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울산 삼강봉-백운산-고헌산 산행 20201012 월

benel_jt 2020. 10. 12. 22:30

울산 삼강봉-백운산-고헌산 산행 20201012 월 솔로(K)

 

외와마을-탑골샘-삼강봉-동굴-백운산-활공장-소호령갈림-대성사-고헌산-고헌사-신림버스정류소 <16km/7:12>

 

 

 

 

 

삼강봉 백운산 고헌산 GPX트랙 파일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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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환승센터의 안내판

윤현진 (독립운동가)

윤현진(尹顯振, 1892년 9월 16일 ~ 1921년 9월 17일)은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다. 호는 우산(右山), 경상남도 양산군 상북면 소토리 출신.
1914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에 유학, 법학을 공부한 뒤 귀국하여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들어가 안희제(安熙濟), 서상일(徐相日) 등과 함께 독립운동에 투신하였다. 그 후 독립운동자금을 모금하기 위해 동지들과 함께 공동소비조합(共同消費組合)을 설립, 자금 1만 2천원을 모금, 마련하고 동지들과 부산에서 백산상회(白山商會)를 경영하였다.

3.1운동 때 미국인 선교사를 통하여 자금 30만원을 상하이 임시 정부로 보내고,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중국으로 탈출, 대한민국 임시정부 재무부 차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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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울산터미널에서 출발하는 08:30 버스와 연결하려면 조금 빠르지만 07:15 양산 출발 3000번 버스가 적당하다.

08:20 양산시외터미널 출발하는 버스로는 연결 불편하고 장시간 산행과도 맞기 쉽지 않아서..

08:00 임시언양시외터미널 앞에 도착하여 구터미널로 이동하여 안내되는 버스정보시스템은 08:30에 338번이 안내되어 있다. 09:30에도 안내되어 있다.  08:30까지 계속 안내되는데, 차는 오지 않았다. 계획을 수정할 수 밖에 없었다.

봉계로 가서 올라가는 방법을 택한 것이다.

 

308번 버스를 타고 봉계로 가는 중에 함께 탄 할머니가 조언을 했다.

백운산을 가려면 이 차의 종점까지 타고 가라고... 내와까지 간단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좌로 보이는 천마산을 포기하는대신 고헌산 방향으로 가서 신기마을로 하산할 생각을 한 것이다.

차라리 잘 된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하면서...

내와마을
태화강의 발원지 백운산 탑골샘이 있는 마을.
탑골샘은 내와리 118에 위치.
탑골은 내외마을의 탑이 있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
탑골샘은 태화강 최장거리 발원지(유로연장 45.7km)→미호저수지→대곡천→태화강 합류.
탑골은 옛부터 도시와 거리가 먼 두메산골로 교통이 불편한 곳.
북으로는 괘밭, 덕천, 이조까지 걸어 가서야 경주로 왕래할 수 있고,
동으로는 활천, 봉계를 지나 울산으로 통행,
서로는 소호령을 넘어야만 청도와 밀양 등지로 통행할 수 있었다.
경주나 언양에 있는 시장으로 갈 때에도 말이나 소를 이용할 수 밖에 없었다.
이렇듯 두메산골이다 보니 박해를 피해 내와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흥선대원군이 고종 3년(1866) 병인박해를 일으켜 천주교를 탄압하자 경주 양남 출신김씨 일가가 박해를 피하여 깊은 산 속으로 찾아든 곳이 바로 탑골이다.
마을 사람들에게 천주교를 전파하고 신자를 확보하여 교세를 펴왔으나 현재는 '탑골공소입구'라는 팻말만 잔존하고 있다.
내와마을은 자연석으로 유명하며, 특히 내와 흑돌은 수석애호가들에게 인기가 많다.
-두서면-

