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 서생포만호진성, 서생포왜성, 용골산(용곡산), 용천북지맥,비옥산성 20201226 토
울산 서생포만호진성, 서생포왜성, 용골산(용곡산), 용천북지맥,비옥산성 20201226 토 솔로(K)
코스 : 남창역(기차)-서생교정류소(버스)//서생포만호진성입구-만호진성-화정마을회관,도로-서생포왜성입구정류소(도보)-서생표왜성<남문,창표사,천수대(천수각터)-장군샘>-고냉지채소밭-산불초소,통신탑-임도-용골산(용곡산)-임도-전파관리소앞 차도-청솔농원-삼거리-술마교(회야강변)-회야강,남창천합수지점 자전거다리(용천북지맥끝지점)-도로삼거리-디앤유커피(폐점)문 안으로 공터 거쳐 산길-497m봉,통신탑(KBS덕신TV중계소)-울산광역시립노인병원뒤산길(임도)-[매봉산정상800m]-비옥산성-삼각점(160m)-매봉산갈림길,여기서 우리는 남창중학교방향(예상보다 거리, 시간 단축됨)-중학교가 보이는 곳에서 길이 우측으로 역이 있는 방향으로 남, 도로에서 역까지 600m 정도-굴다리-남창역//<17km/5:20>
09:00 집에서 나감
09:21 화명역
10:41 남창역
10:53 715 버스탑승
11:07 서생교정류소 하차
11:10 서생포만호진성 입구 길 안내판
11:15 서생포만호진성(울산광역시기념물제35호)
11:25 서생교정류소/도보 이동
11:35 화정마을 경로당
11:42 성냥걸 안내판
11:45 서생포왜성 입구 길 안내판(0.5km)
11:49 왜성 동문
11:57 창표사,창표당
12:02 굴립주 건물터
12:09 내성 주출입구
12:24 천수대/천수각을 세운 자리
12:27 천수각 위치의 삼각점
12:29 장군수
12:34 등산로 집입
12:45 지하수펌프/임도/사유지 농장이 많음
12:46 [진하1.8, 서생포왜성.
0.62, 위곡3.3, 용리2.4, 간절곶5.6]
12:53 정상부의 너른 초지
13:05 산불초소, 산불감시시스템/승용차량이 올라옴(산화경방요원자가용)
13:10 용곡산하늘길(용리임도), 이정표
13:31 정상석 용곡산정상209m,(2009.2.6서생등산회 세움), 삼각점, 지도에는 용골산
13:41 임도, ←용곡산하늘길→
13:44 노변에 '공원구역' 표지/도로 곳곳에.
13:46 길 좌측으로 억새밭, 사유지 표지
13:48 길 우측 폐막사(축사?), 마당도 넓음
[←위곡1.6,간절곶5.6/↖서생포왜성2.5,스포츠파크3.2/술마2.7, 군도8호선1.2→]
13:56 전파관리소
13:59 위곡2길, 술마길 갈림삼거리
14:06 삼거리[울산전파관리소500m]
14:11 ┨字삼거리, 2차선도로 정상부
14:18 도로좌측 방사능측정장치
14:25 김해김씨내회문중세장산
14:30 도로변 에너지산단 오폐수,공업용수 관로부설공사중
14:39 내회버스정류소삼거리
14:43 회야강변자전거도로 만남,술마마을버스정류소
14:49 [←진하해수욕장3.5<자전거도로>덕신대교3.7→]
14:52 회야강배수지 앞/철새 군집
14:54 회야강전망휴게시설
14:56 남창천 횡단자전거다리
15:05 폐찾집 앞마당으로 등산길 찾아 들어감
15:25 통신안테나/난시청해소목적/영천북지맥▲97m
15:41 도로횡단
15:42 도로횡단후 요양보람병원안내판 우측 경사진 등로
16:01 [매봉산정상0.8→]
16:04 비옥산성(飛玉山城), 삼각점160m
16:07 성터에서 내려서는 침목계단
16:12 [←남창중학교0.7, 옹기마을0.9↘, 매봉산정상0.8→]
16:18 침목계단
16:20 좌측 아래로 남창중학교 보임
16:22 마을 첫집 앞마당길
16:24 지도에서 남창역까지 도보 이동 거리 600m정도 확인
16:25 동상리 상서마을 입석
16:26 철길 아래 굴다리
16:30 남창역/앱 모두 종료 <17km/5:20>
역에 들러 정리하고 다시 나가서 삼일의거기념탑, 남창옹기종기시장(재래시장), 남창구역사 돌아보고
17:48 남창역
19:06 화명역
19:21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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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달아 3회 연속 울산지역 탐방이다.
