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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견내량왜성 시래산 둔덕기성 우두봉 개금치 성안마을 20210209 솔로(R)

benel_jt 2021. 2. 9. 23:23

거제 견내량왜성 시래산 둔덕기성 우두봉 개금치 성안마을 20210209 솔로(R)

 

코스 : 거제 아사/학산리지석묘-견내량왜성지-견내량해변길-거제대교-은성사입구-은성사/정자-시래산(265m)-작은시래산(256m)-좋은 길 따라 남서진하산하다가 256봉으로 back-임도횡단-201m봉-둔덕기성(폐왕성)-거의 공사가 마무리중인 주차장/화장실-우두봉 아래 정자-우두봉/삼각점, 통신시설,산불초소-428m봉-할미봉(411m)-황봉(276m)-거치-거치봉(303m)-우측에 임도-명등산(418m)-둔덕고개-340m봉-개금치(언양로 도로 만남)-도로 따라 하산-사동저수지-언양-기성초등학교-사등교/성내마을 정류소 <21.5km/8:45>

 

06:30 출가/'버스타고앱'예약 시스템 직접 사용하려 서두름
06:52 수정역 출발
07:05 사상역 도착
07:10 사상터미널 시스템발권
(생년월일과 전화번호만 필요)
07:30 거제고현행 직행 출발(8,200)
08:45 예정보다 5분 빠르게 거제 도착(예정은 80분 소요)
09:10 고현 옥동행 41번 출발(20분 기다릴 예정이 25분 대기)
10:03 아사 하차/이동 준비, 기온 낮음, 핫팩을 2개 사용하고, 장갑에도 작은 것 2개 넣음
10:07 학산리 지석묘
10:13 아사마을 입석
아사마을 유래
학산의 북쪽에 영동진의 관청이 있던 곳이며 지석묘가 산재하는 역사 깊은 마을로서, '아사'란 관청 아(衙), 집 사 (舍)로 옛날 관청이 있었다 하여 아사라 했다.
10:25 '둔덕면' 입석/'거제역사의 시작'이라는 안내만 있다. 육지와 가깝고 지석묘 등의 흔적이 증거.
10:30-40 견내량왜성지 답사,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주변 해역을 보면서 난중일기의 기록과 원균의 해전 참패 등을 생각.
광리항 지나 거가대교까지 해안길로 이동하면서 건너편과의 거리 등을 느끼며 충무공이 여기서 적을 유인하여 한산도에서 승리를 거두게 된 배경을 상상해보고.
11:07 신촌 버스정류소, 여기가 종점인 버스를 탄다고 해도 시간이 여유롭지는 않다.
11:12 견내량 마을 입석, 마을 유래
간략 소개 내용
'견내량(見乃梁) 마을
◎ 대마도 함대사령부 설치지역
조선 태종 18년(서기 1418)
◎ 전하도(고려 18대 의종)
전하가 건넜다 하여 전하도
◎ 한산도 대첩의 적 조우지(선조27년)
일명 견내량 대첩'
구구한 토씨나 꾸밈 없는 핵심 정보만 소개 했다.
정말 보기 드문 마을 소개다.
동백꽃이 피는 가로수 길을 따라 올라간다.
11:14 도로표지판[200m 앞에 직진하면 창원,통영; 우회전하면 장승포, 시청]
앞에서 바로 우측으로 난 길
→시래산 은성사
11:17 펜션마을
은성사 방향으로 시멘트 포장길
11:28 은성사 절 가기 전의 등산로 지름길로 감
11:32 은성사 절 옆의 정자(휴식, 조망)/절까지 올라가는 게 좋은 길
12:08 능선, 이정표 [시래산정상 60m, 시래산 쉼터 20m, 은성사470m]
12:10 시래산 정상(265m), 삼각점
12:17 전망대
12:19 시래산쉼터, 정자, 작은시래산(256m)
좌측 길이 보이지 않고 시그널이 많은 좋은 길을 370m나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옴, 거제지맥을 탐하여...
12:41 다시 작은시래산(256m)으로 올라 옴, 하산길 찾음
12:50 대문바위
13:06 임도횡단, 철탑, 거제27코스 안내
시점6.67, 종점3.13,
[[오량교차로1.0(15'), 둔덕기성입구2.75(40')]]
13:57 둔덕기성 [외부탐방로(서문)15m,(남문)145m]
13:58 서문지
14:00 성내건물지, 고려시대 건물지
14:01 남문지
14:05 둔덕기성 집수지
14:08 성내건물지
14:10 석환군(몽돌해변에서 가져온 자갈돌을 공격용 무기로 사용한 듯)
14:16 저장고, 전망데크
14:17 동문지
14:20 거제 둔덕기성 종합안내도
이정표[둔덕기성내부, 동문30m, 남문180m, 수문330m]
14:22 거제둔덕기성 안내
14:23 우두봉 등산로 입구[오량마을2.93, 거림마을2.31, 우두봉정상0.72]
공사중인 주차장, 화장실, 등산안내도
14:35 우두봉 아래 정자쉼터
14:50 우두봉 정상(434m), 산불감시시스템, 산불초소,
[오량마을3.65, 거림마을3.03]
15:21 할미봉(411m)
15:42 황봉(276m)
15:50 철탑(라라93085463)
15:51 임도횡단, 거치
16:04 거치봉(303m), 삼각점
16:13 철탑(라라92975525)
16:52 명등산(418m) 정상
17:06 철탑
17:10 함양 오도재 닮은 임도
17:19 오른쪽 아래 철탑
17:29 도로 만남(개금치),둔덕면 입석
여기서부터 도로 따라 하산길
17:47 '┤'자모양 갈림길<직:시청,사등; 좌:통영,청곡>
18:01 사동저수지 제방
18:29 성내버스정류소/기성초등학교 입간판/산행종료
=======
18:53 고현가는 42번버스 탑승(GPS를 켜지 않아 위치 검색도 안됨, 시간표에도 없음)
18:14 고현터미널 하차, 부산행 매표(18:15)
18:20 부산 직행 출발, 다음 차는 18:40에 있다.
19:20 사상터미널 도착
식당에서 간단히 저녁 후 귀가
21:25 귀가
==========

