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스티코프 일기

benel_jt 2019. 2. 19. 21:34

쉬띄꼬프 일기 1부
(1946. 9. 6~1946. 11. 13)

[10월 22일부터 31일까지]


1946년 10월 22일

발라사노프와 샵쉰을 호출하여 남조선의 정세에 대한 정보 보고를 청취하다. 보쟈긴을 호출하여 강진의 행동과 관련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점검하도록 지시하다. 외과의사 보차로프를 호출하여 레베제프의 건강상태에 대해 보고를 듣다. 이그나찌예프가 보고하다. 2365개 선거구가 조직되고, 선거위원 61,490명이 선발되고, 452개 지방선거위원회가 조직되었다. 사진사들과 영화기사들도 준비되었다.

김일성이 남조선 정세에 대해 보고하다. 김두봉이 백남운을 접견했다. 백남운과 함께 3명이 북조선에 도착했다. 왜 남조선신민당원들은 반동적으로 행동하는가. 백남운은 사회로동당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조선으로 왔다. 여운형은 그가 북조선에서 서울로 돌아온 후 하지가 그를 불러 좌우합작의 필요성을 인정할 것을 요청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여운형은 우리에게 조언을 구하고 있고, 북조선을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김두봉은 백남운에게 왜 좌우합작에 동조했으며, 왜 북조선의 지시를 이행하지 않느가 물엇다. 그는 자신이 북조선의 지시를 이행하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사회로동당을 조직했다고 대답했다. 김두봉은 주요 지도자 세 사람이 함께 만나자고 제안했다. 그리고 강진이 북조선에 와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일성은 반대했다.

김두봉은 백남운이 북조선에 잔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어느 곳에서 그를 활용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이 문제에 대해 언급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백남운은 의복을 지참하지 않은 채 북으로 왔다. 이 사실은 그가 남조선으로 돌아가기를 원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늘 김두봉과 백남운의 회담이 진행되고 있다. 결과는 아직 분명하지 않다. 강진과 만났다. 나는 합당 사업이 결렬된 모든 책임을 강진에게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에게 나는 당신이 미 제국주의의 주구인지 아닌지는 확증할 수 없지만, 당신은 미국인들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당신에 의해 소집된 대회는 조선공산당 중앙위원회와의 통합을 위한 것이 아니라 투쟁을 위한 것이다. 당신은 대회를 소집할 자격이 없다. 왜냐하면 당신은 당에서 제명되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합당을 방해할 목적으로 대회를 소집했다. 박헌영 동지의 결정은 그 자신만의 견해가 아니라 북조선 40만 당원의 견해이기도 하다. 당신은 당으로부터 제명된 점에 대해 화를 낼 수는 있을지 몰라도 당에 반대하는 투쟁을 전개할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당신은 박헌영 동지에 대한 개인적인 불만을 구실로 삼고 있지만 당에 손실을 입힐 권한을 갖고 있지 못하다.

당신이 지금까지 행동해 왔던 것과 다른 진정한 혁명가가 되고자 한다면 자신의 과오를 공개적으로 인정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당내에 존재했던 과거의 종파해위를 불문에 부칠 것이다. 만일 당신이 원한다면 당과 인민을 위해 진심으로 활동해라. 그렇게 하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라. 여기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미 제국주의의 주구로 욕했다.

미국인들은 박헌영 동지를 체포하려고 하는데, 당신은 분파활동을 하고 있다. 당신은 무슨 목적으로 이곳에 왔는가? 그는 조언을 구하러 왔다고 대답했다.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좋게 평가하기를 원한다면 당신 스스로가 분파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당신을 전에 이미 호출했지만 당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남조선로동당과 사회로동당을 통합시키겠다고 대답했다.

김일성과 박헌영을 만나다.

1. 남조선로동당을 조직하기로 합의하다.

2. 당의 구성에 대해 협의하다. 위원장 -허헌(신민당), 부위원장 -박헌영(공산당), 이기석(안민당), 김삼룡(공산당) 중앙위원회 위원 45명 -공산당 20명, 인민당 8명, 신민당 7명, 사회단체 10명 정치위원회 7명, 13국

3. 중앙위원회 위원들에게 보내는 서한을 검토하다.

4. 대표자협의회에서 합당 경과를 보고하고 중앙위원회를 선거하고 강령 및 규약을 채택한다.

5. 반대파 문제에 대해 논의하다.

6. 사회로동당에 대해 논의하다 김일성과 주요 산업의 국유화에 대해, 전문가들의 양성에 대해 협의하다. 160명의 기술자들이 필요하다. 1200명의 일본인 기술자들이 남아 있다. 전문가들의 교육을 위해서는 교과서가 필요하고 흥남과 평양에 2개의 학교를 설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산계획입안자들, 통계전문가들, 은행일꾼들을 위한 강습소를 설치해야 한다. 기업소 지배인들을 위한 강습소를 설치해야 한다. 공업 생산물과 원료 가격을 책정하고, 정가표를 작성해야 한다. 농업현물세에 대한 이야기하다. 농민들은 25 퍼센트의 현물세에 찬성하고 있다. 그러나 농민들이 분배받은 토지의 비옥도에는 차이가 있고, 비옥하지 않은 토지를 소유한 농민들에게는, 특히 산간지대의 화전민들에게는, 불만이 존재한다. 많은 농민들이 좋지 않은 형편에 대해 불만을 표시하고 있고, 다른 세금들, 특히 학교세에 대해서도 그러하다.

철도에 대해 논의하다. 왜정 때 인쇄된 기차표를 판매하고 있다. 새로운 표를 발행하여 교체할 것을 제않다. 이를 위해서는 마분지와 특수용지가 필요하다. 경찰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다. 경찰은 왜정 때의 교재로 교육받고 있다. 취조과정에서 미숙한 점이 많이 저지르고 있다. 심리과는 형편없이 조직되었다. 전문가들을 요구하다.

로마넨꼬가 은행의 양도에 대해 보도하다. 소련화폐 1.375.000 루블이 차변에 기입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베쁘리꼬프(베쁘리꼬프 아. 에스, 소련국립은행 블라지보드또끄 지점 상급 감사, 조선은행 계산위원회 주재 소련군사령부 대표, 북조선중앙은행 총재)는 조선화폐를 소련화폐로 교환했다. 이산굴로프는 아무런 허락도 받지 않고 화폐를 교환했다.

조선의 군대에 대해 협의하다. 조선군의 업무를 누가 관장해야 하는가. 북조선 주둔 소련군사령부 참모부에서 관장해야 하는가, 내가 해야 하는가 논의하다. 니끼찐이 병원에 대해 보고하다. 우선 11월 1일까지 3동의 병원을 개원하도록 지시를 내리다.

그로모프(그로모프 알렉산드로 게오르기예비치 대좌, 소련 제25군 정치부장)가 조선인 간부양성 학교에 대해 보고하다. 확정된 예산이 없다. 문화회관에 대해 보고하다. 정원에 대한 규정도 없고 돈도 없다. 이바노프가 조선의 군대에서 활동할 소련 군사고문에 대해 보고하다. 북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정치활동가들에 대한 평가서 제출에 대해 보고하다. 해결해야 할 문제들은 다음과 같다.