출발 방법도 동일하다.
아, 지난 번의 은월봉과 십리대숲길, 울산학성공원까지의 코스는 승용차량을 이용했다.
그건 이동이 많아 주차가 불편한 점이 있었다.
오늘의 경우는 귀가시간 예측에 돌아오는 열차까지 예약을 한 터라 약간 불안의 요소는 있었지만 크게 문제될 것은 없었다.
전 구간을 마치고도 약 1시간의 여유가 있었으니...
마지막의 외고산구역 방향의 하산 계획이 남창중학교 방향으로 짧아진 것이 아쉬운 점이기는 하나, 등산지도에 나타내지 않은 트랙을 하나 만들 수 있다는 점이 득이다.
대신에 빨리 마쳐 삼일의거기념비와 이 그면의 기록들을 통하여 이 지방의 삼일운동에 관한 역사를 얻었고, 폐역이 된 남창역 구 역사를 볼 수 있었던 점, 남창 재래시장인 옹기종기 시장은 장날은 아니지만 외양이라도 보고 왔으니 득이 아닐까.
오늘 미답으로 끝낸 외고산 지역은 숙제로 남긴다.
해변에 가까운 봉화산, 봉수산도 함께 뒷날을 기약해 본다.
서생포만호진성왜성비옥산성용골산GPX트랙 파일 첨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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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랙을 그릴 때는 정류소 바로 뒤의 임도로 갈 계획이었으나, 그 길로 하산하고, 안내를 따라 올라 갔다.
돌아 내려오는 길은 첫 부분이 약간 잡풀로 거칠다. 대숲만 통과하면 좋은 길이 있다.
정비가 좀 되었으면 어떨까.
올라가는 길도 길인지 아닌지 알 수가 없다.
서생포만호진성 (西生浦萬戶鎭城)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35호
소재지 : 울산 울주군 서생면 화정리 산68번지 일원
관리 : 울산광역시 울주군 문화관광과 052-204-0324
조선시대 전기 울산에는 서생포 만호진성, 염포진성, 개운포진성 등 세 곳의 수군진성(水軍鎭城)이 있었다. 진성(鎭城)은 국경 및 해안지대 등 국방상 중요한 곳에 쌓은 군사적 성격의 성을 가리킨다.
서생포 만호진성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세종실록지리지』등에서 ‘울산읍성을 밖에서 보호하는데, 만호는 3품이며 병선 20척, 군졸 767명이 성에 상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문헌기록을 참고할 때 축성 시기는 조선 초기일 것으로 추측된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1592년 왜군에 의해 함락되어 폐성되었다가 정유재란이 이후에는 서생포왜성으로 진을 옮겨 1895년까지 수군(水軍)의 동첨절제사영(同僉節制使營)으로 유지되었다.
서생포 만포진성은 북쪽으로는 회야강이 동쪽으로 흘러 바다와 합류되고 있어 수군이 활동하기 유리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성은 구릉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하여 축조한 포곡식(包谷式) 성이다. 성벽의 길이는 440m 정도로 남아 있으며, 평면 형태는 평지에 해당되는 성곽이 멸실되었기 때문에 정확한 형태는 알 수 없지만 말각방형에 가까운 형태일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곳곳에 성벽의 기초석 일부가 남아 있는데 이는 임진왜란 시기 왜군이 서생포성을 쌓기 위해 성돌을 빼어갔기 때문으로 보인다.
