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 국망산 보련산 20220823 화
충주 국망산 보련산 20220823 화 알핀
코스 : 둔터고개 - 국망산 - 하남고개 - 보련산 - 쇠바위봉 - 수룡폭포 -주차장 <10.5㎞/5:45>
국망산
해발 700m의 국망산은 기암절벽이 많고, 험준한 기세를 자랑한다.
어느 코스로 산행을 하더라도 로프를 잡고 오르거나 내려가는 구간이 자주 나온다.
그만큼 등고선이 촘촘한 산이어서 오르기는 어렵지만 조금만 올라가면 일대를 조망하는 들거움을 누릴 수 있다.
국망산 서쪽으로는 중부내륙고속도로가 지난다.
국망산 줄기는 고속도로를 건너 승대산으로 이어지는데, 둔터고개 부분에서 고속도로는 중원터널로 들어가 산줄기는 끊어지지 않았다.
<들날머리에 있는 국망산 등산안내도의 국망산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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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산 보련산 GPX 트랙 파일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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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은면과 앙성면의 경계에 위치한 둔터고개,
철문이 닫혀 있지만 열고 들어가고 닫고 지나가라는 내용이다.
철문을 열고 안쪽에 들어가면 등산안내도가 있다.
들머리가 산길로 들어가게 되어 있는데, 나는 임도로 고개 위까지 올라 등로에 붙었다.
나란히 가기에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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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 영향으로 운무에 가린 날씨에 조망은 전무하다.
예보에 이틀 전만 해도 비가 없었는데..
그래도 처서답게 기온은 조금 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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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로가 제법 가파르지만 거리가 짧다. 정상까지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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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산 정상의 이정표와 돌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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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산 정상(770m)
정상석이 둘이다. 충주시가 세운 것과 노은면 주민 자치회에서 세운 것이다.
주민들이 세운 돌에는 산 이름의 유래를 밝혔다.
'국망산의 유래
이 산의 본래 이름은 금방산(禽傍山)이었으나 임오군란 당시 고종의 황후였던 명성황후가 노은면 가신리 515번지 이도령의 초가에 피난을 와서 있는 동안 한양 소식이 궁금하여 매일 산마루에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 국태민안(國泰民安)을 빌었다 하여 국망산(국망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고 2006년2월에 세운 노은면 주민자치위원회 주관으로 세운 정상석의 뒷면에 새겨져 있다.
다른 한 개의 정상석은 2001년 9월 1일 충주시가 산림청 헬기의 도움으로 수송하여 세운 것이라고 이면에 밝혀 두었다.
네이버지도에서 해당 지번을 검색하니 명성황후 피난지를 표기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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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다음카카오지도에는 지번을 검색해서 확대해도 그 사실을 나타내지 않았다.
네이버지도를 배율을 줄여 범위를 확대해 보면서 명성황후의 동선을 짐작해 본다.
둔터고개에서 오르는 길은 가파르지만 위험하지는 않았다.
하남고개 방향으로 하산하는 길은 까칠하여 안전시설들이 있다.
이 바위가 하산길에 보이는 바위 중에 압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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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를 낮추어 한동안 편한 듯 가다가 다시 고도를 급히 떨어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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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덤이 보이면 거의 다 내려온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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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고개 도로에 내려서면 둔터고개 들머리에서 본 것과 같은 지도가 현위치 표시만 바뀌고 같은 게 있다.
하남고개에는 주차장이 있다.
저 주차장을 바라보면서 조금 더 올라가면 '하남고개 해발 340m'라는 도로 표지판이 있다.
내려와서 다시 보련산을 오른다.
날씨 때문에 보련산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없지는 않았지만 언제 다시 예까지 오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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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고개도 역시 노은면과 앙성면의 경계다.
해발고도는 340m
하남고개에 있는 보련산 등산안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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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망산은 둔터고개에서 1.2㎞였는데, 보련산은 들머리에서 2.5㎞ 거리에 있다.
오르다가 좌측 해주오씨 묘역 부근에서 요기를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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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 철탑이 보이는 곳에 이정표가 있고 임도를 벗어나 산길로 접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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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안전 위치 표지가 많다.
하남고개 출발하여 B팀으로 오른 몇 명이 빗길에 험로를 포기하고 되돌아 내려오는 이들을 만났다.
조망이 뛰어난 장소일 텐데, 운무만 바라보고 지난다.
굴, 위쪽에 있는 것은 짐승들이 비나 피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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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측 사진은 0.5배율로 찍어 넓은 곳을 잡았다.
바로 아래의 굴은 경사로에 큰 바위가 만든 관통된 굴이다.
짐승들의 통로가 될 수도 있겠다.
크기가 약간 크니 사람도 가능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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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표지가 유독 많은 코스라 지친 듯이 걸터 앉은 P님, 그래도 완주의 즐거움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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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련산에는 자주조희풀이 간간이 보인다.
보련산 정상에서는 마타리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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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의 이정표, 옆에는 쇠바위봉까지 1.2㎞라는 안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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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련산 정상석과 삼각점, 뒷면에 보련산의 유래, 옛 시멘트 기둥의 보련산 표지.
보련산(764m)의 유래
삼한시대 홀어머니 슬하에 보련이라는 딸과 장미라는 아들 남매가 살았다.
두 남매는 힘이 천하장사였는데 한 집에서 두 장수가 나면 큰 난리가 난다는 말에
어머니는 할 수 없이 남매에게 성 쌓기 내기를 하여 지는 자는 스스로 자결하도록 권하였다.
날을 택하여 보련은 노은에서 장미는 가금에서 축성을 시작하였는데
어머니는 아들 장미를 동정하여 딸 보련의 시간을 지연시키고자 보련에게 떡을 갖다주며 먹을 것을 권하자
보련은 감사히 떡을 먹고 축성을 서둘렀으나
장미가 먼저 성을 완성하여 만세를 부르자 이제야 어머니의 의도를 알고 집을 떠났다고 한다.
이때 보련이 쌓은 성이 보련산성이고 산 이름도 여기서 기인하여 보련산(寶蓮山)이라 부르게 되었다.
보련산의 명소로 수룡리 천용마을 뒤 장엄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삼단폭포인 수룡폭포가 있다.
<노은면 주민자치위원회, 2006년 2월>
남매의 성쌓기에서 항상 여동생이 어머니가 주는 음식으로 지게 되어 있다.
여기 보련산의 이야기가 그렇고,
예산의 봉수산의 임존성 축성 이야기에 나오는 묘순이의 희생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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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련산 정상에는 전망대가 잘 만들어져 있지만 오늘은 비 때문에 시계 제로다.
그런데 의자는 없네...
소바위봉으로 가는 능선은 한참이나 고도를 낮추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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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조희풀(미나리아재비과의 갈잎떨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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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바위봉 전의 성암고개에서 군락을 이룬 자주조희풀
자주조희풀(미나리아재비과의 갈잎떨기나무)은 이름만 풀이지 나무다.
병조희풀과 닮았지만 꽃이 다르게 생겼다.
병조희풀도 나무, 병조희풀의 꽃은 병모양으로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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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바위봉(591.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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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밥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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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바위봉을 지난 후에는 중요한 갈림길마다 수룡폭포 안내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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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들리던 매미소리 대신 물소리가 들린다. 곧 폭포가 나타나다. 전망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비온 뒤라 물이 세차게 흐른다.
삼단의 수룡폭포, 전망대에서는 상부 2단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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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룡계곡에서 땀에 젖은 양말을 바꿔 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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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 시간보다 약간 늦었다.
경상도의 관문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귀가한 시간은 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