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의 지리산 남부 능선 삼신봉-삼신산 산행 2011.6.16 목
2011년 6월 16일 목, 흐림-구름많음,
덕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동김해, 시내를 돌아 진영으로 가서 동창원으로, 그리고 대전통영간고속도로의 단성나들목에서 국도를 타고 지리산의 삼신터널을 거쳐 청학동에 도착한 것은 10시 40분이 채 되기 전이니 산행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명산인 지리산을 찾으면서 버스가 빈 좌석을 남긴 것은 특이한 일이다.
10:40 청학동 하차
10:53 청학교,[삼신봉 2.5km]
11:40 샘터 [청학동 1.7km, 삼신봉 0.8km]
11:53 갓걸이재
12:06 삼신봉[청학동 2.5km, 쌍계사 8.9km]
12:37 삼신산 1354.7m 조망 5분, 식사 25분 후 13:07 이동
13:18 등산로에서 7-8m 우측에 비트형의 바위(종정굴)
13:37 [쌍계사 6.5km, 삼신봉 2.5km]
13:57 [쌍계사 5.8km, 삼신봉 3.2km] 이정표에 노란시트지로 독바위 방향 표시
14:19 상불재 [삼성궁에서 2.3km, 쌍계사 4.9km, 삼신봉 4.1km]
14:42 [쌍계사 4.1km, 삼신봉 4.8km]
15:32 불일폭포갈림길 [삼신봉 6.9km, 쌍계사 2.1km, 불일폭포 0.3km]
15:40 불일폭포
15:52 불일휴게소
15:59 마족대
16:06 환학대
16:07 [쌍계사 1.2km, 불일폭포 1.2km]
16:20 국사암, 해발 250m
16:30 쌍계사 일주문
16:34 매표소
16:40 하동차박물관
지도만 보고 대충 계산한 청학동에서 쌍계사까지의 거리는 11.5km였고 이정표를 보고 계산한 거리는 11.4km였으니 큰 오차가 없었다.
이동 거리를 모두 합하면 약 13km 정도.
청학동의 표고 800m에서 삼신봉까지의 고도차는 555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마음에 부담이 적은 산이었기에 1진을 선택했다.
정상부에서 비가 스쳐가는 듯한 현상과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에 약간 변화를 느꼈지만 대체로 무난한 날씨였다.
불일폭포는 예전과 달리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암벽을 줄 잡고 옆으로 걷던 때와는 다르게 편했지만 사실상 접근을 통제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수량이 줄어 옛날에 본 느낌은 나지 않았다.
여기서 쌍계사까지의 길은 돌이 깔려 있었다. 이전의 흙길이 좋았던 것 같은데...
하산하면서 99년 여름에 처음 쌍계사의 산장에서 자고 이른 아침에 불일폭포까지 오르다가 도중에 배터리 방전으로 다운되어 일행은 먼저 보내고 잠시 누웠던 바위, 그 곳에서 토마토 한 알로 회생하여 다시 불일폭포까지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족대와 환학대의 안내판을 보면서 등산로에 갓걸이재, 상불재, 종정굴, 쇠통바위, 독바위 등에 대한 안내도 이런 정도로 해 두었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들었다.
갓걸이재는 최치원선생이 용변을 볼 때 갓을 걸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삼신봉에서의 조망은 삼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꼴지인 주제에....
정상에서 12분을 가서 있는 종정굴은 옛날 정씨가 피난했다는 곳이며, 아마 그 후에도 수많은 애환이 깃들어 있을 만한 곳이다.
1264봉에서 서쪽으로 멀리 돌아 독바위에 서면 청학동이 내려다 보인다는데.. 따라 걷기에 바쁜 후미의 슬픔이여...
불일폭포(佛日瀑布) 이 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를 살짝 쳐서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熙宗, 재위1204~1211)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智訥, 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입적)하신 후 희종은 시호를 불일보조(佛日普照)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라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다.
마족대(馬足臺)는 임진왜란(1592~1958,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당시 명나라에서 울; 나라를 돕기 위해 원군(援軍)으로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입니다.
환학대(喚鶴臺) 신라말기의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 다녔답니다. 이 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바위입니다.
쌍계사에는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범패(불교음악의 일종)를 신라로 도입하여 대중화 시킨 승려 진감선사를 기리는 진감선사대공비(국보 제47호)가 있는데 선생이 이 곳 환학대에서 그 비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쌍계사의 일주문에 붙은 삼신산쌍계사라는 현판이 이제는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16:30이 하산 종료 시간이었지만 10여분을 늦게 도착하였다.
2진의 시간이나 거리가 부담이 없었겠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남부능선의 산세를 느끼려면 1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날씨의 영향으로 천왕봉을 볼 수는 없었지만 노고단 방향은 시야에 환히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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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6월 16일 목, 흐림-구름많음.
지리산 삼신봉-삼신산
청학서당- 갓걸이재 - 삼신봉 - 삼신산 - 상불재 - 불일폭포 - 쌍계사
거리 11.4km / 시간 6:00
덕천에서 고속도로를 타고 동김해, 시내를 돌아 진영으로 가서 동창원으로, 그리고 대전통영간고속도로의 단성나들목에서 국도를 타고 지리산의 삼신터널을 거쳐 청학동에 도착한 것은 10시 40분이 채 되기 전이니 산행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지도만 보고 대충 계산한 청학동에서 쌍계사까지의 거리는 11.5km였고 이정표를 보고 계산한 거리는 11.4km였으니 큰 오차가 없었다.
이동 거리를 모두 합하면 약 13km 정도.
청학동의 표고 800m에서 삼신봉까지의 고도차는 555m 정도 밖에 되지 않아 마음에 부담이 적은 산이었기에 1진을 선택했다.
