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남저수지 미니벨로 90km 솔로라이딩
20200409 목
10:56 화명역
11:46 진영역<화포천 아우름길 입구>
11:51 진영역 출발
13:03 신동초등학교앞
13:15 주남저수지/동편수문 주남리
13:28 동편 제방/오리전망대
13:43 함산마을 안내판
14:09 용산마을 안내판
14:12 용산삼거리
14:30 석산마을 안내판
14:37 도로 이동중 / 화목정류소
14:40 화목김씨 주종4세기행비
14:45 창원다호리고분군 안내판
14:58 가월교/가월수문
15:18 창원 주남 석교(주남돌다리)<경남문화재자료225호>
15:29 주남저수지/동편수문 주남리/원점회귀
16:03-09 수산대교
16:31 백산,명례 사이 정자 휴식
16:56 밀양강어귀/삼랑진철교보임
17:13-20 밀양강잠수교(구삼상교)
17:39 삼랑진철교앞 통과
18:00 작원관지앞
18:08 작원잔도 건넘/해넘이
19:00 양산물문화관
20:08 아파트입구 도착
<94.3km/8:20>
일단 접근 방법은 기차로 진영까지 가서 10여km 도로를 따라 이동하는 계획이었다.
한림정역에서 이동하면 위험한 도로는 적으나 거리가 10km 정도 더 가야 한다.
그런데 안전을 생각한다면 한림정에서 가는 게 옳았다.
대형 트럭들이 너무 많이 다니는 도로변으로 가기에는 정말 조심스러웠다.
혼자이기에 가능한 코스라고 생각한다.
일단 기차를 탈 생각이라 큰 자전거는 포기하고 미니벨로를 접었다.
06:41-07:23을 타려고 했는데 어제밤에 너무 늦게 자리에 들어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긱 쉽지 않았다.
10:56-11:36 기차를 예약했다.
진영역에 내려 길을 대충 챙기고 접근할 트랙을 그려 저장하여 갔는데 질주하는 차들을 피해 소로를 이용하면서 방향만 잡아 갔다.
대산면 부근에서 작은 길을 찾다가 물을 건너지 못해 한참 돌았었다.
하기는 그린 트랙의 교량까지 가야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제방 위로는 자전거를 가지 못학 하는데 관측소에서 나온 직우원의 안내로 도보로 끌고가는 것은 상관이 없다고 한다.
용산마을의 저수지 좁은 목 부분에 길이 있는데 그 정도에서 돌아도 좋을 것 같다.
그런데 둘레길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위쪽의 신남저수지 까지 갔는데 길의 상태로 보아서 권장하고 싶지 않다.
그런데 북쪽 끝머리의 배수장 부근에서 좌로 돌다보니 국제신문의 시그널이 하나 붙어 있다.
일단 동의하고 자신감...
좀 떨어져서 봉곡저수지가 있으나 패스.
동판저수지도 패스했지만...
제방 위로 올라갈 때는 주의를 해서 도보로 가야한다.
이 곳을 자전거로 두 번 오고 싶은 곳은 못된다.
한바퀴 돌고는 주남석교를 보았는데 600m 거리라 멀지도 않다.
돌아오는 길에는 수산대교를 찍고 네이버지도에서 목적지 설정하고 그어진 트랙을 이용했다.
수산대교부터는 이미 기답지이기에 명례성당쪽으로 돌지는 않고 제방 안쪽의 명례도로를 따라 가다가 외신리 직전의 해동에서 올라왔다.
명례 가기 직전의 정자에서 쉬었는데 바로 북쪽에 백산이 보였다.
어릴 적에 두 번 다녀온 외가가 있던 곳이다.
그러고 보니 가술교회 앞도 지났는데 옛날 일본식 건물의 외가 친척집이 생각났다.
실내에 있는 뚜껑을 덮은 화장실이 가장 인상깊었는데...
당시에 우리 나라의 위생 상태가 얼마나 불편하고 불결했던지 비교가 되는 경우였다.
지금은 모두 실내에 화장실이 기본이고 둘 정도는 보통 아닌가.
돌아오는 길을 수산대교를 지나지 않고 한림정 방향으로 하면 조금 짧기는 하나 산고개를 하나 넘어야 하는데 미니벨로 타고 넘기에는 좀 답답하여 밀양 방향으로 잡았다.
삼랑진 부근에서 시간을 체크하고 기차를 찾아 보았는데 바로 우리 동네에 서는 차는 차라리 자전거로 이동하는 게 늦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동 거리에 대한 기록도 욕심이 생겨 계속 탔더니
작원작도 부근에서 해는 떨어진다.
