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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 옥포대첩공원+맹종죽순길,용등산,용등산둘레길 20210522 토

benel_jt 2021. 5. 22. 21:25

거제 옥포대첩공원+맹종죽순길,용등산,용등산둘레길 20210522 토 솔로(R&L,K)

 

코스 : 옥포대첩기념공원---->사환마을회관-모리고개-임도둘레길-정자-전망데크-정상갈림길-159.9m정상/정자-정상갈림길-모리고개-임도정자/용등산갈림길-용등산정상(231m)/정자-임도정자/용등산갈림길-임도끝/성동저수지-성동마을회관-성동정류소-송년공묘원,송년재-사환마을회관 <10.2km/4:10(옥포대첩기념공원 50분 별도)>

 

용등산 GPX 트랙 파일 첨부 :

거제_용등산_2021-05-22_10-11-12.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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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거제하청면맹종죽길용등산20210522.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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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22 용등산 맹종죽길.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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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등산 기준 서쪽이 가조도, 그 너머 통영의 광도면과 고성의 거류면이다, 그 북으로 동해면. 회화면, 진전,진북,진동면

그 동쪽으로는 창원의 구산면, 마산만, 진해 쪽이지만 칠천도의 옥녀봉에 가려 조망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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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포해전[玉浦海戰]

1592년(선조 25) 5월 7일 옥포(지금의 경상남도 거제시 옥포동) 앞바다에서 이순신이 지휘하는 조선 수군이 일본의 도도 다카토라[藤堂高虎]의 함대를 무찌른 해전이다.

임진왜란 초기, 왜군의 기세에 밀려 많은 군사를 잃었던 경상우수사(慶尙右水使) 원균(元均)은 전라·충청 지방에 이르는 해로(海路)의 목줄인 옥포의 중요성을 뒤늦게 깨닫고 전라좌수사 이순신에게 구원을 요청하였다. 이에 이순신은 휘하의 판옥선(板屋船) 24척, 협선(挾船) 15척, 포작선(鮑作船) 46척을 이끌고 당포 앞바다에서 합세하였다. 이때 원균은 그가 거느리고 있던 70여 척의 전선을 모두 잃고 겨우 6척(판옥선 4척, 협선 2척)으로 합세하였다.

5월 7일 낮 12시경 조선 함대는 옥포 포구에 정박하고 있는 적선 50여 척을 발견하고 이를 동서로 포위해서 포구를 빠져나오려는 적선들에게 맹렬히 포격을 가해 치열한 싸움이 벌어졌다.

이 싸움의 결과 아군은 별 피해 없이 적선 26척을 격침하는 큰 전과를 올려 최초의 해전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이어 합포(合浦:경남 마산) 앞바다에서 적선 5척, 다음날 적진포(赤珍浦 : 통영시 광도면)에서 적선 11척을 불태우는 전과를 올렸다.
[네이버 지식백과] 옥포해전 [玉浦海戰] (두산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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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부산진과 동래성을 점령한 왜적이 계속 북상하자, 이에 당황해 남해현 앞바다에 피신해 있던 경상우수사 원균(元均)은 율포만호(栗浦萬戶) 이영남(李英男)을 이순신에게 보내어 적의 상황을 알리고 구원을 요청하였다.

전라좌수사 이순신은 휘하 장수와 의논한 끝에 출전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조정에 알렸다. 원균에게는 양도의 수군이 집결할 장소를 약속하였다.

조정의 출전 명령을 받은 이순신은 본영(本營: 지금의 여수) 앞바다에 집결한 휘하 장병과 전선을 점검한 뒤 전대(戰隊)를 편성하였다. 전선(戰船) 24척, 협선(挾船) 15척, 포작선(鮑作船) 46척, 모두 85척이었다.

5월 4일 이순신은 본영을 출발해 소비포(所非浦: 고성군 하일면 춘암리)에서 하룻밤을 자고 당포 앞바다에 이르렀다. 그 곳에서 원균의 전선 4척, 협선 2척과 합세해 송미포(松未浦: 거제시 동부면)에서 작전을 짰다.

이곳에서 하룻밤을 잔 뒤 5월 7일 전 함대가 동시에 출항해 옥포 근해에 이르자 척후장(斥候將)인 사도첨사(蛇渡僉使) 김완(金浣)이 적을 발견했다는 신호를 보냈다.

