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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천 수도산 단지봉 & 수도암의 보물들 20220829 월

benel_jt 2022. 8. 29. 23:09

김천 수도산 단지봉 & 수도암의 보물들 20220829 월 (알핀/J)

 

코스 : 수도리주차장 - 수도암 - 수도산 - 구곡령 - 단지봉헬기장 - 단지봉정상석 - 두리봉갈림길 - 아름다운숲길 - 임도 - 치유의 숲 관리소 - 수도리주차장 <15.1㎞/6:10 //수도리주차장 이후 구간 제외>

 

어제까지 비 예보가 없었는데 

아침에 보니 12시 무렵에 비가 있었다.

장마철의 기상 특성 때문에 우산을 챙겼다.

산에서 우산을 휴대했으나 사용하지는 않았다.

배낭만 비닐로 덮었다.

김천시 중산면의 최고 기온이 23도였던만큼 산속에서 덥지는 않았다.

그만큼 옷에 땀이 배지는 않을 정도였다.

오히려 단지봉 정상의 헬기장에서 10분 가까이 기다리는 동안은 추위를 느낄 정도였다.

 

단지봉을 빼고 청암사를 탐방하자는 제안도 있었으나

거리가 더 짧다면 둘만 가도 괜찮겠지만, 단지봉 코스도 12km 정도로 계산되었다.

그런데 청암사는 대중교통으로 탐방이 가능하기도 하거니와

'인현왕후길'의 코스가 가끔 나오니 그 때 이용해도 될 듯하다 싶어

단지봉을 가기로 했다.

내가 가진 등산지도에는단지봉에서 하산하는 코스가 보이지 않아 송골령으로 되돌아가야 하나 생각했지만 

선두의 대장과 연락하여 직진했더니 이정표가 있었다.

마지막 구간은 환자 발생으로 임도로 내려 왔다.

 

사실 수도산을 김천 쪽에서 오른 것은 처음이다.

몇 해 전 좌일곡령에서 다지봉을 다녀온 기억이 있었지만 수도산 방향애서 올라가는 코스는 마음으로만 탐하고 있었던 바.

오늘의 기회를 얻은 것이다.

 

수도암의 숨은 보물들과 이야기들을 챙기고 

비가 뿌렸지만 수도산, 단지봉까지 완주하였다.

마지막 하산길에 금년에는 아직 만나지 못한 8월의 '영아자'를 만났다.

상태가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아, 여기도 있구나'하고 담아왔다.

 

수도리 주차장 이후의 트랙은 차량 이동 구간임

이 지도는 '인현왕후의 길'을 포함하여 나타낸 것임

 

고도표

앱 종료 시간이 주차장에서 약 1㎞ 이동한 것임

 

 

수도산 단지봉 GPX 트랙 파일 첨부

Tr_김천_수도암_수도산_단지봉__2022-08-29_1132.gpx
1.03MB

 

수도암은 도선국사가 수도하던 곳이라고 한다.

 

수도암(修道庵)
신라 헌안왕 3년(859)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 513번지

수도암은 청암사와 함께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쌍계사이 소속 암자로 창건한 이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894년 동학 농민군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1900년에 포응화상(抱應和尙)이 건물을 중수하였다.
근래에 많이 퇴락하였으나 1969년 이래 법전화상(法傳和尙)이 건물을 중수하고 선원(禪院)을 개설하는 등 많은 불사를 이룩하였다.
현재 본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 약광전(藥光殿), 나한전(羅漢殿), 관음전(觀音殿), 선원(禪院) 등이 있다.
선원은 1975년에 창건되었는데 85평에 이르고 창건 직후 외국인 수도자도 많았다.

