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금정산 20220528 토 솔로
코스 : 산성마을 종점 - 산성고개 - 동문 - 제4관문 - 의상봉(644) - 원효봉(98-) - 북문 - 세심정/벼락맞았다는 구 정상석 - 장군샘 - 금샘 - 정상 고당봉(801.5) - 미륵봉(712) -제2금샘 - 장골봉(496) - 율리역 <12.06km/5:03>
구간별 이동 상황
시각/구간경과시간/전체경과시간/장소
8:35 0:00 0:00 산성종점.공해마을
8:52 0:17 0:17 산성고개
8:56 0:04 0:21 동문
9:30 0:34 0:55 나비바위
9:46 0:16 1:11 의상봉
10:05 0:19 1:30 원효봉
10:09 0:04 1:34 데크길
10:21 0:12 1:46 북문
10:23 0:02 1:48 세심정
10:47 0:24 2:12 장군샘
10:55 0:08 2:20 금샘
11:18 0:23 2:43 고당봉
11:51 0:33 3:16 미륵봉
12:17 0:26 3:42 제2금샘
12:27 0:10 3:52 석문
12:34 0:07 3:59 장골봉
13:34 1:00 4:59 포도원교회
13:37 0:03 5:02 율리버스정류장
교통편 : 대중교통(금정구1번 산성버스,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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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GPX 파일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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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동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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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성을 보호하기 위한 둘레길도 잘 조성되어 있는 금정산은 다양한 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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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바위를 나비바위라고 부르는 것 같다.
뒤쪽의 능선도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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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망루로 올라가면서 보니 우로부터 의상봉, 원효봉, 고당봉이 차례로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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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망루에서는 어느 방향을 보아도 조망이 트인다.
서쪽 아래로 1.4km를 내려가면 금정산성 장대가 있다.
금정산성은 사적(1971. 2. 9)으로 길이 18,845m, 성벽 높이 1.5∼3m, 총면적은 약8.2㎢의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성이다. 행정 구역상 금정구, 북구, 동래구, 경남 양산시와 성벽을 기점으로 경계(境界)하고 있으며 산 능선을 따라 성을 쌓았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부민(東萊府民)이 난(亂)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난겸 항전성(抗戰城)이다. 건립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위치 및 규모 등으로 보아 삼국시대에 처음 축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현존하는 산성은 경상감사 조태동의 건의에 의하여 숙종29년(1703)에 동래부사 박태항, 이야가 성을 쌓았고, 숙종33년(1707)에 동래부사 한배하가 중성을 새로 쌓았으며, 순조8년(1808) 동래부사 오한원이 무너지고 없어진 성을 고쳐 쌓았다. 금정산성을 지키는 일은 동래부사가 맡았으며, 유사시에는 동래, 양산, 기장 삼읍(三邑)의 군인과 승려들이 차출되어 방어토록 되어 있었고, 평상시에도 산성내에 있는 국청사, 해월사(현재는 존재하지 않음)의 승려 100여명과 범어사 승려 300여명으로 성을 지키도록 하였다. 금정산성은 그 후 뚜렷한 보수 없이 부분적 손질로 유지되어오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을 경계한 군사용 건물이라는 이유로 군관아건물(軍官衙建物)은 훼손되고 무기 또한 몰수당하였다.
산성의 보수정비는 사적으로 지정된 이후인 1972년 동문과 남문, 1973년 서문, 1986년 북문을 복원하였고, 1976년∼1979년 제1망루, 제2망루, 제3망루, 제4망루를 복원하였으며, 붕괴·훼손된 성곽보수 등 금정산성 정비계획에 의거 연차적 사업으로 지속적으로 보수 정비하고 있다. 금정산성은 금정산의 수려한 자연경관과 천년고찰인 범어사와 더불어 우리고장의 문화유적지이며 관광명소이자 선열들의 나라사랑 정신이 깃 든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시민 모두가 아끼고 가꾸어 나가야할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문화재 지정일 : 1971년 02월 09일
크기 : 길이 18,845m / 성벽높이 : 1.5m~3m / 성내의 총면적 약 8.213k㎡ 가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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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상봉과 의상봉에서 본 원효봉과 고당봉
원효봉으로 오르면서 되돌아본 의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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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초, 병꽃, 원효봉 가는 길
전해오는 이야기 중에 김유신소나무...
그러나 현재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원효봉 이야기
'으뜸의 새벽'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김유신 솔바위 이야기도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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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 삼각점, 남쪽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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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봉의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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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선에 생태조호를 위한 데크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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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성 북문
금정산성 북문
범어사에서 서편으로 1.6㎞,
고당봉에서 남쪽으로 흘러내린 주능선이 원효봉을 향해 다시 치켜오르는 자리에 있다.
금정산성의 성문 가운데 북문이 가장 투박하고 거칠다.
이 성문에는 아치형의 장식도 없고 규모도 다른 성문보다 작다.
육축 상부에는 정면1칸, 측면1칸으로 익공계우진각지붕 단층문루이며, 성문의 폭은 정면 250㎝이고 측면은 350㎝이다.
성문 광장 세심정 일대는 원효대사가 화엄경을 설파한 곳이라 '화엄벌'이라 하였다.
이곳은 금정산성 방어를 위한 범어사, 국청사, 해월사 등의 승려들을 훈련시켜 승병을 양성한 훈련장이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범어사 3월 만세 운동(1919) 거사를 위해 기미독립선언서와 독립운동 관계 서류를 가지고 경부선 물금역에 내려 금정산 고당봉을 넘어 청련암으로 온 통로가 북문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육축(陸築) : 성문 주변에 축조한 석축으로 일반 성돌보다 규격이 크고 정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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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심정(洗心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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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봉 낙뢰 표석비와 구 정상석, 세심정 옆에 있다.