이 때 도도[藤堂高虎]가 지휘하던 왜선 30여 척은 홍백기를 달고 해안에 흩어져 있고, 왜적들은 포구로 들어가 재물을 노략질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아군의 기습공격을 받았다. 이에 왜적은 당황하여 6척을 앞세워 해안을 따라 도주하기 시작하였다.

아군은 이를 포위하고 맹렬하게 포격을 가해 왜선 26척을 격파하였다. 그리고 왜적에게 포로로 잡힌 3명을 구출해 임진왜란 중 해전에서 첫 승리를 거두었다. 이날 전투에서 탈출에 성공한 왜선은 몇 척에 불과하였다. 미처 배를 타지 못한 왜적은 육지로 달아났다.

아군은 달아나는 왜적을 추격해 영등포(永登浦: 거제시 장목면)를 거쳐 합포(合浦: 창원시 마산합포구)에서 5척, 다음 날 적진포(赤珍浦: 통영시 광도면)에서 11척을 각각 불태워 무찌르고 9일 본영으로 돌아왔다. 이순신은 이 전공으로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의 관계를 받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옥포해전 [玉浦海戰]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옥포대첩기념공원의 기념관 건물과 좌측의 사당 일부분, 우측의 기념탑

사당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 좌측에는 판옥선의 모형, 우측에는 거북선의 모형이 있다.

 

병사들의 복장

충무공 영정

양지암, 당시 왜군 초소가 있어 진입이 어려웠으나 옥포해전 당시에 해무로 인해 왜군 초병이 늦게 발견했다고 한다.

하늘도 도왔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양지암의 모형

옥포루

옥포루, 망원경 두 개가 있다. 올라가서 보아야

옥포대첩기념탑, 옥포루에서 바라본 모습

기념탑 옆에서 보는 옥포만과 대우조선

중앙의 옥녀봉 556m

옥포대첩기념공원 옥포루에서 보는 옥포만

 

승용차의 진입오류로 옥포해전기념공원을 먼저 답사하고는

사환마을회관으로 이동하였다.

 

사환마을회관 앞에 주차를 하고,

국제신문이 안내한 트랙을 따라 시작한다.

'사환마을은 용등산 밑에 위치하여 본래 뱀곶이(뱀고지)라 하였는데, 임진왜란을 끝내고 선무원종이등공신 김옥춘이 을사년(1605)에 돌아왔다고 하여 사환(巳還)이라 불림'이라고 알렸는데, 뱀사巳의 의미가 둘이다.

그 하나는 뱀(巳)고지며, 둘은 을사년의 巳다. 어느 쪽이든 좋은 쪽을 선택한 것이리라.

 

마을회관에 안내된 이름은 '김옥춘'이다.

그런데 길건너편에 있는 재실과 사당, 그리고 묘원이 있는데 그 묘원의 안내판에 적힌 이름의 끝자가 다르다.

마을회관에는 봄춘(春)을 썼고, 송년공 묘원 안내판에는 있을 재(在)를 썼는데, 같은 사건의 다른 분일까?

어느 쪽인가 하나는 잘못 적은 것일까?

아니면 개명한 것일까?

 

앞에 누른 빛의 숲은 모두 대숲이라고 한다.

뒤로 보이는 산은 솔병산

들머리부터 시멘트 포장 임도가 이어진다.

맹종죽순길의 임도는 대나무 숲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 온다. 도심에서 듣기 어렵던 뻐꾹새소리가 따라다니는 듯하다.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에서 직경 20cm 정도라는 정보에 굵은대에 관심을 가지고 살폈다.

가장 굵다고 본 것으로는 13cm 정도가 눈에 띄었다.

가장 굵었다고 생각하는 대가 약 13cm 정도였다. 이 사진은 다른 카메라가 약간 우측에서 촬영한 것.

사진의 우측 부분은 별도로 촬영한 것으로 다른 나무와 구별이 되는 정도다.

 

7cm 내외의 대나무가 많이 보여 둘레의 길이를 말한 것인가 착각하기도 했다.

 

첫번째 만난 임도의 쉼터다. 부근에 보니 '여기까지 공원구역입니다. 되돌아가세요'라는 안내가 있었다.

