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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소사생태길 웅천읍성, 주기철목사기념관, 생가지 20201110

benel_jt 2020. 11. 10. 22:42

창원 소사생태길 웅천읍성, 주기철목사기념관, 생가지 20201110 화. 솔로

 

코스 : 마천공단입구 정류소 하차(되돌아 경사진 도로를 따라) - 삼일운동기념탑 앞 / 소사생태길 입구 - 생태길시작점(임도, 우측에 주민체육시설) - 임도 아닌 산길로 - 140m봉 오르기 전에 임도로 내림(잡목으로 등로 불편) - 의자쉼터 - 뒤돌아 고도차  거의 없는 140m봉(길이 좋음) - 임도 - 임도이탈 후 산길(이쪽 등로 불편) - 자마산243m, 표지석, 산불초소, 조망 좋음 - 하산 후 임도 합류(이쪽 등로 이용하여 오르고 되돌아 내려오는 길 권장) - 임도(좌측 조곡산(299m) 오르다가 길 상태 불편하여 포기) - 반대편에서 오를까 하다가 다른 계획이 있어 포기하고 임도로 진행 - 정자(휴식, 시루봉과 천자봉이 지척에 있는 듯 보임) - 시루바위(9.2km↔9.3km) - 주기철목사생가터 답사(다음지도에 근거, 대밭, 농지, 표지 없음) - 천자봉주유소 - 서중소류지 제방 앞 도로 건너편의 비석군 - 웅천읍성내, 우체국앞, 동문, 해자,  - 주기철목사기념관 - 택시로 천자봉공원묘지 이동 -

 

08:25 버스126 탑승
09:25 하단역 강서9-1 탑승
10:10 용원 305 탑승 종점으로 갔다가 가는 차를 타서 시간 허비.
10:45 마천공단입구(진해폐차장) 하차(삼일운동기념탑이 보이지만 트랙대로는 길이 부적합하여 좌우로 살피다가 우측길로 올라감)
11:03 진해드림로드종점 입구, 건너편이 삼일운동기념비
<선각자장영실선생송덕비, 한국전쟁참전기념비, 삼일독립운동기념비>
11:15 진해드림로드, 소사생태길 종점, 차단기, 정자, 체육공원
11:27 <←0.5km지점> 안내
11:40 의자쉼터, (140m봉 다녀옴)
11:43 <←1.0km지점> 안내
11:50 <←1.5km지점> 안내
11:58 <←2.0km지점> 안내, 체육시설
11:59 자마산 방향 들머리 (희미함, 비추, 반대편으로 등로 이용 추천)
12:12 돌담(성돌?)
12:17 산불초소, 터가 제법 너른 정상부(남해바다 조망, 시루봉 방향 조망, 자마왜성
12:24 임도 합류(자마산길은 이 길로)
12:27 <←2.5km지점> 안내
12:30 조곡산 남쪽 들머리, 길 불편
12:38 <←3.0km지점> 안내
12:45 <←3.5km지점> 안내
12:47 의자 쉼터 / 조곡산의 북편 등로 확인
12:53 <←4.0km지점> 안내
13:03 <←4.5km지점> 안내
13:04 정자쉼터(소사생태길정자) / 휴식
13:21 <←5.0km지점> 안내
13:29 <←5.5km지점> 안내
13:36 <←6.0km지점> 안내
13:43 <←6.5km지점> 안내
13:51 <←7.0km지점> 안내
13:58 <←7.5km지점> 안내
13:59 진해드림로드, 소사생태길 안내판
14:04 차단기
14:08 임도갈림길, 좌하방향 진행
14:10 [소사생태길정자3.3, 해병훈련체험9.0]
14:14 [소사생태길정자3.4, 해병훈련체험쉼터8.9]
14:26 [소사생태길정자4.0, 해병훈련체험쉼터8.3]
14:31 [소사생태길정자4.15, 해병훈련체험쉼터8.05]
14:33 백일마을[소사생태길정자4.35, 해병훈련체험쉼터7.95]
14:36 주기철목사생가터/다음지도 참고, 안내가 없어 GPS와 짐작으로 탐방 
14:41 [소사생태길정자4.45, 해병훈련체험쉼터7.85]
14:46 [소사생태길정자4.9, 해병훈련체험쉼터7.4]
14:48 [소사생태길정자5.02, 해병훈련체험쉼터7.28]
14:50 진해드림로드종점, 도로 만남.[소사생태길정자7.2, 해병훈련체험쉼터7.1]드림로드안내도, 소사생태길 시점, 현대오일뱅크주유소
15:07 선정비석군 / 건너편은 서중지
15:18 웅천읍성 동문루, 옹성, 해자, 명문석
15:27 주기철목사기념관, 십자바위조형물, 1,2층전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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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로 천자봉묘원으로 이동
경남11바1456/010-8254-1456
15:52-15:56/2.2km/3,6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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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2 성묘
창원으로 가기 위해 천자봉공원묘원 건너편 정류소 대기, 앱 검색하니 2대가 있었는데 정류소 찾는 동안 통과, 다음차 25분...
15분 정도 되었을까.
860번 좌석버스가 왔다.
지도앱을 열어놓고 안민터널에 가장 가까운 롯데마트 앞에 하차하여 연결할 차를 검색하니 155번이 있다. 다음 12번 환승해야 하는데...
10여분 대기하여 탑승, 이동 중에 아우에게 전화가 와서 하차지점보다 1코스 더 가서 남산공원 하차하여 기다렸다가 퇴근하는 동생의 차에 같이 탔다.
함께 식사하고, 동생의 차로 집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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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으로 이 방면으로 간 일이 별로 없었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08:10분에 집에서 나갔는데 10:45에야 버스에서 내렸으니...바로 이웃에 둔 진해의 웅천을 2시간 30분 정도나 걸렸다.