<가매달>
두서면 미호리에서 탑골로 이어지는 가매달은 태화강 백리길이 숨겨둔 보물이다.
가매달에는 열 개의 소(沼)와 여섯 개으 ㅣ징검다리가 있다.
선녀가 목욕을 했던 선녀탕, 구렁이가 약이 올라 물에 빠져 죽었다는 구이소, 계곡을 건너던 소금장수가 미끄러져 계곡물이 짠물로 변했다는 소금쟁이소가 있다. 또 색시가 탄 가마가 계곡물을 건너다가 미끄러져 빠져 죽었는데, 가마 속에 둔 요강을 닮은 요강소 전설이 전해 온다.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태화강백리길이 만나는 개미허리골>
개미허리골은 영남알프스 둘레길과 태화강 백리길이 만나는 곳이다. 개미허리골 아래 내와(內瓦)마을은 기와를 굽고, 쇠를 노기던 불매골이었다.
쇠를 녹이던 재등비알 쇠점터, 점터걸, 서말찌 조선솥을 굽던 중점이 있다.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길>
백운산 아래 길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길이다.
세월을 묻어 둔 오지마을, 피톤치드 내뿜는 낙낙장송, 태화강의 발원지 탑골마당매기, 세 곳의 미니 공소로 이어진 순례길, 짐을 진 말이 꼬꾸라질 만큼 가파른 말구부리길이 있다.

 

탑골샘 입구 이정표가 서 있는 Y자 갈림길의 좌측길은 천죽순례길 7.7km 안내가 있고 우측은 탑골샘1.8km와 천주교 순례길 1구간종착점0.27km가 안내되어 있는데, 탑골공소터가 있다.

탑골과 탑곡 공소
백운산에서 탑이 굴러내려 '탑골'이라는 지명을 얻었다.
탑골 상류에는 태화강 발원지가 있다.
1801년 천주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신자들이 탑골에서 살기 시작했고 공소는 그 뒤 만들어졌다.
탑곡교우촌(1839~1983.3)은 경주, 밀양, 의성에서 피난 온 고령 박씨, 반남 박씨 집안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였다.
이후 전성기에는 신자가 100명을 넘기도 했다.
탑곡 공소는 예씨네 집안이 상선필로 옮겨 가면서 상선필공소의 발판이 되었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태풍 피해로 공소가 내려앉은 데다, 독가촌 강제이주 정책으로 거의 이농하면서 현재는 공소 터만 남아 있다.

울주 천주교 순례길
<탑곡 공소 옛터>
탑곡에 천주교 신자가 들어와 살기 시작한 것은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하지만 신유박해(1801)로 강이문이 이곳으로유배 왔고, 포항 장기현으로 유배된 정약용이 자신을 찾아온 경주의 예씨 청년을 강이문에게 소개하면서 시작되었다고 구전되어 온다.
그 후 예씨 청년은 고향으로 가서 이웃과 친척들을 권면하여 5,6세대를 입교시켜 탑곡 인근 산골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이후 고령 박씨, 반남 박씨, 경주 김씨 집안들이 박해를 피해 이주해 옴으로써 1830년 후반에는 교우촌이 형성되었다.
아마도 샤스탕 신부가 언양지역 사목 방문을 할 때 이곳에 왔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탑곡 교우촌(1839~1983)의 신자들은 외교인들을 영세시켰고, 혼인을 통해 여러 집안이 이주해 옴으로써 전성기(1910년대)에는 100명이 넘는 신자들의 공동체로 발전하였다.
탑곡공소의 예씨 집안은 상선필로 옮겨가 상선필 공소의 발판을 만들었고, 이후 내와 공소도 이곳에서 분리되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가 허락되면서 깊은 산중의 신자들은 도시로 나가게 되었고, 이농현상이 심화되면서 결국 신자들 모두가 떠나게 되었다.
현재는 공소터(울주군 두서면 내와리 탑곡 524)와 주변에 흩어져 있는 신자들의 묘들만 옛 자취를 말해주고 있다.
언양성당 신앙유물전시관에 탑곡공소에서 사용하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의 제대, 라틴어 미사경문, 전례도구 등이 전시되어 있다.