1. 천도교청우당 지도자를 호출한다.

2. 북조선민주청년동맹 지도자를 호출한다.

3. 북조선민주여성동맹 지도자를 호출한다.

4. 산업국장 이문환을 호출한다.

5. 가우듸낀을 접견한다.

6. 선거계획, 영화찰영반의 활동계획을 작성한다. 선거결과에 대한 자료를 제공하고 선거에 대한 목사들의 설교를 촬영하게 한다. 돌마또프의 보고에 의하면 우즈베끼씨스딴과 까자호스딴에는 한국어 교재가 없다고 한다. 통역데 대해 요청하다.


1946년 10월 24일

'조선신문' 편집장 부듸낀과 대담하다. 천도교청우당 지도자 김달현과 대담하다. 김달현 당년 87세. 그에 의하면 청우당에는 노동자와 농민이 가입되어 있다. 당원 수는 16만 명에 달한다. 최초의 지도자는 최수운이다. 이전에도 선거를 실시한 적이 있지만 시기적절했던 것이 아니다. 인민위원회와 도지사 중에 어느 것이 더 우수한 제도인가? 물론 인민위원회가 더 우수한 제도이다. 그러나 조선의 통일이 필수적이다. 소련에 파견된 조선인 학생들 중 천도교 청우당 출신은 단 한 명도 없다.

조선의 발전과 동양의 선진국가로의 변화에 대해, 미소공동위원회에 대해 말하다. 1946년 4월 당이 창립된 이후 우리는 당의 기관지를 발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자금을 모급했다. 왜냐하면 인쇄소와 인쇄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원조를 제공해 줄 것을 요청한다. 이그나찌예프가 민주당 지도자 최용건에 대해 보고하다. 홍기주는 평안남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인데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전연방공산당(볼)사의 한국어 변역과 간행에 대해 협의하다. 전연방공산당(볼)사는 중국어판과 영어판이 이용되고 있다.

해직 문제로 소련민정청 일꾼 스미르노프를 접견하다. 쉬마또프스끼와 베쁘리꼬프를 접견하다. 북조선중앙은행의 상황과 은행관리에서 베쁘리꼬프가 자행한 사기행위에 대해 논의하다. 10월 25일 11시 정각까지 검사와 함께 필요한 일체의 자료를 준비하도록 지시하다.


1946년 10월 25일

1. 꼬르꿀렌꼬를 접견하다.

2. 재정일꾼들과 검사들을 접견하다.

3. 보쟈긴과 대화하다.

4. 조선인들 -박 베라(여성동맹 위원장 박정애를 말한다), 최용건, 김두봉을 만나다.

5. 알렉세예프와 만나다.

6. 이그나찌예프가 영화촬영반의 활용에 대해 보고하다.

7. 박헌영과 회담하다.

8. 후르소프를 접견하다.

로마넨꼬가 보고하다. 개신교 목사들이 찾아와 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결정이 채택되었다고 전해왔다.

1. 교회와 국가를 분리할 것.

2. 신자들은 정치활동과 시위에 참가하지 말 것.

3. 학교에서 반종교 학습을 실시하지 말 것.

4. 선거일을 연기하든지 투표를 11월 4일에 실시할 것.

로마넨꼬는 그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거부했고 선거는 인민위원회의 사업이라고 언명했다. 알렉세예프가 서울의 상황에 대해 보고하다. 경찰의 순찰이 강화되었다. 특히 심야에, 재판소 건물 주변에, 서울에서 경찰이 1만명 증강되었다. 김두봉과 대담하다. 선거 준비, 김일성종합대학, 당내 상황에 대해 논의하다. 그는 남조선 정세에 대해 동요하는 입장을 보였고, 남조선 반동파에 신랄한 비판을 가하지 않았다.

박 베라와 대담하다. 여성동맹의 현황에 대해 논의하다. 약 40만 명에 달하는 여성들의 문맹퇴치운동이 광범위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용건과 대담하다. 민주당의 현황과 선거 준비 활동의 진행 및 보안간부훈련대대부의 사업에 대해 논의하다. 김익두, 김정수 -개신교의 지도자들을 만나다. 보쟈긴을 접견하다. 선거와 관련하여 경계를 강화하고 경각심을 높일 것을 지시하다. 미국 첩보기관의 행동 양식과 방법에 대해 통보하다. 대외무역성의 꼬르꿀렌꼬를 접견하다. 기술자들과 고문들에 대한 급여 지급 및 산업국의 구조와 정원에 대해 이야기하다.


1946년 10월 26일

김일성종합대학을 방문하여 강사들 및 학생들과 대화하다. 교과서와 실물교수용품의 준비 정도가 매우 열악하다. 그로모프, 이그나찌예프에게 선거 준비와 관련해서 반드시 실행해야 할 조치들에 대해 지시하다. 김일성을 접견하다. 오전 9시에 개신교회의 대표 8명이 김일성을 방문했다. 그들은 인민위원회가 항상 기독교 신자들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개신교회의 종교적인 제일(祭日)인 일요일에 자신의 정치적 생사를 치루고 있다고 말했다. 그들은 11월 3일의 인민위원회 선거일일으 신례로 들었다. 그들은 기독교 신자들은 일요일을 마땅히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고 말한다. 김일성은 목사들을 다음과 같이 질책했다.

종교는 민주개혁 사업에 방해가 되어서는 결코 안된다. 우리 북조선에는 신자들도 많을 뿐더러 종교들도 많다. 그러나 개신교 신자들을 제외하고는 어느 누구도 민주개혁 사업을 방해하지 않는다. 김일성은 목사들을 엄중히 꾸짖고 그들이 투표에 신자들의 참여를 보장할 조치를 취하도록 경고했다. 같은 날 김일성은 기독교 목사 10명을 소집해서 선거에 기독교 신자들의 참여를 보장할 계획을 세우도록 촉구했다. 목사들은 강양욱을 의장으로 하여 5명으로 구성된 기독교분리파위원회를 조직했다.(기독교분리파위원회는 북조선기독교연맹을 말한다)


1946년 10월 27일

11시 30분 비행기로 평양을 출발하다. 공항에 후르소프, 그로모프, 이그나찌예프, 발라사노프, 샵쉰, 그루쉐보이 등이 나와 영접하다. 12시 45분에 도착하다. 메레츠꼬프와 대담하다. 그에게 조선의 정세에 대해 보고하다. 대담에는 끄릘로프가 동석하다.


1946년 10월 28일

이그나찌예프가 보고하다. 기독교인들이 선거반대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30명의 목사들이 참여한 위원회의 회의가 진행 중이며, 위원회의 조직을 알리는 호소문을 준비하고 있다. 11월 1일 림일성이 발표한 연설문 초안을 검토하다. 서울의 라디오방송, 남조선 3당 합당에 대해 보도하다. 학생조직들의 통합을 위한 강령이 작성되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성명, 위원회가 아니라 오직 인민만이 파업투쟁에 대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

후르소프가 보고하다. 10월 27일 백남운이 남조선으로 떠나갔다. 개신교회의 지도자들은 김일성이 자신들을 비난했지만, 자신들은 김일성을 배척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신중을 기하겠다고 성명했다. 몇몇 군(郡)에서는 목사들의 협의회가 비합법적으로 개최되고 있다. 천도교청우당의 몇몇 군당에서는 반동분자들이 자리를 차고 앉아 반동적인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그들은 8일간의 축제를 거행하려고 한다.


