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서울에서 부산까지 오는 길에

benel_jt 2010. 6. 22. 10:32

카메라의 날짜에 연도가 2010이어야 하는데 잘못 설정되어 있습니다

지난 달에는 승용차로 갔다가 야간운전을 하며 바로 내려왔다. 그러다가 바로 눈 앞에서 끔찍한 사고를 목격하게 되었다.

생각하면 아직도 떨린다. 그러니까 지난 5월 12일 새벽에 있었던 사건...

흰색 승용차가 1차선에 있는데 검정색 승용차가 급하게 나를 추월하더니 곧바로 흰 차를 들이받아 뒤집히고 두 대가 모두 2차선으로 튕겼던 시각이 02:22....모퉁이를 돌면서 앞차를 보지 못한 걸까....흰색은 서 있었던 것 같다.

이번에는 아들 옆에 자고는 아침 숨막히는 출근길을 태워주고 바로 고속도로를 탔다. 차가 지하철 환승, 마을버스, 도보까지 합한 시간보다 더 걸렸다.

 

코스                               거리(km)  시간   도로비

출근길 : 신림에서 우면동   11.5         0:26    0         까치고개전후의 정체가 극심, 전체적으로 정체

우면동-수원화성               27.1        0:33     800     부분적으로 약간 정체

수원화성-동락전적비         90.5        1:23    3,100   무극을 우회, 생극을 거쳐 동락으로 감

동락-임충민공충렬사         23.6        0.26    0         고구려비나 중앙탑을 보고 왔으면 더 좋겠지만 시간이... 

충렬사-상주 경천대           83.9        1.22    2,900    잠이 쏟아지려고 해서 바로 오려는 생각을 바꿔 들렀는데 도로공사로 지체

경천대-대구 앞산공원        98.1        1.38    4,300    시내길에서 정체

앞산공원-부산                 197.5       2.39    14,700   도로비는 수성으로 와서 만원 조금 못되었다.

위의 데이터는 아이나비 홈에서 계산한 결과임. 

 

수원화성, 동락, 앞산공원은 많이 벼르던 곳, 충렬사는 전번에 놓친 곳이다.

일박을 더 하면서 천천히 온다면 좋았을텐데......하여튼 그놈의 야생고양이..... 

 

고양이 : "우리가 언제부터 야생이 되었는데...... " 

 

 

성 동북공심돈..월요일이라 그런지 한국인들보다는 일본인 관광객이 매우 많이 몰려온다. 이렇게 좋은 성곽을 가진 나라가 왜 그랬을까를 생각하는 건지.... 버스를 몇 대나 대절해서 이른 아침부터 다녀 간다. 화성의궤 덕분에 복원이 된 성이다 전란에 견디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

성벽에 총안이 수평과 아래 방향으로 이어져 만들어져 있다. 세워둔 깃발들은 쇠파이프에 매달려 좀 어울리지 않아....

 창용문을 배경으로 성곽이 길다랗게 보인다.

 충북 음성군의 무극리, 생극리를 지나 가까이 있는 충주 신니면의 동락리전승비 해설...6.25당시 최대 전승지역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한 젊은 여교사의 신고로 대대병력으로 연대를 격파하고 장비를 모두 노획한 전과를 올려 연대병력이 모두 일계급특진을 한 전투이다.

춘천전투의 승리로도 훈장을 주지 않던 이승만대통령은 압록가에서 수통에 담아온 물 때문에 훈장을 수여한다는 걸 연대장은 거부했단다.  무극-생극-동락의 전승으로 받은 일계급 특진은 그 전의 전과에 대한 보상적인 의미도 있었겠지.

