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산 영인산 산행 20190620 목 뉴한사랑
코스 : 영인초교앞-김옥균유허지-연화봉(335m/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깃대봉(354m/359.9)-영인산신선봉(356m/363.5/삼각점)-영인산성-사방댐-닫자봉(271m/273.4)-상투봉(298m/300.4)-흔들바위-제2주차장
07:20 덕천동 부민병원 앞 승차
11:18 영인초등학교앞 하차
11:19 여민루
11:25 김옥균유허지
11:36 아산향교
11:43 아산 오층석탑
12:14 산림박물관 입구 약수터
12:24 연화봉(327m,조형물이 많음)
12:35 갓대봉(351m)
12:43 영인산정상(364m)
12:55 956계단 상단
12:58 영인산성(아래까지 계단 옆으로 이어짐)
13:12 영인산성 안내판, 계곡방향 우측길 방향으로
13:20 [닫자봉0.7, 상투봉1.8, 영인산성0.6, 산림박물관1.1]
13:42 닫자봉(275m)
14:00 능선 돌지 않고 아래로, 목재다리, 작은 저수지
14:18 급한 오르막 계단
14:21 계단 끝,상투봉(299m) [흔들바위0.1, 정상2.7, 닫자봉1.1, 주차장1.2, 휴양림1.4]
14:25 흔들바위
14:53 영인산자연휴양림 주차장/8km종료
17:30 전체 산행종료
천안의 식당에서 식사하고
21:30 덕천동 하차
■ 영인지맥(靈仁支脈)은 금북정맥 상에 있는 성거산(579m)과 걸마고개 사이의 무명봉에서 서북쪽으로 분기하여 용와산(238m)과 연암산(293m), 금산(286m), 영인산(363.6m), 입암산207m) 등을 일구고 아산만에서 그 맥을 다한다는 약 45km의 산줄기다.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누정.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충남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종목 시도유형문화재
지정번호 충남유형문화재 제17호
지정일 1973년 12월 24일
소재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628
1973년 12월 24일 충청남도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되었다. 1415년(태종 15)에 아산현감 최안정(崔安正)이 빈객이나 사신을 접대하기 위해 세웠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누각으로 조선시대 아산현의 문루(門樓)로 지어졌다.
2층 목조건물로 동향한 낮은 기단 위에 사각형의 초석을 갖춘 주형(柱形) 초석을 배열하여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누마루를 설치하였으며, 하층은 정면 3칸에 각각 문을 달아 통로로 사용하였다. 좌우 협칸의 문미(門楣)에는 홍살을 설치하였고 측면의 2칸은 판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2익공인데 외출목이 없으며 처마 밑의 기둥 사이에는 간략화된 화반형의 초각반을 중앙문에 3개, 다른 문에는 2개씩 배치하였다. 지붕 가구(架構)는 앞 뒤 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었는데 대들보 위에 소로를 두고 그 위에는 뜬 창방, 다시 이 뜬 창방 위에 주두를 놓아 종량(宗樑)을 받치도록 하였다.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합각(合閣) 부분은 우물천장을 가설하였다.
아산현의 관아는 원래 저습지에 있어서 사신을 접대하는데 불편하여 객사 동쪽에 누각을 지었는데 이것이 태종 때의 건물인지 그뒤에 다시 지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누각의 명칭은 정이오(鄭以吾)가 지은 누기(樓記)의 ‘취위민지의(取爲民之意 : 백성을 위하는 뜻을 취하여)’를 따서 조선 숙종 때 지중추원부사인 임홍망(任弘望)이 여민루라 하였다고 전해진다.
출처 : http://www.doopedia.co.kr
옛 관아터였을 영인초등학교, 다음 사진은 김옥균 유허지, 묘소가 있다.
암살자 홍종우의 묘지는 공개가 되지 않아 찾지 못했다. 홍종우는 김옥균 암살 후 승승장구...
이런 역사는 반복하는 건가..
아산 김옥균 선생 유허(金玉均 先生 遺墟)는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김옥균의 묘이다. 1976년 12월 6일 충청남도의 기념물 제1호로 지정되었다.
