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五臺山] 1,563.4m
20091022 목 무척
오대산[五臺山] 1,563.4m
위 치 : 강원 평창군 진부면, 홍천군 내면
산행코스-상원사-중대사-적멸보궁-오대산(비로봉1563.4)-상왕봉(1491)-북대사입구-주차장
http://local.paran.com/map/mapsrch_m.php?mt_id=4215631&X=3876&Y=4640&MapLevel=2
특징·볼거리
오대산은 주봉인 비로봉(1,563.4m), 호령봉(1,561m), 상왕봉(1,491m), 두로봉(1,421.9m), 동대산(1,433.5m)등이 원을 그리고 이어져 있다.
197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오대산은 진고개를 지나는 국도를 사이에 두고 비로봉, 호령봉, 상왕봉, 두로봉, 동대산의 다섯 봉우리와 그 사이의 많은 사찰들로 구성된 평창의 오대산지구(월정사지구), 그리고 노인봉 (1,338m)을 중심으로 하는 강릉의 소금강지구로 나뉜다.
기암괴석의 소금강 지역을 제외한 오대산은 전형적인 육산으로 사계절 언제나 오를 수 있는 산이기도 하다. 가을이면 단풍, 겨울이면 하얀 설화가 환상적이다.
장엄한 산세에 어울리게 오대산의 단풍은 중후한 세련미까지 느끼게 한다.
단풍 절정은 10월 중순경.일시에 불타오르는 듯한 것이 일품이며 색상이 뚜렷하고 진한 점이 특징이다.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주계곡(9km)과 비로봉 산행은 오대산 최고의 단풍코스다. 상원사를 지나 왼쪽 계곡길로 들어서면 걷는 이의 가슴까지 붉게 물들이는 단풍 천지다. 오대산의 겨울 설경은 주봉인 비로봉에서 상왕봉을 잇는 능선의 싸리나무와 고사목 군락에 핀 눈꽃이 절경이다.
오대산은 유서 깊은 명찰 월정사를 위시해 상원사, 적멸보궁, 등 불교문화 유적이 즐비하다.오대산국립공원의 제1관문격인 월정사에는 팔각구층석탑 (국보 제48호)이 있고 진입로 2㎞ 구간에 전개된 아름드리 전나무 숲길은 매우 특이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연꽃모양으로 둘러선 다섯 개의 봉우리가 모두 모나지 않고 평평한 대지를 이루고 있는데서 산이름이 유래. 월정사(月精寺), 적멸보궁(寂滅寶宮), 상원사(上院寺)가 있음. 골짜기마다 사찰, 암자 등 많은 불교유적이 산재해 있는 등 우리나라 최고의 불교 성지로 유명
국립공원 오대산은 중후한 산세와 단풍 또한 명산이다. 월정사에서 상원사에 이르는 주계곡(약 9km)의 단풍이 절정을 이루는 10월에 가장 많이 찾으며, 7-8월 상원사에 이르는 계곡의 시원한 계곡 산행으로도 인기 있다.
오대산 단풍은 설악산 천불동계곡의 단풍이 절정을 이룰 때 함께 절정을 이룬다.
상원사:[ 上院寺 ]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五臺山) 중대(中臺)에 있는 절.
원래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자장(慈藏)이 귀국한 뒤 태백산 정암사(淨巖寺), 영축산 통도사(通度寺),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그리고 이 절의 자리에 부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잠시 머물렀음. 그 뒤 신라 때 보천(寶川)과 효명(孝明) 두 왕자가 오대산에 들어와 각각 암자를 짓고 일만진신(一萬眞身)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하며 생활하다가 효명이 왕위에 추대되었는데, 20여 년이 지난 성덕왕 4년(705)에 이 곳에 진여원(眞如院)을 세웠음. 보천은 오대산을 신행결사 도량으로 삼을 것을 유언하였는데, 이에 따라 이 곳에 문수보살을 모시고 ≪화엄경(華嚴經)≫과 ≪육백반야경(六百般若經≫을 독송하며, 문수예참(文殊禮懺)을 행하게 하여 화엄사(華嚴社)라는 결사 도량을 두었음. 그 뒤 고려 우왕 2년(1376) 나옹 혜근(惠勤)의 제자 영령암(英靈庵)이 판서 최백청(崔伯淸) 내외의 시주로 중창하여 이듬해 완공하고는 기념 법회를 열었음. 조선 태종 원년(1401) 태종이 권근(權近) 등에게 이 절의 사자암(獅子庵)을 중수하도록 하여 법요식과 낙성식을 개최하였고, 그 뒤 세조는 이 절에서 문수동자를 만나 괴질을 치료하였으며, 고양이의 도움으로 자객의 암살을 피하였다는 설화가 전함. 세조 10년(1464)과 이듬해에 신미(信眉)와 학열(學悅)이 세조의 명령으로 중건하였고, 예종 원년(1469) 예종도 선왕 세조의 뜻을 이어 세조의 원찰(願刹)로 삼았음. 그 뒤 1947년 월정사 주지 종욱(鍾郁)이 중창하였음. 경내에는 국보로 지정된 목각문수동자상(木刻文殊童子像)과 신라 성덕왕 24년(725)에 주조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동종(銅鐘) 등의 유물이 현존함.