1946년 10월 29일

몰로또프(몰로또프 뱌체슬라프 미하일로비치, 소련외무상)와 불가닌에게 남조선 좌익 3당의 로동당으로의 통합에 대한 보고서를 발송하다. 이그나찌예프가 전화하다. 기독교 목사들이 좋지 않게 행동하고 있다. 그들은 신자들에게 선거에 참여하지 말라고 설교하고 있다. 목사들과 신부들의 비합법적인 집회가 개최되고 있다. 서울의 라디오방송은 여운형과 김규식이 하지에게 입법기관의 조직을 중지할 것을 제안했다고 보도하다.


1946년 10월 30일

1. 김일성의 연설문에 논평을 가하다.

2. 조직사업에 대한 보고에 서명한다.

3. 로마넨꼬와 통화하여 조선의 정세에 대해 논의한다. 로마넨꼬에 의하면 함흥에서 조선민주당의 반동적인 부류들이 좋지 않게 행동하는 사례가 있다고 한다. 현수막과 노래의 물결 속에 짐마차들이 양곡을 실어 나르고 있다. 수확량의 90퍼센트를 완수한 군들이 있다. 선거반대 전단들이 배포된 곳도 있다. 내가 수정한 김일성 연설문 초안을 전달하다.

모스크바로 불가닌에게 전화하다.

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산업기관을 양도하는 문제에 대해 보고하다. 양도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다.

2. 선거준비 상황에 대해 보고하다.

3. 고문 및 전문가 위원회의 성원에 대해 보고하다.


1946년 10월 31일

비행기로 조선에 가려 했으나 날씨가 좋지 않아 연기하다. 로마넨꼬와 대화하다. 김일성의 연설문에 대한 나의 논평에 대해 이야기하다. 목사들은 전술을 수정하여 투표에는 참여하되 투표용지를 모두 검정함에 넣을 계획이라고 한다. 군 선거위원회와 읍·면 선거위원회의 준비 상태를 점검한 결과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드러났다. 5만 명의 유권자들이 투표할 곳에 2만5천 장의 투표용지만을 발송된 곳이 있는 반면, 2만 5천명의 유권자들이 투표할 것에 4만 장의 투표용지가 발송된 곳이 있다. 무질서하다. 서울에서 온 목사를 체포하여 경찰서에 억류하다. 그는 선거를 파탄시키라는 지령을 하달한 사실을 시인했다. 당일 업무계획 남조선 파업투쟁에 대한 보고서에 서명한다. 병원에 대한 결정서를 준비한다. 봉급과 민정청(소련민정청의 조직 문제를 말한다)에 대한 전문을 준비한다. 김일성종합대학의 강사들에 대한 전문을 준비한다.

[#11에서 계속]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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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띄꼬프 일기 2부
(1946. 12. 2~1947. 2. 4)

[1946년 12월 2일부터 11일까지]


1946년 12월 2일

로마넨꼬. 남조선로동당 대회 총과 보고를 하다.

총 585명이 참가하다.

공산당 395명
인민당 140명
신민당 50명
노동자 220명
농민 155명
사무원 210명
농촌단체 350명

임시집행부 14명이 선출되고 의장에 허헌이 선출되다.

구재수(신민당)가 국내외 정치정세에 대해 보고하고, 이기석(인민당)이 합당경과에 대해 보고하다.

대회는 다음과 같은 결정을 채택하다.

1. 당 강령을 가결한다.
2. 당 규약을 가결한다.

대회는 당 중앙위원회 조직위원회와 검사위원회를 다음과 같이 선거하다.
1. 허헌, 2. 이승엽(공산당), 3. 구재수(신민당), 4. 이기석(인민당), 5. 김영재(공산당)

대회는 모스크바 삼상회의의 조선 문제에 대한 결정을 이행할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의 신속한 재개를 촉구하는 호소문을 미·소 양군 사령부와 미·소 양국 정부에 보내기로 결정하다.

대회는 또한 당 기관지 '로력인민'을 발행하기로 결정하다.
대회는 테러분자들의 공격을 염려하여 예정된 시간 보다 5시간 일찍 폐회하다.
대회에 참석한 대의원들의 회의장을 나서는 순간 2개의 수류탄이 폭발, 신문기자 2명이 부상을 당했다.

도당위원회 지도자 의회가 소집되어 사회로동당에 대한 남조선로동당의 방침과 로동당의 당면과업에 대한 박헌영의 서한을 심의한다.
대회는 이승엽을 당 기관지 편집장으로 승인하다.
대회는 허헌을 남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선출하다.

당 지도부는 다음과 같이 결정되다.
위원장 허헌 부위원장 박헌영(공산당) 이기석(인민당)

정치위원회

1. 허헌-신민당
2. 박헌영-공산당
3. 이기석-인민당
4. 구재수-신민당
5. 김영재-인민당
6. 이승엽-공산당
7. 김상룡-공산당

상임위원회를 13명으로 구성하다. 공산당 5명, 신민당 4명, 인민당 4명.
중앙위원회 성원을 45명으로 확정하다. 공산당 29명, 인민당 9명, 신민당 7명

중앙위원회 성원을 다음과 같이 재구성하도록 지시하다.
공산당 20~23명
인민당 15명
신민당 7-10명

대회에서 각 정당은 다음과 같은 당원수를 대표하다.
공산당 670,444명
인민당 23,700명
신민당 7,488명

지시를 내리다.
1. 성공적으로, 그러나 어렵게 성취된 합당사업에 대해 박헌영에게 축하할 것.
2. 다른 정당들이 파악할 수 없도록 당 중앙위원회를 구성한다.
3. 박헌영은 향후 행동방침에 대한 지령을 허헌에게 하달한다.
4. 박헌영이 수행할 마르크스·레닌주의이론의 선전사업에 대한 방침을 숙고한다.
5. 김일성과 박헌영은 업무상 긴밀한 연계를 확보한다.
6. 급사를 통해 당 대회 자료 모두를 보내도록 지시하다.

전연방공산당 중앙위원회로 보낸 남조선 3당 합당 사업 총결 보고서를 준비하도록 끄라프초프(끄라프초프 이반 바실리예비치 중과, 특별임무 수행, 연해주군관구 소속.)에게 지시를 내리다.

주치의 샤삐로는 1946년 12월 3일부터 침대에서 일어나는 것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다. 병세가 회복되고 있다.


9편집자 주해방 직후 남한 지역에는 박헌영 주도의 조선공산당 외에도 연안파의 지도를 받는 백남훈의 조선신민당 남한지부, 여운형 주도의 조선인민당 및 군소그룹의 좌익세력들이 분포되어 있었다. 이 40여 개의 좌익단체들은 후에 우익진영에 대항하기 위해 조선민주주의민족전선이라는 좌파 통일전선체를 형성했다. 소련의 지시에 의해 북한의 공산주의 세력이 결집하여 1946년 8월, 북조선노동당(북로당)을 결성하자 남한의 공산주의자들은 이에 대응하여 박헌영 주도로 기존 3당 세력을 흡수, 1946년 11월 23일 남조선노동당(남로당)을 결성했다.