오늘로서 임란 관련으로 거제도에 알려진 왜성은 대략적으로 다 돌아 본 셈이지만 왜적에게 빼앗긴 요충지들과 그 주변은 온통 그들의 통치하에 버려진 것이 아닐까.
왜성지 주변의 작은 봉우리들과 해안에 주둔하게 되었을테니 우리 백성들의 삶이 얼마나 피폐해졌으랴.
국방에 대비할 기회가 없지도 않았는데, 율곡 이이의 십만양병론이 그랬고, 임란 직전 통신사의 나누어진 보고도 그랬지 않은가.
지금도 비슷한 상황이다.
적에게는 핵무기 제작의 기회와 자금을 주고, 우리는 근원부터 없애려 하고, 군의 정신무장은 해이하게 하고...
군인이 가지는 휴대폰은 득실을 따져볼만한 이유가 충분하다고 본다.

산행 시간운영에 실이 되었던 것들을 챙겨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고현에서 41번 버스 기다림/25분 정도, 시골버스는 흔한 일이다.
신촌으로 갔으면 더 빠른 버스를 타고, 신촌에서 바로 산행들머리로 갔다면 ...
신촌 가는 버스는 41/9:10, 42-2/15:10, 40-3/10:50, 40-1/9:40 그렇다면 9:10이 최적일 수 밖에 없다.
아사까지 가서 '학산리지석묘'를 본 시간과 거리는 약 0.8km/15'이다.
15분 때문에 버리는 것 아깝다.
아사마을의 지명 유래를 얻은 점은 득이다.
견내량왜성을 빠뜨릴 수 없음은 내 이기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내 이기심을 버렸다면 약 1시간은 절약되었을 것이다.
그러면 10:10 정도부터는 산행이 시작되었을 것이다.
시래산 쉼터, 즉 작은시래산에서 좋은 길을 따라 탐방했던 길은 버린 20분이다.
그러나 나는 버린 시간으로 보지 않는다.
그 길을 따라 하산할 길이 있다는 좋은 정보를 얻은 셈이다,
등산지도에 표시되지 않은 길이지만 아주 잘 정비된 길이라는 것이다.
2017.11.11 이 코스를 역순으로 탐방할 때 우두봉에서 발목 잡혀 하산을 하는데 둔덕기성 안내판이 있는 산성의 밖을 지난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오늘은 산성의 구석구석을 볼 시간을 가졌다.
그것도 버린 시간은 아니다.
쉬면서 주변 조망을 하는 시간들도 유익한 시간이었다.
체력상 완주도 어려웠으니 그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마무리 한다.
개금치의 17:30부터 성내마을 정류소 18:30까지의 도로 구간 약 '4km/1시간'은 사실상 예측했던 구간 아닌가.
이 쪽은 지나가는 차들이 몇 대 더 있다.
40,40-2, 41, 42?
반대편인 둔덕은 유지삼거리에 막차가 18:00에 있으며 이동 거리도 멀다.
만일에 택시를 타는 경우가 생겨도 성내 방향이 유리하지 않을까 해서였다.
어쨌든 알찬 여행길이었다.