적멸보궁의 의미
부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
석가모니 부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보궁은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중인도 마가다국 가야성의 남쪽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다.
《화엄경(華嚴經)》에 따르면, 깨달음을 얻은 부처는 처음 7일 동안 시방세계(十方世界) 불보살들에게 화엄경을 설법하기 위한 해인삼매(海印三昧)의 선정에 들었다 한다. 이 때 부처 주위에 많은 보살들이 모여 부처의 덕을 칭송하였고, 부처는 법신인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과 한몸이 되었다. 따라서 적멸보궁은 본래 두두룩한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불사리를 봉안함으로써 부처가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법계에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던 곳이었다. 진신사리는 곧 부처와 동일체로, 부처 열반 후 불상이 조성될 때까지 가장 진지하고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었으며 불상이 만들어진 후에도 소홀하게 취급되지 않았다.
- 寂 [ 고요할 적 ]
- ㉠고요하다, 조용하다 ㉡쓸쓸하다, 적막하다(寂寞--) ㉢죽다 ㉣한가롭다 ㉤열반(涅槃)
- [부수]宀[총획]11
- 滅 [ 꺼질 멸,멸할 멸 ]
- ㉠(불이)꺼지다 ㉡끄다 ㉢멸하다(滅--) ㉣멸망하다(滅亡--) ㉤없어지다 ㉥다하다 ㉦빠지다 ㉧빠뜨리다 ㉨숨기다 ㉩죽다 ㉪잠기다 ㉫열반
- [부수]氵[총획]13[
- 寶 [ 보배 보 ]
- ㉠보배 ㉡보물 ㉢옥새, 도장 ㉣돈, 전폐(錢幣) ㉤높임말 ㉥도(道) ㉦보(寶: 특정 목적의 기금 마련를 위한 재단) ㉧진귀한 ㉨보배로 여기다 ㉩귀중하게 여기다
- [부수]宀[총획]20[
- 宮 [ 집 궁 ]
- ㉠집, 가옥(家屋) ㉡대궐(大闕), 궁전(宮殿) ㉢종묘(宗廟) ㉣사당(祠堂) ㉤절, 불사(佛寺) ㉥학교(學校) ㉦담, 장원(牆垣ㆍ墻垣) ㉧마음 ㉨임금의 아내나 첩 ㉩소리 이름(오음의 하나) ㉪궁형(宮刑: 생식기를 없애는 형벌), 오형(...
- [부수]宀[총획]10~
- [부수]宀[총획]10~
적멸보궁(寂滅寶宮)
적멸보궁이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법당을 말한다.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으므로 불단(수미단)은 있지만 불상이나 후불탱화를 모시지 않은 것이 특징이고, 다만 이 법당의 바깥이나 뒤쪽에는 사리탑을 봉안했거나 계단(戒壇)을 설치한 경우가 많다.
적멸보궁하면 자장율사의 5대보궁을 주로 열거하나, 그 외에 금강산 건봉사, 대둔산 안심사, 지리산 법계사, 선산 도리사 등 많은 적멸보궁이 있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의 자장율사가 646년 (신라 선덕여왕 15년)에 당나라에서 선량산의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문수보살을 친견하고, 그 화현 보살로부터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 1벌을 받아 귀국하여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당시에 계율종의 본산인 통도사를 창건하였으며, 그 사리를 삼분하여 각각 황룡사탑과 통도사 계단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자장율사의 5대 적멸보궁은 양산의 통도사, 오대산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이다.
이 중 태백산 정암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자장율사가 당나라에서 귀국할 때 친히 가져 온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였는데, 정암사의 적멸보궁은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왜적의 노략질을 피해 통도사 적멸보궁의 진신사리를 나누어 봉안한 곳이라고 한다.
