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산 병영성지 & 고분군 20211201 수
경산 병영 성지 & 고분군 20211201 수 솔로(R)
이동 경로 : [0700 Ex - 0715 화명역 - 0815 경산역 -- 장산중 정류소/918번 탑승 -- 경산 윤성 1차 A하차] --- 선화리 병영 성지(74m)/진량읍 선화리 948 → 내리 병영 성지/압량읍 내리 389 → 경산 병영 유적/압량읍 압량리 179 → 부적리 고분군/압량읍 부적리 331 → 조영동 고분군/압량읍 조영동 556 → 임당동 고분군/경산시 임당동 676-1 --- [영남대 앞 840번 버스 타고 → 경산역 앞 국민건강보험공단 하차 -- 식사 후 경산역 -구포역 - 귀가 16:05]
이동 경로를 정한 기준은 단지 거리가 먼 곳을 먼저 보고 가까운 곳으로 온다는 방침이었다.
병영 성지가 세 곳이 먼저 있고, 고분군은 임당리 부근에 모여 있는 셈이다.
전체 거리가 약 10km 정도로 도보에 알맞은 코스가 되었다.
아래 지도에 표시된 트랙은 실제로 지나간 코스로, 선화리에서 내리로 가는 길은 약간의 수정이 필요하다.
선화리에서 내리로 이동하는 중에 저수지 둑길을 가려고 했는데, 공장 부지가 있어 진입이 어려웠다.
GPX 트랙 파일 : 일부 수정이 필요한 트랙입니다.
918번 버스의 배차 시간이 12~20분이다.
경산시의 버스정보시스템은 이 정보를 정확하게 제공하지 못한 것 같다.
대구시, 울산시, 창원시 등은 제법 상세하게 알려주는데.
하긴 울산의 언양면 방향으로 운행하는 버스는 보니 아예 GPS를 켜지 않아 정보제공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었지만
그래서 이긴 하겠지만 곧 오는 차를 안내하지 못하고 한 시간이나 늦은 다음 차를 안내하고 있는 걸 보았다.
관리하는 팀은 GPS를 켜지 않은 차에 대하여 주의를 촉구하는 정도라도 되었으면 좋겠다.
하기야 IT기술 정보를 고의로 왜곡하거나 은닉하려는 경우도 없지 않을 테지만...
너무 간단하면서도 잘 나타나지 않는 특징이 있으니.
선화리 병영 성지(74m)/진량읍 선화리 948
이 안내판의 내용은 세 곳에 모두 같은 내용이며, 글머리에 세 곳의 주소가 모두 적혀 있다.
선화리 유적은 구릉 말단부에 높이 10m 토축의 원형광장(지름 80m)을 구축하고 그 북쪽에 치우쳐 높이 2m, 윗면 지름 13M의 토루를 쌓았다. 이 유적은 자연 구릉상에 얼마간 토축이 이루어져 외견상 토축처럼 보이지만 토성으로 보기에는 소규모이고, 윗면이 평탄하여 광장으로 되어 있다.
선화리 유적 표석
선화리 유적에서 볼 때 자북방위각 330도 위치에 약 19km 거리에 팔공산의 정상인 비로봉이다.
비로봉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5도, 9km에 환성산, 여기서 다시 10도, 7km 정도에 초례봉이다.
초례봉은 정확하게 북서쪽에 해당하는 셈이다.
지금은 직선거리로 900m 정도의 가까운 거리에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며, 경산 IC가 있어서 교통이 매우 편한 곳이다.
경산역에서 버스로도 30분 정도면 충분히 도착하는 거리에 있다.
경주까지는 40여 km의 거리다.
선화리에서 이동하는 동안 지나는 저수지 '입지'다.
저수지의 동쪽 부분에는 넓은 연밭이 조성되어 있다.
입지를 지나면서 '침법지(바느리못)'의 둑길을 가려고 했는데 침법지 주변에 공장들이 길을 막았다.
'입지'를 지나면서 방향을 남서쪽으로 바꾸어야 한다.
아래 지도를 참고
바느리못(등산지도의 침법지) 방향을 피하고 붉은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해야...
제방으로 오를까 하고 접근했으나 수로의 폭과 깊이가 예상을 벗어나는 크기다.
논바닥을 진행하지만 끝부분에는 물이 많이 고였다.
다행히 지난밤의 기온이 영하로 떨어져 얼음이 얼어 간신히 통과했다.
