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산청 망해봉 소괴산 유구산 당산 남사예담촌 20200812 수

benel_jt 2020. 8. 12. 20:29

산청 망해봉 소괴산 유구산 당산 남사예담촌 20200812 수 한마음

 

코스 : 살고개-망해봉-차도-덕산동정류소에서 120m 정도 임도좌10시방향-주능선-소괴산-갈림길-유규산(니구산)-전망대-유소교-삼백헌(정자)-임도-당산-임도-남사예담촌

 

08:30 덕천 탑승
10:18 살고개 하차
단절된 구도로가 들머리다.
10:21 안동권씨묘
10:37 KBS중계탑
10:44 망해봉 정상(257.9m, 삼각점)
10:48 우로 꺾음, 갈림길
11:01 포장도로
11:26 덕산동 정류소
11:30 산길 임도 오름
12:02 소괴산 삼각점(239.2m)
12:18 안부/유구산(니구산)오름길
[니구산정상 0.2, 상사마을회관0.72, 전망대0.175]
12:37 성돌, 나무계단
12:39 니구산성 안내판
12:41 니구산(유구산/182.9m)
12:56 전망대 (남사예담촌 전망)
12:59 작은계곡, 에어건
13:01 [니구산정상0.67, 상사마을회관0.25]
13:07 여사교
13:08 도로 건너 독입가옥
13:11 정자(삼백헌)
13:25 물탱크
13:28 영일정씨부부묘 뒤 당산 정상(125m)
13:56 여사정, 개국공신 교서비 (이제)
산행 종료

17:00 귀가

 

 

흐리고 습도 높은 날, 12:00~15:00 소나기에보/20~39mm...실제로는 빗방울 약간, 습도는 매우 높았음

요즘 장마가 매우 길다. 어떤 이는 홍수피해에 4대강 사업의 (부정적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실은 그걸  요구하는 것으로 모두 받아들일 듯)영향을 추궁하지만, 지금 내가 보기에는 온 산야를 깎아 놓은 태양열 사업의 영향이 토사를 깎아내고

맑아야 할 개울물에 황톳물이 내려오고 홍수조절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

어떤 이는 국토의 녹화에 전력했는데 어떤 이는 국토의 황폐화에 전력한 것 아닌가.

 

 

 

망해봉 소괴산 유구(니구)산 당산 GPX 트랙 파일 첨부 :

산청망해봉소괴산유구산당산2020-08-12_10-17-51.gpx
0.31MB
Tr산청망해산소괴산유구니구산당산.gpx
0.90MB

 

망해봉 소괴산 니구(유구산)__20200812_1018.gpx
0.14MB

 

들머리 살고개는 도로변에 있어 정차시 유의해야
안내글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이건...
네이버와 다음지도의 등산트랙이 길잡이, 그런대로 다듬은 흔적이 있는 길이다.
등산로 작업의 흔적으로 ┌┐자 모양의 철심이 곳곳에 보인다.
망해봉 정상부의 포개진 바위들
망해봉 정상의 길잡이가 되는 송신탑
KBS진주방송국이 설치한 것이다.
망해봉 정상의 삼각점 257.9m
트랙을 따르면 도로로 떨어진다.

 

도로를 따르면 길가에 잘 키운 반송이 보인다.여기를 지나서 좌로 돌아 능선으로 갈까하다가 무더위와 높은 습도 때문에 도로..
계속 도로로 넘어 간다.
주능선으로 바로 오르는 임도는 여기서 120m 정도 가면 10시방향으로 오르는 길이 있다.
오르기 전에 뒤돌아 본 길, 이 곳으로 오르는 길이 가장 적합한 듯.. 우리보다 먼저 간 팀은 조금 더가서 올랐는데 우리보다 늦었다.
소괴산의 삼각점
239.2m, 소괴산 삼각점
소괴산 정상에 걸린 표지기들
유구(니구)산으로 가는 길은 잘 다듬어져 있다. 이정표도 보이고...

니구산성(尼丘山城)
소재지 : 산청군 단성면 사월리 산 222번지
해발 200m의 소괴산 동남쪽에 위치하며, 성벽은 야산의 북쪽 구릉에서 동쪽 사면을 따라 일부만 축조되고 남서쪽은 천연암벽을 이용하였으며 최대높이 외벽 3.5m, 길이 300m로 자연암반과 석축으로 축조되었고, 동학란을 전후하여 민보(民堡, 민간주도)로 쌓은 것과 성곽과 봉수 선조 때 왜구의 침입을 방어할 목적으로 승병(僧兵)들에 의해 축성된 성(城)이다.
또한 홍의장군 곽재우가 조국강산을 지키기 위해 왜적과 격전한 곳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중기에 쌓은 성이다.
그리고 6.25를 전후한 혼란기에 마을과 도로를 지키는 진지(陣地)로 쓰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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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돌아본 니구산
독립가옥 옆의삼백헌
할머니께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통과...외로우신지 말을 붙이신다.

