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곡성 봉두산 20201201 화

benel_jt 2020. 12. 1. 21:26

곡성 봉두산 20201201 화 (A)

 

코스 : 원달리-송소리봉(473)-외사리재-봉두산(754)-북봉(703)-태안사-경찰충혼탑-주차장(조태일시문학관)

 

 

08:30 덕천 탑승 출발
11:07 원달리 축복의 집 입구 하차
11:18 네이버지도의 들머리 위치에 있는 지그재그형 데크 위치에서 집입하려고 하니 사유지라고 아래쪽에서 올라가라고 하여 이동하였는데 능선을 보고 개척
12:00 송소리봉(473m) 여기까지 약간 급경사
이후는 길이 좋은 편이다.
산행시간이 조금만 더 여유가 있었다면 원달재에서 시작했다면....
원달재에서 시작하고 북봉을 가지 않는 게 더 좋았을 것을....
12:24 폐헬기장(바닥에 표시용 벽돌은 남아 있으나 온통 키 큰 솔밭이 되어 있다. 나무의 굵기가 가는 것으로 보아 오래된 것 같지는 않음, 10년 내외 정도 될까.
12:28 외사리재 [태안사, 헬기장, 정상 갈림길]
★ 119 현위치 알림목 1-2, 외사리재표지판, 해발422m
12:35 ★ 119 현위치 알림목 1-3, 길가큰바위, 해발447m
12:41 ★ 119 현위치 알림목 1-4, 큰소나무밑, 해발487m
12:44 [봉두산정상1.38, 외사리재0.82, 용리2.9]
12:52 ★ 119 현위치 알림목 1-5, 오르막끝바위, 해발506m
13:01 '길없음, 들어오지마세요. 태안사' 철망안쪽에 길 흔적이 보임. 마치 길이 있음을 알아라는 홍보 같은 느낌.
13:03 ★ 119 현위치 알림목 1-6, 큰바위, 해발560m
13:09 [봉두산정상0.77, 외사리재1.05]
13:10 ★ 119 현위치 알림목 1-7, 묘지, 해발620m
13:16 [봉두산정상0.4, 화지마을5.6, 능곡(괴목)4.8]
13:29 봉두산 정상 (753m)
★ 119 현위치 알림목 1-9, 봉두산정상, 해발753m, 삼각점
13:46 봉두산 북봉 (703m)
14:14 안부에서 좌로 내려서면 야자매트길, 아래 임도 기준하여 3층으로 되어 있어
14:27 야자매트길이 앞의 시멘트 임도와 수직(T자형)으로 만남
[고치마을4.2, 상한마을2.1, 숲길]
고치리로 이어지는 매봉능선으로 약 6km 정도 가면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압록유원지로 이어지는데, 봉두산에서 이 코스로 이어 가는 것도 좋을 듯 한데, 북봉에서 급경사로 떨어지는 것이 부담될 듯하다.
14:31 [상한마을2.3, 고치마을4.0, 봉두산3.8]
※ 국암캠프장 안내판(←)
14:36 [고치임도0.3, 봉두산3.5]
14:40 [고치임도0.42, 봉두산3.38]
14:52 절재 [봉두산1.09, 태안사1.51, 상한1.00]
14:54 119 현위치 알림목 1-12, 절재표지판, 해발535m
15:08 119 현위치 알림목 1-14, 해발385m
15:09 [봉두산정상1.99, 태안사0.59]
15:14 사방댐
15:15 [태안사0.2, 봉두산정상2.4]
15:21 태안사 대웅전, 봉황문(일주문/동리산태안사), 연지와 삼층석탑, 능파각, 충혼탑, 봉서암, 적인선사탑, 광자대사탑비와 탑...
15:33 충혼탑
순직경찰관/
경감 남재평, 채현석, 이순철?
경위 고재련, 최창호, 전병주, 문판남, 임상영, 박성화, 최석주,