이때의 남로당 결성은 박헌영과 남한의 좌익 공산주의자들의 독자적 결정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보다 한 달 전인 1946년 10월 23일 열린 스티코프, 김일성, 박헌영 3자 회담에서 남로당 결성이 공식 결정되어 실행에 옮긴 것에 불과하다. 심지어 이날 회담에서는 위원장에 허헌(신민당), 부위원장에 박헌영(공산당)·이기석(인민당)·김삼룡(공산당), 그리고 7명의 성원으로 정치위원회를 구성하며, 13개의 국을 설치하고, 45명의 성원(공산당 20명, 인민당 8명, 신민당 7명, 사회단체 10명)으로 중앙위원회를 조직한다는 내용도 결정됐다. 1946년 12월 2일 스티코프는 로마넨꼬를 통해 남로당 대회에 대한 활동 내용을 보고 받은 것이다.)


1946년 12월 3일

모스크바로 보낸 남조선 3당 합당 사업 총결과 남조선로동당 결성대회 결과에 대한 보고서를 교정하다.

의사 샤삐로가 왕진 오다. 침대에서 일어나 방안을 거닐거나 아파트 내를 거니는 것을 허락하다.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


1946년 12월 4일

의사 샤삐로가 왕진 오다. 건강이 회복되고 있다. 샤삐로는 신병 치료를 위해 보로비흐로 요양을 떠날 것을 고집하고 있다. 그렇지 않으면 결과를 책임질 수 없다고 한다.


1946년 12월 5일

의사 샤삐로 왕진 오다. 건강 상태가 호전되고 있다. 샤삐로는 하루에 두 번 거리를 산책하도록 권하다. 그는 여전히 병 치료를 위해 요양을 떠날 것을 고집하고 있다.


1946년 12월 6일

로마넨꼬에게 전화하다.

철도운수 상황이 매우 열악하다. 겨울용 연탄을 제조할 타르가 없다. 3천 톤이 필요하다. 조선인들로 조직된 군부대의 보급상태가 열악하다. 피복과 군화가 지급되지 않고 있다. 탈주병이 생기고 있다. 소련군대 보급품 중에서 5,000쪽의 군화와 모포를 지급하다. 병사들의 위생상태가 형편없다. 100 퍼센트 이가 득실거린다. 일본군대가 사용하던 2,000벌의 피복이 있다. 이것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승만은 정보에 의하면 미국으로 출국한 것이 분명하다.
박헌영에 대한 재정지원을 신속히 해결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문일(문일은 88특별여단에서 근무하던 소련군 특무대좌였는데 김일성 그룹과 함께 해방 후 북조선에 들어와 김일성의 비서로 일했다.)은 박헌영에게 39만 엔이 지출되었다고 보고하다.
더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지시를 내리다.
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외무국의 설치를 서두를 것.
2.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에 조선사편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권고할 것.
기업소 지배인들을 위한 강습소의 현황에 대해 물어보다. 사업 진행 상황이 나쁘다.
로동당원 교육용 교재 편찬 사업도 형편없이 진행되고 있다.
박헌영과 김일성이 가깝게 지낼 수 있게 하라고 지시하다.

후르소프(후르소프 이반 세르게예비치 소장, 소련 제25군 군사평의회 위원. 후방국장)가 보고하다. 철도운수 상황이 어렵다. 석탄이 없다. 기관수들의 사보타지 사건이 있었다. 그들은 석탄이 없다는 구실로 기관차 6량의 불을 꺼버렸다. 원산에서는 도 인민위원회 관사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정확한 원인을 조사 중이다. 소련군대 정치 부서에서 근무하던 교관의 자살 사건이 있었다. 그는 형편없이 타락한 인간이었다. 조선인 여자들과 동거했고 중국인들을 살해하기도 했다.

조또프가 오다. 일련의 전문들에 서명하다.
끄라프초프가 오다. 로마넨꼬로부터 남조선로동당 대회 관계 문서들이 도착하다. 자치기관 선거와 관련한 남조선로동당의 정책대안을 강구하도록 지시하다.


1946년 12월 7일

의사 샤삐로가 왕진 오다. 건강 상태는 이전과 같고, 치료가 필요하다고 하다.

레베제프가 발병했다고 보고 받다. 고열이 있는데 , 말라리아일지도 모른다고 한다.

로마넨꼬를 접견하다. 그의 구좌에 있는 돈 122만 루블에 대해 논의하다. 그 돈을 박헌영에게 전달하고 구좌를 정리하라고 명령하다. 박헌영에게 지출된 돈의 총계를 확인해서 보고하라고 지시하다. 특별히 필요한 곳에 122만 루블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전문을 박헌영에게 보내라고 지시하다.

지시를 내리다. 미국인들의 정책에 대해, 8시간노동제에 대해, 지방자치기관의 선거에 대해 논설들을 준비하도록 지시하다. 이것은 북조선에서 실시된 것과 같은 민주개혁을 요구하는 남조선 근로자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양보전술이다.

혼도슈꼬가 전화하다. 조선과 요동반도의 정세에 대해 보고하다. 그에게 모로조프와 쟈블리꼬프 장군이 소지한 예금통장의 현금잔고를 조사하라고 명령하다.

전연방공산당(볼) 중앙위원회 수슬로프 동지가 전화하다. 북조선로동당 당증 발급을 위해 필요한 용지에 대해 논의하다. 양질의, 그러나 우리 것과는 비슷하지 않은, 용지를 요청하다. 북조선인민위원회 선거와 남조선 좌익 3당의 남조선로동당으로의 합당 결과에 대한 보고를 그에게 올리기로 약속하다.

로마넨꼬에게 보낼 전보를 준비하라고 끄라프초프에게 명하다. 미국인들의 정책, 8시간노동제, 지방자치기관 선거 관련 논설들의 출판에 대해 지시하다.


1946년 12월 8일

의사 샤피로가 왕진 오다. 레베제프의 병세에 대해 알려주다. 오진을 하다. 감기나 말라리아에 감염된 것으로 의심했는데, 재검 결과 트롬볼과 관련된 파상풍에 걸린 것으로 밝혀지다. 나의 상태는 이전과 같다. 그는 치료차 휴양을 떠날 것을 완강히 요구하고 있다.

학교와 집에서의 행실에 대해 빅또르(쉬띄꼬프의 장남 빅또르 쩨렌찌예비치 쉬띄꼬프를 말한다)와 대화하다. 어떻게 처신하기로 결정했는지 말해줄 것을 그에게 물어보다. 빅또르는 모든 문제들에 대해 생각해 본 후 1946년 12월 9일쯤 대답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1946년 12월 9일

의사 샤피로가 왕진 오다. 레베제프의 상태에 대해 알려주다. 병원으로 호송, 입원시켰으며 페니실린 피하주사를 놓기 시작했다고 한다. 결과는 긍정적이다. 나를 검진하다. 상태는 호전되고 있다. 12월 12일 산보를 위한 외출을 허락하겠다고 약속하다.