김옥균선생유허(金玉均先生遺墟)
기념물 제13-1호 (1976년 12월 6일 지정)
수량565
대한제국시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아산리 143
좌표북위 36° 51′ 9″동경 126° 57′ 18″
한말의 풍운아 김옥균의 묘이다.
김옥균의 호는 고균, 시호는 충달공으로 조선 조 철종 2년(1851) 1월 23일 충남 공주군 정안면 광정리에서 출생하였다.
고종 9년(1872) 문과에 장원급제하여 벼슬은 호조참판에 이르렀으며 1884년 조국 개화를 위해 갑신 개혁을 일으켰으나 실패하였다.
1894년 한. 청. 일 3국의 제휴 위한 삼화주의를 제창 동양의 백년대계를 위하여 청국의 실력자 리홍장과 의논하고자 텐진을 방문하던중 동년 3월 28일 상해 여관에서 수구파의 자객 홍종우에게 암살 당하였으며 시체는 본국으로 돌아와 양화진에서 능지처참되었다.
갑오경장으로 개화당내각이 조직된 후 총리 김홍집등의 상소로 반역죄가 용서 되고, 1910년 규장각 대제학 추증(追贈), 익호(謚號)는 충달(忠達)이다.
묘는 일본 동경 청산외인 묘지(靑山外人 墓地)에서 1914년 9월 11일 의발(衣髮)을 이장, 정경부인 유씨와 합장한 것이다.
김옥균의 머리는 일본에...여기는 옷과 머맄락만 묻혀 있다.
그나마 아들이 아산군수를 했으니
아산 향교의 홍살물...그런데 이곳이 본래 위치가 아니고 이토정이 옮긴 위치라고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이후에는 향교의 교육적 기능이 점차 사라졌다. 지금도 중국의 4성(聖) 5현(賢)과 4철(哲),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에 있는 조선시대 향교.
아산향교 명륜당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충남기념물 제114호. 조선시대. 대에 창건되었으나 연대는 미상이다. 1575년(선조 8)에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서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의 실시에 따라 교육적인 기능은 없어졌다.
지정종목시도기념물지정번호충남기념물 제114호지정일1997년 12월 23일소재지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82(아산리 643) 지도시대조선종류/분류향교
1997년 12월 23일 충청남도기념물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조선시대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세웠으며 창건 연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원래 아산리 동쪽 향교골에 있었는데, 토정(土亭) 이지함(1517~1578)이 아산현감(牙山縣監)으로 재직하고 있던 1575년(선조8)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중건(重建)하였다. 향교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고 내삼문·외삼문이 있으며 대성전(大成殿), 명륜당(明倫堂)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익공 양식으로 가구(架構)하였다. 장대석으로 기단을 구축하고 그 위에 원형의 주초석을 놓았으며 둥근 기둥을 세웠다. 문은 앞면에만 설치하였는데 각각 2분합(分閤)의 띠살문을 달았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측면에는 벽을 보호하기 위해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막돌흐트려 쌓기로 구축한 기단 위에 원형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웠다. 처마는 홑처마이고 가구 양식은 도리식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이후에는 향교의 교육적 기능이 점차 사라졌다. 지금도 중국의 4성(聖) 5현(賢)과 4철(哲), 그리고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향교를 지나 계곡을 건너는 다리, 다리를 건너면 오층석탑과 공사중인 석불이 있다.
다음에 보면 석불도 안치되어 있으리라.
아산 송암사 석조보살입상
아산 송암사 석조보살입상(牙山 松岩寺 石造菩薩立像)은 전하는 기록은 없으나 상호와 수인 등의 세부 표현으로 미루어 보아 고려시대에 조성된 불상으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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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용화사 석조여래입상
용화사 석조여래입상(龍華寺 石造如來立像)은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용화사에 있는 고려시대의 불상이다. 2013년 2월 12일 충청남도의 유형문화재제220호로 지정되었다.