경사 박영기, 임태춘, 문상열, 김정현, 서종문, 송태섭, 이봉춘, 차은실, 정종현, 김채환, 김남진, 정중진, 김영돈, 황성묵, 서남현, 최근수, 서정환, 이정황, 강수원, 진동연, 김대원, 문계주, 정건모, 성영기, 강대우, 김광수, 최종남, 한태민, 권오영, 서영선, 김광식, 조천석, 박근기, 이형규, 이판길
6.25 전란 중에 태안사 지역에서 공산군과 싸우다 전사한 분들이다.
이 분들이 지킨 나라를 길이 보전하기를 기원하며...
<비석에 새긴 한자를 잘못 읽은 곳이 있을 수 있음>
이 이름을 밝히면서 이 분들의 넋을 기리려는 뜻이 있을 따름이다.
15:36 능파각
숲길과 도로를 번갈아 가면서 하산, 데크가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15:54 동리산문
16:00 조태일시문학기념관은 시간 관계로 외관만 보고 다음 기회를...
산행 종료 <13.7km/4:53>
16:50-17:20 석곡으로 가서 저녁 식사(흑돼지석쇠구이,돌솥밥 13,000원)
20:10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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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팀은 조태일시문학관에서 시작하여 태안사를 거쳐 외사리재로 올라간다.
문학관에서 태안사까지 1.5km 정도 되는 길을 왕복한다는 게 답답하다.
원달재에서 시작할까 생각도 했는데, 원달마을의 원달교회 건너편으로 등산로가 네이버지도에 있는 것을 보니 시간이 맞을 수도 있겠다 싶어 도전했다.
처음 생각은 A팀이 가는 북봉을 포기하고 B팀이 가는 봉두암 정상에서 절재 방향으로 하산하면 맞겠다고 했는데, 대장의 팀이 조금 전에 내려갔다기에 북봉으로 갔다.
북봉으로 간 건 보성강과 섬진강의 합류점인 압록유원지를 잇는 길을 탐색하려고 한 것이다.
절재방향으로 되돌아서 올라가는 임도와 산길을 거쳐야 하는데 포장도로는 그런대로 괜찮다.
돌들이 바닥에 깔린 길은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나중에 후회를 했다.
원달재에서 올랐다 해도 북봉을 가지 않고 절재로 바로 갔다면 이 팀과 만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날씨가 좋아 조망이 괜찮아 주변의 산들을 더듬어 볼 수 있었다.
좌로 희야산, 상산(삼산?), 비래봉은 3년 전에 다녀온 곳이라 반가운 곳이다.
첫봉인 송소리봉이 순천과 곡성의 경계인 것은 미처 생각지 못했었는데 함께한 K님이 일깨워 주었다.
하산 후 석곡으로 가는 길에 보성강을 대황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지 그 이름을 사용한 곳이 두 곳 있었다.
첫째는 다리, 둘째는 수변공원이다.
이 보성강을 옛날에는 수운의 통로였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그게 가능했을까 싶기도 한다.
정유재란 때 배를 타고 피난했던 선조들의 이야기에서 들었던 것이다.
봉두산의 등산로에는 거의 끝까지 산죽이 우거져 있었다.
이태의 남부군 이야기 중에 산죽밭에서 은폐했던 기억들이 있다.
남부군의 이야기에서 '간부보호'가 XX수호로 이어진 것이라면
태안사의 충혼탑을 김XX을 존경하는 그들은 어떤 눈으로 볼까.