정상부에서 비가 스쳐가는 듯한 현상과 갑자기 떨어지는 기온에 약간 변화를 느꼈지만 대체로 무난한 날씨였다.
10:40 청학동 하차
10:53 청학교,[삼신봉 2.5km]
11:40 샘터 [청학동 1.7km, 삼신봉 0.8km]
11:53 갓걸이재 <갓걸이재는 최치원선생이 용변을 볼 때 갓을 걸었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라고 전해오고 있다고 한다.>
12:06 삼신봉[청학동 2.5km, 쌍계사 8.9km]
<삼신봉에서의 조망은 삼신산보다 좋다고 하는데 꼴지인 주제에 정상석이 있는 암봉을 두고 ....>
12:37 삼신산 1354.7m 조망 5분, 식사 25분 후 13:07 이동
13:18 종정굴 (등산로에서 7-8m 우측의 바위) <정상에서 12분을 가서 있는 종정굴은 옛날 정씨가 피난했다는 곳이며, 아마 그 후에도 수많은 애환이 깃들어 있을 만한 곳이다.>
13:37 [쌍계사 6.5km, 삼신봉 2.5km]
13:57 [쌍계사 5.8km, 삼신봉 3.2km] 이정표에 노란시트지로 독바위 방향 표시
<1264봉에서 서쪽으로 멀리 돌아 독바위에 서면 청학동이 내려다 보인다는데.. 따라 걷기에 바쁜 후미의 슬픔이여... >
14:19 상불재 [삼성궁에서 2.3km, 쌍계사 4.9km, 삼신봉 4.1km] 삼성궁을 거쳐 올라온 2진은 이 곳을 1시간 40분 전인 12:40에 벌써 통과했었다.
14:42 [쌍계사 4.1km, 삼신봉 4.8km]
15:32 불일폭포갈림길 [삼신봉 6.9km, 쌍계사 2.1km, 불일폭포 0.3km]
[불일폭포(佛日瀑布) 이 폭포 아래 용소에 살던 용이 승천하면서 꼬리를 살짝 쳐서 청학봉, 백학봉을 만들고 그 사이로 물이 흘러 폭포가 되었다는 전설이 있으며, 그 높이가 60m로서 장엄하고 아름다운 폭포이다. 고려 희종(熙宗, 재위1204~1211) 때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智訥, 1158~1210)이 폭포 근처에서 수도하였는데 입적(입적)하신 후 희종은 시호를 불일보조(佛日普照)라 내렸다.
그 시호를 따라 불일폭포라 하였으며, 지눌이 수도하던 암자를 불일암이라 불렀다.]
불일폭포는 예전과 달리 계단이 잘 만들어져 있어 암벽을 줄 잡고 옆으로 걷던 때와는 다르게 편했지만 사실상 접근을 통제하고 바라보기만 했다. 수량이 줄어 옛날에 본 느낌은 나지 않았다.
15:40 불일폭포
15:52 불일휴게소
앞의 저 둥그런 바위에 12년 전 여름에 누웠다가 토마토의 도움으로....
불일휴게소 부근에서 쌍계사까지의 길은 돌이 깔려 있었다. 이전의 흙길이 좋았던 것 같은데...
하산하면서 99년 여름에 처음 쌍계사의 산장에서 자고 이른 아침에 불일폭포까지 오르다가 도중에 배터리 방전으로 다운되어 일행은 먼저 보내고 잠시 누웠던 바위, 그 곳에서 토마토 한 알로 회생하여 다시 불일폭포까지 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마족대와 환학대의 안내판을 보면서 등산로에 갓걸이재, 상불재, 종정굴, 쇠통바위, 독바위 등에 대한 안내도 이런 정도로 해 두었으면 어떨까 아쉬움이 들었다.
[마족대(馬足臺)는 임진왜란(1592~1958, 2차에 걸친 왜군의 침략으로 일어난 전쟁) 당시 명나라에서 울; 나라를 돕기 위해 원군(援軍)으로 온 이여송(李如松) 장군이 말을 타고 지리산을 오를 때 생긴 말발굽 자국이 바위에 새겨졌다는 설화가 전해 내려오는 곳입니다.]
스틱을 짚은 곳이 말 발굽 자리라는 ....
15:59 마족대
16:06 환학대
[환학대(喚鶴臺) 신라말기의 학자인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은 속세를 떠나 이상향인 청학동을 찾아 다녔답니다. 이 곳 환학대는 선생이 청학동을 찾아 학을 불러 타고 다녔다는 전설이 전해내려오는 바위입니다.
쌍계사에는 통일신라시대 당나라의 범패(불교음악의 일종)를 신라로 도입하여 대중화 시킨 승려 진감선사를 기리는 진감선사대공비(국보 제47호)가 있는데 선생이 이 곳 환학대에서 그 비문을 지었다고 합니다.]
16:07 [쌍계사 1.2km, 불일폭포 1.2km]
16:20 국사암, 해발 250m
16:30 쌍계사 일주문
삼신산을 통과한 지금에야 쌍계사의 일주문에 붙은 삼신산쌍계사라는 현판이 이제는 생동감 있게 느껴진다.
16:34 매표소
16:40 하동차문화센터 / 산행 종료
16:30이 하산 종료 시간이었지만 10여분을 늦게 도착하였다.
2진의 시간이나 거리가 부담이 없었겠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지리산 남부능선의 산세를 느끼려면 1진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날씨의 영향으로 천왕봉을 볼 수는 없었지만 노고단 방향은 시야에 환히 들었다.
건강하고 즐거운 산행 감사드리며....
얻어 온 사진 몇 장을 붙인다. 아래서 보기만 했던 삼신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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