아산 용화사 석조여래입상은 고려시대 전기에 조성된 거석불로서 지리적으로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과 인접해 있으며 개태사 석조여래입상보다는 상호와 신체의 양감이 떨어지고 옷주름도 도식적으로 표현하였으나 아산 평촌리 석조여래입상과 다르게 대의와 옷주름 표현에서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연화봉..석조 구조물이 봉화를 든 두 손이다.
깃대봉
■ 깃대봉(359.9m)은 청일전쟁(1894년 6월~1895년 4월) 때 아산만에 주둔하고 있던 청나라 군대와 평택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이 우리의 의사와 무관하게 조선의 지배권을 놓고 싸워 이긴 일본군이 영인산에 깃발을 꽂은 곳이라서 유래되었다. 사생결단을 표현을 할 때 아산이 무너지나 평택이 깨지나 하는 말도 이때 생겨났다고 한다.
■ 영인산(靈仁山, 363.6m)은 충남 아산시 영인면 아산리 일원에 위치하고 있는 산으로 영인산은 예로 부터 산이 영험하다 하여 영인산이라 부르고 있다. 정상에 백제 초기의 석성으로 추정되는 영인산성이 위치하고 있으며 "민족의 시련과 영광의 탑"이 세워져 있다. 산 정상에 서면 서해바다, 삽교천, 아산만방조제와 아산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아산만방조제를 지나 아산시로 향하다보면 우측으로 산꼭대기에 우뚝 서있는 대형 탑 한쌍을 볼 수 있는데 이 탑이 세워져있는 산이 해발 363.9m의 영인산이다. 이 산 중턱에는 영인산 자연휴양림이 자리를 잡고 있어 시민들의 좋은 휴식처가 되고 있는데, 휴양림에는 통나무집을 비롯 야영장과 눈썰매장, 수영장등 편의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전망이 트이면서 아산만에 웅장하게 세워져있는 서해대교를 비롯하여 아산만방조제, 삽교방조제등을 한꺼번에 조망할 수 있으며 아산시내 까지도 가깝게 조망된다. 주변 가까이에 이보다 더 높은 산이 없기도 하거니와 아산만쪽 전망을 가장 잘볼 수 있다는 점이 이산의 장점이다.
영인산(靈仁山)은 지리적인 요충지로 과거 아산현의 배산(背山)이자 서해안 일대의 명산으로 정상을 중심으로 백제 시대에 축성한 영인산성이 잘 보존되어 있고, 영인산 인근에는 나당연합군의 상륙(660년) 장소와 청일전쟁(1894년)의 격전지가 있으며, 6.25 이후에는 이 곳 정상을 중심으로 미군이 주둔하는 등 고난의 역사가 많았으나 현재는 이러한 지리적인 이점으로 아산시가 전국적으로 성장해가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휴양림, 수목원, 박물관 등과 연계하여 많은 사람들이 휴양과 교육, 여가 등을 목적으로 즐겨 찾는 장소가 되고 있다.
영인산 정상, 전망대는 배의 모양인데 3층의 누각인 셈이다.
1층은 문이 닫혀 있고, 2층은 비를 피할 수 있는 공간, 취사는 금지, 목조건물이니 당연. 3층은 무개 전망대로 조망판이 있는데
선체의 이물과 고물이 모두 뾰족한 모양이다.
영인산의 정상 전망대를 배모양으로 만든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배씨와 방씨의 이야기가 있는 배방산도 아닌데...
영인산이 아산의 배산(背山)이라는 이야기에서 음가만 빌어와 '배'를 연상한 걸까...
바다와 가까워 배를 타고 넘어 온 중국 청군의 공격을 받던 아픈 기억을 되살려 국방을 튼실하게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면 ...
대충 서북서쪽을 바라보며 장영실의 묘소도 저 부근일 것이라고 짐작만 했다.
과학을 장려하던 세종의 덕을 생각하며... 있는 기술도 폐기하는 시대에..
맨 위 계단의 수가 '956'이다. 경사는 매우 급하다. 성곽과 계속 이어진다.
영인산 정상에 이정표가 닫자봉1.6km가 있고 90도 꺾어서 '영인산성'을 안내한 곳이 있는데
도상거리는 거의 비슷하다.