 

 

<백운산 탑골샘>

탑골샘은 내와리 118에 위치. 해발 550m 지점의 절터 주변으로 저터에서 10m 가량 아래 바위틈에서 물이 흘러나오는 지점으로 약 3m 반경 주위에서 물이 흘러나온다.
수량은 15t/day로 풍부한 편.
탑골샘은 태화강 최장거리 발원지(유로연장 45.7km)→미호저수지→대곡천→태화강 합류.

 

백운산 탑골샘은 가지산 쌀바위(역사적, 상징적 발원지)와 함께 태화강의 최장거리 발원지로 의미가 있다.

 

탑골샘 입구를 알리는 아치문
태화강 백리길은 가볼만 한 길이다.

태화강 백리길
제1구간 : 명촌교-십리대숲-태화강전망대-배리끝-망성교(선바위)
제2구간 : 망성교(선바위)-한실마을-반구대암각화-대곡박물관
제3구간 : 대곡박물관-화랑체육관-두광중학교-유촌마을
제4구간 : 유촌마을-하.중.상동마을-복안저수지-탑골샘

 

계곡에 제법 물소리가 울린다.
마지막 부분에는 데크가 놓여 있다.
탑골샘으로 뒤따라 오른 산객, 능이를 찾는다고 한다.
탑골샘에서 우측으로 오르는 길은 뚜렷하지 않다가 능선을 만나면 호미지맥길을 간 산꾼들의 시그널이 보이기 시작한다.
삼강봉 정상은 거대한 바위가 벽을 이루지만 타고 오를 수는 있다.
우회를 해버리면 삼강봉 정상표지를 놓치고 갈 수도 있는 곳이다.

백운산 북쪽에 있는 삼강봉(三江峰)은 빗물의 흐름이 동남쪽으로는 미호천, 대곡천을 경유 태화강으로, 북동쪽 큰골은 경주시내를 지나 형산강으로, 서쪽으로는 소호리 동창천을 거쳐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삼강봉에서 보는 백운산, 지척이다.
삼강봉 정상표지에서 나가면 백운산으로 이어지는 낙동정맥과 천마산으로 이어지는 호미지맥의 갈림길이다.

 

전망바위에서 다시 보는 백운산 정상

 

 

백운산에서 이어지는 고헌산이 보이는 서쪽편 전망대에서.
전망대에서 되돌아 본 삼강봉 방향, 뾰족한 건 삼강봉 북쪽의 854m봉으로 삼강봉보다 9m가 높다.
낡은 밧줄보다 바위의 홈이 안전해
능선에도 이런 험로가 한 번 있다.
동굴을 찾기 위해 지도에서 위치를 파악하고, 등고선을 참고하여 완만한 길로 들어 갔다.

 

등산지도에서 동굴의 위치가 잘못된 것 같다. 실제보다 더 아래 쪽에 표기 되었다.

동굴 안에서 밖을 보다.

 

등로 좌측의 전망바위
최고의 조망바위다.
올라온 삼강봉 방향, 맨 우측 멀리 한 일자로 보이는 단석산 정상부가 식별된다.

 

경주방향의 단석산, 벽도산으로 부터 우로,,

 

정상부근의 나무 울타리를 우회통과

때가 그러한지 구절초 풍년이다.

백운산 정상(893m)

'백운산은 울주군 두서면에 위치한 910m의 산으로 신라 때는 열박산(咽薄山)으로 불렸다.'

위 글은 탑골샘 입구 아취문 앞의 탑골샘 안내글에서 인용했는데, 고도 표기가 이상하다. 893m로 지도에도 ...

백운산 하산길은 완만한 고속도로다. 갈림길이 하나 트랙을 다시 확인해보고..