내리 병영 성지/압량읍 내리 389
진량읍 선화리에서 이동하여 압량읍 내리로 들어가는 도로 입구의 내리 마을 표지석
이 도로는 보행자를 보호할만한 안전장치가 없다.
긍구정(肯構亭)은 雲川 金漢孫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김해 김 씨 삼현파의 재사, 내리 공단지역의 산기슭에 남향하여 위치.
내리 회관 앞을 지난다.
고도를 약간 높이는 안부에 내리 병영 성지 입구가 있다.
넓지 않은 면적에 울타리가 있지만 옛날에는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었을 듯하다.
내부에 낙엽은 쌓였지만 길은 잘 정비되어 있고 울타리도 완벽하게 구역을 잡았다.
내리 유적은 구릉 자연면에 약간의 토루를 쌓았는데 토루의 동남 부분이 크게 파괴되어 토루의 모습을 잃고 있다.
내리 유적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는 이동..
20분이 지나면 압량리 경로당이다.
경산 병영 유적/압량읍 압량리 179
한쪽 옆에 작은 토산 같은 게 있는 것은 모두 지휘대인 것 같다.
세 곳의 공통점이다.
1980년대 기념 마을 숲으로 1986.4 조성했다는 기념비가 병영 성지 하단부에 세워져 있다.
그 이전에는 숲이 없는 황량한 터였던가.
세 병영성지 중에서 가장 넓은 터를 확보. 이곳으로 들어오는 입구 도로변에 김유신 장군 화랑 훈련장이라는 안내가 있다.
압량 유적은 얕은 구릉 위에 높이 7m로 토축하고 윗면을 평탄하게 하여 원형 광장을 축조한 것으로 둘레가 300m가량 되며 동남쪽에 치우쳐 높이 10m의 토루가 있다.
좌측 소나무가 있는 곳이 부적리 고분군이 있는 곳이다.
앞에 있는 이 트랙터가 벼를 거뒤들이고, 볏단을 둥글게 모아 둥근 통 모양으로 만드는 기구다.
부적리 고분군/압량읍 부적리 331
부적리 고분군은 세 고분군 중에서 가장 정비가 되지 않은 듯하다.
조영동 고분군/압량읍 조영동 556
조영동 고분군이 가장 크고 정비가 잘 되었다.
임당 토성 / 바로 옆에 고분군이 있다.
임당 토성은 1995년에 발굴, 임당 고분군 바로 북쪽에 있다.
임당동 고분군/경산시 임당동 676-1
경산 병영 유적[慶山 兵營遺蹟]
사적 지정일 : 1971년 4월 28일(사적 제218호)
소재지 : 경북 경산시 압량면 압량리 179번지
경북 경산시 압량면 내리 389번지
경북 경산시 진량읍 선화리 948번지
시대 : 신라
지정면적 : 41,174㎡
경산 병영 유적은 김유신이 압량주의 군주로 있을 당시 군사 훈련장이었다고 전해지는 3곳의 토성 모양 축조물을 합하여 압량 유적이라 한다.
이들은 각각 경산시 압량면 압량리와 내리, 그리고 진량읍 선화리에 위치하는데, 서로의 위치가 1.3~3.2km 떨어져 삼각형의 배치상을 보이고 있다.
압량 유적은 금호강 이남의 넓은 압량벌 중심지대에 입지하여, 각각 압량벌을 조망할 수 있는 야트막한 구릉 선단부에 위치하는 것이 공통점이다.
압량 유적은 얕은 구릉 위에 높이 7m로 토축하고 윗면을 평탄하게 하여 원형 광장을 축조한 것으로 둘레가 300m가량 되며 동남쪽에 치우쳐 높이 10m의 토루가 있다.
내리 유적은 구릉 자연면에 약간의 토루를 쌓았는데 토루의 동남 부분이 크게 파괴되어 토루의 모습을 잃고 있다.
선화리 유적은 구릉 말단부에 높이 10m 토축의 원형광장(지름 80m)을 구축하고 그 북쪽에 치우쳐 높이 2m, 윗면 지름 13M의 토루를 쌓았다. 이 유적은 자연 구릉상에 얼마간 토축이 이루어져 외견상 토축처럼 보이지만 토성으로 보기에는 소규모이고, 윗면이 평탄하여 광장으로 되어 있다.
모두 광장 한복판에 치우쳐 토루가 있다는 점에서 장대(將臺)가 있는 군사훈련장으로 추정된다.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慶山 林堂洞과 造永洞 古墳群]
경북 경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초기의 무덤들. 사적 제516호이다.