그래서 성곽을 돌아볼 셈으로 영인산성을 택했다. 지도에도 그리 안내했지만...
계단의 수를 알리는 숫자는 50마다 있는 것 같다. 내려가면서 앞의 휴양림의 산림박물관이 보인다.
중간에 허물어진 부분도 있다. 성의 상부는 1.5m 정도의 폭이 보이는 곳도 있다.
영인산성
영인산성은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에 있다. 2006년 3월 7일 아산시의 향토유적 제호로 지정되었다.
영인산 정상부에 축조되어 있는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영인산은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영인면과 인주면, 염치면 등의 경계가 되고 있으며, 남에서 북으로 뻗어 있는 산상의최북단에 축조되어 있어 전망이 매우 좋아 아산 일대가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북으로는 영인면과 인주면 일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멀리 아산만과 안성천, 그리고 평택까지도 한눈에 조망되어 아산만에서 삽교천으로 들어가는 통로를 감시할 수 있다. 남쪽으로도 아산을 동서로 관통하는 곡교천과 그 주변이 한눈에 들어오며, 곡교천 너머로 학성산서이 건너다 보이기도 한다. 동벽은 지세가 비교적 완만한 곳으로, 성벽이 심하게 부괴되어 있으나 2.5m 정도의 높이고 편축식으로 축성하였다. 지형적으로 볼 때 이곳은 성내에서 지대가 가장 낮은 지역으로 성내의 물이 모두 이곳으로 모이게 되어있다. 따라서 여기에 배수구가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남벽은 성벽의 잘 간직하고 있다. 성벽은 세로 10㎝ 내외, 가로 40㎝, 석재 뿌리 20~30㎝ 되는 납작한 돌들을 이용하여 4.7m 높이의 바른층 쌓기로 축성하고 있는데, 이러한 축성방법은 배방산성의 남벽에서도 볼 수 있는 축성법이다. 서벽은 동벽보다 지세가 더 험준하다. 세 개의 봉우리가 연접하면서 형성한 두 개의 골짜기 부분에는 성벽의 흔적을 확인할 수 없다. 이것이 원래부터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축성지 않았던 것인지, 아니면 축성을 하였으나 후대에 붕괴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북벽은 서북쪽에서만 석축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문지는 동문지와 서문지가 있는데, 동문지는 주변의 경사가 성 전체를 통해서 가장 완만한 지역으로 주변이 모두 파괴되어 있어 자세한 현황을 알 수 없으나 너비 3m로 성벽이 단절되어 있어 문지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서문지는 성벽이 통과하는 지역 중에서 레벨 고도가가장 낮으면서, 서벽 중에 경사가 가장 완만한 지역이다. 이 곳 역시 대부분이 붕괴되어 있으며, 지형상으로 보아 출입문 시설이 존재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건물지 지는 성내 남반부에 위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나, 현재는 탑이 들어서 있어 모두 훼손되어 주변에 기와편만이 남아 있다. 서문지 근처에 우물과 저수지도 발견되고 있다. 성내 곳곳에서는 다수의 기와편이 발견되고 있는데, 회백색과 회청색의 경질 기와로 대부분이 두께 2㎝ 미만이며, 배면에는 선조문, 격자문이 시문되어 있다. 이 산성에 대해서는 《新增東國輿地勝覽》 牙山縣條에 “蘇城山城 其頂有古城二連築其城一築周四百八十尺高十尺內有一井天早禱雨其南城土築周四百八十尺高四尺昔平澤人避亂僑寓仍號平澤城”라고 한 것이 이 성이 아닌가 한다. 영인산성은 아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고, 둘레가 약 1㎞에 달하는 아산지역에서는 규모가 제일 큰 산성으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 닫자봉(273.4m)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강창리에 위치한 높이 275m산이다. 닫자봉의 ‘닫’은‘닻’의 옛말인데 닫자봉 이름은 배를 한곳에 멈추어 있게 하기 위하여 줄에 매어 물 밑바닥으로 가라앉히는 갈고리가 달린 기구 즉 Anchor(앙카, 닻)을 닮아서 유래된 것 같다. 영인산 정상 신선봉에 배 모양의 전망대가 있는데 닫자봉과 관련이 있는 것 같다.
