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스크랩] 계곡이 너무 좋은 동악산(2009.7.23.목)

benel_jt 2009. 7. 27. 12:20

무척산악회는 동악산으로 올랐다.

動樂山은 여러가지 전해오는 이야기들이 있다.

淸流溪谷의 1곡부터 9곡까지는 암반에 새겨진 싯귀들이 경치 좋은 곳을 골라 새겨두었다.

曲( 굽을 곡 ) ㉠굽다 ㉡굽히다 ㉢도리()에 맞지 않다 ㉣바르지 않다 ㉤불합리하다 ㉥정직하지 않다 ㉦공정하지 않다 ㉧그릇되게 하다 ㉨자세하다(--) ㉩구석 ㉪가락 ㉫악곡 ㉬굽이 ㉭재미있는 재주

굽을곡을 썼는데 악곡이라는 뜻이 있다.

동악의 움직일동과 풍류악, 즐길락으로 읽지 않는 동악산의 풍류와 구곡의 악곡이라는 해석...

차라리 골곡(谷)을 썼다면 전혀 이의가 없이 받아들여야 하지만...

어쨌던 청류계곡은 다른 어떤 곳보다 빼어난 곳이다.

 

 

 

 

 

수석 절경이 삼남 제일이라는 청류동()은 도림구곡(), 청류구곡으로 불린다. 제1은 쇄연문(), 제2는 낙악대(), 길상사청계동 갈림길에 9곡 별유비인간()이 있다. 임진왜란양대박(:1544∼1592)과 병자호란의 김감(:1566∼1641) 의병장이 활약한 별천지 무릉도원, 천혜의 요새로 4km에 걸쳐 있는 폭포·소·담이 굽이치는 반석들이 지방기념물 제101호이다.  제2의 낙악대라고 한 곳을 어느 곳에서는 요요대(臺)라고 읽는다.

위의 사진에는

二曲
盈科後進 放乎四海

이곡
영과후진 방호사해

라는 글귀가 선명하고 글쓴이의 이름까지 나타나 있는데.......

 

[盈科而後進 영과이후진] 구멍을 가득 채운 뒤에 나간다는 뜻으로, 물이 흐를 때는 조금이라도 오목한 데가 있으면 우선(于先) 그곳을 가득 채우고 아래로 흘러간다는 말. 곧 사람의 배움의 길도 속성(速成)으로 하려 하지말고 차근차근 닦아 나가야 한다는 말

 

 

 여기서는 요요대라고 했는데 어떤 곳은 낙락대라고하네요. 동락이라 하지 않고 굳이 동악이라 하더니...

 단심송...우측 물 건너 반석에 단심대라는 새김글이 있고 우측에는 또 싯귀가 적혀 있다.

 

 

 도림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통일신라 헌강왕 2년(876) 도선국사가 고쳐 세웠는데 이 때 도인들이 숲같이 모여들어 절 이름을 도림사(道林寺)라 하였다고 한다.(서산대사, 사명대사, 처익대사 등 도인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도인숲을 이루었다고)  현재 절 안에는 작은 규모의 법당인 보광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지장전, 약사전, 칠성각, 요사채 등이 있다. 보광전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꾸몄다. 이 절에는 조선 숙종 9년(1683)에 제작된 도림사 괘불(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을 보관하고 있다.

 도림사  위쪽 곁문 바로 옆에 있는 바위에 6곡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일부 마모되어 잘 나타나지 않지만 1곡에서 9곡까지 이 계곡에 있다는데 일부만 찾을 수 있었다. 기회가 된다면 계곡탐사를 한 번 하고 싶다.  동악정상만 바라보고 치닫느라고 이런 흔적들을 놓치기 쉽다. 계곡의 널따란 암반이 멋있다 싶은 곳엔 모두 싯귀가 음각되어 있다. 내려 오는 길에 보니 물이 흐르는 바닥에도 보였다. 물이 적으면 그 글씨는 노출이 되겠지만...