경북 경산시 임당동 676-1, 조영동 556, 부적리 330
크기 : 60,260㎡
경북 경산시에 있는 삼국시대 초기의 고분군이다. 본래 사적 300호의 경산 임당동 고분군(慶山林堂洞古墳群)과 사적 331호의 경산 조영동 고분군(慶山造永洞古墳群)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인접 지역에 있는 두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6호로 재지정하였다.
경산시 임당동의 고분군은 경산 지역에서 발굴된 고분군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 임당동 2호 고분에서 고리 큰 칼[環頭大刀] ·금귀걸이 ·은제 허리띠 등이 도굴되어 국외로 팔려가다가 당국에 적발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영남대학 박물관이 발굴 조사한 결과, 옹관 2개를 포함하여 모두 15개 무덤이 확인되었다. 무덤은 으뜸 덧널[主槨]과 딸린 덧널[副槨]로 이루어졌는데, 으뜸 덧널에서는 금동관(金銅冠) 조각, 순금제 귀고리, 금동제의 귀고리 ·신발 ·고리 큰 칼 ·호록, 철제 큰 칼, 철모, 삼지창, 각종 토기, 인골 등이, 딸린 덧널에서는 일상 도구 ·음식 그릇 등 모두 약 2천 점이 출토되었다. 유물은 고분 주인공이 지배자의 신분임을 나타내며, 그때의 사회 ·문화 ·경제 ·기술 등을 알 수 있게 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특히, 삼국사기에 기록되어있는 고대의 압독국(押督國:押梁國)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 경산시 중앙에는 원래 압독국의 수도인 압량면(押梁面)이 있고, 이 고분의 위치도 압량면에 속해 있기 때문이다. 신라와 가야의 특징을 모두 나타내는 유물 및 묘의 구조로 보아, 당시 문화의 상호작용과 교류를 짐작할 수 있다.
임당동의 고분과 함께 조영동을 중심으로 압량면(押梁面) 부적리(夫迪里)에 걸쳐 있는 낮고 평탄한 구릉지대에 수십 기(基)의 고분이 모여 있다. 그러나 이 지역의 분구(墳丘)는 거의 자연 유실과 경작지 조성 등으로 없어지고 몇 기(基)만 남아 있다. 남아 있는 분구의 형태는 원형이며, C지역 C1호분의 경우는 직경 18.5m, 높이 1.8m, E지역 E1호분은 직경 15.4m~15.7m, 높이 3m이며 분구의 기저부(基底部)에는 호석(護石)이 돌려 있다. 내부구조에는 독널[甕棺] ·구덩식 돌덧널[ 竪穴式石槨] ·굴식 돌방[橫穴式石室] 등이 있으나 구덩식 돌덧널이 주류를 이룬다. 3차에 걸친 발굴조사 결과 영락 장식 굽다리접시[瓔珞裝飾高杯] ·목항아리[長頸壺] ·시루 등의 토기, 금동관(金銅冠) ·금제관식(金製冠飾) ·목걸이 ·귀고리 ·신발[飾履] 등의 장신구, 안장 등 각종 마구(馬具), 합(盒) ·다리미 등의 청동기, 어망추 ·방추차 등의 토제품이 다수 출토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경산 임당동과 조영동 고분군 [慶山 林堂洞과 造永洞 古墳群] (두산백과)
압독국[押督國]
경상북도 경산시 압량(押梁) 지역에 있던 삼국시대 초기 소국.
압량국(押梁國)이라고도 하며, 경상북도 경산지역에 있었던 고대국가이다.
102년(파사이사금 23) 사로국(斯盧國:신라)에 투항하였다가, 146년(일성이사금 13) 10월에 다시 사로국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켰으나 곧 진압되어 주민들이 모두 사로국 남쪽으로 강제 사민(徙民)되었다.
압독국은 사로국이 진한(辰韓) 연맹체의 맹주로서 주변의 다른 나라들과 병존할 때에는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있었으나, 사로국이 주변의 소국들을 병합시키며 세력을 확대해 나가는 과정에서 독립된 정치세력을 유지하지 못한 채 소멸되었다.
경산 압량 지역은 백제의 침입으로부터 경주를 보호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신라 중고기(中古期)에 군사적 거점에 설치하는 주(州)가 설치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압독국 [押督國] (두산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