끄라프초프를 호출하다.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산하에 조선역사편찬위원회를 창설하는 문제, 남조선 관련 사건들과 정책들을 다룬 논설들의 출판, 입법기관과 지방자치기관 관련 자료들의 수집 등에 대해 로마넨꼬 앞으로 보낼 전문들에 서명하다.

모스크바에서 쁘로닌이 전화하다.
1. 이바노프에게 더 자주 전화하라고 전해줄 것을 요청하다.
2. 선거(소련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를 말한다.) 관련 암호 명령서들을 발송했다고 한다.
3. 우리 군관구에 3개의 새로운 선거구가(조선 1, 요동반도 2) 설치되었다고 한다.
4. 관구(선거)위원회의 구성원에 대해서는 1946년 12월 20일까지, 분구(선거)위원회의 구성원에 관해서는 1946년 12월 30일까지 보고하는 것이 필요하며, 5일 전까지에 알려주어야 한다고 한다.
5. 대의원 입후보자들은 우리 측에서 내세울 것이다. 다른 측이 입후보자들을 내는 것을 용인치 않겠다.

끄루삐닌과 대화하다. 당증 발급용 용지에 대한 문의하다. 도와주겠다고 약속하다. 삐로프의 일은 괜찮게 진행되고 있지만, 그의 컨디션은 좋지 않다고 한다. 생일에 축하 전문을 보내다.

빅또르와 학업에 대해, 학교와 집에서의 행동거지에 대해 이야기하다. 행동을 모범적으로 하고, 전 과목의 학습교재를 열심히 탐독하고, 모범적으로 학업생활에 임하며, 좋은 점수를 받겠다고 약속하다. 노어(러시아어) 선생에게 그를 도와줄 것을 요청하다. 나는 그에게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학교에서 그가 배우는 각 과목의 의미와 향후 그것들이 어떻게 활용되는가에 대해 설명해 주다. 그에게 학습한 자료들의 저자와 간단한 내용을 기록할 공책을 주다.


1946년 12월 10일

샤피로가 왕진 오다. 검진하다. 상태는 예전과 같다. 심장박동 상태는 호전되다.

북조선 공업에 필요한 전문가들 파견 문제로 모스크바에 보내는 문서를 교정보다, 82명의 기술자와 4명의 사무원의 파견을 요청하는 신청서를 쓰다.

후르소프가 전화하다. 서울의 라디오방송이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고 보고하다. 여운형이 사회로동당의 지도적 지위에서 물러났다. 그는 "좌우합작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나 결과적으로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그는 또한 "나는 정치적으로 준비가 덜된 사람이다. 때문에 나에 대한 좌익단체들의 비판은 전적으로 타당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2월 6일 민주당이 분열되었다는 라디오방송 보도가 있었다. 일부 중앙위원과 83명의 평당원들의 당에서 탈퇴했다. 그들은 중앙위원회의 정책과 그 지도에 동의할 수 없다고 성명했다. 그들은 성명에서 당 지도부는 사적인 이익에 따라 움직이고 있으며, 지도부 내에서 자리다툼이 벌어지고 있다고 비난했다.

다음과 같은 보도가 있었다. 기자들이 좌익 지도자들과 회견을 가진 자리에서 미소공동위원회에 대해 질문했다. 좌익 지도자들은 조선 문제의 긍정적인 해결은 모스크바 결정을 정확하게 이행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할 것이라고 성명했다.

기자들은 남조선 주둔 미군사령관 서리에게 일련의 질문들을 제기했다. 첫째로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의 재개에 대해 질문했다. 미군사령관 서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우리는 소련군 장교들과 대화를 나누었다. 우리 미군정은 항상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이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지만 소련군사령부는 이에 대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조선의 통일문제에 관해 미국 정부는 하지 사령관이 이 문제에 답변한 것과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

둘째로 사회 여론의 형성을 위해 신문을 발행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은가 질문했다. 셋째로 한국군의 선서에 대해 질문했다. 두 번째와 세 번째 질문에 대해 미군사령관 서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라디오 도청은 <보도>를 통해 신속히 전달하도록 지시했다. 통신장교들을 불러 왜 미군정에서 라디오 도청을 문제 삼는가 질문하다. 특정 신문은 발행을 금지시켰다. 다른 신문들을 이용하기 바란다. 선서는 검토해 보겠다.

샵쉰이 전화다. 나는 그에게 강진이 조선에 어떻게 왔으며 그가 누구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지 묻다. 대답을 회피했으나 그가 강진을 일에 끌어들였고, 그를 다시 알렉세에프에게 인계했다고 한다. 이렇게 그를 활용한 것이다. 강진은 12년 전에 코민테른의 지시로 조선에 들어왔다.

병참관 표도로프를 호출하다. 그런데 그가 도책했을 때 원수(메레츠꼬프를 가리킨다.)도 도착하여 사건이 발생했다. 원수는 표도로프를 엄하게 질책했다. 끄라프초프에게 신속히 전문을 찾아내어 나에게 가져오라고 명령하다.


1946년 12월 11일

메레츠꼬프가 다녀가다. 일반적인 문제에 대해 대화하다.

자또프가 다녀가다. 미소공동위원회 서울 회의와 미소양군사령부대표회의와 관련된 일련의 계산서들에 서명하다. 모스크바와 서울 출장시 내가 개인적인 용도로 지출한 3,539 루블 90 꼬뻬이까를 그에게 돌려주다. 이제 그와는 정산이 완전히 끝나다.

레베제프의 부인과 그의 건강상태에 대해 대화하다. 병세가 호전되어 완치되어 가고 있다고 한다.

로마넨꼬가 전화하다. 나의 전보를 받았고, 지시 이행에 착수했다고 보고하다. 다음과 같은 논문들을 배포하고 있다.

1. [조선의 민주발전에서] 북조선의 지도적 역할과 북조선에서 실시된 개혁조치를 남조선에 반영하는 문제,

2. 8시간노동제에 대해, 특히 북조선과 비교하여,

3. 입법기관에 대해,

4. 한국민주당의 붕괴에 대해.

그에게 박헌영이 다녀갔는데 박헌영은 남조선의 자치기관선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하고 어떠한 노선을 취해야 하는지 문의했다고 한다.

미하일로프에게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로의 산업기관 이관 결과 보고를 준비하라고 지시하다.

[#13에서 계속]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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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띄꼬프 일기 2부
(1946. 12. 2~1947. 2. 4)

[1946년 12월 25일부터 26일까지]



1946년 12월 25일

끄라프초프에게 남북조선의 정치 상황에 대한 자료 수집에 착수하도록 지시하다.

소꼴로프에게 지방정권기관들의 선거 총결 자료들을 준비하도록 지시하다.

군관구 극장 여배우 라리나의 무대 경력 50주년을 맞아 축전을 보내다.

빤쉰이 조선 방문 결과에 대해 보고하다. 전연방공산당(볼)사 교과서 편찬 사업의 경과에 대해 이야기하다. 혁명기와 혁명 이후 시기의 장(章) 수와 장의 규모가 부정확하게 이야기되다. 좋지 않은 느낌이 난다.

까라비노프가 방문하다. 재정 관련 서류들에 서명하다. 요동반도 주재 민정청 정원과 조선 주재 민정청 정원 관련 서류를 놓고 가다.