1. 양산의 통도사
영축총림 통도사는 자장율사가 최초로 황룡사탑과 함께 부처님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셔져, 전국의 모든 출가자가 계를 받는 불사리계단 즉 금강계단이 통도사의 큰 특징 중의 하나이며, 이로 인해서 불보사찰의 칭호까지 얻게 된 것이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면 옛날 조정의 높은 벼슬을 하는 사람이 와서 계단을 예배하고 사리를 친견하기 위해 함을 열어 보았는데, 처음에는 긴 구렁이가 석함을 지키고 있었으며, 두 번째는 큰 두꺼비가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2. 강원도 평창 오대산 상원사 적멸보궁
고려 때 고승인 일연(一然)스님은 ‘국내의 명산 중에서도 가장 좋은 곳이요, 불법이 길이 번창할 곳이다’라고 오대산을 말하고 있는데, 비로봉 아래 적멸보궁이 있고 부처님의 정골(頂骨)사리를 모시고 있다.
풍수지리를 보는 사람들은 이곳을 일러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 하여 천하의 명당으로 꼽는데, 어쩌면 이 산 전체가 하나의 불탑이요, 부처님의 진신사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자장이 중국 오대산에서 간절한 기도로 만났던 문수보살의 화현신을 친견한 후 귀국 후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을 지내며 왕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으나 문수진신을 친견하는 꿈을 버릴 수 없어 오대산으로 들어와 문수의 진신을 친견하기 위해 원녕사(元寧寺), 갈래사(葛來寺) 등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기도를 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3. 강원도 인제 설악산 봉정암 적멸보궁
자장이 양산 통도사와 경주 황룡사 9층탑에 사리를 봉안했으나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보다 신령한 장소에 봉안하고 싶어 발길을 북으로 돌린 스님은 먼저 금강산을 찾아 기도를 했는데, 기도를 시작한지 이레 째 되는 날, 갑자기 하늘이 환하게 밝아지면서 오색찬란한 봉황새 한 마리가 날아왔다.
스님은 기도의 감응으로 알고 봉황새를 따라갔는데, 봉황새는 높은 봉우리 위를 선회하다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추어 유심히 살펴보니 봉황이 사라진 곳은 바로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는데, 이 불두암을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듯하여 자세히 살펴보니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형국이었다.
스님은 부처님의 형상을 한 바위 밑에 불뇌사리를 봉안하고 5층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었는데, 절 이름은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 하여 ‘봉정암(鳳頂庵)’이라 붙였다.
자장율사의 간절한 기도에 의해 절터를 잡은 봉정암은 이후 불자라면 살아생전에 한 번은 꼭 참배해야 하는 신앙의 성지로 정착되었다.
4. 강원도 영월 사자산 법흥사 적멸보궁
자장율사는 이때 당에서 가지고 돌아온 사리의 일부를 기도하는 곳마다 봉안했는데 사자산도 그 중의 하나로, 자장율사가 처음 창건할 때의 사찰명은 흥녕사(興寧寺)며 우리나라 불교사에 뚜렷한 이름을 남기게 되는 것은 신라 말 헌강왕 때 징효절중(澄曉折中)에 의해 이곳에 구산선문의 하나인 사자산문(獅子山門)이 들어서면서부터이다.
5. 강원도 정선 태백산 정암사 적멸보궁
정암사의 옛이름은 원래 갈래사(葛來寺)였다.
<갈래사사적기>에 따르면 신라시대 대국통(大國統)을 지낸 자장율사는 말년에 강릉에 있는 수다사(水多寺)란 절에 머물고 있었는데, 문수보살이 꿈에 나타나 ‘태백산 갈반지(葛蟠地)에서 만나자’고 한 후 사라졌다.
