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나갈 때는 천문대 부근의 주차장에 두고 산책을 할까 했는데 오히려 잘된 결과일까. 좌회전 한 번 잘못하여 김해 목화 방향으로 들어갔다가 결국은 사충단(사충단 : 도 지정기념물 제99호, 동상동 161번지 조선시대.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주변을 돌아 수로왕비릉으로 갔다가 박물관에 들러 비사벌 기획전시실까지 보고 왔다.
나의 기억에 60년대의 구지봉은 여섯 가야의 태동이라는 알을 상징하는 돌들을 모아둔 게 구지봉이었던가...잘못된 기억인가...
이제는 거북의 머리 형상의 돌이 하나 솟아 있다. 구지가를 실현하려는 모양새다.
구지가(龜旨歌)
龜何龜何 구하구하 거북아 거북아
首其現也 수기현야 머리를 내어라
若不現也 약불현야 내놓지 않으면
燔灼而喫也 번작이끽야 구워서 먹으리.
-<삼국유사> 권2, 가락국기
"구지가는 거북에게서 자신들을 다스릴 왕을 내어 달라는 가야인의 소망을 담은 노래다.
"머리를 내다"는 것은 그들을 다스릴 임금을 내놓으라는 뜻이리라.
구지가의 해석
1. 잡귀를 쫓는 주문으로 보는 견해
2. 영신제의 절차 중에서 가장 중추가 되는 희생 무용에서 가창된 노래라는 견해
3. 원시인들의 강렬한 성욕을 표현한 노래로 보는 견해
4. 거북점을 칠 때 부른 노래라는 견해
그러나 700여년 후 성덕왕 때 불려졌다는 내용 및 주제가 같은 해가와 연결시켜 볼 때 원시 주술적 집단 무요로 부는 것이 유력하다.
거북 머리 형상의 돌이 머리를 내밀었다..
수로왕비 허황옥의 능
파사석탑
고인돌
고인돌 위에 새긴 구지봉석
비사벌은 옛기록에 불사국, 비지국, 비사벌, 비화, 비자발, 비자벌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창녕의 옛이름이다. 순장된 16세 소녀의 복원된 형상을 입구에 세워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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