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천안 광덕산, 광덕사와 류청신, 호두나무 20160714 목

benel_jt 2016. 7. 14. 15:29


천안 광덕산

20160714 목





 운동기록, 날씨가 너무 더워 휴식 시간이 길어 속도가 늦었다.

짧은 거리를 느긋하게 산행했다.


 광덕산 정상 표지석


 



 버스에서 하차하면 바로 앞에 조그만 언덕배기 위에 한 개의 비석이 눈에 들어온다.

탑신의 기부에 돌거북이 있는 높이가 제법 큰 비석이다.

고려광록대부판삼사좌윤

고흥류공휘X선생신도비


류청신이라니까 생각나는 곳이 있다.

고흥 팔영산의 류정승 피난굴이다.

그 곳의 안내문을 빌려와 본다.

 


류정승 피난굴

류청신(柳淸臣)
본관 고흥
승무(升茂)의 아들로서 초휘는 비(庇), 호는 신암(信菴)이다. 고려 충선왕때 공이 있어 문하시중벽상삼한삼중대광도첨의정승(門下侍中壁上三韓三重大匡都僉議政丞)을 역임 하였으며, 문하시랑평장사지추밀원사(門下侍郞平章事知樞密院事)에 증직되었다.

굴 위의 바위에 류정승피난지라고 음각되어 있다.

 

 


냇물 건너편에 굴이 보이는 곳에 류정승 피난굴 유래비가 있다.

류청신(柳淸臣)
류정승 피난굴 유래비
이 곳은 고려말 어진 정승(명:류청신柳淸臣, 호:신암信菴, 시호:영
밀英密)께서 10세 때 왜구의 침입으로 부모를 따라 피란하였던 동굴이다. 피란 중 적에게 발각되어 적의 칼날이 어머니의 가슴을 겨누는 순간 공은 재빨리 적을 가로막고 대신 죽여 달라며 애원하자 그 효성에 감복하여 살려주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지자 그 효성을 기려 효아정려(孝兒旌閭)를 내렸다. 그 후로부터 이 곳을 류정승 피란굴이라 전해오고 있다.
공은 1257년 현 고흥군 풍양면 한등에서 태어나 1274년 과거에 급제한 후 탁월한 외교 능력으로 원나라 사신으로 가 공울 세워 충렬왕의 총애를 받아 1280년 5품에서 3품으로 승차됨에 따라 공의 출신지 장흥현에 속했던 고이부곡을 승격시켜 고흥현으로 관명을 받게 한 이 고을 지명의 창시자이시다. 충렬, 충선, 충숙 세 왕조에 걸쳐 29회나 원나라 사신으로 가 그  때마다 큰 공을 세워 충선왕은 1310년 도첨의정승에 명하고 고흥부원군을 봉하였다.
사신으로 가 있던 중 원나라에서 1329년 73세로 타계하셨다.
1997년 12월 16일
고흥군 후원
고흥향교 세움






좌는 고려승상 영밀공 류청신 공덕비, 우는 호두전래사적비


광덕호두
이 고장의 '호두'는 고려 충렬왕 16년(1290) 원나라로부터 왕가(王駕)를 모시고 올 때 열매와 묘목을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 경내에 심고, 열매는 광덕면 매당리 고향의 집 앞뜰에 심은 것이 시초이며, 그 후 선생의 후손 및 지역 주민들이 정성껏 가꾼 결과  호두의 주산지가 되었고, 효능으로는 머리를 맑게 하여 주고 살결을 곱게 할 뿐만 아니라 노쇠를 방지하여 주며 독특한 맛과 높은 영양가로 인하여 건강식품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또한 이곳의 오밀한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소리와 어미 품 속 같은 아늑함을 간직한 699m의 광덕산 기슭 아래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한 광덕사와 더불어 이 고장의 자랑이라 하겠다.


광덕사 호두나무, 원내는 류청신선생호두나무시식비? 호두나무 우측에 있다.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종목 : 국가지정문화재 천연기념물 제398호
명칭 : 천안 광덕사 호두나무
분류 : 자연유산 / 천연기념물 / 문화역사기념물 / 성환
수량/면적 : 7,506 ㎡(보호구역)
지정(등록)일 : 1998.12.23
소재지 : 충남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30(광덕리)
시대 :
소유자(소유단체) : 광덕사 외
관리자(관리단체) : 천안시

호두나무는 중국이 원산지이며 양지바른 곳에서 잘 자란다.

우리 나라에서는 황해도 이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며 약 20m 높이까지 자란다.
꽃은 4~5월에 피고, 9월에 둥근 열매가 익는다.