이 코스는 2017.4.19 부산일보가 소개한 것이다.
얼마 전에 기념관에 전화를 했더니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다고 했다.
코로나 2-5단계라고 하는 게 이유라고...
기다리다가 나홀로 산행의 기회가 되어 찾는다.
GPX트랙을 제공하지 않는 부산일보의 지도를 참고하여 산길샘에서 루트를 만들었다.
부산일보의 지도는 진해삼일독립운동기념비에서 시작된 것을 버스정류소에서 부터인 걸로 착각하여 처음에는 길 따라 좌우로 이동하며 찾다가 뒤돌아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가니 기념비 바로 앞에 소사생태길 안내가 보인다.

임도가 계속되다보니 중간 중간에 사람들이 눈에 띄었다.
이 길은 자전거를 타도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두 청년이 백일마을 쪽에 내려서기 전에 자전거를 타고 올라왔다.

산길은 잘 밟지 않는 길이 되어 묵어가고 있어 길이 잘 열리지 않았다.
차라리 반대방향으로 온다면 그래도 자마산으로 오르는 길은 뚜렷하다.
140봉도 반대편은 괜찮은 편이지만 거미줄을 좀 걷으면서 갔다.
자마산을 가는 길에 올랐더니 잡목과 가시들, 환삼덩굴 등이 엉겨 길이 나지 않는데 뚫고 올라갔더니 온통 아래 위로 도깨비 같은 씨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자마산 정상으로 가는 동안 밭의 경계 같기도 한 성돌이 보였는데 긴 담장을 이루었다.
자마산성의 흔적일 듯하다.
정상은 펀펀하게 깎였는데 높은 부분에 산불초소가 있고, 정상석 비슷한 돌이 서 있으나 요즘의 정상석이 아닌 것 같았다.
해방 직후나 전의 글씨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자세히 보니 海軍田(해군전)으로 읽히는데 용어가 익숙하지 않은 언어라면 혹시...

자마산 정상은

바다 방향과 웅산(시루봉) 방향의 조망이 전 코스 중에 최고다.
아래로 웅천이 내려다 보이는 곳이다.
웅천은 외교, 군사상 중요한 위칠서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풍부한 역사적, 문화적 자원을 가진 곳이다.
어린 시절 학교로 가는 골목길이나 집 앞의 언덕 위에만 올라가도 보이던 웅천 천자봉이라고 알았던 시루봉도 바로 이곳에 있다.

지금은 건물들이 모두 고층화되어 보이지도 않지만 매연으로 인하여 볼수도 없다.


