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9.29 목
이른 아침 6시 10분에 덕천역에서 승차하여 6시간이 지난 12시 10분 경부터 산행이시작 된다.
예보보다는 적은 비가 내린 듯한데 가는 길에 차창 밖에 비치는 빗줄기에 이렇게 해서는 산행을 포기해야겠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았다.
그렇지만 요즘 정확도가 높아진 기상청의 예보를 신뢰하여 올라갔다. 바위길에 몇 번 발이 미끄러지는 느낌이 있었으나 조심 조심, 지름길을 택하여 정상만 찍고 내려오리라 생각했던 터라..어쩌다 일진보다 먼저 내려오면서 하산했다. 도중에 추월이야 당했지만..
그래도 처음 오른 도봉산의 느낌은 신선이라도 된 듯 구름 위에 떠서 아래를 굽어 보았다. 북한산 백운대와 인수봉의 두 봉이 구름 위에 살짝 보일 때, 보일락말락하는 도심의 빌딩들까지도 황홀하게 만드는 산행이었다.
12:09 도봉통제소(차에서 부터 늦게 내려 약간 지체된 시간)
12:15 자운봉 2.7km, 도봉탐방지원센터 0.4km (도봉탐방지원센터에서 자운봉까지는 3.1km)
12:19 도봉서원 앞
12:46 인절미바위
13:10 -30 중식
14:10 철계단, 도봉산의 삼봉 중간에 있는 도봉산 안내판
14:16-23 신선봉(1진을 만남, 1진은 만월암에서 능선을 거쳐 통제되 자운봉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봉째 오른 것이다) 안개가 살짝 걷히면서 주변을 조망하고 오던 길로 하산.
14:55 점심 먹던 곳까지 하산
15:00 석굴암 계단을 오르다가 도로 내려왔다. 시간을 맞추기가 만만치 않아..
15:15 인절미바위
15:35 고산앙지 각석
15:36 도봉서원
15:51 도봉통제소
15:56 북의 도발사례 사진전 잠간, 뒷사람들 내려오기 전까지...
16:00 주차장, 곧 출발하여 여주 신륵사 주차장에서 하산주, 지금 도자기 축제중
17:33 신륵사 일주문만 잠간 보고 되돌아 오면서 전통숯가마 체험장을 곁눈질하고 오니 벌써 식사가 시작되어 있었다.
18시경 식사는 끝나고 30분의 관람 여유를 주었으나 대부분 바로 가자는 의견, 부산 도착이 22시. 연지공원까지는 더 가야 한다. 12시 넘기는 사람들도 있을 듯....
마당바위길보다 더 지름길을 선택하여 올랐다. 왕복 6.5km 정도
김수증 [金壽增, 1624~1701]
본관 안동. 자 연지(延之). 호 곡운(谷雲). 상헌(尙憲)의 손자. 1650년(효종 1) 생원이 되고, 1652년 익위사세마(翊衛司洗馬)가 되었다. 형조 ·공조의 정랑(正郞)을 거쳐 각 사(司)의 정(正)을 지냈다. 1670년(현종 11) 강원 화천군 사내면 영당동에 복거(卜居)할 땅을 마련하고 농수정사(籠水精舍)를 지었다.
1675년(숙종 1) 성천부사로 있을 때 동생 수항(壽恒)이 송시열(宋時烈)과 함께 유배되자 벼슬을 버리고 농수정사로 돌아갔다. 그 때 주자(朱子)의 행적을 모방하여 그곳을 곡운(谷雲)이라 하고, 곡운구곡(谷雲九曲)을 경영하면서 화가 조세걸(曺世傑)에게 《곡운구곡도》를 그리게 하였다.
1689년 기사환국으로 수항이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그만두고 화음동(華蔭洞)에 들어가 정사를 짓기 시작하였다. 1694년 갑술옥사 뒤에 다시 기용되어 한성부좌윤(左尹) ·공조참판 등에 임명되나 모두 취임하지 않고 은둔하였다. 당시 성리학에 심취하여 북송의 성리학자들과 주자의 성리서를 탐독하였다. 춘천의 춘수영당(春睡影堂)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곡운집》이 있다.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德沼里)에 있다.
[출처] 김수증묘 [金壽增墓 ] | 네이버 백과사전
고산앙지(高山仰止)
도봉서원 바로 위의 계곡 건너로 바위에 새겨진 글씨는 1700년(숙종 26년) 7월에 곡운 김수증(谷雲 金壽增), 1624-1701)이 쓴 글씨, 고산앙지(高山仰止)란 詩經에 나오는 것으로 "높은 산처럼 우러러 사모한다"라는 뜻. 김수증이 정암 조광조의 학덕을 우러러 사모한다는 의미에서 새겼던 것으로 추측.
여주 신륵사라면 귀에 익은 이름이지만 처음이다. 신선바위님은 이 부근에서 군대생활을 하셨다면서 신륵사는 몇 번 다녀 오셨다지만 나로서는 이 땅이 처음인지라... 그래도 일주문이나마 보고 가야 자료라도 훑어볼 마음이 생길 것 같아서 찾았다. 봉미산신륵사라는데 산이라고 생각할만한 부분이 보이질 않는다.
부산의 옛 시청사가 있던 곳이 용두산에 이어지는 용미산이었는데 일제의 흉악한 간계가 있었는데 이 곳은 그런 곳이 아니라 세종대왕릉과 관계되는 곳이라 다른 의미가 있을 것이다.
원호장군 전승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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