이 호두나무는 나이가 약 4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는 18.2m이며,

지상 60cm의 높이에서 두 개의 줄기로 갈라져 가슴 높이의 둘레가 각각 2.62m, 2.50m 이다.
호두나무 앞에는 이 나무의 전설과 관련된 '류청신선생 호두나무 시식지'라는 비석이 세워져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00년 전인 고려 충렬왕 16년(1290) 9월에 영밀공 류청신 선생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임금의 수레를 모시고 돌아올 때 호두나무의 어린 나무와 열매를 가져와

어린 나무는 광덕사 안에 심고, 열매는 류청신 선생의 고향집 뜰 앞에 심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의 나무가 그  때 심은 것인지정확한 근거 자료는 찾지 못하고 있다.
이곳 마을에서는 이것이 우리 나라에 호두가 전래된 시초가 되었다 하여

이곳을 호두나무시배지라 부르고 있다.

이 호두나무는 오랜 세월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나무로서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등로 능선에 오르면 정자가 있다.





장군바위



 장군바위 전설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 중의 하나,
옛날 허약한 젊은이가 깊은 산 속을 헤매이다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느 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와 소리나는 곳을 향해 가보았더니 큰 바위 밑에 물이 뚝뚝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물을 받아 먹었더니 그 물을 먹고 얼마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변하였다고 한다.
장군약수터는 여기서 멱시마을 방향으로 300m 정도 내려가야 있다.
 

 

천안 광덕산 산행

20100714

어지간히도 벼르던 산이다.

며칠 전에 모 산악회에서 안내가 있었는데 이틀 전에 너무 힘든 산행이 있어서 일단 접었는데

기회를 잡았다.

천안에서 광덕사까지 가는 길의 가로수는 호두나무가 꽤나 많았다.

천안 광덕사의 호두나무와 함께 한국에 전래된 고향으로 천안의 호두과자가 유명하다.

광덕산과 망경산까지 이어 갔으면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날씨가 너무 덥다.

광덕사 입구에서 하차하여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아산쪽의 강당골도 생각했지만 일단 이 정도로도 만족하는 수 밖에 없다.

20대 초반 정도의 학생 둘도 올라가는데 힘들어 보였다.

능선까지 계단이 이어져 있어서 길은 아주 잘 정비되어 있었다.

하도 길어서 365계단인가 했는데 나중에 보니 계단에 숫자가 표기된 곳이 있었다.

총 568 계단이다.

이 산에는 계단이 많다.



10:55 광덕사종점
11:06 일주문
11:11 운초 김부용 시비
11:20 광덕사 호두나무, 류청신선생호두시식비
11:29 장군바위갈림길에서 좌측 길 선택
11:34 계단(50계단마다 숫자)
11:53 568계단 끝(중간 휴식)
11:55 정자 [주차장 1.6, 정상 1.3]
12:03 돌계단
12:11 원기둥목계단
12:16 줄난간
12:23 [정상 0.6, 주차장 2.3]휴식
12:30 [정상 0.5]
12:31 돌계단, 줄난간
12:33 침목계단, 줄난간
12:36 돌무더기(돌탑)쉼터
12:54 광덕산 정상, HP [망경산 4.3....]
12:58 정상에서 내려가는 계단
13:08 약수터갈림길 [정상 0.3, 장군바위 0.9, 멱시마을 2.2]
13:12 내려가는 계단
13:35 장군바위 [광덕정상 1.2, 망경산 3.1, 설화산 7.8, 배방산 11.8, 멱시마을 2.0, 장군약수터 0.3]
13:37 [정상 1.3, 주차장 3.0]
13:42 박씨샘 [정상 2.4, 광덕사 2.7]
14:03 [장군바위 1.25]
14:11 Y자갈림길 [HP 1.4, 장군바위 2,1]
14:28 주차장(14:30버스 보내고 탁족 후 15:00버스로 이동)
[전체거리시간 7.5km/4:05]


산행을 마치고 천안역 부근에서 식사를 하고는

출발 직전에 급히 마음을 바꾸어 공주의 태화산을 가기로 했다.

숙박비가 들어도 태화산을 오기 위해서 다시 오는 교통비보다 저렴하고 시간도 절약되고,

나로서는 꼭 가고 싶은 곳인데 부산에서는 이 산을 안내한 것을 본일이 없기 때문이다.

3분 후에 도착하는버스를 타기 위해 달렸다.

광정까지 가는 버스다.

그 곳에서 다시 버스를 타야 한다.

마곡사까지...

직선거리로 13km 정도인 광덕산과 태화산의 거리가 빙빙 둘러서 가면서 3시간이 넘게 걸렸다.

태화산은 마곡사 때문에 유명한 산이다.

산 자체로는 별로 볼게 없다고 하지만 별 볼일 없는 산이 어디 있었나.

그 속에 부여된 의미가 더 소중한 걸....

지난 번 매천의 흔적을 찾은 산을 형편 없게 평가하는 산꾼의 태도는 늘 마음에 남는다.

태화산보다 마곡사가 유명한 게 맞는 말이다.

이정표마다 마곡사가 알려져 있지.

그를 품은 태화산을 안내한 곳이 없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