웅천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다양한 종류의 성곽이 남아 있어 그 군사적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또 조선시대 최초의 개항장이었던 제포왜관이 설치되어 조선전기 한일간의 문화와 문물 교류의 중심지 역할을 담당하였다.
일제시대 신사참배에 반대하여 순교하신 주기철 목사기념관과 생가지가 이곳에 있다.
여성독립운동가 김조이의 생가지도 이곳 웅천에 있어 항일의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5호인 웅천읍성, 창원진해 제포진성, 제포왜관지, 진해 웅천왜성, 그리고 지금은 매립이 되었으나 제포수중목책 등의 국방유적이 산재한 곳이다.
보배산 기슭의 점골에 있는 웅천도요지는 조선시대 분청사기를 생산하던 두동요지, 금곡요지 등으로 알려져 있다.
도굴로 파괴된 가마터와 그 주변에서 사발, 대접, 접시류를 비롯하여 귀얄문과 덤벙무늬 분청사기가 출토되고 있어, 이 가마터는 조선시대 분청사기가 백자로 변해가는 마지막 단계인 15~16세기에 만들어 운영되다가 임진왜란으로 폐요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 길은 홀로 걸어도 거의 위험이 없는 길이라고 할만하다.
심심찮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으니....
백일마을로 내려서면서 다음지도의 위치에 따라 주기철목사생가지를 찾아 보았지만 안내는 하나도 없다.
다만 대숲으로 둘러쌓인 그곳일까. 그 부근에 집이 있는 곳은 아니고 농지로 변해 채소를 가꾸고 있는 그곳인가.
기념관에서 들은 이야기로는 밭으로 변해 있다고 하는데, 정확한 안내가 없어 아쉬웠지만 '주목사님께서 태어나신 동네가 이곳이구나.' 하는 정도로도 만족함이다.
내려가면서 창원의 동생에게 전화를 하니 17:00퇴근한다고 만나자고 한다.
처음에는 하산하면서 산소에 먼저 들렀다가 읍성과 기념관을 보고 마무리하고 그 곳에서 귀가길에 오를까 생각했는데 계획이 수정되었다.
읍성과 기념관을 먼저 보고 산소를 들렀다가 창원으로 가기로 했다.
창원으로 가서 시외버스를 타면 오히려 편할 것 같은 생각도 들었는데...
결국 저녁식사하고는 동생차로 집까지 ...
퇴근길 막하는 시간에 불모산터널을 넘었던 것이다.
웅천은 다시 한 번 찾아야 할 것 같다.
무학산의 학봉을 몇 해 전에 황사가 심한 날에 형제들과 다녀왔는데 학봉의 십자바위가 주목사님의 기도처였다니, 다시 한 번 찾아야겠다.

 

 

 

 

 

소사생태길 GPX 트랙 파일 첨부 : 이 파일은 주기철목사기념관 이후를 절단 수정한 것입니다.

소사생태길__20201110_1057.gpx
0.24MB

 

 

마천공단입구 버스정류장 건너편이 진해폐차장이다. 10:45
삼일운동기념비를 보고 좌우로 길을 찾은 시간이 제법되어 트랙을 버리고 재설정하였다. 도로 내려오며 본 모습..
11:03

삼일운동기념비에서 도로 건너편 들머리의 안내도

일단 길을 건너 기념비들을 먼저 보고...

 

선각자 장령실선생 송덕비 / 제자들이 세웠다.

펼친 책 모양의 우측에

 

'붓든 강도를 박멸하자.'

 

역시 선각자 셨구나...

성금출원자 명단과 금액이 새겨져 있다. 아는 이는 보이지 않는다.
장령실선생의 발자취와 아래의 건립기를 보니...

팔판산 정기와 구천동 맑은 정신
이곳 웅동 땅에 배움의 전당 마련하시고
의에 살고 의에 죽자
천지인에 합당한 의를 찾자.
붓든 강도를 박멸(撲滅)하자고
8.15 광복과 함께 횃불 든
선각자이신 선생님의 가르침
반세기가 지난 이제 우리들의 정성모았네
그 은덕 후세에 길이길이 빛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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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의 발자취
생몰연월일
1916.1.14~1990.8.30 웅동면 소사리 29번지에서 출생
학력
1930.4 웅동계광학교 졸업
1935.3 보성고보 졸업
1938.3 보성전문학교 졸업
1954.6 고려신학교 졸업
이력
1946.9-50.5. 웅동고등공민학교 교장 봉직
1945.12. 웅동초등학교강당 마련에 공헌
1946.4 공설시장(5일장) 개설
1949.8 지역내 전기시설 마련에 공헌
1950.8 6.25 전쟁발발에 따라 많은 제자들을 학도병으로 출정토록 한 애국적 공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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撲滅박멸 ①(해(害)로운 벌레 따위를) 죽여서 없애는 것, ②(부정적(否定的) 현상(現象)을) 뿌리뽑아 없애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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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든 강도를 박멸(撲滅)하자고 하셨는데 붓든 강도를 키우신 건 아닐 듯...

