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도

전주 승봉산(치명자산)

benel_jt 2020. 1. 30. 21:16

고덕산 갈 때

치명자산


치명자산_색장치명자산순교지남고산성망경대.gpx







치명자산/승봉산


상죽음-하죽음-색장동버스정류소-색장교-등산로입구(완산구색장동산4)-철탑-기린봉(303.7m)-벤치-안내판-동고산성-중바위(승봉산)-순교자묘지-벤치-천주교순교자묘/안내판-승암사-승암교-풍남정버스정류소(남고산들머리)-대원사-석탑-쉼터-남고산-남고사-만경대-남고산성-천경대-주차장 <도상거리약8.7km/4:30예정>


덕천동-고덕산들머리 왜목재 가는 길

262.4km/2:52<3:15> 07:35+3:15=10:50 왜목재 도착 시간 10:50-11:00

왜목재-색장교 13.6km/0:14' 왜목재에서 14' 소요 11:15-11:20 도착

하산완료 예정시간 약 16:00


남고산 산행팀의 산행 시간에 맞추어 산행 거리를 조정



동고산성[東固山城]
전라북도 기념물 제44호/1981년 4월 1일 지정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 산9-1, 전라북도 전주시 대성동 산25
규모 : 둘레 1,574m , 높이 약 4m, 167,5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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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교동과 대성동 일대에 있는 남북국시대의 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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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동쪽에 있는 승암산에 위치하고 있어 승암산성이라고도 부른다. 동고산성이란 이름은 고남산에 위치한 남고산성에 대비하여 붙여졌다. 평면형태는 자연지형을 활용하여 축조하여 부정형을 이룬다. 성벽 서쪽, 북쪽, 남쪽 성벽 모퉁이는 뻗어나간 능선을 따라 성벽이 돌출되어 있어 특이하다. 능선이 이어져 있어 적의 접근이 쉬운 곳인데 방어력을 강화하기 위해 성벽을 돌출시킨 것으로 보인다. 문터는 동문지, 북문지, 서문지 등 3개소가 있다. 이중 서문지가 동고산성의 정문(주출입구)로 추정되고 있다.

조선 숙종대 기록인 「전주성황사중창기(全州城隍祠重創記)」에는 동고산성 성황사터를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의 궁성터라 기록하였다. 1980년 전주성(全州城)이란 글자가 새겨진 연화문 막새기와가 여기서 발견되었다. 이후 이것을 근거로 견훤왕궁터로 비정하는 견해가 제기되었다. 견훤왕궁터와 관련성을 규명하기 위해 1990년부터 발굴이 시작되어 2014년까지 7차에 걸쳐서 건물지, 성벽, 문지 등이 차례로 조사되었다.

동고산성이 처음 축조된 것은 통일신라시대로 추정된다. 신문왕대 완산주 설치 후 치소성으로 축조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2014년 서문터와 서벽 일부 발굴조사에서 후백제시대에 성벽이 대대적으로 수축되었던 근거가 발견되었다. 이 조사결과를 바탕으로 통일신라에서 처음 축조하였고 이후 견훤이 후백제를 세운 후 대대적으로 수축하여 왕도의 방어성으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하게 되었다. 한편, 서문지는 후백제시대에 활용되다가 고려 초기에 폐기되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후백제의 유사시 왕성에서 고려시대에는 일반적인 산성으로 위상과 활용에 변화가 있었던 사정을 보여준다.

추정 견훤궁지는 산성의 중앙부에서 동쪽으로 형성된 계단상의 대지 앞부분에 위치하고 있다. 전면 22칸 측면 3칸 총 66칸 규모이며 단일건물로는 유래가 없을 정도로 크다. 여기에서는 ‘전주성’명 막새기와 ‘관(官)’자명, ‘천(天)’자명 등 글자가 새겨진 기와 등이 출토되었다. 일반적으로 이런 글자가 새겨진 기와는 관아나 군사 시설에 사용되었다. 이것들과 같이 출토된 평기와들도 신라말에서 고려 초에 제작된 것들이었다. 이 건물터 외에도 다른 큰 건물터들이 성벽의 남쪽을 따라 줄지어 발견되었다. 그 중 제 7건물터는 정면 16칸, 측면 4칸 등 대형건물터였다. 여기에서도 역시 ‘관’자가 새겨진 기와도 다수 출토되었다.