성벽은 장대석을 가로눕혀 지대석으로 삼고 그 위에 대형의 석재로 기단석을 쌓았는데 상부로 갈수록 이보다 작은 돌로 면을 맞추어 쌓았으며 내부는 소형의 할석으로 뒷채움하여 마무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서쪽에 문지로 보이는 시설 일부가 잔존하나 수군진성이므로 주 출입시설은 회야강과 바다 쪽으로 용이하게 왕래할 수 있는 북동쪽에 위치하였을 가능성이 높다. 성벽 너비는 4m 정도, 잔존높이는 1~1.5m 정도이다.
발굴조사에서 돌로 양벽을 쌓은 원 해자와 개축 또는 보수된 2차 해자가 확인되었다. 해자는 적의 침입을 1차적으로 방어하는 목적으로 쌓았으나 동시에 산사면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성벽을 훼손하지 않도록 외측으로 돌리는 목적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1차 해자의 너비는 약 3.5m 이며 2차 해자의 너비는 3.7m 정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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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만호진성
지정번호 : 울산광역시기념물0035
소 재 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화정리 산68일원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해서 축조한 포곡식의 성이다. 현재 체성(體城)의 기초석 일부가 남아 있으나 임진왜란 때 왜적이 서생포 왜성을 쌓느라고 성돌(城石)을 빼어 갔기 때문에 대부분 훼손되었다. 남아 있는 체성은 길이 440m, 너비 4m 정도이며, 성의 서쪽에 문지 시설이 일부 남아 있다 서생포진성에 대해서는 『조선왕조실록』,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울산읍성을 밖에서 보호하는데, 만호는 3품이며, 병선 20척에 군졸 767명이 성에 상주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생포만호진성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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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 만호진성[西生浦萬戶鎭城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西生面) 화정리(禾亭里)에 있는 조선시대의 성.
2000년 11월 9일 울산광역시기념물 제35호로 지정되었다. 울산지역에는 서생포만호진성을 비롯해 염포진성(鹽浦鎭城), 개운포진성(開雲浦鎭城) 등의수군진영(水軍鎭營)이 있었다는 《태종실록》과 《경상도지리지》의 문헌기록에따르면 이 성의 축조시기는 조선 초기로 추정된다.
야산의 구릉 끝부분에 자리잡고 있으며 구릉의 경사면과 평지를 연결해서 쌓은 포곡식 성이다. 성의 북쪽은 저습지와 동서 방향으로 흐르는 회야강(回夜江), 회야강이 합류하는 바다가 성의 동쪽 1.5㎞ 지점에 있어서 수운을 활용하기 유리한 곳에 성곽이 자리잡고 있으며, 서생면 서생리(西生里)에 왜군이 쌓은 서생포왜성(西生浦倭城: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 8)은 서생포만호진성의 남동쪽 약 800m 지점의 구릉지대에 축조되어 있다.
서생포에는 조선 태종 때 만호진을 두었는데 세종 때는 도만호진(都萬戶鎭)을 두었다가 다시 만호진을 두었다. 임진왜란 때 왜군은 군대를 둘로 나누어 서생포와 부산의 다대포에 동시에 쳐들어 와 서생포에는 수군만호진을 두었으나, 이를 지키지못하고 무너졌다. 임진왜란 때 왜군이 서생포 왜성을 쌓으면서 이곳의 성돌을 헐어갔기 때문에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체성(體城)의 기단석 일부가 남아 있다. 체성은 길이 440m, 너비 4m 정도이고, 성의 서쪽에 문지 시설이 일부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생포 만호진성 [西生浦萬戶鎭城] (두산백과)
전쟁에서 이기고 지는 일은 항상 있는 일이지만 이토록 준비 없이 당한 건 우리 역사에서 크게 반성해야할 일이다.
서생면 화정마을
이 마을 바로 뒷산에는 임진왜란 당시 수군만호진이 있었으나 유적지는 많이 훼손되어 지금은 옛 흔적을 찾기 힘들다.