지정문화재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보물 제296호)
수도암 삼층석탑(보물 제297호)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보물 제307호)

 

인현왕후어제등록, 인현왕후길 안내판

 

인현왕후어제등록(仁顯王后御製謄䘵)

 


인현왕후어제등록은 조선 제19대 숙종의 계삐인 인현왕후(1667-1701)가 기사환국으로 폐서인이 되어 청암사에 3년간 은거 중에 갑술옥사로 다시 왕후로 복위하면서 청암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한 어제(御製)이다.
현재 원본은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 내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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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환국 : 장희빈 소생의 아들을 왕자로 정하는 문제로 정권이 서인에서 남인으로 바뀐 사건.
갑술옥사 : 인현왕후의 복위운동을 꾀하던 서인을 제거하려다 도리어 화를 입은 사건.
어제(御製) : 임금 또는 왕후가 친히 지은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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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현왕후께서 지으시다.

세상에는 일곱가지 중요한 것이 있으니
삼보와 부모님, 임금님, 선지식입니다.

삼보는 미혹한 세상을 벗어나서 깨달음의 경지에 들게 하고,
부모님은 생명을 기르시고,
임금님은 몸을 보존케 하며,
선지식은 미혹함에 빠진 중생을 이끌어 줍니다.

내가 본가에 돌아온 이래로 우리 고한존자께서
충정과 기력을 다하여 불도와 불심이 합일하니
밝고 큰 부처님의 공덕이 속세에 가득차 나를 바른 자리로 돌려
구렁에 빠지지 않게 하셨습니다.

오늘의 내가 있는 것은 스님의 공이 아니겠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의 불력이 아니었다면 어찌 능히 이와 같이 되었겠습니까.

오늘에야 내가 환위된 후에도 밤낮없이 전보다 더욱 간절하게 기도하시고
더불어 운스님과 적스님께서는 나를 위해 옷과 발우를 모두 팔아서
영험한 사찰을 중창하시어 축각을 새로 지으셨다고 들었습니다.
스님께서 나를 위해 마음 쓰시고 내가 스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은
다른 사람이 말할 바가 아닙니다.
따라서 스님들을 위하여 비녀와 잔, 신 3가지 신표를 대신 보내오니
늘 삼보의 예를 행할 수 있도록 축가의 현판을 함원전으로 고쳐서
길이 복을 비는 장소로 삼았으면 합니다.
불보살님들의 좋은 일을 함께 기뻐하고 노력하는 것이 깨달음의 원인으로
이른바 본성(진리)을 찾아 깨달음을 구하고자 함을
본궁(저의 잠저)에 부촉하여 후손에게 길이 전하고자 합니다.

을해년 5월 모일
성산 불령산 보냄
(불령산 : 지금의 수도산)

 

 

수도암

 

 

수도암 대적광전

청암사 수도암 석조 비로자나불

 

 

약광전

청암사 수도암 약광전 석불좌상

 

 

청암사 수도암 삼층석탑과 도선국사비

 

 

대적광전의 석조비로자나불 정면에서, 삼층석탑과 약광전 대적광전 일렬로

 

 

조망이 좋을 곳인데 날씨 관계로 운무만 보인다.

바로 건너편의 신선봉까지는 포기하고...수도산 정상만 밟기에도 여유롭지는 않은 걸음이다.

 

수도산 정상,

수도산은 불령산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웠다.

 

 

 

 

 

 

 

 

김천시가 세운 단지봉 정상석(1327m)

 

단지봉(丹芝峰)


경북 김천시 증산면 수도리와 경남 거창군 가북면 몽석리의 경계에 위치한 김천시의 최고봉.
백두대간의 대덕산 남쪽에서 가야산을 향해 동남쪽으로 이어진 수도지맥의 중앙에 자리잡은 단지봉은  

산 정상부가 엎어놓은 단지(항아리)를 닮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민봉이라 불리기도 한다.

 

거창군이 2008년에 세운 정상석, 1335m로 표기 되어, 1327m로 표시한 김천시와 8m 차이가 난다.

김천시의 단지봉 정상석 바로 앞에는 더 오래된 듯한 작은 빗돌 크기의 단지봉, 옆에 작은 글씨의 /민봉' 1326.7m로 기록.

세 개의 정상석이 제각각의 높이를 기록하고 있다.

두리봉 방향은 수도지맥으로  이어진다.

아름다운 숲길을 수도리로 내려가는 길로 임도까지는 급경사.

그래도 계단이 잘 만들어져 다듬은 길이다.