상투봉에 오르니 영인산이 오롯이 보인다. 우로부터 연화봉, 깃대봉, 영인산정상 신선봉, 그리고 앞에 바위가 보이는 닫자봉,
닫자봉에서 대부분은 능선을 따라 돌아갔다. 오히려 그들이 잘한 선택일 것 같다.
그렇지만 산의 흔적은 능선에만 있지 않으니...내가 선택한 길이 오히려 보람있는 길이라고 자부한다.
■ 상투봉(300.4m)은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서원리에 위치한 높이 299m 산이다. 상투봉이라는 이름은 봉우리의 생김새가 상투를 튼 모습에서 유래한다. 멀리서 볼 때 산봉우리의 생김새가 상투를 틀어 올린 것 같이 뽈록하게 솟아있기 때문이다. 동림산(桐林山)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산의 형상이 상투와 같이 뾰족하게 솟아 있다 하여 상투봉이라 불리고 있는데 낙조와 주위 경치가 일품이다.
우측으로 약간 내려서서 보니 머리에 흰 수건을 쓴 아낙네 처럼 보인다.
흔들바위보다는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짓던 모습이 아닐까...
상투봉도 조망이 좋은 편인데 기상상태가 좋지 않아 약간 아쉽다.
산방버스가 제2주차장까지 올라와 속도가 느린 나에게는 득이었다.
덕분에 8km 정도의 산행을 마무리 했다.
발이 빠른 분들은 벌써 2km를 더 걸어 아래 주차장에 가 있었다.
본래 계획이 세심사 입구에서 오르기로 했는데 변경되는 바람에 우당고택을 못보고 간게 많이 아쉽다.
아마도 변경에 동참한 그이는 우당의 의열단 활동에 감탄했을 법도 한데....
그 후손인 젊은 가족은 마을의 화합에 애쓰는 흔적이 보이던데...
■ 어금니바위, 부아암(負兒岩)은 충청남도 아산시의 영인면 아산시와 염치읍 송곡리 등의 경계가 되는 영인산 북동쪽에 있는 바위이다. 아산(牙山市)시의 이름은 이 바위의 어금니 '아(牙)'자를 따서 부르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또 이 바위를 아기 업은 바위, 부아암(負兒岩)이라고도 하는데 바위가 마치 아이를 업은 형상처럼 보이기 때문이며 여기에는 저주 받은 장자집 며느리의 설화가 전해진다. 산 아래 염치읍 송곡리에 장자못이라는 큰 연못이 있는데 이 못은 스님에게 시주를 하지 않고 거름을 퍼 준 어느 부자의 집터로서 저주를 받아 그 집이 연못으로 되었고, 며느리만 스님의 말을 듣고 아이를 업은 채 스님을 따라 가다가 이곳에서 뒤를 돌아다 보는 바람에 바위가 되었는데 아기업은바위라고 한다.
원골로 연결되는 왼편 방향에 ‘어금니바위’라는 지명(地名)이 보인다.‘아산(牙山)’이라는 이 지방의 이름이 ‘어금니바위(부처바위)’라는 바위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설(說)이 있는데 그 바위를 말하는 게 아닐까 싶다. ‘아산(牙山)’이라는 이름을 얻게 만든 ‘어금니(牙)’를 닮은 바위가 영인산의 기슭에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바위가 소개되었을 정도이니‘어금니바위’는 아산의 자존심 같은 존재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책에는 ‘괴석이 신기한 부처를 이루어 3년 동안 다섯 명의 원(사또)을 갈려 보냈다’라고 적혀있다.
----牙山 鹽峙 아산 염치 <牙 어금니 아, 山 메 산; 鹽 소금 염, 峙 언덕 치>----
아산 염치읍의 지명을 한자로 보니 '어금니 아'다. 염치의 치는 이빨과는 무관한 고개 치다.
멀리까지 가서 다 볼 수 없어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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