이 공원은 입장료가 있었고, 사설인 듯하다.

임도의 아랫부분은 공원답게 시설들이 있었다.

우리 트랙은 공원의 입장이 아니라 임도를 따르는 둘레길이라 ...

임도 쉼터에서 조금 지나니 전망데크가 있다.

약간 우측으로 칠천교, 건너 편 섬은 칠천도, 높은 곳은 옥녀봉

 

여기서 상당한 시간을 보내며 주변을 조망하는데

칠천도가 가려서 그 뒷부분은 볼수가 없고

주로 서쪽 방향이 약간 보인다.

 

기와지붕처럼 보이며 M자형으로 약간 퍼진 곳은 섬이 아니고

거제본섬에 딸린 천마산으로  좌측봉은 151m, 우측봉은 149m이다.

그 뒤로 좌우에 펼쳐진 곳이 가조도이며, 우측의 산이 가조도의 옥녀봉333m이다.

가운데 바다가 열린 우측의 칠천도 부분의 좌측 끝 산은 화전산164m

가조도 옥녀봉의 우측으로 붙어서 보이는 산이 구절산,

그 우측으로는 진동 방향 정도까지 조망이 되는 듯하다.

 

임도전망대 아래의 공원시설이다.

 

맹종죽이란 무엇인가? 

 

호남죽(湖南竹), 죽순죽(竹筍竹), 일본죽(日本竹), 모죽(毛竹)이라고도 한다. 높이 10-20m, 지름 20cm 정도로 대나무 중 가장 굵다. 산지는 한반도 남부 지역으로 죽피에 흑갈색의 반점이 있는데다 윤기가 적으며 매우 단단하다. 탄력성이 적어 부러지기 쉬운 단점이 있어 주로 동공(洞空)을 그대로 사용하는 일이 많다. 필통이 그 대상이 되며, 속이 비고 밑둥이 굵기 때문에 사용에 편리한 점이 많아 표면에 음각이나 양각을 장식하여 쓴다.
[네이버 지식백과] 맹종죽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 용어사전), 2012.)

 

거제 맹족죽의 선구자 신용우 장로(1895-1960)의 이야기는 맹종죽테마공원에서는 구하기 어렵다.

 

신용우 거제 하청 출신(1895-1960)으로 거제 하청교회 장로.
죽순과 고구마의 할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농촌개발을 헌신적으로 이끈 선구자였다. 진주농업고등학교에서 새 영농법을 배워 고향인 거제 하청에 돌아와 경종의 다양화에 힘썼으며, 일본 산업시찰시 거제 기후에 적합한 맹종죽 세 그루를 가지고 귀국하여 두 그루의 생육과 재배에 성공하여 오늘날에는 하청면 일대의 야산을 푸른 대나무 숲으로 탈바꿈시켰으며 밤나무, 고구마, 포도 등의 품종개량과 재배확대를 통해 농촌의 자급자족 및 부흥에 앞장선 선도자였다.

 

 

 

여기까지 공원구역이고 다음 임도는 공원 밖이라고 한다.

159.9m 봉의 정상까지도 길이 잘 나 있다.

 

159.9m봉, 맹종죽순둘레길이 있는 산의 정상인 셈이다. 정자에서 서쪽으로 조망이 열린다.

 

이 지도에서 보듯 160▲ 방향의 서쪽으로 천마산, 그 우측으로 뒤에 가조도 옥녀봉이 위치하고 있다.

모리고개(임도사거리)

여기까지 159.9m봉 주변을 한바퀴 도는 셈이다.

 

계속 임도를 돌아 고도를 약간 높이면 정자쉼터가 있고

이정표가 있다. 정상까지 약 300m로 길이 잘 닦여 있다.

임도를 돌지 않고 반대편의 모리고개에서 올라가려고 보았는데

길이 정비되지 않고 거칠어 포기하고 트랙을 따랐다.

정상의 정자에서 쉬면서 반대편 길을 보았지만 잡목이 자라 길이 막혀 있었다.

돌복숭아 열매가 맺혀 있었다.

크기는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유리구슬 정도였다.

 

기대했던 조망은 둘레의 수목으로 완전히 막혔다.

