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육십령 고개

benel_jt 2015. 2. 6. 09:57

바람도 울고 넘는다는 육십령 고개는 해발 734미터의 험산준령이다.
덕유산을 옆에 끼고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을 이어주는 길이다.
 
본래 이 영마루는 안의군에 속했는데 안의군은 신라 때에는 마리현이라고 하였다. 그 후 이안현, 안음현, 안의현, 안의군으로 개칭되어 지금의 거창군 북상면, 위천면, 마리면을 포함한 행정구역으로 남아 있었으나 1914년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안의군이 폐지되고 이곳 육십령은 함양군에 편입되게 되었다.


이 고개를 육십령이라고 하는 데는 세가지 설이 있다.

첫째의 설로는 안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육십리요, 장수 감영에서도 이 고개까지가 육십리라서 육십령이라고 명명했다는 설이다.
둘째 설로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개의 고개를 넘어야 이 영을 넘을 수 있다고 해서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다.
세 번째 설은 옛날에 이 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하였거니와 사람들이 고개를 넘다가 산적들에게 습격을 당해 재물을 빼앗기고 생명까지 잃어버리는 일이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명의 장정들을 모아서 함께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을 하여 떼를 지어 넘어야 했던 고개라고 해서 육십령이란 이름이 붙여지게 된 것이라고 전하는 설이다.
그 당시 장정들이 모였던 주막이 있는 곳을 장군동(壯群洞)이라 하였고 산적들을 피해서 피난을 와서 살다가 여러 집이 모여서 마을을 이루었다 하여 피적래(避賊來)란 마을이 지금도 서상면에 있어서 그 전설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오랜 세월 슬픈 사연들을 가슴에 지닌 육십령은 이제 과거를 씻어버리고 넓은 포장도로가 훤히 뚫려 있다.
영마루에는 육십령이란 마을이 생겨 옛날 도둑들의 소굴이었던 분지를 바라보며 악몽을 잊어버리고 새 삶을 설계하는 듯 평화롭게 살고 있다.
그리고 마을 앞에는 육십령 휴게소가 있어 지나가는 차량들이 쉬어가는 곳이 되었고 그 옆에는 6.25의 비극을 상징하는 호국영령 추모비가 말없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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