원동역을 앞에 두고 새마을 열차가 한 대 지나 간다.
역풍으로 속도가 나지 않지만 20시 전후에는 도착할 것 같다고 계산했다.
양산물문화관을 지나 자전거샾 앞에서 기차를 다시 확인하니 바로 가는 게 빠를 것 같다.
앞뒤에 깜박이를 켜고 조명을 사용했다.
어두운 자전거길에서 걷는 사람들 중에 희미하나마 조명을 사용하는 이들은 고맙다.
옷의 뒤쪽에 반사되는 띠를 사용하는 경우도 고맙다.
그런데 와전히 어두운 색의 옷을 입고 가는 경우에 그것도 둘씩 나란히 가면서 길을 막는 이들 때문에 몇 번이나 놀랐다.
20:08에 종료하고 집앞 가게에서 우유 한잔으로 목을 축이고 들어왔다.
94.5km...조금 아깝게도 100km를 채우지 못했다.
기다리던 주남저수지 둘레를 돌아보고, 덤으로 '주남석교',
다호리 위치 확인, 명례마을 도로 확인, 백산, 가술 등 추억이 있던 길들...
거의 100km에 가까운 길을 작은 자전거로 나홀로 달렸다.
수확은 괜찮은 날이다.
20200409 목
주남저수지 자전거 트랙 파일 첨부 :
11:46에 진영역 하차하여 준비
화포천이 좋다는 말은 많이 들었지만 자전거로는 불편할 듯하데...오늘 갈 상황은 아니다.
도로 구간을 조심스레 통과한 후 저수지의 동쪽 수문이 있는 곳으로 도착하는데 거리에 비해 시간이 많이 걸렸다.
저수지둘레를 여기서 출발 종료 했다.
처음 계획은 람사르문화관에서 할까 했는데.....
저수지가 너무 넓게 보인다. 저걸 다 돌아야 하는데 아무튼 17km 정도라니 미니벨로도 탈만한 거리다.
제방 위에는 자전거의 운행 금지...
관측소의 직원 이야기에 의하면 내려서 밀고 가는 건 허용한다고 한다.
보행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라니...
제방 아래의 도로를 돌 바에야 굳이 주남저수지를 탈 이유가 없지 않을까..
여기는 자전거 전용 구간이 없다.
결국은 농로 등을 이용해서 다녀라는 말이기도 하다.
주남저수지[注南貯水池]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동읍 일원에 있는 저수지로 산남, 주남(용산), 동판 3개의 저수지로 이루어져 있다. 배후습지성 호수로 멸종위기동물인 가창오리, 천연기념물인 재두루미, 부리저어새, 고니 등의 겨울 철새 도래지로 유명하다.
총면적은 6.02㎢이며 산남저수지(0.75㎢), 주남(용산)저수지(2.85㎢), 동판저수지(2.42㎢)로 이루어져 있다. 낙동강의 범람으로 생성된 배후습지성 호수로, 흔히 주남저수지라고 하면 산남, 주남(용산), 동판 세 저수지를 포괄하여 지칭하는 말이다. 남동쪽으로 금병산(271.8m), 남쪽으로 봉림산(566.7m), 남서쪽으로 구룡산(433.5m), 북서쪽으로 백월산(428m)에 둘러싸여 있으며, 주변 지역의 농업용수·공업용수 공급과 홍수 조절 기능을 하고 있다.
유채꽃이 핀 제방이 정자쉼터도 있고 망원경도 있어 걷다가 멈출만한 곳이다.
백월산, 구룡산 등이 가까이 벋어 있다. 구룡산은 아직 미답이다. 대호리고분군과 이어서 볼만하겠다. 정병산도 멀지 않다.
여기 화장실이 있는 곳까지는 길이 좋은 편이다.
화장실 건물은 오리 형상이다.
합산마을 안내판 / 용산마을 안내판
석산마을 안내판
석산마을의 입구에 있는 비석, 가까운 곳에 도봉서원이 있다.
'도봉서원은 1713년 김명윤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도봉서원이 창건되었을 때는 도봉사라고 하였으나 1844년에 서원으로 승격, 1864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 3년 뒤인 1867년 마룡동에 세웠으나 다시 훼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7년에 석산리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도봉서원과 관련된 김학봉은 종신부사로서 일본에 갈 때에 공을 종사관으로 선발하였고, 귀국해서는 공이 저술한 동사일록을 보고 크게 포상하여 조정에서 중히 여겼던 인물, 파주와 충주 목사를 제수하였고, 진주와 제주목사를 역임하기도 했다.'
