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7.30(목). 김해무척산악회40여명과 함께....
날씨는 맑음, 강수 없음. 풍속 1-2m/sec.
6시에 아침 식사하고 7시 13분에 버스를 타고 진영까지 순차적으로 대원들을 승차..8시 30분..남말양에서 고속도로. 밀양에서 산내방향으로 국도 이용, 산내면소재지 지나서 구만산장 입구까지 버스로 이동.
9시 40분경에 산장에서 직진하면 구만폭포방향인데 산장에서 바로 우측 등상로를 진입. 급경사로를 30분 정도 올라가면서 몸 속의 땀을 다 쏟아내었다.
능선에 올라서면서부터는 길이 비교적 완경사에 양호한 길이었다.
누가 이렇게 좋은 길을 만들었을까...나뭇꾼들이 다녔다.....
구만산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때 9만명이나 되는 많은 사람들이 이 골짜기에 피신을 했단다.
구만산의 동쪽으로 가지산이 있고 3km 정도 가깝게 운문산, 그 곳에서 2km 정도 더 가깝게 억산이 있는데 설마 억산에 그렇게 많은 피난민이 있었다는 얘기는 아닐테고..
임진왜란 초기에 가등청정의 선봉장이었던 사야가.. 그는 밀양부사 박진에게 투항하여 조선인으로 귀화...항왜 조선인이 되어 임진왜란과 이괄의 난, 그리고 북방의 변방을 지키는 무장으로서 전공을 세웠다. 그리고 김충선이라는 이름과 김해 김씨라는 성까지 받았다. 소위 사성 김해 김씨, 또는 우록 김씨라고도 부른다.
1571-1642년까지생존했으며 자는 선지 호는 모하당이다.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입향하여 살게 된 그의 초기 군사 활동이 운문산 부근에서 많았다고 한다면 이 구만산 일대에서도 활동하지는 않았을까. 의병들의 지나간 길이 이 길은 아니었을까.
고령에서 발견된 어느 개인의 용사일기(임진년에서부터 계사년까지의 일기...진과 사를 용사라고 했음)에 보니까 임진왜란 때 산 속에 까지 왜병들의 침입이 자행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9만명이나 이 산에 몰렸다면......
정상으로 오르는 전망좋은 능선에서 서북방향을 바라보니 청도시 매전면 방향인듯한 곳이 보인다.
20도 정도 더 좌로 시선을 옮겨 멀리 보니 시야에 듬직한 산이 보이는데 비슬산인 듯하다.
그 부근에 1000m 이상인 산이 그 뿐.
가까운 서쪽으로는 육화산, 675m 이니 우리가 오르는 구만산 785m보다 110m나 낮다. 그렇지만 암벽의 멋은 보기에 더 좋으니 산행개념도에 송곳바위, 벼락바위 등이 그 곳에 보인다.
오르면서 우측을 보니 봉의(인곡)저수지, 봉의저수지라고도 부르고 인곡저수지라고도 한다.
인곡은 가인리에 가까운데 아래쪽의 봉의를 땄다.
가인리는 이 저수지의 혜택으로 농사를 짓기에 곤란하겠다.
내려오는 길도 만만치는 않았다. 많은 등산팀들이 우리와는 역방향으로 산행을 했는데 노친네들 말씀이 이리로 올라왔다면 우리는 못 올라왔겠다고들.......폭포를 감상한 후에는 얕은 내를 건너는 도하작전을 십여차례나 한 듯...이 도하 작전에서 한상대 홍보부장님은 바위에 미끌리며 입수할 뻔했는데...다행히 아슬했다.
구만산장을 0.5km 정도 앞둔 구만암 앞의 물은 수량도 많고 맑기도 그만이어서 발을 씻기에는 더 없이 좋은 곳이었다.
내려오는 길에 철사다리도 있고, 폭포에 내려가는 길에 로프도 ....
3시간 정도 걸릴 것이라는 안내와는 다르게 5시간이나 걸린 산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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