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사헌부가 공신의 녹훈·탄핵 받는 수령의 조사·김경후의 탄핵에 대해 아뢰다

benel_jt 2021. 6. 3. 16:58

이 시절에 이 글이 눈에 들어오는 이유를 모르는 이들이 있으랴...

 

광해군일기[중초본] 120권, 광해 9년 10월 7일 무술 1번째기사 1617년 명 만력(萬曆) 45년

사헌부가 공신의 녹훈·탄핵 받는 수령의 조사·김경후의 탄핵에 대해 아뢰다

사헌부가 아뢰기를,

"말세에 공신(功臣)이 많은 것도 매우 불행한 일인데, 그 사이에서 염치없고 막된 무리들은 요행수를 바라 갖은 방법으로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피를 마시며 함께 맹세한 지 이미 오래되었는데도 혹은 아버지와 할아버지를 위해서 혹 남을 사주하여 글을 올리는 자가 없는 날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원은 퇴각시키지 않을 뿐 아니라 그 글이 들어오는 대로 받아들이기에 여념이 없으니 너무나 터무니없는 처사입니다.

대체로 공신록에 기록되는 사람은 현저한 공로가 있어서 일반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 경우가 아니면, 감히 한두 사람이 한 말을 가지고 훈록(勳錄)에 참여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피를 마시면서 함께 맹세를 하고 옥책(玉冊)에 새겼는데 만일 추후로 기록되는 자가 있게 되면, 완결을 볼 날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요행수를 바라는 길을 열어주게 되고 실상을 잃게 되는 폐단이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만큼 많을 것이니, 어찌 통탄할 일이 아니겠습니까.
대체로 전날 공훈을 감정할 때 자기 집에 있으면서 나랏일을 근심하고 천정을 쳐다보며 한탄한 정도를 가지고 정훈(正勳)에 참여하여 마치 당연한 것처럼 여기면서 부끄러워하지 않았기 때문에 뒷날 이끗을 탐하는 자들이 서로 기대를 가지게 된 것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에게 실지로 공로가 있었다면 온 세상 사람이 어느 누가 그를 모르겠습니까.
실지로 공로가 있었는데 당초에 누락되었을 리는 만무합니다.
설사 녹훈에 참여할 만한데 참여하지 못한 자가 있다고 하더라도 추후하여 기록하기로 한다면, 국초(國初)에 공신에 참여하지 못한 자의 자손이 자기 조상을 위해서 글을 올려 하소연할 경우에 그것을 청리(聽理)해서 그들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겠습니까.
비록 공적이 있다고 하더라도 자기 스스로 말하는 자는 따져볼 위인이 못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더구나 조금도 기록할 만한 일이 없는데 교묘한 말을 꾸며대는 자야 말할 것이 있겠습니까.

요즘 이런 폐단을 금지할 수 없게 되었는데, 이것은 공도(公道)가 없어지고 국가의 기강이 해이해졌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전후에 걸쳐 공로를 말하기 위해 글을 올리는 것은 일체 엄금할 것으로 승전을 받들어 시행하도록 하소서.

요즘 수령들이 탐욕을 부리는 것으로 인하여 수시로 논핵하는 계사를 올리고 있으나 그럴 때마다 매번 서서히 결정하겠다는 전교만 받게 되는 관계로 그 사이에 날짜가 자연히 지연됩니다.
본도에서 조사하는 경우에는 걸핏하면 몇 달이 지나게 되므로 염치없는 무리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버젓이 행공(行公)하면서 관고(官庫)의 물건을 전부 실어낼 뿐만 아니라 민간에 교묘하게 명목을 만들어서 조세를 가혹하게 받아들여 결국 완전히 바닥이 난 다음에야 그만두니 그 정상이 참으로 통분스럽습니다.
앞으로는 탄핵을 받은 수령이 조사받는 기간에는 개인(開印)하지 못하게 하고 겸관(兼官)이 살펴서 처리하게 할 것으로 각도의 감사에게 공문을 보내도록 하소서.

가주서 김경후(金慶厚)는 사람됨이 용렬하며 붓을 잡고 글을 쓰는 것이 옹졸합니다.
대간이 계사를 올릴 때마다 즉시 써서 올리지 못해 날이 저물게 하고 마니, 체차시키고 대임자는 각별히 선발하도록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서서히 결정하겠다. 김경후의 일은 아뢴 대로 하라."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41책 41권 76장 A면【국편영인본】 32책 623면
【분류】
정론-간쟁(諫諍)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법제(法制) / 사법-탄핵(彈劾)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