 

 

 

이 비문에는 나라 위해 몸바친 장선생의 제자들도 잠들어 있다.

아래쪽에 웅동중학교 학도병 전사자(9명), 그 밖의 학도병(47명), 웅동주민출신장병 전사자(37명)

 

삼일운동기념비
11:06

 

입구에서부터 시멘트 포장길을 오른다 11:13
차단기는 차량 통제용, 이 앞에까지 차를 세우고 걸어가는 이들이 보인다 11:15

우측에 체육시설이 있고, 좌로는 산길이 있어 올랐으나 얼마 가지 않아 다시 임도로 내려섰다.

140m봉으로 가려다 길이 거칠어져 내려섰다가 반대편의 길이 좋아 잠시 올라보지만...

입구에서 0.5km 지점이다. 500m마다 거리 안내판이 있다. 11:27
임도 따라 가다가
자마산 방향의 샛길이 있어 오르지만 이쪽은 길이 매우 거칠다
정상 부근에 돌담, 밭의 경계석으로 성돌을 이용한 것인가.
자마산 정상은 넓게 깎여 있는 모양인데 꼭대기에 산불초소가 있다. 12:17
앞바다의 거제도 방향, 안골포 해전의 현장도 멀지 않을 터
웅천동 아파트지역이 좌로 보이고 중앙부분이 웅천읍성 부근일까.
뒤돌아 보니 철탑 뒤로 시루봉
중대병력이 모일만한 공간이다.
12:21
어디를 보아도 정상석 같지는 않다. 조선후기의 이산 표지 비슷하기도 한데 첫 두자는 해군(海軍)이 확실하다. 우리 해군일까.

 

이곳 자마산은 임진왜란 때 자마왜성이 있었던 곳이다

그렇다면 '海軍'이라는 표기는 일제강점기에 그들이 유적지 표시를 한 것 같기도 한데, 설명이 마땅한 게 없어 아쉽다.

 

 

진해 자마산성[鎭海子馬山城]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 산15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성내동에 있는 자마산[일명 자매산] 정상부와 능선에 있는 성곽.

진해 자마산성은 산성 내부와 인근에 웅천 조개무덤, 웅천 고분군과 더불어 포석 주거지로 알려진 유구가 존재하고 있어 삼한·삼국 시대의 대규모 유적으로 추정되고 있다. 창원시 외동의 성산성, 고성군의 남산성 등과 입지상 유사하며 삼국 시대 초기인 4세기경의 유적으로 추정한다.

진해 자마산성은 자마왜성으로 불리기도 하며 명동왜성과 함께 웅천왜성의 2개 지성 중 하나로 추정되고 있다. 자마산의 5부 능선에서 확인되는 크고 작은 바위들은 왜성 축조에 사용되었던 석재로 보고 있다. 1593년(선조 26)에 소 요시토시[宗義智]가 기존의 감포산성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천과 웅동의 경계를 이루는 와성만의 북쪽인 자마산 정상부와 능선에 축조되어 있다. 둘레 350m 내외의 성곽으로 현재는 일부 구간만 남아 있다. 산의 정상부를 깎아내고 능선을 따라 단을 이루면서 120×100×75㎝ 정도의 자연석을 이용하여 단계적으로 석축하거나 경사면을 받쳐 토축하였다. 너비 4m, 높이 2m 정도의 축대가 있다.

자마산 일대는 산성뿐만 아니라 주거지·조개 무덤·고분군까지 축조되어 있는 복합 유적지로, 진해 지역의 고대 역사와 문화를 복원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유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진해 자마산성 [鎭海子馬山城]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12:22

자마산에서 내려가는 길은 많이 다닌 길이다.

산불초소 근무자에게 물어보아도 반대편에는 길이 없단다. 나는 그곳으로 헤치고 올라왔는데, 절대 비추..

 

12:24

 

소사생태길 정자 13:04-13:15
13:04
시루봉 조망 13:04-13:15
소사생태길을 자전거로...
도로에 내려서서 만나는 천자봉주유소

서중소류지

서중소류지 제방 앞의 비석군
동문루
문루에 올라 해자를 내려다 보고
옹성

웅천 읍성

성곽 방어를 위한 투척용 석탄(石彈)이 발견된 웅천읍성

웅천읍성(경상남도 기념물 제 153호)은 북쪽의 봉동산과 자마산에 둘러싸여 있으며, 남쪽으로는 남산에 의해 가려진 분지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 남북방향으로 긴 직사각형의 평지성이다. 세종 16년(1434년)에 처음 축조되었으며, 단종 1년(1452년)에 원 성벽에 붙여 더 넓게 쌓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웅천읍성의 동벽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덧붙여 쌓은 동문지 아래에서 원 성벽의 남쪽 외곽에 서쪽으로 굽어진 해자를 확인하였다. 단종 1년(1452년)에 원성벽의 남쪽 해자를 메우고 동문지의 옹성 및 치성, 그리고 그 외곽의 새로운 해자를 축조한 것으로 보인다.