 이런 철다리가 5개 정도 있다. 산행지도들을 보면 1교,2교,3교라고 해 둔 곳이 있는데 주로 3교에서 우측으로 동악에 오르는 게 일반이다. 우리 계획은 주차장 부근에서 바로 능선 산행을 하려고 했는데..그렇다면 신선바위를 통과했을 걸...어쩌다 일반적인 통로 3교에서 우회전을 한 것이다. 물론 가장 빠른 길이었을 것이다.

 장마로 2주간을 그냥 보낸 회장님의 발걸음이 오늘은 가볍지 않으신 듯....

 30분 정도 오르고 일차 휴식...햇볕이 없어 무덥지는 않은 날씨다.

 동악산 300m, 이제 능선을 타기 시작한다.

 1시간 30분 정도에 동악을 정복, ...산이 너무 낮습니다.... 그래도 물은 매우 깊죠.

 탑꼭대기에 배와 심청, 뱃사람들이...인단수에 뛰어들기 전의 심청의 모습이다.

곡성군의 캐릭터는 심청, 고속도로 곡성 다음이 옥과. 옥과에서 남쪽으로 가는  15번 국도를 따라 화순 방향으로 5~6킬로미터를 가면 곡성군 오산면 신세리의 심청공원이라는 조그만 길가의 쉼터 같은 곳을 만날 수 있는데 가는 동안 온통 심청의 모습들을 볼 수 있을 것인데, 신세리에서 마을을 지나 동쪽의 산쪽으로 10리길을 가면 관음사를 찾을 수 있는데 그 관음사 창건기에 심청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의 줄거리는 심청의 이야기와 거의 비슷하고 심청에 대응되는 이름은 원홍장, 심학규는 원량이라는 맹인, 화주승의 이야기까지..인단수는 황해가 아니라 남해 먼바다일 거라고...이 산에 와 보려고 며칠 전에 읽은 책 원홍장과 심청에 있는 그 책의 저자 박혜범 님의 생각도 포함되었을 것이지만... 그는 도림사의 원효 창건설을 매우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아마도 이 산 어딘가 살고 있을 분인데...

 철다리는 좀 부실하지만 경치는 좋다

 지금까지 이 팀의 속도에 맞았는데 매일 두시간씩의 소프트트레이닝으로 상계봉 아래까지 다녀온 덕에 나는 중간까지 따라 붙었다. 마지막으로 올라온 팀도 이제 식사를하고....

 

 이건 대야산인데....

 

good?  그게 그렇게도 좋은 거예유? 완도톳도 좋은디...

죄송...고 ㅊ 를 일부러 삭제한 게 아니라 우연히 잘렸심더. 동악신령님의 뜻인기라 마....

 

 

 갈림길에 서서... 조상의 시조 한 수를 읊는다

"삭풍은 나무 끝에 불고 명월은 눈 속에 찬데

만리 변성에 일장검 짚고 서서

긴 파람 큰 한 소리에 그칠 것이 없어라"   김종서..함경도의 육진을 개척할 때 지었을까

 대원들의 안전한 길잡이를 위해 안내를 설치하는 산행대장..

 이 재에서 배가 언제 넘어 갔을까.. 신선바위님 혹시 뱃살?? 좀 줄여야겠습니다...ㅎㅎ

둘은 어디 두고 너희들만 남았는다....

 

 보광전 앞에 선 회장님과 여러 대원들.... 조선건국후 태조의 계비였던 신덕왕후가  도림사를 후원하였는데 이로 인해 神德寺로 부른 적도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조선왕실의 원력사찰이 된 도림사에는 해마다 왕실에서 나인들을 보내 불공을 올렸는데 이는 조선이 망하던 때까지 이어졌다. 현재 응진당 후불탱화에는 조선말 명성황후가 시주한 기록이 남아 있다.

 

 하산주와 함께

 

무사귀환, 안전산행을 기원, 감사하며......역시 대장님의 책무성이 돋보이죠..

 

 

출처 : 김해무척산악회
글쓴이 : 한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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