 

693m봉의 삼각점

 

임도를 만나기까지 짧지 않은 거리를 백운산 정상에서 편하게 왔다.
길 좌측에 활공장이 있는데 조망이 아주 좋은 곳이다.
임도는 우로 돌아 소호령(3km)으로 간다. 우리는 직진하여 고헌산으로
여기까지 차가 올라온다. 바로 앞에 대성사가 있고, 활공장을 이용하는 차들도 올 것이다.
사납지는 않은데, 짖어대는 게 절집지키기인다..
대성사
고헌산의 산불초소
저 능선을 이용하여 내려가자고 하는데...거리가 멀고 버스정류장도 멀어 고헌사로 가기로 한다.

 

형제들처럼 생긴 바위 앞에는 쉴만한 공간, 식탁이 될 법한 바위도 있다.

고헌사(高巘寺)

이걸 보고 고헌산 정상석의 표기를 고헌산(高巘山)으로 기억한 것 같다.

 

해는 저물어 간다. 신기정류장에 도착할 버스를 검색하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내려온 길과 고헌산 방향을 되돌아 본다. 버스는 8분 후에 온다고 하는데 ...

언양 임시버스터미널에 하차하여 양산행을 예매하려고 하니 한시간이나 남았다.

다시 나와 바로 앞의 시내 버스정류장에 갔는데,  3000번이 방금 지나갔다. 들어가지 않았으면 탔을텐데..

다음차를 기다려서 양산으로 갔다. 양산터미널을 지나터미널 부근에 도착할 무렵에야 그 시외버스는 언양을 출발했을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귀가길에 올랐다.

제법 힘들인 산행인었지만 보람은 있었다.

언양터미널에서 요금표
언양터미널에서 시간표
12번 버스는 터미널 안에서 출발한다.

 