<이 글은 창원시홈페이지에서 발췌한 것이다.> https://blog.naver.com/cwopenspace/221628879254
그런데 동사일록은
동사일록[東槎日錄]
조선시대 숙종때의 역관 김지남이 1682년 압물통사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적은 사행기록. 1책. 국립중앙도서관 소장.
편저자 : 김지남/1682년(숙종 8)
1682년(숙종 8) 역관 김지남이 압물통사(押物通事)로 일본에 다녀오면서 적은 사행기록(使行記錄).
『동사일록(東槎日錄)』은 조선 숙종 때의 역관(譯官) 김지남(金指南, 1654~?)이 통신사의 일행으로 1682년(숙종 8) 5월부터 11월까지 7개월간의 사행을 기록한 것이다. 당시 사행 일행은 정사 윤지완(尹趾完), 부사 이언강(李彦綱), 종사관 박경후(朴慶後), 왜어역관(倭語譯官) 홍우재(洪禹載)였다.
1책으로 된 필사본으로, 일본 기행 기록을 집대성한 『해행총재(海行摠載)』 제23책에 수록되었다.
이 책의 내용은 서(序), 473명의 사행 명단, 가져간 물건 명세, 일기, 일본왕환총목(日本往還總目), 그리고 제주에 표류한 중국 사람에게 실정을 물은 수본(手本) 및 생존자와 이미 사망한 사람의 명단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사행은 1681년(숙종 7)에 도쿠가와 이에쓰나[德川家綱]가 죽고 쓰나요시[綱吉]가 제5대 관백(關白)으로 습직(襲職)할 때 새 관백에 대한 경조사행(慶兆使行)을 요청해 파견한 것이다.
내용 가운데에 일기는 주로 일본의 산천, 지리, 명승, 고적, 사찰 등을 예리한 필치로 흥미있게 서술하였다. 일본왕환총목은 사행의 일정을 짤막하게 20행으로 줄여 한눈으로 볼 수 있게 하였다.
또한 제주에 표류한 중국 사람에게 실정을 물은 수본은 일본에 사행으로 다녀온 뒤, 1688년(숙종 14)에 중국의 표류인과 해남(海南)에서 문답한 내용이다. 이것은 주로 지역 간의 뱃길, 청나라의 해금(海禁)과 통관 절차에 관한 내용으로 외국 사행에 필요한 자료가 되도록 뒤에 첨부한 것으로 보인다.
이 사행의 기록으로 또 왜어역관(倭語譯官)홍우재(洪禹載)의 『동사록(東槎錄)』이 있는데, 이 두 책의 내용은 서로 중복되는 내용도 많지만 각각 특성이 뚜렷한 점이 있다. 기록은 중대 사건보다 보고 들은 평범한 것들을 기록했고, 역관답게 독특한 안목을 지니고 원문에 간주(間註)와 소제목을 많이 붙였다.
간주는 이수(里數)나 일본의 물명(物名) 등에 붙였는데, 어떤 것은 한음(漢音)의 본음대로 표기하기도 하였다. 또 숫자나 고유명사에 결(缺) 표시한 것이 많은데, 그 만큼 저자가 정확을 기하기 위해 노력했던 증거이기도 하다.
홍우재의 『동사록』과 함께 17세기 후반 일본의 정황뿐만 아니라 한중일 동아시아의 교류와 외교 양상을 이해하는데 기본 자료가 된다.
---혹시 동인이명인가?
역사는 기록한 자의 것이라고 주장하는데...어느 게 진실인가..
자전거로 이동 중에 본 비석, '화본김씨 주종4세 기행비'
화본은 군위에 있는 지명이다. 화본김씨는 생소하다.
다호리고분군 안내판
창원 주남석교(돌다리)
이 돌다리는 1969년 폭우에 무너졌던 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라고 한다.
주남(注南) 돌다리
경남 문화재자료 제225호
'주남새다리'라고 불리는데, 다리는 간격을 두어 양쪽에 돌을 쌓아 올린 뒤, 그 위로 여러 장의 평평한 돌을 겹쳐 놓은 모습이다.
800여년 전 강 야쪽의 주민들이 정병산 봉우리에서 길이 4m가 넘는 돌을 옮겨 와 다리를 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1969년 집중호우로 대부분이 붕괴되어 강 중간에 교면석(橋面石) 1매와 이를 지탱하는 양쪽의 교각석(橋脚石)만이 온전하게 남아 있던 것을 1996년 창원시에서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복원하였다.
작원잔도 부근에서 일몰 직전, 이 때부터 역풍이 강하게 불어 진행이 힘들었다.
지나가는 열차가 가끔 눈에 들지만...기록 세우자...
그런데 끝까지 가도 100km넘기지 못하겠다.
그렇다고 더 돌아가기도 늦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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