스님은 태백산으로 들어가 갈반지를 찾다가 큰 구렁이가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그곳’ 이라며 석남원(石南院)을 지었는데, 이곳이 바로 갈래사라는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의 본사이다. 《삼국유사》에 나타난 창건 유래에는, 자장(慈藏)이 당(唐)나라에서 돌아온 643년(신라 선덕여왕 12)에 오대산이 문수보살(文殊菩薩)이 머무는 성지라고 생각하여 지금의 절터에 초암(草庵)을 짓고 머물면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또한 민지(閔漬)가 쓴 《봉안사리 개건사암 제일조사 전기(奉安舍利開建寺庵第一祖師傳記)》에 인용한 《대산본기(臺山本記)》에는 이때 그가 머물던 곳이 바로 현재의 월정사 터이며, 자장은 훗날 다시 8척(尺)의 방(房)을 짓고 7일 동안 머물렀다고도 전하고 있어 이 절은 643년 자장이 건립했다고 볼 수 있다. 자장은 이곳에서 초가집을 짓고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자 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태백산 정암사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신의(信義) 선사가 암자를 건립하여 머물며 이곳에서 입적하였다. 이후 한동안은 머무는 승려가 없어 황폐해 졌다가 유연(有緣)이 머물면서 암자를 건립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13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이일(而一)이 중창하였고 1833년에 또다시 불이나 전소되었다. 1844년 영담(瀛潭), 정암(淨庵)이 사찰을 중건하였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4후퇴 때 사찰의 대부분이 전소되었으나 1964년 이후 탄허(呑虛), 만화(萬和), 현해(玄海) 등이 중건하였다.
문수보살이 머무는 성스러운 땅으로 신앙되고 있는 이 절은 《조선왕조실록》 등 귀중한 사서(史書)를 보관하던 오대산 사고(史庫)가 있었고, 1464년(세조 10)에 말사인 상원사(上院寺)를 중수한다는 말을 듣고 이를 돕고자 시주물(施主物)과 함께 보내 온 《오대산 상원사 중창권선문(五臺山上院寺重祠勸善文)》이 보관되어 있다.
주요 문화재로는 석가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한 8각 9층석탑과 상원사 중창권선문이 있다. 이 밖에 일명 약왕보살상(藥王菩薩像)이라고도 하는 보물 제139호인 석조 보살좌상(菩薩坐像)이 있다.
상원사 탐방지원센터(주차장 앞에 있음)에서 비로봉까지 3.3km
세조의 관대걸이
관대걸이 설명(12시 44분에 출발)
상우너사 입구의 이정표
안내도에서 현위치 위쪽에 나란히 가는 길을 하산길에 이용했다.
부분적으로 남은 단풍이지만..
20분 동안 약 1km를 올랐다. 아직은 거의 완만한 길인데...
중대암의 위치가 급경사지인지라 계단식으로 암지가 지어졌다.
28분 경과 , 비로봉까지 1.8km 남았다.
오르는 길에 본 적멸보궁 안내판, 공사가 한창이라 그냥....적멸보그ㅜㅇ까지는 약 40분 정도 걸렸다.
1시간 경과, 비로봉까지 700m
비로봉까지 400m, 한시간 10분 정도 지났는데 제법 피로도를 느끼는 길이다.
단풍은 모두 떨어지고 고목은 쓰러져 있다.
한시간 20분 정도 지나니 주변의 산 높이가 같이 보인다.
80분 정도 오르면서..200m 남았는데..서울에서 왔다는 70대 부부 曰 "젊은 사람이 그렇게 힘들어서야..." 숨을 몰아 쉴만큼 커디션이 별로 좋지 않았다고 인정은 하지만, 그렇게 젊어뵈다니 다행인가...자기도 힘들어 하면서..ㅎㅎ 물도 없이 빈몸으로 오르면서 힘들어 하시기에 매실즙을 희석한 물을 좀 드렸더니 힘이 나는 모양...
102분이 걸려 정상에 도착, 산행개념도에는 적멸보궁까지 50분, 적멸보궁에서 1시간 10분...모두 2시간인데..잘 올라간 건가..ㅋㅋ, 그렇다면 앞서간 무척인들은 도대체 제트엔진인가....이 산행개념도엔 기준을 좀 낮게 잡았다는얘긴 것 같다.
정상 정복의 즐거운 표정들
정면 중앙에 보이는 봉우리가 대관령 목장 부근, 풍력발전 시설들이 보인다.
정면에 멀리 주문진 시가지가 보인다.
오대의 주봉인 비로봉 표지석
'樂山'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2009.10.22.목) 산행 (0) | 2009.10.24 |
|---|---|
| [스크랩] 거문도 백도 이색 여행과 산행(2009.10.14-15.수,목) (0) | 2009.10.21 |
| 완도/상황봉 ..어지럼증으로 불참 (0) | 2009.09.26 |
| 불갑산(佛甲山) 516m/전남 영광군, 함평군 해보면 2009.9.24 목 (0) | 2009.09.25 |
| 양산의 천성산 산행 2009.9.19 토 (0) | 2009.09.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