임진왜란 전까지만 해도 이곳에 있었던 수군만호는 임진왜란 이후 서생포왜성으로 옮겨졌으며 이러한 연유로 옛날에는 이 마을이 구진(舊鎭)으로 불리었다.
화정의 유래는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지만 고개와 마을 뒤 들판의 이름이 화장들이라는 것을 보면 마을 이름인 화정과 깊은 관련이 있어보인다.
성냥걸
왜성에 딸린 대장간을 '성냥걸'이라 불렀다.
지금은 개천과 커다란 바위만 옛날에 대장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왜병들에게 끌려간 성냥들은 말을 듣지 않으면자신은 물론 가족들도 죽일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시달렸다.
왜병들이 시키는대로 무기를 만들었다.
무기를 만들기 위해 두드리는 금속음은 그들의 심장을 내려쳤을 것이고 붉게 타야만 하는 쇳물보다 더 아팠을 것이다.
왜란 후에는 성냥걸이 농기구를 만드는 장소가 되었다.
<간절곶소망길 스토리텔링 '대장간' 중에서>
서문으로 가면 살 수 있다는 말이 생겨 '서생'이라는 마을이 되었다고...<스토리텔링 중에서>
창표사는 임란 후에 천수각 자리에 만들었던 것. 일제가 훼손한 것을 이 아래에 새로 지었다.
서생포왜성 (西生浦倭城)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리에 있는 이 성은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또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 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으며, 16세기말의 일본성곽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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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생포왜성
지정번호 : 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0008
소 재 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서생리 711일원
"선조 26년(1593) 임진왜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돌로 쌓은 왜성이다. 기장죽도성과 부산진성, 울산왜성과 봉화로 서로 연락하였다하여 일명 ‘봉화성’이라고도 부른다. 산정상에 본성을 두고 동북쪽 경사진 외곽에 2∼3겹으로 높이 6m의 성벽을 계단식으로 다시 쌓아 성 전체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놓았다. 이것은 각 구역이 독립적인 전투를 할 수 있도록 한 왜성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성안에는 중간지점에 선조 32년(1599) 왜군과 싸우다 순절한 애국지사 위패를 모셨던 창표당 터가 남아 있으며, 본성 맨 서쪽에는 장군수라는 우물터가, 외성 남쪽에는 병사들의 식수로 사용했던 우물터가 있다.
이 왜성은 비록 일본이 축성했으나 후에 우리 측에서도 사용했던 성으로, 남문 일부의 훼손을 제외한 다른 곳은 옛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서생포왜성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창표사, 창표당
창표당은 정유재란에 참전한 명 제독 마귀(馬貴)가 승전을 기념하는 축하연을 열기 위해 지은 건물로 초가4칸의 규모였다.
창표사도 의병장들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나 허물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1845년(현종11) 기장 현감으로 부임한 마귀 제독의 후손 마하백(馬夏帛)이 서생포성에 찾아와 그린 지도에 창표사와 창표당 터를 표기한 것에서 확인할 수 있다.
한편, 1906년 지역주민들이 기울어 가는 국운을 되살리기 위해 창표당과 창표사를 중건하였으나 1938~1645에 소실 되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후 1999년 창표당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어 임란공신 추모제를 지내는 한편 복원사업을 추진해왔다.
이에 울주군은 향사 기능과 활용성을 고려하여 2016년 11월 창표사를 중심으로 일곽을 중건하였다.
역시 3층 이상으로 올려야 주변이 보일 것 같다.
지금은 창표사를 맨 아래쪽에 내려가 크게 지었다.
사명당 유정(송운대사)은 여기서 구로다와 협상을 했을 듯..
그렇다면 저 정상석의 위치는 옳은 것이 아니다.
난간이 없어 눈비올 때는 자전거를 타지말라고 경고하고있다. 미끄러운 길이니 끌고 가는 게...
좌측의 남창천이 우로 흘러 곧 회야강에 합류하고 ,얼마 나가지 않아 동해바다로 흘러간다.