성벽조사에서는 최소 2차에 걸쳐서 성벽이 축조되었던 것이 확인되었다. 1차 성벽은 판석형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조사자는 이것이 신라 신문왕대 완산주 설치시기에 축조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 2차성벽은 방형과 장방형의 형태로 잘 다듬은 화강암계 석재를 사용하여 축조하였다. 축조시기는 9세기 중반 이후로 후백제와 관련될 가능성이 제시되었다.

문지는 서문지가 조사되었다. 서문지의 폭은 약 630㎝로 추정되는데 폐쇠된 상태로 출토되어 정확한 구조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문기둥 밑에 박았던 화금(신쇠)이 출토되어서 문지로 사용되었던 근거가 되고 있다.

동고산성은 규모도 다른 산성에 비하여 크고 건물지의 수도 많으며 대형건물지가 많다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산성의 규모가 확대되고 산성내 대형기와건물지가 등장하는 것은 일반적으로 신라가 통일한 이후이다.


동고산성은 신라시대 지방통치의 거점으로 축조되었다가 후백제시대 궁성이나 도성의 방어성으로 수축되어 활용되었던 성으로 추정된다. 아직 발굴조사가 제한적으로 진행되어 정확한 성격을 밝히기 위해서는 조사와 연구가 더 필요하다. 하지만 산성의 규모가 크고 내부에서 다수 건물지가 발견되었다.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이르는 시기에 변화상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 가치가 큰 유적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고산성 [東固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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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주교순교자묘[天主敎殉敎者墓]

전라북도 시도기념물 제68호/1984년 09월 20일 지정
소재지 :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산11

이 유적은 치명자산, 중바위산 혹은 루갈다산이라고도 불려지는데 천주교 전주교구가 성지공원으로 성역화했다.

전라북도기념물 제68호. 치명자산(致命者山)이라고 부르며, ‘중 바위산’ 혹은 동정(童貞)순교자 이순이(李順伊, 루갈다)의 신심을 기려 ‘루갈다 산’이라고도 불려진다.

1987년부터 1994년까지 약 8년간에 걸쳐 천주교 전주교구가 성지공원으로 성역화 했다. 치명자산은 크게 네 구역으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호남의 사도’라고 불리는 유항검(柳恒儉, 아우구스티노), 동정부부 유중철(柳重哲, 요한)과 이순이 루갈다 부부 등 가족 7인 합장묘다.

이 묘지는 흔히 ‘일곱 묘지’ ‘이 루갈다 묘지’로 불리워져 왔으며 1914년 3월 보두네 신부가 본당 신자들과 함께 전라북도 김제군 용지면 바우백이에 있던 묘소를 파묘, 그 해 4월19일 이장했다. 두 번째는 1994년 5월 9일 축복식을 가졌던 치명자산 성당이다.

이 성당은 1987년 전주교구 설정 50주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시작되어 6년 2개월만에 합장묘 바로 밑에 완성된 동굴식 성당이며, 성당 내부에는 이순이 루갈다의 옥중서한 문구가 기록되어 있다.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산 아래에 있는 전주교구 성직자 묘역과 순교자들의 고통에 동참하고 그 삶과 죽음의 참뜻을 묵상하도록 가파른 산길을 따라 조성해 놓은 십자가의 길 14처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오르는 치명자산 십자가의 길 14처는 유항검 일가가 묻혀 있는 묘지를 가는 도중에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천주교순교자묘 [天主敎殉敎者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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