산을 넘어 있는 임부택 연대장과 교신이 되지 않아 김종수 대대장의 단독 판단, 기습 공격으로 대승을 획득했다. 동락국민학교에 인민군의 연대가 장비와 함께 집결..국군이 모두 후퇴했다고 오판하고 긴장을 풀도록 한 김재옥 여교사와 주민들의 공로도 컸다. 7연대는 전쟁초기에 춘천을 방위하고 있었고 전쟁에 대한 사전첩보분석과 대비를 철저히 하여 적과의 교전에서 많은 전과를 올리고 적의 진출을 억제한 연대이며 몇 년 전에 작고한 임부택 소장의 동상이 지금 춘천에 세워져 기리고 있다. 무극리부터 옛길을 따라 와야 더 생생한 느낌을 얻을텐데 새로난 길로 빠르게 지나왔다. 시간에 쫒겨 동락초등학교를 방문하지 못하고 와서 매우 아쉽다.

 전승비

 동락초등학교 부근에 온 어느 초등학교학생들이 전적비 앞에 모여 그날을 회상...당시의 김재옥 여교사가 지금 앞에 있는 여교사보다 더 어렸을 텐데 지혜롭고 대담함이 정말 돋보인다. 승리의 주역이 바로 그 분..

충주에 있는 충렬사에서  임경업장군의 부인의 죽음을 알 수 있는 정렬비 해설

앞의 냇물이 달천...임경업장군의 후손을 달천임씨라고 한단다. 평택이 본관인데... 

 왼쪽은 충렬사비, 오른쪽은 정렬비가 있는 비각이 나란히...

속리산에 갔을 때 경업대로 내려왔는데 아마도 이것이 경업대이겠구나 한 게 있었다. 여기 충렬사 자료전시관 입구에 경업대의 사진과 입석대의 사진이 확인해 준다. 우리가 본 그 바위..바로 그것이다. 

 

경업대 慶業臺

속리산 법주사 동북쪽 4.5km 지점 신선대 아래에 있는 거대한 암석이 용틀임을 하고 엎어져 있는 바위이다. 이 경업대는 임경업장군이 그의 스승 獨步大師를 모시고 심신을 단련한 곳이다. 경업대 동쪽 뒤 500m 지점에 있는 높이 150m의 뜀바위는 임경업장군이 뛰어 내리던 바위라 하고 동남쪽 500m 지점에 토굴이 있고 작은 암자가 있는 곳은 수도를 하던 장소이며 토굴 속에 임경업장군이 마시던 將軍水라는 샘물이 있는데 불로장생하는 약수로 알려져 경업대를 찾는 관광객은 누구나 이 물을 마신다고 한다.

입석대 立石臺

임경업장군이 여기서 장군의 기상을 닦은지 6년째에 이르러 자신의 힘이 어느 정도인지 알고 싶었는데 홀연히 그 뇌리에 '마주 보이는 석벽에 올라가 그 옆에 누워있는 돌을 세우면 그 힘을 알 수 있으리라'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에 그는 바위를 세우려고 했으나 힘이 부쳐서 세우지 못하고 다시 1년 동안 열심히 체력을 단련시켜 돌을 세유게 되었다. 그 후부터 '돌을 세웠다'하여 입석대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상주의 경천대에 있는 정기룡장군 동상, 임진왜란 때 육전에서 큰 공을 세운 장수..그런데 임진왜란 하면 충무공 이순신만 부각되고 있으며 원균은 악역만 남아있으나 그도 또한 공신이다. 육전에서는 행주산성 전투의 권율과 진주성의 김시민, 의병장으로는 곽재우 등이 많이 알려져 있다. 정기룡장군의 이야기는 교과서에서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임진록에서 정기룡 장군은 신화적인 존재로 나타난다.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북방향

경천대에서 바라본 낙동강의 남방향 , 암벽이 멋진 풍광을 이루고 있다.

옛날 사극 '상도' 촬영 셋트  

사벌국왕릉사적비 ..  견훤의 아버지 아자개의 능일까..

왕릉...처음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대구의 앞산공원 안내도

앞산공원의 전적관... 

 중호 임용상 의사의 상.. 항일의병장

 우재 이시영 선생 순국 기념탑

 

집에 오는 길이 대구시내에서 퇴근시간에 걸려 앞산공원 앞의 고가로 아래 유턴코스를  세 번이나 돌았다.

서울의 중요한 문화재를 피한 것이 교통문제였는데 결국 대구에서 곤욕을 한 번 치루고야 귀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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