1만 명의 조선인들이 일본 증기선을 타고 일본에서 북조선으로 귀환하고 있다. 어떠한 조치를 취애햐 할지 지시를 내리다.

로마넨꼬가 전화하다. 박헌영과의 대화 내용을 전하다. 그는 훈령과 절차에 동의하고 있지만 법령 공포 후에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법령이 공포되기 3일 전에는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성명서로 법령에 반대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박헌영이 김규식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 그는 이승만과 김구의 정체를 대중 앞에 폭로한 것처럼 김규식의 정체도 폭로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는 흥분하지 말고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고 지시하다. 구체적인 자료를 통해 그의 옳지 못한 결정들을 근거로 폭로해야 한다고 조언하다.


[편집자 주] 1945-50년 해방공간에서 남로당 지도자 박헌영을 비롯한 좌익들은 사안이 생길 때마다 소련군정의 정치사령관 스티코프에게 의견을 묻고, 그의 지시를 받아 행동했다. 심지어 박헌영은 스탈린으로부터 신전술 지령을 받아 1946년 가을, 9월 총파업과 10월 대구폭동을 일으켰으며, 이때 시위대의 구호와 슬로건은 물론, 활동방향, 자금까지 소련으로부터 지원받았다. 이런 내용을 스티코프는 자신의 일기에 낱낱이 기록해 놓았다. 위의 내용 중 "박헌영이 김규식에 대해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는 부분이 그 증거다.


치스짜꼬프(치스짜꼬프 이반 미하일로비치 대장, 소련 제25군 사령관)의 명의로 새해를 맞이하는 조선인들에게 축하의 메시지를 보내다. 하지도 축하 메시지를 발표하다.

조소합작주식회사 문제로 김일성과 대화하다. 김일성이 꼬스띌레프스끼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며, 그를 다른 사람으로 교체해 줄 것을 요청하다. 협정의 의미에 대해 나의 설명을 들은 후 그가 그냥 가다. 김일성은 삐라와 관련하여 기분이 좋지 않다. 삐라에는 이승만이 미국의 앞잡이이며 김일성은 소련의 앞잡이라고 쓰여 있다. 삐라에는 또한 북조선으로부터의 양곡반출을 반대하는 선동적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삐라에는 양곡이 소련으로 반출되고 있다고 쓰여 있다. 육류 조달 계획 - 2000톤 이상을 요청하고 있다. 전리품 중에서 군대에 군복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편집자 주] 소련군정은 북한을 ‘민주기지화’ 하는 과정에서 저항세력을 철저히 탄압했다. 북한의 민주기지화란 곧 공산화는 뜻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공산화에 반대하는 자들을 체포하여 집단 수용하기 위해 1947년 특별 노무자 수용소를 함경북도(궁심·학포·하면·고건원·아오지·오봉), 평안남북도(고방·덕천·성흥·신창 등), 황해도 등 17개소에 설치했다. 설치된 지역은 대부분이 탄광·광산지대였다. 이것이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모태다.


나는 북조선 주민에게 양곡을 공급하는 문제, 국가 예비를 조성하는 문제에 대한 결정을 채택해야 한다고 결론짓다.

군용열차에서 우리 군인들이 하차하여 주민들에게 난폭하게 굴고 약탈행위를 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살인까지 범한 사건이 발생한다.

소련군대는 철수하고 있으며 모든 것을 국민당에게 넘길 것이고, 인민위원회 위원들은 뿔뿔이 도망치고 있으며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서기장 강양욱은 이미 자취를 감추었다는 내용의 삐라가 확산되고 있다. 강양욱이 서명한 결정서를 공포하라는 조언을 주다.

소련 병사와 장교들의 난폭행위와 약탈행위에 대해 보고할 것을 지시하다.


[편집자 주] ‘위대한 붉은 군대’ ‘친근한 벗 소련군’의 북한 진주는 약탈로부터 시작하여 굶주린 이리떼처럼 살인, 강도, 강간, 약탈, 폭행을 일삼으면서 평양은 난장판으로 변했다. 소련은 극동전선의 모자라는 병력을 보충하기 위해 하바로프스크, 민스크, 모스크바 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잡범들을 출옥시켜 활용한 때문이다.
평양 시내에서는 밤이 되면 소련군 순찰병이 공포의 대상이었다. 순찰병의 일부가 약탈과 강간을 자행하여 8월 말~9월 초에는, 특히 부녀자들은 밤에 밖에 나다니지 못했다. 시민들은 자위수단으로 골몰마다 널빤지로 벽을 쌓았고, 집집마다 소련군이 기어들어올 경우 놋그릇을 두들겨 위험을 이웃에 알렸다. 심지어 소련군을 위대한 해방자, 친근한 벗이라고 추켜세운 한재덕의 집마저 소련군의 습격을 당해 각종 시계, 반지, 지갑을 비롯하여 거의 모든 생활도구를 약탈당했다.
북한에 진주한 소련군은 주민들에게 귀중품 강탈, 부녀자 강간 등의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하기와라 료(萩原遼)의 기록에 의하면 일본군이 만든 방공호 속에서 여자의 비명이 들리고 조선인들은 “아, 또” 하고 귀를 막고 그 자리를 황급히 떠나는 것이 일상사였고, 소련군 여군 병사에 의한 조선인 남자 사냥도 있었다고 한다.

흥남비료공장 등의 기계와 설비들을 해체하여 소련으로 보내면서 민심이 이반되기 시작했다. 소련군 범죄가 늘어나자 9월 6일 경 소련주둔군 사령부의 포고가 나오면서 소련군 병사들의 만행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 포고령에 따라 만행을 저지른 소련군 병사가 공개 총살당하는 일이 몇 차례 있었다. 스탈린은 1946년 1월 “북조선 인민들을 괴롭히는 군인들을 붙잡아 즉시 총살하라”는 비밀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래도 민심이 수습되지 않자 1947년에는 뜯어갔던 기계와 시설을 다시 흥남으로 돌려보내기도 했다.
원산시 위수사령부에서는 강도 강간 등으로 붙잡힌 소련 군인 10여 명을 즉시 총살했고, 함흥에서도 10여 명이 총살됐다. 원산시 위수사령관 흐레노프 소좌가 주민들에게 금품을 뜯어내고 일본인 여자를 농락한 사실이 드러나자 치스차코프 사령관이 현지에 와서 그의 계급장을 떼고 소련으로 강제 귀국시켜 군사재판에 회부한 일도 있었다.


24명이 영화관을 이용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다. 서울에서 5명이 도착하다.

불가닌이 전화하다. 나의 건강상태와 향후 나의 계획에 대해 묻다. 모스크바로 갈 필요가 있겠는가? 현지에서도 치료받을 수 있지 않겠는가? 의사들을 만나 상의해서 그 결과를 1946년 12월 26일 알리기로 약속하다.


1946년 12월 26일

의사 샤삐로, 추릴로프, 치르꼬프가 다녀가다. 의사들은 재차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완강히 고집하고 있고, 그렇지 않으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아침 6시에 쁘로닌이 모스크바에서 선거 문제로 전화하다. 선거구, 분구 선거위원회의 구성과 선동과 정치사업의 진행에 대해 보다 자주 소식을 전해줄 것을 요청하다.