 

 

 

 

 

 

 

 

봉두산 GPX트랙 파일 첨부 :

봉두산__20201201_1108.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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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곡성송소리봉봉두산북봉20201201.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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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두산
높이 : 754m
위치 : 전남 곡성군 죽곡면


지형도에는 봉두산이라 표기돼 있지만, 이 산 안에 깃든 태안사 일주문 현액에는 '동리산(棟裏山) 태안사'라 되어 있다. 산 이름이 언제 바뀌었는지는 몰라도 두 이름에 연관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봉황이 서식하는 나무가 오동나무이고 태안사가 자리잡은 곳을 둘러싼 주변 산세가 오동나무 줄기 속처럼 아늑해서 동리산이라 불렀으며 둘러싼 주변 산세의 최고점을 봉황의 머리 즉 봉두산이라 불렀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봉두산 주변에는 곡성 특유의 내륙산지를 이루고 있어 정상에 올라서면 순천쪽 황학리의 작은 들판을 제외하고 주변 조망이 온통 산뿐이다. 남서쪽으로 삼산과 희아산 능선 너머로 모후산이 오똑하고 북서쪽으로는 통명산 넘어 무등산까지 시야가 트인다.

동쪽으로는 둥주리봉과 자라봉, 그리고 지리산이 장막을 치고 있다.
이러한 내륙산지 조망이 산행의 맛으로는 제일이지만 봉두산은 태안사 여행에 초점을 맞추어도 좋을 것이다.

봉두산 산행은 태안사를 기점으로 산을 한 바퀴 도는 것이 가장 무난하다. 태안사 기점 일주산행 코스는 계곡은 그다지 가파르지 않고 안부에 올라서는데 약 30분 걸린다. 안부에 올라서면 오른쪽(동쪽)으로 방향을 틀어 줄곧 서릉을 따라 오른다. 능선은 다소 가파른 구간이 길게 나타나지만 1시간 이상 소요되지 않는다. 산은 온통 잡목 숲길이다.

태안사

태안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시절인 772년 법명이 알려지지 않은 신승(神僧) 셋이 절터를 잡고 대안사라 하면서 개산한 것으로 전한다.
하지만 태안사가 한국 불가를 크게 선양한 계기는 혜철선사가 847년(문성왕 9년) 이 절에 주석하면서 동리산문을 연 때부터였고 혜철선사는 이 절에 주석하면서 절 이름도 태안사로 바꾸었다.

선원이 들어선 오른쪽 계곡 안에는 신숭겸 장군을 제사하는 제단이 있다.
그는 왕건을 도와 개국에 공을 세우고 후에 팔공산에서 후백제와 대접전을 벌일 때 궁지에 몰리자 왕건 대신 자신이 왕의 의복을 입고 싸우다 전사한 신숭겸 장군을 제사하는 제단이다.

불교를 숭상한 고려 왕조가 그의 제사를 올리는 태안사를 크게 키우지 않을 수 없었던 이유를 알 만하다.
왕건을 도와 개국에 공을 세운 그의 고향이 바로 봉두산 앞산인 비래봉 아래 구룡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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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일시문학기념관

061-362-5868

주소 : 전남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38 (지번 : 원달리 7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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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일[趙泰一]
조태일은 삶에 대한 순결성이 철저하게 파괴된 현실 앞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기도에 맞서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를 통해 민중적 연대감을 획득하고자 한다.

출생 - 사망 : 1941. 9. 30. ~ 1999년
출생지 : 국내 전라남도 곡성
호 : 죽형(竹兄)
데뷔 : 1964.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으로 등단