 

노린재라 생각하고 사진을 찍으면서 검색하니 '섬노린재'다.

 

섬노린재나무 [비추천명 : 섬노린재]
◈ 학명 : Symplocos coreana (H.Lév.) Ohwi
◈ 분류군 : 노린재나무과 (Symplocaceae)
◈ 일어 : タンナサワフタギ
◈ 영문 : Korean sweetleaf
◐ 개화 : 5월
◐ 결실 : 6월
◐ 꽃색 : 흰색
◐ 분포 : 제주에 나며 일본에 분포한다.
◐ 형태 : 낙엽활엽 관목
◐ 생육환경 : 산지
◐ 크기 : 높이 3~5m
◐ 잎 : 어긋나기, 넓은 거꿀달걀모양, 길이 5~8cm, 나비 3~5cm, 끝은 꼬리처럼 길고 밑은 넓은 쐐기모양, 가장자리에 길고 뾰족한 톱니, 뒷면은 연한 녹색으로 맥 위에 털, 엽병은 길이 3~7mm이며 털이 있다.
◐ 꽃 : 꽃은 5~6월에 백색으로 피고 새 가지 끝에 원뿔모양꽃차례로 달리며 꽃차례는 길이 4~10cm. 꽃받침은 5열하고 꽃부리는 5개로 깊게 갈라지며 수술은 다수로 5군으로 나뉘고 화관보다 길다.
◐ 열매 : 핵과, 달걀모양, 9월에 남흥색으로 익는다.
◐ 줄기 : 가지는 회갈색, 작은 가지에 털이 없고 나무껍질은 엷은 조각으로 떨어진다.

 

임도삼거리, 용등산 정상에서 되돌아 내려가는 중...

성동저수지

 

버스길을 만났다.

데크가 끝나기까지 약 400m,

앞에 사환마을회관이 보인다.

처음에 보지 않고 갔던 안내판이다.

국제신문의 트랙은 이곳보다 옆길을 택한 것이다.

마을회관에서 조금 더 떨어진 이곳을 들머리로 잡은 이유가 있었다.

바로 다음에...

 

송년공 묘원 안내판, 김해김씨 종친회가 세운 안내판이다.

 

곽재우 등과 협력하여, 팔공산,화왕산에서 전공을 세웠다니 의병활동을 했다.

그래서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에서는 검색을 못했다.

 

삼척검이면 약 91cm의 장검이다.

다른 무장은 없었을까.

 

사환이라는 말에 돌아올 환(還)을 썼으니

입향조 송년공은 임란 전에 이미 이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한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남하'라는 말을 전투 상황에 기록한 것은 북쪽에서 거병을 했다는 뜻일까.

 

가선대부 김해김공의 묘

사환회관 원점회귀,

10.2km를 4시간 10분 걸렸다.

휴식과 조망의 시간이 엄청나게 걸린 것이다.

 

07:00 Ex
07:22 덕천동 합류
08:08-08:25 가덕휴게소
08:53-09:45 옥포대첩기념공원/관포에서 우로 나갈 길을 놓쳐 직진하는 바람에 여기를 먼저 들려 관람하고
10:12 사환마을회관 도착하여 주차, 산행 준비
10:33 모리고개
10:47 임도정자
10:54-11:00 임도전망데크
11:10 정상전망대 0.7km 입구
11:16-11:38 정상(160▲) 전망대/조망
11:45 정상전망대 0.7km 입구
11:49 그늘막 정자
11:59 모리고개
12:13 편백나무 쉼터
12:37 용등산입구 삼거리 임도 정자(용등산0.3km)
12:47-13:04 용등산 정상(230m), 정자
13:05 섬노린재나무
13:12 용등산입구 삼거리 임도 정자,
절개면에 밧줄이 보인다. 제석산이 직선거리 1.5km 정도에 있다.
13:42 산쪽으로 새로운 임도가 만들어지고 있다.
우리는 아래로 내려간다.
13:50 성동저수지 제방
13:59 성동경로당, 마을회관
14:08 성동정류소
14:14 사환마을 입석/맹종죽순체험길 안내판
14:15 송년공 묘원/송년재,현충사(顯忠祠)
14:20 사환마을 정류소/마을회관
16:00 화명동 도착/식사 후 귀가(1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