1946년 12월 22일 소로낀이 모스크바를 출발했다. 그는 선거에 관한 일체 서류를 가져올 것이며,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인쇄해야 하는가를 지시하는 전문도 가져올 것이다.

뜨베르도흘레보프 동지에게 지시를 전달해야 한다.

끄라프초프를 호출하여 로동당의 정치교양 고재 작성 계획에 대해 조언을 주다. 조선의 정치상황에 대한 보고서 준비를 서두르라고 지시하다.

북조선로동당 정치교양 교재 계획안을 작성하다. 전영방공산당(볼)사 교과서, 소련역사 교과서, 식민지 예속국가들의 현대사 중 [조선] 부분 등 자료를 살펴보다.

<교과서 편찬 계획>

서론

교과서는 어떤 목적을 지니는가? 누구를 독자로 하는가? 교과서는 무슨 내용을 담고 있는가를 밝혀야 한다. 교과서는 조선역사 교과서나 당사 교과서가 아니며, 다음과 같은 내용을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는 것을 책임 있게 밝혀야 한다. 조선의 지리적 역사적 과거, 독립을 위한 조선민족의 투쟁, 일본인들의 지배와 찱취, 교과서는 일제 압제로부터 해방 이후 북조선의 정치적 고양기, 민주개혁의 시기를 포함하고 있다.

제1장 조선 -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1. 조선의 지리적 위치
2. 영토와 인구
3. 국가제도
4. 사회경제제도 : 농업관계, 공업의 발생과 발전, 민족문화, 신분제도, 법률관계

제2장 1895년 이전 외세의 조선침략 기도

1. 일본의 침입 1592년-1598년
2. 몽고의 침입
3. 만주(청)의 침입
4. 유럽 열강(프랑스, 미국)의 조선 침입
5. 1876년 조일조약
외세의 조선침략 기도에 대한 조선인민의 투쟁을 서술한다.

제3장 조선의 국권상실과 일본식민지화(1904-1945년)

1. 청일전쟁(1894-1895년)과 그것이 조선에 미친 영향
2. 조선 쟁탈을 위한 로일전쟁
3. 로일전쟁과 일본의 조선 강점
4. 일본의 조선병합(1910년)
5. 일본에 의한 조선의 식민지 착취

제4장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조선과 제2차 세계대전 시기의 조선

1. 독일, 일본, 이탈리아 군벌의 전쟁준비
2. 아시아 강점을 위한 일본의 준비와 지향
3. 일본이 중국과 소련을 공격하기 위한 병참기지로 조선의 활용
4. 일본의 대미전 참전
5. 조선에 대한 카이로, 얄타, 포츠담 협정
6. 일본의 정책과 조선부르주아지의 반역행위에 반대한 조선인민의 투쟁

제5장 소련의 대일전 참전과 일본 압제로부터 조선의 해방

1.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승리
2. 일본에 대한 영국과 미국의 최후 통첩과 일본의 반응
3. 대일 최후통첩에의 소련의 참여
4. 소련의 대일전 참가, 일본의 투항
5. 소련군대의 조선 진출
6. 인민대중의 정치의식의 고양과 인민정권의 수립
7. 정당·사회단체의 조직
8. 모스크바 삼국외상회의의 조선 문제에 대한 결정

제6장 인민위원회 정권의 강화와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창설

1.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의 창설과 당면과업
2. 진정한 인민정권기관으로서의 인민위원회
3. 민주개혁과 인민위원회의 제법령
4.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선거

제7장 북조선공산당과 북조선신민당의 북조선로동당으로의 통합

1. 조선공산당 약사, 인민대중의 이익을 위한 조선공산당의 투쟁
2. 조선신민당 약사
3. 합당, 서신 교환과 회담, 합당 절차
4. 합당대회외 대회에서 결정된 사항들
5. 조선로동당 강령
6. 조선로동당 규약
7. 사회단체에 대한 당의 방침
8. (남)조선공산당에 대한 당의 방침

제8장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수립

1. 통일전선 수립의 목적
2.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가입한 정당들
3.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 가입한 사회단체들
4.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의 강령, 규약, 사업


[편집자 주] 스티코프를 위시한 소련군정 지도부는 북한의 교과서 편찬내용 및 세세한 목차까지 작성하여 제시했다. 스티코프는 1946년 12월 26일자 일기가 그 증거물이다. 말하자면 북한 역사 교과서 편찬계획과 관련하여 북한의 역사 교과서 준거안을 소련군정 지도부가 작성하여 넘겨준 것이다. 이처럼 소련이 작성한 준거안에 의해 날조된 북한의 역사 교과서와 친북, 친공산주의 사관이 국내 좌익들에 의해 남한 쪽을 파고 들어 친북, 친공 사관이 남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정이다. 북한 정권을 창출하는 데 있어 결정적인 역할을 한 레베데프 소장은 “북한의 역사는 소련군의 진주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김일성은 기회가 날 때마다 “북한의 역사를 만들어준” 소련 당 중앙과 소련군대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연설과 서한, 발언들을 남겼다.


모스크바로 불가닌에게 전화를 걸다. 그가 자리에 없다. 그와 통화할 수 있도록 연결해 줄 것을 부탁했지만, 끝내 통화하지 못하다.

의사들(추리꼬프, 샤삐로, 치르꼬프)의 입회하에 진찰을 받다. 치료를 받아야 한다는 결론이 내려지다.

[#16에서 계속]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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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띄꼬프 일기 2부
(1946. 12. 2~1947. 2. 4)

[1947년 1월 2일부터 8일까지]


1947년 1월 2일

제25군 후방 문제로 흐룰료프에게 전화하다. 지원할 것을 약속하고 정원계획안을 보내줄 것을 그에게 부탁하다. 조선군에 대한 피복 지급 문제를 확인하여 상황을 보고하기로 약속하다.

치스짜꼬프에게 로마넨꼬, 김일성과 함께 1947년 3월 1일 보로쉴로프로 출발하라고 명령하다.

가족과 함께 영화와 기록필름 '인민재판'을 보다.

치료를 위해 휴양을 떠나는 문제에 대해 불가닌의 회답을 기다리다. 그러나 이해할 수 없게도 회답이 없다. 아마도 스딸린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 같다. 이곳에서 자체적으로 치료를 해야 할 것 같다. 몸 상태와 기분이 좋지 않다.


1947년 1월 3일

치스쨔꼬프와 로마넨꼬를 접견하다. 김일성이 회담에서 어떤 문제들에 대해 협의하기를 원하는지 알아보다. 회담 시각을 21시로 정하다.

치스쨔꼬프, 로마넨꼬, 김일성과 회담하다.

우리에게는 국가 경제계획을 수립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1947년의 인민경제발전계획을 세우는데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철도운수, 해상운수, 부문이 우리의 애로점이다. 비료와 양곡을 수송하지 못하고 있다.

조소합작회사 - 해상운수회사, 석유정련회사 - 설립 문제를 신속히 해결할 것을 요청한다. 우리는 협정 초안을 심의하고 이에 동의했다. 협정에 서명할 전권위원으로 강양욱을 뽑았다. 우리에게는 많은 양의 코크스용 석탄이 필요하다. 1947년도 분으로 약 150,000톤이 요구된다. 그러나 1946년도 계획조차 이행되지 않고 있다.