호는 죽형(竹兄). 1941년 9월 30일 전남 곡성 태생. 1966년 경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69년부터 1970년까지 시 전문잡지 『시인』 주간을 지냈으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회원, 민족문학작가회의 상임이사 등을 역임했다. 제10회 만해문학상, 편운문학상, 전라남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광주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 지병으로 사망하였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시 「아침 선박」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이듬해 시집 『아침 선박』을 간행하였고, 계속하여 『식칼론』(1970), 『국토』(1975), 『가거도』(1983), 『연가』(1985), 『자유가 시인더러』(1987), 『산 속에서 꽃 속에서』(1991), 『풀잎은 꺾이지 않는다』(1995), 『혼자 타오르고 있었네』(1999) 등을 발간했다.
한편 평론집 『살아있는 시와 고여있는 시』(1981), 『김현승 시 정신 연구』(1998) 등을 간행하기도 했다. 그의 초기 시는 원시적인 삶에 기반을 둔 상상력에 의하여 삶의 순수성을 보여주는 세계상을 그리는 데 집중되어 있다. 그는 삶에 대한 순결성이 철저하게 파괴된 현실 앞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기도에 당당히 맞서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시를 통해 민중적 연대감을 획득하고자 한다. 1970년대 참여시의 한 성과로 주목되었던 연작시 「식칼론」은 삶의 순결성을 유린하는 제도적인 폭력에 맞서서 시인의 자세와 역사의식을 잘 드러내는 작품이다.
여기서 ‘식칼’은 단순한 싸움의 도구로서만이 아니라 끊임없이 자아를 일깨우며 자극하는 무서운 자기 확인의 도구가 된다. 그리고 모두가 서로를 위해 공유할 수 있는 삶의 공통 수단으로서 그 의미가 확대된다. 시집 『국토』(1975)는 분단 현실의 폭력성과 허구성을 고발하는 비판적인 목소리가 충만해 있는데, 이는 분단을 극복하고 남과 북을 아우르는 건강한 민중성에 기반을 둔 새로운 세계에 대한 열망을 보여주고 있다. 시집 『가거도』(1983)에서는 민중적 삶에 대한 새로운 깨달음을 보여주고, 삶의 내적 충일을 통한 역동성을 발견하고자 주력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조태일 [趙泰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2004. 2. 25., 권영민)

 

원달리 들머리 하차 지점
임도를 따라 올라 간다
네이버지도의 트랙은 이 점이 들머리인데, 사유지라고 한다. 그래서 도로를 따라 100여 m를 내려갔다.
잡목이 우거진 길을 헤치고 오른다. 여기서 시간이 제법 지체 되었다.
송소리봉은 별다른 표지는 보이지 않는데...
서쪽으로 가까이 상산, 비래봉이 보인다. 그 좌측으로 희야산도 볼 수 있다.
송소리봉 이후의 능선은 조망이 트이고 고도차가 거의 없어 속도를 낼 수 있는 길이었다.
바닥에 깔린 사각형의 돌들이 헬기장이었음을 알게해 주는데 키가 10m가 넘을 팔뚝 굵기의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랐다.
외사리재
이 안내판에 의하면 우리가 온 길은 폐쇄?

 

외사리재의 해발고도 422m
큰 바위는 보이지 않음, 산죽이 막고 있는 건지.. 447m
여기도 큰 소나무는 보이지 않음, 487m
월용리 갈림
오르막바위 끝 506m
태안사의 철조망과 길없음 안내, 철망 안엔느 뚜렷한 길이 보이는데...
큰 바위...560m
묘지, 620m
넓적바위 715m
정상 아래의 바위
봉두산 정상 753m
정상753m

 

봉두산삼각점
지리산 천왕봉이 중앙 멀리 보이고 그 좌측으로 주능선의 모습
봉두산 정상에서의 조망
경사가 급한 하산길, 절재로 향하는 길은 좌측으로
고릴라 같은 바위
길에서 약간 떨어져 버려진 듯한 안내판, 절재
절재 535m
태안사 대웅전
연지와 삼층석탑
충혼탑

 

 

능파각

태안사 능파각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전라남도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문화재 안내문

이 건물은 신라 문성왕 12년(850) 혜철선사가 창건하고 고려 태조 24년(941) 광자대사가 중수하였으며, 그 뒤 파손되었던 것을 조선 영조 43년(1767)에 복원하였다.

계곡의 물과 주위 경관이 아름다워 건물을 ‘능파’라 이름했다. 교량과 금강문과 누각을 겸한 것이 이 건물의 특이한 양식이다. 세속의 번뇌를 이 다리를 건너면서 던져버리고 불계로 입문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