2016.8.11에 천둥번개를 동반한 집중호우와 낙뢰로 파손되었다고 한다.
비석을 돌아보았지만 다시 세웠어야 할 만큼 손상된 것 같지는 않은데.....
뒷면은 약간 손만 보았으면 될 것 같고...
장군샘...온천천과 대천천의 발원지.
고당봉까지는 등산로 데크길로 100m 거리에 있다.
정상에 오르는 데크 계단이 시작되고 있는 부근까지 와서야 장군샘이 있고, 여기서 금샘길이 열렸다.
내가 처음 계획했던 금샘 길은 보다 아래에 있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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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샘 가는 길 표지는 계속 이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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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샘
금정산 석정(金井山石井)【현 서북쪽 산정(山頂)에 있다. 높이가 세 길 가량 되는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 깊이가 7촌 가량인데, 물이 항상 가득히 차 있어서, 비록 가물지라도, 마르지 아니하고 빛이 황금과 같다. 그 밑에 범어사(梵魚寺)가 있는데, 세상에 전하기를, “예전에 금빛 고기(金色魚)가 오색 구름을 타고, 범천(梵天)으로부터 내려와서, 그 가운데서 헤엄쳐 놀았으므로, 이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 《세종실록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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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으로 오르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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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정산 정상 고당봉 801.5m
넓지 않은 바위 봉우리가 등산객으로 가득하다.
오늘이 토요일이라 그런지 젊은이들이 매우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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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메라니안 한 마리도 정상석을 배경으로 포즈..
힘들었던지 혀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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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석 쟁탈전의 와중에 살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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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단을 거쳐 계단을 타고 고도를 낮추어 장골봉 방향으로 길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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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계단 중간 정도에서 우로 살짝 빠져 장골봉 능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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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에서 호포역으로 빠진다면 거리는 더 줄일 수 있었겠는데....
다음에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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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표 고당봉 0.8km에서 3분 정도 지나서 펑퍼짐하면서도 깨끗하게 정리된
수목이 없는 봉우리가 있어 올라서니 삼각점이 있다.
바로 아래가 미륵암이 있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 봉의 이름이 '미륵봉'이다.
주변에서는 고도가 높아 조망이 좋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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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봉에서 원경을 한 번 보고는 내려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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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금샘, 두 번째 올라가 보았다.
처음에는 물이 있었는데
기금은 물이 없었다.
금샘도 마찬가지였고.
스틱은 자 대신에 사용하였다.
장축은 1.5m 정도 되겠다.
고당봉에서 2.7km, 율리역에서 4.4km 거리에 위치.
제2금샘의 바위에서 앞을 보니 아마 의상봉인 듯한 봉우리가 보인다.
그렇다면 좌는 원효봉이다.
율리역으로는 4.5km, 학생교육원으로 0.5km.
다음에 다시 학생교육원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어 그 길을 따라 화명수목원으로 갈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차라리 그게 나을 것도 같았다.
하산길 마지막 구간에 율리 방향으로 가는 길에 길이 온통 돌들이 드러나 불편한 길이었던 것이다.
석문
조성협진아파트까지 4.5km
바위 생긴 모습이 캐스타네츠를 닮았다.
내려갈 길이 아직도 만만치 않은 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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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중인 구간이 있는데 우회로가 없다. 조심해서 통과...
내가 찾던 길이 이 길이었다.
고당봉에서 4km 거리다.
그런데 화명동.율리역이 2.3km라면 이 길이 좋겠다.
교통이 편하니까...
그런데 거리나 길 상태를 잘못 잡았다.
율리역 2km라면 멀지 않은데...
길이 여러 갈래다.
그런데 나는 곧장 율리 방향으로 잡았다.
거리로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고도가 아직 예상보다 크게 낮아지지 않는다.
고당봉까지는 7km, 인재개발원1.5km, 화명수목원 3km
차라리 인재개발원으로 갈까 하다가 다 왔을텐데...
그런데 현장 지형과 주변을 보니 아닌데....
어쨌던 하산길이 너무 길었다는 얘기도 되지만
사진찍기조차 거북한 너덜길이다.
아마 폭우레 흙들이 다 쓸려 내려간 흔적 같은 느낌도 들었다.
발이 삐끗하기도 하고
아파트 담벼락길을 만나기 전에는 이런 예쁜 자주괭이밥도 피어 있었지만,
이 구간은 미리 피하기를 시도해야겠다.
텃밭을 지나 이제야 산길이 끝났다.
결국은 포도원교회 앞으로 나오고, 율리 버스정류장으로 이어진다.
30도를 넘는 이상한 5월의 더위.
그러나 금정산은 시원한 구간이었다.
아침 일찍 나갔더니 3시가 되기 전에 귀가.
근교 산행의 유리한 점.
사실은 오늘은 쉬기로 했는데
아침에 갑자기 나가게 되었다.
처음에는 화명수목원에나 다녀올까하고는 산성버스를 탔는데
차를 타고는 생각이 달라진 것....
무리하지 않을 정도만 가면되겠지 하고...
2014.1.29에 다녀온 코스보다 약간 줄였지만 주행 속도는 더 느려진 듯.
그 때는 종점에서 파리봉을 거쳐 상계봉 대륙붕 코스를 돌아 17km를 넘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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