08:30 구언양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는 338번버스를 탈 계획으로 06:30에 화명역에서 만날 약속을 했으니 잠이 깊이 들지 않아 2시간 정도는 잤을까..
04:00에 알림을 맞추었는데 03:30에 일어나버렸다.
06:36에 화명역에서 양산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역으로 가면서 전화를 하니 벌써 양산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이동 중이라고 한다.
양산역 환승센터 07:15 버스를 타려면 이 다음 차는 연결할 수 없게 된다.
시외버스는 양산터미널에서 2,200원이고, 이 버스는 3,500원이지만 다음 차의 연결을 위해 이걸 타야 한다.
출근시간대에 시외버스를 운행하지 않음은 뭔가 거래가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다.
이동시간도 시외버스가 빠른데 1.5배 이상의 요금을 내어야 한다....
울산이 가까워 여러 차례 방문하게 되는데 이번의 경우에는 버스가 안내된 것과 다르게 운행하는 걸 보고 'IT강국 선언'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지난 번 기령에서 본 그 바위에 새긴 글에서도 불쾌함을 느꼈지만 이번에 또 이런 일을 당하니 'IT강국 선언'은 그 분야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우롱하기에 적합한 건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09:26에야 내와 정류장에 도착하였다.
새벽 5시에 아침식사를 했으니 벌써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좌측으로 방향을 잡아 본래 계획에 포함했던 천마산을 좌로 하고 호미지맥길이 지나는 고개를 넘어 우로 돌아 임도를 따라 가니 탑골샘 이정표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탑골샘갈림길 이정표부터는 천주교순례길의 이정표도 있는데 1801년 신유박해로 유배된 강이문이 이곳에 오면서부터 시작하여 탑곡교우촌이 형성되어 1839~1983 까지 이어져 왔던 곳이라고 한다.
10:09 탑골샘을 안내하시던 할머니의 전동휠체어는 앞에 멈추어 있고, 익어가는 벼들을 손질하고 있었다.
10:14 탑곡공소옛터는 사진과 함께 안내문이 잇는데 천주교부산교구 울산대리구에서 세웠다.
앞에는 샬롬수련원이 있다.
10:19 '동양최초 십이지 진법 삼백육십오일사'는 더 올라가세요라는 안내비가 있는 곳 앞을 지난다.
10:22 탑골샘 입구라는 아취문이 있는 곳에 도착하니 태화강 100리길 종합안내판이 있다.
울산시가 세웠다.
반구대암각화와 대곡박물관을 포함한 2구간을 한 번 찾아보고 싶다.
10:27 나무로 만든 5~7m 정도의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계곡 옆으로 난 본격적인 산길이다.
10:35 탑골샘 0.8km를 알리는 이정표에는 백운산방향, 내와방향 등을 알리는 간단한 정보가 있다.
단풍취의 꽃이 핀 것, 씨방이 익어가는 것들이 보인다.
국제신문 시그널도 있다.
탑골샘 야생화 안내판에는 천남성, 삿갓나물, 큰구슬붕이가 있다.
10:56 [탑골샘0.4, 유촌마을(전읍리)10.3]
11:10 데크길이 시작된다.
탑골샘야생화 안내판에 족도리출, 피나물, 미치광이풀이 있다.
11:12 데크가 끝난 지점에 '태화강발원지 백운산 탑골샘'이라는 페인트 글씨가 바위면에 씌여 있다.
조금 지나니 한 사람이 계곡을 따라 올라오고 있다.
이 주변 길을 자 아는 듯하다.
버섯을 찾는다고 한다.
백운산 방향보다 일단 삼강봉 방향을 선택하고는 가까운 능선으로 향했다.
첫부분은 트랙도 없어 감으로 길ㅇ르 더듬었다.
우리가 지나는 길로 간 사람이 있는지 붉은색의 끈이 매어진 곳이 더러 이어진다.
길은 가끔 잡목을 치고 지난다.
능선이 가까울 무렵 능선을 우회하는 트랙을 지도에서 보았는데 잠시 따르다 보니 계곡으로 떨어지길래 우로 돌아 지형도를 보고 능선을 잡았다.
그 트랙은 나중에 다시 만났다.
왜 그렇게 내려갔는지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아마도 지도 없이 방향만 보고 가다가 다시 돌린 것 아닐까. 그렇지만 트랙을 만들어 공개할 정도라면 지도가 있었을텐데...
11:42 반듯한 길을 만났다. 호미지맥을 타는 길이다. 시그널도 제법 달려 있다.
천마산으로 가려면 방향이 이 쪽으로 돌아야하는 곳이기에 뚜렷하지 않은 능선을 따르는 것 같다.