 

 

 

GPX트랙 파일 첨부 :

견내량왜성 시래산 둔덕기성__20210209_1002.gpx
0.34MB
Tr거제견내량왜성시래봉둔덕기성우두봉할미봉황봉거치봉개금치20210209.gpx
2.32MB
거제_견내량왜성지_시래산_둔덕기성_2021-02-06_09-51-49.gpx
0.44MB
학산리 지석묘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 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이 고인돌은 국도와 학산리 아사 마을 진입로가 서로 만나는 곳의 밭에 자리하고 있다. 모두 4기가 놓여 있는데 남쪽에 있는 것부터 첫번째는 길이 3.55m, 너비 2.5m이며, 두번째는 길이 1.45m, 너비 1.15m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길이 2.8m, 너비 1.3m이고, 마지막은 1.3m, 너비 1.5m이다.

 

아사마을 표석

아사마을 유래
학산의 북쪽에 영동진의 관청이 있던 곳이며 지석묘가 산재하는 역사 깊은 마을로서, '아사'란 관청 아(衙), 집 사 (舍)로 옛날 관청이 있었다 하여 아사라 했다.

 

사등면 덕호리 267번지 일대가 왜성지라고 하는데 성돌은 거의 남아 있지 않고 이제는 땅도 거의 평탄작업을 하고

바로 옆에 지금 카캠핑장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시설도 거의 마무리되어가는 모양이다.

왜성부근의 육지에서 바다 가운데의 해간도에 가까운 곳까지는 약 350m 정도, 해간도 좌측에서 다리의 구간도 약 250m이다.

견내량왜성터

견내량왜성 : 거제북쪽의 3개 왜성과 달리 견내량왜성은 서쪽 끝 견내량해협 근처에 있다.

다른 왜성은 산꼭대기에 있는 반면 거의 평지에 가까운 구릉에 자리잡고 있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세워졌는데 누가 세웠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이곳은 폭450-500m의 견내량해협을 사이에 두고 거제도에서 육지의 통영과 가장 가까운 교통의 요지이다.

견내량에서 남쪽으로 6km만 가면 조선수군의 기지인 전라좌수영이 있던 한산도이다.

따라서 1597년7월15일 칠천량해전에서 사실상 조선수군을 괴멸시키면서 남해안 제해권을 장악한 왜군이 견내량해협을 통과하는 조선수군을 경계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광리마을과 인접해 있어 광리왜성으로도 불린다.

견내량왜성에 인접한 바닷가에는 돌을 바닥에 박아 길이 20m, 폭 4m 가량의 사각형 형태로 만든 선착장 추정 시설이 남아 있다.

현재 해자 등 성의 윤곽은 뚜렷이 남아 있으나 성벽에 사용했던 돌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

마을에서 가까워 집을 짓는 등, 임란 이후 여러 곳에서 성벽 돌을 빼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성곽 안은 밭과 과수원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지금은 또 다른 공사를 하여...

북쪽으로는 통영과 연결되는 거제대교, 신거제대교가 잇달아 건설되어 있다.

 

 


광리왜성지[廣里倭城址]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에 있는 왜성.
1593년에 왜군이 조선의 수군을 제어하기 위해 축성된 것이다. 1592년 도요토미히데요시[豊臣秀吉]가 와키자카 야스하루[脇坂安治]에게 거제도에 성을 축성하여 조선의 수군에 대한 수비를 견고하게 하라고 지시하였다. 덕호리(德湖里)의 서남쪽 둔덕면(屯德面)과 접하는 바닷가에 위치한 곳이었다. 당시 왜군이 남해안에 축성한 본성(本城) 11개와 지성(支城) 7개 중 한개의 지성으로 보인다.

[네이버 지식백과] 광리왜성지 [廣里倭城址] (두산백과)
===

견내량도선장[見內梁導船場]

경상남도 거제시의 서쪽 견내량해안에 있는 도선장.
견내량은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 사이의 좁은 해협으로 현재는 거제대교로 연육되어 있다.
폭이 좁은 탓에 거센 물길이 있어 임진왜란 당시 유인작전과 함께 한산대첩을 비롯한 주요 해전의 지점이기도 했다.
견내량은 하루에 두 번 조수에 의해 물길의 방향이 바뀌기 때문에 썰물 때는 쉽게 남해와 대마도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견내량은 고려 의종이 정중부의 난으로 3년간 유배되었던 탓에 전하도(殿下渡)로 불리기도 했다.
해방 후 1950년 UN군 포로수용소 설치로 견내량이 차도선장(車導船場)으로 이용되기 시작했다.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서쪽 40리에 있는 바다를 뜻하며 고성에서 거제부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견내량을 건너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유사한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해동지도』에는 둔덕기성의 서쪽에 견내량진(見內梁津)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견내량도선장 [見內梁導船場]

 

앞에 아치모양의 작은 다리는 해간도로 들어가는 길이다. 자동차가 다니고 있다.
견내량이 있는 광리항 건너편이 바로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다
견내량마을 안내석에 잘 요약되어 있다.

