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유장군 유적지 [申劉 將軍 遺蹟地]답사
20141230
위치 :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남계리
1982년 8월 4일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유적지
1685년(효종 9) 2차 나선정벌군을 이끌고 흑룡강 부근에서 러시아군을 물리친 공적을 기림.
약목면 소재지에서 두만지로 가다보면 두만지 200~300m 못 미쳐 길 오른쪽에 있다.
개요 : 1982년 8월에 경상북도 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된 곳으로 조선 효종 때 무신인 신유[1619~1680]장군을 모신 사당이다. 신유 장군은 약목면 복성리 출신으로 1658년(효종 9) 청국의 원병 요청으로 당시 함경북도의 병마우후로서 제2차 나선정벌의 영장으로 북병영의 정예 포수 2백여 명을 주축으로, 총병력 265명을 이끌고 만주의 헤이룽강까지 출병하여 우수한 전투 능력을 발휘하여 남하하는 러시아의 스테파노프 부대를 격파함으로써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1680년(숙종 6)에 장군이 62세로 생을 마감하자 왕이 제문을 내리고 예관을 보내 제사하게 하였다. 그 후 약목면 남계리 숭무사에 제향하고 경내에 신도비를 세웠는데 판서 이현일이 비문을 짓고, 글씨는 교리 이동적이 전액하고 이재익이 음기를 썼으나 6·25전쟁 때 포격으로 파손되었다. 그 후 고쳐 세운 비석의 글씨는 이상건이 썼다. 묘소는 숭무사 뒷산인 봉명산 중턱에 있으며 매년 음력 정월 15일에 향사(享祀)하고, 3월에는 후손들이 추모제를 올리고 있다. 장군의 유물로는 교지 35장, 논서 6장, 교서 1장, 사제문 1장, 부인교지 1장, 분재기 1통, 간찰 1통이 있다. 사당과 경역은 1979~1981년에 보수·정화하였다.
신유 장군의 사당을 중심으로 신도비각, 내·외삼문 등으로 이루어진 유적지이다. 외삼문인 북정문(北征門)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면 신도비각과 존성재 건물이 나오고 내삼문인 선위문(宣威門)을 지나면 신유 장군의 영정과 위패가 봉안된 사당인 숭무사(崇武祠)가 있다.
신유장군과 2차 나선정벌
나선정벌[羅禪征伐]
조선 효종 때 연해주 흑룡강 방면으로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조선군사(총수병)가 청나라 군사와 함께 정벌한 일.
나선(羅禪)은 러시아(Russia)를 지칭한다. 1651년(효종 2) 러시아인들은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는 흑룡강(黑龍江) 일대에 진출하여 성을 쌓고 곡물과 광물자원 등을 획득하기 위한 경제활동을 전개하면서 청나라와 충돌하게 되었다. 러시아인들은 그 활동 범위를 점차 넓혀 우수리강 하구를 지나 송화강(松花江) 방면으로 내려왔고, 이에 대항하여 청나라는 군사를 동원하여 격퇴하려 하였다. 그러나 청나라 군이 총포로 무장한 러시아인들에게 계속 연패하였고, 1653년 러시아는 이 지역의 경략을 국가 목표로 삼았다.
청은 남하하는 러시아 세력을 격퇴하려 하였으나 무기 수준에서 낙후되어 불가능함을 알고, 임진왜란 이후 조총을 사용하는 조선에 총수병을 요청하였다(1654, 효종 5). 조선에서는 함경도 병마우후 변급(邊岌)에게 조총군 100명과 초관(哨官) 50여 명을 주어 지원군으로 파견하였다. 이들은 모란강(무단장 牧丹江) 상류지역의 영고탑(寧古塔/寧安)에 이르러 명안달리(明安達哩)가 이끄는 청군 3천여 명과 합세하여 북상하다가 혼동강(混同江, 송화강 중류 지점)상에서 러시아군을 만나 교전하였다(4월 28일). 결과 7일만에 적군을 패퇴시키고 조선군은 6월에 본국 개선하였다. 청은 조선 총수의 위력을 처음 경험하였다. 이것이 제1차 나선정벌이다.
그 후에도 청나라는 단독으로 러시아군 거점을 공격하였으나 실패하고, 다시 조선에 총수(銃手)의 파견을 요청하였다(1658, 효종 9). 조선은 혜산 첨사 신유(申瀏)에게 총군 200명과 초관 60여명을 주어 다시 파견하였다. 신유는 영고탑에서 사이호달(沙爾瑚達)이 이끄는 청나라 군대와 합류하여 북상하였고, 흑룡강과 송화강이 만나는 지점에서 '스테파노프'의 러시아 군사와 접전을 벌였다(6월 10일). 10여 척의 배를 앞세우고 공격해 오는 러시아군에 총과 화전(火箭)으로 맞서 싸워 대승을 거두었다. 이 전투에서 스테파노프를 포함하여 270여 명이 전사하였고 잔당 모두 패퇴 전멸하였다. 이것이 제2차 나선정벌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나선정벌 [羅禪征伐]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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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급장군과 1차 나선정벌
변급[邊岌]
조선 중기의 무신. 나선정벌에 출전하여 러시아군을 크게 격파하였다. 전라도 수군절도사, 충홍도 수군절도사를 지냈다.
생몰연대 : 미상
국적 : 조선
활동분야 : 군사
주요업적 : 1차 나선(러시아)정벌
시대 : 조선시대(인조, 효종)
변급의 출생과 집안 내력에 관해 알려진 바가 없다. 1654년(효종 5) 함경도 병마우후(咸鏡道兵馬虞候)로 근무하였는데 당시 청나라는 흑룡강을 따라 남하하는 러시아군을 막기 위해 조선의 원병을 요청하였다. 조선에서는 변급을 영장(領將)으로 임명하여 청나라 군사를 도와 나선정벌(羅禪征伐)에 출전하게 하였으며, 변급은 조총군(鳥銃軍) 150여 명을 거느리고 두만강을 건너갔다. 중국 헤이룽장성 영고탑(寧古塔:寧安)에서 청군과 합류하여 후통강(厚通江:混同江)에 이르렀을 때 러시아군을 맞아 총격전을 벌였다. 조청연합군은 러시아군에 비해 화기의 성능이 약해 고전을 했으며 배를 버리고 강변에 진지를 구축하고 총격전을 벌였다. 러시아군이 상륙하여 공격해오자 집중사격으로 큰 피해를 입혔다. 러시아군은 흑룡강 상류를 따라 철군하였으며 변급은 강변에 토성을 쌓아 방비케 하고 돌아왔으며 조선군은 단 1명의 전사자도 발생하지 않았다. 1차 나선정벌의 공로를 인정받았고 1656년 전라도 수군절도사(水軍節度使)가 되고, 현종이 즉위하자 충홍도(忠洪道) 수군절도사에 전임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변급 [邊岌]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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