 

임도는 여기가지 포장, 정상은 여기서 가깝다.
지도상의 당산 정상 위치는 여기서 약 30m 정도 더 들어가야..
정상에는 몇 장의 표지기가 붙어 있다.
당산 정상은 바로 이 무덤 뒤쪽이다. 앞쪽에 송신탑이 보이는 망해봉이 있다.
내려오면서 다시 니구산을 조망. 바위 세개가 보인다.
이순신 백의종군로 안내
국보 제324호 이제 개국공신 교서비

이제 개국공신교서[李濟 開國功臣敎書]
1392년(태조 1)에 개국일등공신 이제(李濟)에게 내린 공신교서(功臣敎書), 필사, 32.5×94.5㎝, 보물 제1294호, 개인 소장. 이제는 이성계의 사위로, 새로운 왕조 창업을 도운 공을 인정받아 개국공신 1등에 봉해졌다. 실물이 남아 있는 유일한 개국공신교서이다.
1392년(태조 1) 이성계(李成桂)가 개국일등공신 이제(李濟)에게 내린 공신녹훈교서(功臣錄勳敎書)

국보 제324호. 조선 초기에는 정공신(正功臣)에게는 교서와 녹권(錄券)을 주고, 원종공신(原從功臣)에게는 녹권만 주었다. 교서는 국왕이 직접 내리는 문서인 반면, 녹권은 공신도감(功臣都監)이 국왕의 명령에 의거해 발급해 주는 증서였다.

개국공신녹권은 국보 제232호인 이화개국공신녹권(李和開國功臣錄券)을 비롯해 몇 점이 남아 있지만, 교서는 이것이 현재까지 남아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이를 통해 조선시대 최초의 공신교서 형식을 알 수 있다.

교서에서는 먼저 이것이 이제에게 내리는 교서임을 밝힌 뒤, ‘왕약왈(王若曰)’로 시작해 고려 말 정치의 난맥상과 국왕들의 부덕함, 그리고 건국의 정당성을 천명하고, 그 과정에서 이제 등이 크게 공을 세워 개국일등공신에 봉한다고 기록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연월일을 적었으며, 그 위에 ‘고려국왕지인(高麗國王之印)’을 찍었다.

개국일등공신에게는 전각을 세워 공을 기록한 뒤, 토지와 노비를 주고, 부모와 아내에게 3등을 뛰어 봉작하고, 아들에게는 3등을 뛰어 음직을 주면서 전지와 노비, 구사(丘史), 진배파령(眞拜把領)을 지급하고, 후손에게는 영구히 범죄에 대한 사면을 약속하였다. 하사한 토지와 노비의 규모는 같은 일등공신이라도 차이가 있었는데, 이제는 토지 170결과 노비 20구를 받았다.

이제는 본관이 성주(星州)로, 고려말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아우 이인립(李仁立)의 아들이었다. 음서로 벼슬길에 올랐다. 전법판서로 있으면서 정몽주(鄭夢周)의 제거와 태조의 즉위에 크게 공헌해 개국일등공신에 봉해졌다.

태조의 차비(次妃)인 신덕왕후(神德王后) 소생인 경순궁주(慶順宮主)의 남편으로 흥안군(興安君)에 봉해졌으며, 의흥친군위 절제사를 거쳐 특별히 종성(宗姓)이 하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1398년(태조 7) 제1차 왕자의 난 때 정도전(鄭道傳)의 일파로 몰려 이방원(李芳遠)에 의해 살해되었다. 세종 때에 신원(伸寃)되어 태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후사가 없어 조카 이윤(李潤)이 뒤를 이었다. 시호는 경무(景武)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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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11월 3일 경상남도의 유형문화재 제340호 태종어제고명서로 지정되었다가, 1999년 6월 19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94호로 지정되었고, 2018년 4월 25일 국보 지정 예고를 거쳐, 2018년 6월 27일 국보 제324호로 승격되었다.

 

 

영화촬영했다는 그 나무
원정매(680년)는 남명매,단성매와 더불어 산청3매 중의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