 보인다. 저쪽은 경기도 가평. 여기부터는 강원도 춘천이다.

이 배를 타고 남이섬으로 들어가고 나온다.

25세에 국방장관이 된 남이는 유자광의 모함으로 26세에 역모죄로 ....
남이 장군의 한시가 돌에 새겨져 있다. 이 시로 인하여 역모라는 빌미를 주었다.
|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
백두산의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두만강의 물은 말을 먹여 다 없애리라 남아 이십에 나라를 평정하지 못하면 훗날 누가 대장부라고 부르리요. |
이 시의 平을 立으로 고쳐 고변했다는 유자광의 이야기가 있다.

남이장군 추모비가 앞에 있다.

홍살문 앞에서 본 남이 장군의 묘사람을 안내한다고 출연했던 그 타순이 타돌이인가.
.우리에 갇힌 채 먹이를 기다리는 듯

낙엽으로 만든 하트

남이섬에서 나와 철원군의 매월대, 고석정, 도피안사 등을 네비게이션으로 설정했는데 날씨가 수상한데도 무리하게 강행을 했다.
가평을 거쳐 북면에서 북서쪽 으로 계곡길이 안내되어 매월대까지 20여 km를 남긴 도마치재에서 뒤로 돌릴 수 밖에 없었다.
때 아닌 폭설을 만난 것이다.
새 차의 마퀴 덕분에 눈길을 도움 없이 내려 왔다.
물론 판단한 시각도 적당했을 것이지만.
40년만에 찾아가는 고향같은 그 곳을 30여분이면 도착할 위치에서 눈보라를 만나 미끄러운 길을 내려와 뒷날을 기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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