재정 부문에서 우리는 추가적으로 약 6억 엔이 필요하다. 생필품이 부족하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자금을 동원할 가능성이 제한되고 있다.

군대에 납품된 자동차와 무기는 질이 나쁘고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주민들 사이에서 생필품 부족으로 부정적인 여론이 조성되고 있다. 물가가 치솟고 있다.

주민들과 열성분자들은 정부 수립을 원조할 미소공동위원회 사업이 언제 재개될 것인지 번번히 묻고 있다. 당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당신들은 무엇을 책임질 수 있는가? 이 질문들에 대해 설명하고 답변하다.


1947년 1월 4일

치스짜꼬프, 로마넨꼬, 김일성을 접견하다.

1. 북조선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회 소집 문제에 대해 협의하다.

김일성이 북조선 지도부는 대회소집과 그 일정에 동의하며 대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질 것이고 확신하고 있다고 말하다. 나는 그에게 대회소집과 대회에서 논의될 문제들이 향후 조선의 민주화 사업에서 갖는 의미를 설명하다.

김일성이 조선의 정치정세에 대해 보고하고, 기획국장이나 김두봉이 인민경제발전계획 예산 자료에 대해 보고하기로 협의하다.

또한 각 정당의 대표자들과 노동자, 농민, 상인, 자본가 계층의 대표자들이 모두 포함되도록 인민회의를 선거하고, 정부의 향후 사업 전망을 잘 고려하여 각 행정국의 장을 선발하기로 협의하다.

2. 인민경제발전계획 작성 문건에 대해 논의하다.

꼬르꿀렌꼬와 알라또프스끼(알라또프스끼 알렉산드르 뜨로피모비치 대좌, 북조선 주재 소련민정청 재정사업지도 부장)가 배석하다. 공업생산계획을 살펴보다. 공업생산계획 작성 방법에 대해 지시하다. 생활필수품, 농업용구, 비료를 시장에 최대한으로 방출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도록 촉구하다.

농업과 축산에 대해, 북부지역의 파종면적을 확대시키는 문제에 대해, 농업의 기계화, 농업용구의 정착에 대해 논의하다. 양잠업의 발전과 관개시설에 대해서도 토론하다. 농업현물세의 세율을 개정하는 문제에 대해 협의하다. 나부지역에서는 증가시키고 북부지역에서는 감소시킨다. 이 사업을 농민동맹의 발의로 시작한다.

면·리 인민위원회 선거 문제를 점검하다. 선거는 리 인민위원회부터 시작하고, 선거일은 1947년 9월 25일로 잡는다. 면 인민위원회 선거일은 3월 5일로 한다. 인민들은 이 조치를 환영할 것이다.

박헌영을 합법화시키는 문제가 나에 의해 제기되다. 김일성은 그렇게 할 경우 박헌영은 남조선에서 활동할 수 없게 될 것이라고 주장하며 긍정적인 답변을 회피하다. 남북조선로동당의 단일한 지도부가 창설되면 누가 지도자가 될 것인가? 김두봉 혹은 허헌. 그들 사이에 알력이 싹틀 것이다. 만약 박헌영을 지명하면 김두봉이 반대할 것이며, 허헌은 어떻게 처신할지 알 수 없다.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이 문제를 재검토하기로 약속하다.

회담이 계속되다.

로동당원 교육용 교재 편찬 계획에 대해 논의하다. 교재와 교재의 집필 계획에 대해 나의 관점을 설명하다.

소련군 규약의 조선어 번역에 대해 논의하다. 뽀시에뜨의 국경수비대에서 조선인 김상빈이 근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조선어판 군사용어사전의 편찬 문제에 대해 숙고하다.

언제 민주-조선의 국경수비에 언제 착수하는 것이 좋을까? 수비대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중대별로 아니면 소대별로, 군수품을 지급하고 교육을 마친 후 결정한다.

군에는 휴대용 영사기, 라디오 등 일련의 비품이 필요하다. 취주악단도 필요하다.

무기수리공장에 대해 논의하다. 나는 이것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

군 정치교육 프로그램에 대해 논의하다.

남조선 정체정세 대해 논의하다. 남조선에서 무장 대오들이 탈주하고 있다. 그들에게 일자리를 주선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무장 해제시켜 조사하고 잠시 동안 붙잡고 있다가 남조선으로 귀환시키거나 혹은 억류하라고 답변하다. 이들에게 무엇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급양? 돈?

남조선을 위한 지하신문의 발행에 대해 논의하다. 임시적으로 발행이 중지되었다.


1947년 1월 5일

휴일, 로마넨꼬, 김일성과 함께 객차에 머물다. 저녁때 영화 '적들', '석화'를 보다. 좋은 영화들이다.


1947년 1월 6일

공항에서 로마넨꼬와 김일성을 전송하다. 김일성과 대화하는 동안 대회에서 보고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다.

호도르꼬프로부터 전보가 오다. 나를 위해 1월 20일 보로비하 여행권이 준비되어 있다고 알려오다.

후르소프에게 전화하다.

조선인에게 군복 제품을 판매하는 것에 동의한다.

모스크바에서 군복을 긴급히 재봉하게 하다.

북조선대학에 농업용구를 양도하다. 북조선에 소련제 병원차 1대를 제공하는 것에 동의하다.


1947년 1월 7일

솔라호프와 꼴초프에게 조선과 만주의 주요 군사도로들을 촬영하여 영화필름에 담는 문제를 숙고하라고 지시하다.

로마넨꼬가 보고하다. 인민위원회 회의가 개최되다. 선거 실시에 대한 결정서를 채택하고, 중앙선거위원회를 조직하다. 김일성이 군수 문제로 성진에 있는 군부대에 4일간 다녀올 비행기를 요청하고 있다.

메레츠꼬프가 모스크바에서 전화하다. 요동반도의 민정청 문제에 대한 1945년 12월 암호문을 보내줄 것을 요청하다. 불가닌이 그에게 내 건강 상태에 대해 물어 보았고, 치료를 위해 휴가가 필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불가닌은 나와 직접 전화로 통화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1947년 1월 8일

레베제프를 접견하다. 그의 조선 파견과 사업 착수 절차에 대해 논의하다.

로마넨꼬가 김일성의 성진 방문용 비행기를 요청하다. 이영 등의 반대파 그룹들과 기타 지방할거주의적 활동가들의 로동당 영입 문제를 제기하다. 반대파 주요 지도자들의 로동당 영입을 금지시키다. 지방할거주의자들의 경우에는 개별적으로 영입시키게 하다. 개인적으로 일정 기간 당내에서 지도적 지위를 맡는 것을 금지하는 조건으로 영입시키거나, 영입 자체를 금지시키게 하다. 평당원들도 개인적으로 영입시키게 하다. 로마넨꼬는 북조선의 몇몇 지도자들이 반대파들을 영입할 준비를 하고 있는데, 이는 아마도 좋지 않은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다.

그비쉬아니에게 전화하다. 여름에 소련 극동지역에서 어부로 일하는 조선인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불해 줄 것을 요청하다.

출처 : 펜앤드마이크(http://www.pennmik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