등산지도에 이 길이 표시되지 않아 단지봉에서 되돌아 갈 생각을 했었는데...

이 길을 잘 선택했다.

 

이 이정표는 지난 2017.6.15에 좌일곡령에서 단지봉으로 갈 때 보았던 것인데

실제로 이 길을 이용하기는 처음이다.

 

내려가는 길에 휴식할 수 있는 의자도 설치되어 있다.

끝 부분은 데크 계단이 있고 임도를 만난다.

수도녹색숲 모티길 안내도가 있다.

 

모티길..모퉁이

 

치유의 숲에서 출발하여 임도 500m마다 붙은 수도기점 거리표지가 아래 흰 바탕에 붙어 있다.

 

임도 옆에 핀 꽃들

 

6㎞ 정도의 임도를 걸어야 한다.

바로 내려가는 3.2㎞의 숲속길도 있다.

일행 중에 환자가 발생하여 약간 더 걸어도 편한 임도를 선택했다.

 

국립 김천 치유의 숲

수도산 자작나무 숲은 김천8경 중의 한 곳이다.

사과 과수원, 입구에 물봉선이 가장 잘 피었다. 코스모스도 가을 냄새가 물씬.

 

영아자

 

 

내려가면서 보이는 수도리 마을

 

 

 

돌을 쌓아 만든 탑같은 굴뚝

산길에서는 못보았던 잔대를 마을에서 만났다.

 

 

 

 

증산면사무소, 고찰 쌍계사의 흔적은 6.25 때 사라지고, 소나무 세그루만 그 터를 지키고 있다.

 

증산 전몰군경충혼비, 뒤는 증산초등학교

증산지서 전투에서 전사하신분들의 이름 앞에 잠시 고개 숙여 추모합니다.

 

헌시

충혼비의 좌우에 새겨진 내용..

2020년 6월 25일에 세웠다.

국민의 분노에 위로가 될 수 있었을까.

 

 

증산지서전투

 


1945.8.15 좌우익의 이념 갈등
1948.10.1 좌익계 인사들에 대한 검속으로 증산면 산악지대에 잠입 후 수도산 일대에서 집단생활을 하며 수시로 관공서와 민가를 습격, 약탈, 방화 자행
1948.10.19 밤 12시, 여순반란사건 시기에 공비 20여명이 증산지서 습격, 
지서장 최판산 등 경찰관 4명이 전사, 지서 건물 소실, 
증산명 청년들이 의용경찰대원으로 참전, 공비 12명 사살.
1950.6.25 전쟁 발발 이후 북괴군 패잔병이 합세하여 1000여명에 달하는 부대 조직 '불꽃사단'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며 수도산과 삼도봉 일대를 장악,

불꽃사단은 증산면 유성리에 주둔하던 국군 제877경비대와 수시로 교전.
1950.10.24 밤12시 증산지서 습격, 지서장 이기식 등 경찰관 6명 전사
1950.11.18 경찰관 2명 전사
1950.11.24 제877 경비대와 특경대원, 의용경찰대원, 등 200여명이 합동으로 새벽 4시를 기해 수도산의 적 근거지를 공격해 적 80명을 사살하고 13명을 생포하는 전과를 올렸으나 경찰관과 의용대원 다수가 희생.
1951.2 불꽃사단이 증산지서를 다시 습격하여 순경 김시태, 최말술, 이복석 전사, 적군 상사 김덕순이 투항 귀순해 의용경찰대원들에게 사격술 을 교육시키는 등 기여하다 전사.
1951.7.14 청암사에 적들이 집결해 있다는 신고를 접한 김천경찰서에서는 경찰지원병 80여명과 증산지서 경찰관, 의용경찰대원 등 120여명이 밤11시 일제공격 개시하여 10여명을 사살했으나 중과부적으로 후퇴.
이날 전투에서 당시 임시 증산면사무소로 사용중이던 쌍계사가 공비들의 방화로 소실됨.
이후에도 증산지서 경찰관과 의용경찰대원들의 살신성인이 이어짐.
<2020.6.25 김천 재향 경우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