회야강(回夜江)
회야강(回夜江)은 경상남도 양산시 평산동의 무지개폭포에서 발원하는 강이다. 회야강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산읍, 서생면 등을 거쳐 동해로 흘러들어 간다.
유래
신라의 시조 혁거세왕이 태어난 박이 밤에 이 강으로 떠돌아왔다는 설이 있고, 임진왜란 때 왜적을 무찔러 크게 이긴 곳이기도 하다. 토박이 땅 이름으로는 '돌배미강'이며, 다른 이름으로는 '일승강(一勝江)'이라고도 한다. 곡류천을 명명할 때에는 곡(曲)·회(回)·구비(仇非)·도내(道內) 및 돈(敦)·석(石)과 유류의 형태를 나타내는 궁(弓)·을(乙)·지(之) 자를 많이 썼다.
‘논배미를 돌아서 흐르는 강’이란 뜻의 돌배미강에서 돌을 돈다는 뜻의 ‘회(回)’ 자로 바뀌고 배미는 논배미→바미→밤→야(夜)로 변하여 회야강이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곰내 혹은 곰수로 불렀고 웅촌에서는 남천, 온산에서는 회야강, 서생에서는 일승강이라고 불렀다. 한편, 회야강은 일승강이라고도 하는 데, 이것은 임진왜란 당시 단 한 번의 전투에서 왜군을 꺾었다고 해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자연환경
천성산(千聖山)과 대운산(大雲山)을 갈라 놓고 있는데, 옛 웅상을 에워싸고 있는 천성산(922.2m)과 대운산(742m)의 위용 아래 이 산맥에서 흐르는 개울물이 회야천을 이루고 있다. 토질은 영농에 알맞아 예로부터 쌀과 보리를 비롯한 오곡의 산출이 풍성한 농경 사회가 일찍 형성되었다. 그러나 남부 지방에 위치하면서도 해발 200m의 고랭지여서 여름 식물 성장의 촉진 시기에 냉조풍(冷潮風)이 불어 농작물 성장에 필요한 적당한 양의 온도가 부족하여 인근 북부 지방보다 오히려 늦게 결실하는 특수 지대이다.
천성산맥 동쪽 기슭에 해당되고 해안 지방에 속한 관계로 북동기류의 영향을 받아 강우량이 특히 많은 편인데,1965년부터 5년 간격의 평균이 1,433mm를 넘고 있다. 계절별로 보면 7·8·9월의 강우량이 300~650mm로 가장 많고 11월 3일에서 11일 사이에 서리가 내리며 12월 하순경에 눈이 내린다. 그렇지만 이곳은 다른 지방에 비해서 눈이 오는 일수가 극히 적어 연간 6~7일 정도에 불과하다.
비옥산성
지정번호 : 울산광역시문화재자료0015
소재지 : 울산광역시 울주군 온양면 동상리 산118
중서 마을의 북쪽 비옥산 산정에 위치하여 동상리 성지라고도 한다. 체성은 북서∼남동 방향이며 남쪽으로 회야강과 남창지역을 관망하기에 좋다. 성벽은 길이 500m, 높이 150㎝ 정도 남아 있는데, 평면은 원형이다. 비옥산성은 자연석을 가공하여 내탁(성벽의 안팎을 모두 수직에 가까운 석벽으로 쌓는 방법) 수법으로 쌓은 성인데, 주변에는 하산봉수대, 서생포 만호진성, 운화리 성지 등의 옛유적이 분포하고 있어 동남해안 방비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옥산성 (문화콘텐츠닷컴 (문화원형백과 한민족 전투), 2002., 한국콘텐츠진흥원)
이정표를 보니 남창중학교 방향이 거리가 가깝다. 물론 역과도 가깝다.
등산객들이 친절하다.
오히려 너무 친절하다고 할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남창중학교 방향을 잡았다.
도움 받은 정보는계단길이라는 것.
이 길은 등산지도에 표시되지 않아 후답자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다.
구역사 옆의 지도는 세밀하여 도움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