성벽의 부속시설로서 동서남북 사방에는 반원형 옹성문을 두고 읍성 네모서리와 동, 서문의 왼쪽 또는 오른쪽에 성벽에 기어오르는 적을 활이나 창으로 쏘기 위해 성벽 밖으로 돌출되게 쌓은 구조물인 치를 총 6개 배치하였다. 그리고 성벽의 외곽으로는 해자를 둘러 방어했다. 후대에 확장하여 덧붙인 성벽의 성돌에서 창녕부, 진주부민 등의 이름이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읍성축조 시 인근 군현의 읍민과 힘을 합하여 성을 쌓은 사실을 알 수 있다.

동문지 남쪽 해자 내에서 너비 4.6m의 석축시설과 목제기둥이 2열로 4개 확인되었는데 평소 다리를 걸쳐 놓았다가 유사시에 들어 올리는 조교시설로 보고 있다. 성내에서 출토된 분청사기를 비롯한 일부 백자편의 경우는 임진왜란 이전인 15, 16세기에 해당되며 대부분의 자기 조각의 경우는 16~17세기 이후의 것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한편, 성벽 인근과 해자 내부에서 다양한 크기의 둥근 돌이 발견되었는데 이는 성곽 방어를 위한 투척용 돌로 알려져 있다.


웅천읍성의 기초 부분 조성에 이어 흙을 파고 잡석을 다져 넣어 기초를 튼튼하게 쌓았다. 특히, 외벽 쪽 지대석은 지형조건에 따라 높낮이가 다른데 이는 읍성의 좌우로 흐르던 하천의 범람으로 인해 성벽의 유실을 막기 위한 축조수법으로 파악되고 있다. 성벽의 축조수법은 흙을 ‘ㄴ’자 모양으로 반반하고 고르게 다지고, 10cm 두께의 점토와 내벽쪽 1.6m정도까지 축구공만한 크기의 돌을 3단 정도 깐 후 그 위에 두께 20cm 내외의 판돌로 된 지대석을 설치하였다. 성벽은 지대석 끝에서 약 20cm 정도 안으로 물리어 쌓았는데 아랫부분에는 200cm×160cm×150cm 정도 크기의 성돌로 세워쌓기나 눕혀쌓기하고, 위쪽으로 갈수록 이보다 작은 성돌로 눕혀 쌓았다.

북쪽의 원 성벽조사에서 세종 20년(1438년) <축성신도>에서 법으로 정한 체성부의 축조양상과 동일한 축조수법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축성신도가 반포되기 이전인 세종 16년(1434년)에 연해읍성 축조 규정이 이미 적용되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원 성벽의 석축 내벽이 계단모양으로 조성된 것에 비하여 단종 1년(1452년) 덧붙여 쌓은 내벽은 수직되게 쌓은 점에서 이시기에 내벽을 쌓는 수법의 변화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웅천 읍성 - 성곽 방어를 위한 투척용 석탄(石彈)이 발견된 웅천읍성 (국립중앙과학관 - 우리나라 성곽축조과학)

 

 

 

명문석 중의 하나, 돌에 공사관련자를 새겼다. 진주 정아무개...

 

 

 

 

 

 

주기철(朱基徹, 1897.11.25 ~ 1944.4.21)목사님은 일제 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출신으로 장로교 목사. 주기철(朱基徹) 목사의 원래 이름은 주기복(福)이었다. 한상동 목사와 더불어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거부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이며 독립운동가이다. 아울러 손양원 목사와 더불어 한국교회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 중에 하나로 손꼽힌다. 아호(雅號)는 소양(蘇羊)이다. 일제 강점기에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를 거부하고 반대운동을 하여 일제로부터 10년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 순교했다.

 

 

 

 

개인 트랙 참고 : 이게 원본 파일..

소사생태길__20201110_1057.gpx
0.28MB
창원_소사생태길-주기철_2020-11-10_10-57-36.gpx
0.47M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