'견내량(見乃梁) 마을
◎ 대마도 함대사령부 설치지역, 조선 태종 18년(서기 1418)
◎ 전하도(고려 18대 의종), 전하가 건넜다 하여 전하도
◎ 한산도 대첩의 적 조우지(선조27년), 일명 견내량 대첩'

 

견내량 입석 앞의 도로에서 은성사로 올라가는 길..

 

은성사 옆의 정자 쉼터, 바다 조망이 시원하다.

마산, 진동, 고성의 당항포, 사천 방향까지 볼 수 있는 곳이다.

약간 우측에 있는 항만 시설은 진동항인 듯, 그 좌측으로 뾰족한 산은 적석산인가?

정자에서 몇 걸음만 옮기면 절이 보인다. 차라리 저 길이 편할텐데, 급경사지로 올라왔네.
정상부의 능선에 올라서야 첫 이정표가 있다.
시래산정상석
시래산 삼각점
되돌아 나와서 바위전망대에 잠시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보이고 건너편에 통영
정상체육쉼터의 정자, 옆에는 체육시설이 있다.

여기서 좌로 돌아야 하는데 무심코 많은 시그널이 붙은 방향을 가니 길이 좋다. 너무 방심하여 350m나 하산...되돌아 왔다. 좌측을 주시하면서 갔는데 길이 열리지 않아 실수를 크게 한 것.

내려갔다고 올라오는 길에 다시 만난 바위봉우리
정자에서 내려오는 길에 이름 붙인 대문바위
임도 만나니 거제 둘레길 27코스다
임도 횡단
무너진 성터가 보인다.
복원한 흔적.의 서문지
둔덕기성 집수지
이 돌들이 무기였다니...
전망대에서 다시 한 번 조망을 살핀다.

이의민에게 쫓겨온 의종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사천에 있는 부자 상봉의 길....거기서 만나는 아들을 기다렸을까.

개경으로 복귀할 꿈을 꾸었을까.

 

 

거제 둔덕기성[巨濟 屯德岐城]
경상남도 거제시 둔덕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 사적5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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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왕성(廢王城)으로 불리는 둔덕기성은 거제도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축조된 성곽으로 알려져 있다. 발굴조사 결과 신라시대에 초축되어 고려시대에 수축되었으며 삼국시대 거제의 옛지명인 상군(裳郡)의 치소성(治所城)으로 추정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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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기성은 둔덕면과 사등면의 경계지역에 있는 우봉산의 지봉(해발 326m)에 있다. 이곳은 서쪽으로 통영 및 견내량과 가깝고 북쪽에는 조선시대의 평지성인 오랑역이 위치하는 등 거제도 내에서는 교통상 주요 거점지이자 조망이 매우 양호한 지역이다. 가까운 거리에 고려시대 거제군의 치소로 추정되는 거림리유적이 있으며, ‘폐왕성(廢王城)’이라는 명칭은 고려시대 의종(毅宗: 재위 1127∼1173)이 정중부의 난으로 폐위된 뒤 이곳에 머물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2004년 동쪽 체성과 동문지, 2007년 집수지에 대한 시굴·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성곽의 축조시기 및 축조수법이 밝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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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결과 초축성벽은 단면 L자 또는 계단상의 형태로 생토를 굴착한 후 판상(板狀)의 할석을 이용한 기저부 지정, 내탁부 조성, 외벽 면석의 다른 층 쌓기 수법, 외벽기저부의 보축성벽과 현문식(懸門式)성문을 특징으로 하고 있음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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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내의 남동쪽에는 호안석축을 갖춘 원형의 집수지가 조사되었다. 집수지는 모두 3차에 걸친 사용시기가 확인되었으며, 최초의 집수지는 직경 16.2m, 깊이 4m 정도로 원형수혈을 굴착하고, 바닥과 측벽부에 1m 정도의 두께로 점토를 발라 물이 빠지지 않도록 하고, 바닥과 측벽부를 석축으로 마감하였다. 석축은 3단으로 조성되었는데 직경은 1.5m, 깊이는 3m 정도이며, 바닥은 점판암계의 판석을 깔고 측벽은 화강암석재를 다듬은 면석으로 정연하게 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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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구간과 집수지내에서는 토기와 기와류, 목기류, 자기, 금속기류 등 삼국시대 신라부터 고려·조선시대의 유물까지 여러 시기에 걸친 다양한 유물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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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조사 기관에서는 둔덕기성은 축성기법과 성내에서 출토되는 유물 등을 고려하여 7세기 후반에 신라에서 쌓은 성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삼각집선문이 시문된 단각고배라든가, 판상석재로 쌓은 체성벽과 원형 집수시설의 구축기법 등을 고려할 때 6세기 말경으로 올라갈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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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기성은 판석형의 석재로 정연하게 쌓은 체성벽과 보축성벽, 그리고 현문식 성문, 원형집수시설을 특징으로 하는 전형적인 신라산성으로서 동시기 신라의 토목기술의 단면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산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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둔덕기성은 거제도에서 확인된 가장 이른시기의 성곽으로서 거제지역의 옛지명인 상군(裳郡)의 치소성으로 추정되는 만큼 거제지역의 고대문화를 규명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체성벽과 문지, 성내의 연지 등에 대한 축조기법은 삼국시대의 토목기술을 밝히는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게 될 것으로 기대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거제 둔덕기성 [巨濟 屯德岐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입구의 안내판