국제신문 시그널이 하나 보인다.
11:52 바위틈에서 마지막 힘을 다하면서 뿌리를 드러낸 채 살아 있는 나무가 바위언덕에 누을 듯이 있다.
11:55 비교적 거대한 바위를 만났다. 좌로 우회하는 길도 있다.
여기가 삼강봉 정상이다. 우회하면 정상석과 멀어져 버린다.
11:58 삼강봉 정상(해발845m), 정상 인증하고 백운산과 주변을 조망.
12:05 정상석에서 조금 나오면 철제 이정목이 있는데 [호미지맥분기점 삼강봉 845m]이다.
낙동정맥에서 호미지맥을 분기하는 곳이다.
근래에 호미지맥의 일부를 거쳐 왔다.
12:09 전망바위.
12:20 서쪽편 전망바위, 남서쪽으로는 고헌산이 통째로 모습을 드러낸다.
앞으로 보이는 산줄기는 낙동정맥일터...
12:31 낡은 밧줄이 있는 바위를 타고 오른다.
이 능선에서는 제법 험로다.
12:37 동굴을 찾으러 내려서는데 또 국제신문의 시그널이 보인다.
12:38 동굴, 김유신기도굴이라고 명명한 건 국제팀인가?
지도의 위치가 트랙과 차이가 있어 조금 더 내려갔으나 아닌 듯 하다. 이 길은 탑골샘으로 가는 길이다.
바로 오를 것도 생각했으나 급경사로 오르는 길이 멀어져 고도차가 적은 길로 되돌아 나갔다.
12:53 정상 부근에 다시 멋진 바위전망, 최상의 조망처. 올라온 삼강봉 방향과 머리 단석산, 그리고 이번에 홀로 갈까 했던 벽도산도 조망된다.
12:59 말뚝울타리가 가로막는다. 옆으로 통과
13:01 백운산 정상(893m)
신라 때는 열박산(咽薄山)으로 불렸다는 이야기와 김유신의 무예 수련과 천신제 이야기가 전해진다.
북쪽에 있는 삼강봉의 태화강, 형산강, 낙동강 분수령 이야기도 함께 한다.
13:17 태풍으로 쓰러진 소나무가 길을 막는다.
13:44 삼각점(693m)
13:55 다시 울타리, 임도 만남, 백운산 방화선 복원공사 안내판
14:04 임도에서 잠시 좌 돌아 활공장, 조망 멋짐
14:10 임도 이탈, 임도는 우로 돌아감
[고헌산 정상2.0, 외항재5.0, 소호령3.0]
14:14 대성사, 개들의 환영인사
14:15 고헌산 방화선 복원공사 안내판
밧줄 안간이 이어지고 등로에 억새가 햇살ㅇ르 받아 반짝인다. 완만하여 편한길.
단풍들이 물들기 시작했다.
15:05-10 전망데크, 5분간 쉼[소호령1.7, 고헌산 정상0.3, 외항재3.3]
15:11 기우는 햇살 받으며 나무계단 오름
15:12 산불초소, 용샘을 지도 보고 찾으려고 했으나 진달래 숲이 막아 들어갈 곳을 찾을 수 없었다.
15:19 고헌산 정상(1034m)[외항재3.0, 고헌사3.0, 소호령2.0]
옛성터, 억새군락이 장관, 가뭄 때 용샘에서 기우제, 백두대간이 낙동강 따라 내려오면서 영남알프스를 처음 만나는 곳.
언양 사람들은 고헌산을 진산으로 여겼으며, 언양의 옛지명인 헌양도 고헌산의 헌산에서 유래, 남쪽으로는 구량천이 태화강 지류를 이루고 북쪽으로는 밀양강의 발원지인 동창천이 흐른다.
전망대에서 잠시 전망을 보면서 좌측능선 하산을 고려했으나 일몰이 가까와 빠른 고헌사 길을 선택한다.
15:38 하산길에 직육면체의 큰 바위가 식탁처럼 있고 그 앞에는 형제들 같은 바위군이 있다.
내려오면서 계속 식탁이나 의자 같은 바위들이 이어져서 고헌산(高巘山)의 의미를 되새기게 된다.
여기서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떠올린다.
봉우리 헌巘자가 풀어 쓰면 '산을 드린다'로 생각했는데, 누가 산을 드리는 게 하니라 나무가 자신을 아낌없이 희생하는 것처럼, 이 산이 자신을 내어주어 오르내리는 이들이 피곤할 때 쉬어가라고 의자와 식탁을 내어준 듯 하다는 말이다.
아직도 하산길은 많이 남았다.
고헌사로 가면 편할까 하고 좌로 돌았지만 길이 별로 좋지 않다.
직진하여 능선을 따르니 사유지라는 뜻인지 막혀 있다.
두어 번 피하면서 능선을 따라 가니 마지막 16:38 무덤이 있는 곳에서 좌로 내려 서면 돌계단처럼 된 길이 있고 곧 임도에 내려서고 고헌사 입석이 있다.
도로를 따라 신기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데 2km 정도는 걸어야 한다.
1.5km 정도 남았을 때 신기 정류장에 도착할 버스를 검색하니 25분 정도 남았다.
17:10 빠른 걸음으로 이동하여 도착하니 7~8분이 남았다.
1713번 좌석버스를 타고 언양터미널에 도착하여 양산행 버스를 기다려 탑승3000번, 시외버스는 1시간 대기해야 함,
19:40 양산에서 지하철로 귀가

2013년에 보았던 고헌산 정상 표지석의 한자는 고헌사와 같지 않다. 그래서 사라진 건가...
고헌서봉 2013년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