2017.11.11 산방산에서 시래산까지 가는 팀을 따라 산행을 했으나 처음부터 완주는 꿈꾸지 않았던 터이지만 우두봉에서 잡혀 하산하면서 이 성을 보지도 못하고 안내만 담아 갔던 것이다. 내려가서 기다린 시간을 계산하면 보고 갔어도 되었을텐데....

그 때는 공사가 한창이었던가. 

우두산 정상 가까이에 주차장과 화장실을 갖춘 곳, 여기까지 차를 타고 와서 둔덕기성을 볼 수도 있으려나.

아직 공사가 끝나지 않았으니 차량으로 오시려면 더 기다리는 게 옳은 일이다.

우두봉 등산안내도
우두봉 직전의 정자
우두봉 정상의 산불감시시스템
우두봉 이정표

우두봉에서 게으런 생각을 핑게삼아 오량마을 하산을 생각했었지만 차라리 목적한 코스를 걷는 게 득일 것 같다.

오량마을 하산을 의도한 것은 오량성이 있어서인데 오량성은 도로에서 가까우니 다른 기회를 생각해보자. 

 

장승포농협산악회가 설치한 작은 정상석, 시래봉도 이 팀이 설치한 것.
우두봉 정상석
오량마을은 반대편에 있지만 산방산으로 가는 길도 이 길이다.
바위봉우리(벌써 15:00) 저 뒤로 아득한 산방산
주인을 따라가던 개 두마리가 나를 따라오네..
우리는 좌로 내려가는데 저 흰둥이는 바위를 넘어 간다.
할미봉(411m)
황봉(276m)
거치재
거치봉 삼각점
거치봉 (303m)
함양의 오도재를 닮은 임도
개금치/여기서 우로 가면 옥동의 유지삼거리 정류소까지는 1.7km, 우로 성내 정류소까지는 4.1km

그래도 좌로 4km를 택한다. 유지삼거리는 곧 막차가 지나가게 된다. 성내는 그나마 다른 차를 기대할 수도 있으니까.

택시를 타도 이쪽이 유리하지 않을까.

둔덕면 경계다.
계속 내리막길을 걷는 동안 어두워진다.

혹시나 해서 준비는 했지만 끝까지 랜턴은 사용하지 않고 도로를 따른다. 산길이었다면 켜야겠지만....

계속 응달진 북편은 고드름이 달렸다.
사동저수지
이 정류소는 이미 차편이 끝난 곳이다.
성내정류소 앞, 학교 안내판이 서 있다.
여기서도 20여 분을 기다려 차를 타게 되었다.

대신에 고현에서는 매표하고 5분 후에 출발하였다.

 

차를 대기한 시간이 제법 길었다.

아침에 사상에서는 필요없이 10분 빠르게 약속한데다가 도착도 빨라서 기다리고,

아침 거제에서 41번을 기다리는 시간이 25분, 이건 계산에 들어간 알고 기다리는 시간.

저녁에 성내에서도 약 25분,

터미널에서 5분은 적당한 시간이라 보고

약 1시간을 버린 셈이다.

 

도서벽지 산행은 거리를 욕심내지 않고 일찍 마치고 여유있는 차를 선택했으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