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장성-고창/ 방장산 20191214 토

benel_jt 2019. 12. 14. 23:16

장성-고창/ 방장산 20191214 토 산하

 

코스:장성갈재-헬기장-쓰리봉-서대봉-봉수대-방장산-고창고개-억새봉-벽오봉-방장굴-갈미봉-방장사-양고살재 <10km/5:00>

 

07:30 덕천동 승차
10:55 장성갈재 하차(전남, 전북 도계)
11:01 [갈재0.1, 쓰리봉1.8]
11:59 변산지맥분기점
12:09-13 쓰리봉(734m)
12:13 [방장산3.4, 장성갈재1.8]
13:18 [봉수대0.13, 용추폭포1.946]
13:24 봉수대(715m)
13:29 [봉수대-0.15, 용추폭포2.116]
13:38 이정목, 큰바위2 (735m)
13:40 방장산(743m), 삼각점(744.0m)[억새봉2.0, 양고살재4.7, →쓰리봉3.4, 관음사2.8]
13:46 전망데크
13:57 이정목, 큰솔2(637m)
14:02 이정목, 큰바위1(589m)
14:04 철탑
14:07 폭포갈림[용추폭포2.5, 패러글라이딩장0.9, 방장산정상1.3, 쓰리봉4.5]
14:13 임도와 나란히 진행
14:17 [방장산정상1.8, 패러글라이딩장0.4, 신선봉0.5, 방장산휴양림2.3]임도 아래로 계단/휴양림방향
14:24 이정목, 돌밭(604m), 긴 돌밭이 성터 흔적인 듯
14:27 억새봉(636m), 활공장, 방등산가비
14:36 벽오봉(640m)
14:41 등산로, 산악자전거 길 분리
14:49 방장산굴갈림
14:53-58 방장산굴
15:03 능선 복귀
15:06 [억새봉1.0, 방장산3.0, 방장사1.0, 양고살재1.7 영춘봉1.0, 석정웰파크시티2.1,산림욕장1.0, 공설운동장3.0]
15:52 대숲
15:26-29 방장사
15:41 양고살재 도로/산길 끝 [방장산4.7, 쓰리봉8.1, 방장사0.7, 억새봉2.7]
15:44 양고살재주차장, 산행 종료

15:57 양고살재 출발

19:50 덕천동 하차

 

이 산은 마치 처음 가는 듯한 느낌이다.
2010.2.25 무척에서 다녀왔지만 들머리부터 힘이 빠져 헤매는 LKS님의 배낭을 오르막에서 들어주기도 하며 가다가 시간이 늦어 도충 탈출을 시도했는데, 그 때 아마 아이폰을 처음 가지고 지도를 참고하면서 길도 없이 제일 가까운 도로를 찾아 내려가며 어두워진 시간에야 도로에 떨어진 일이 있었던 것이다.
오늘은 어떤 일이 있어도 완주하리라 다짐하면서 긴 휴식은 거의 없이 갔다.
위치를 잘 몰랐을 때는 방장동굴을 찾아보기 위해 다시 방문할 일이 있을까 했는데 마침 동행한 J님이 완성한 트랙을 가져와서 방장굴도 한꺼번에 해결하게 되었다.
여전히 거의 꼴지를 하게 되었다.
산행시간 5시간을 주었는데 그래도 4시간 50분에 마쳤으니 다행이다.
후식 후의 출발도 예정했던 16:30보다는 3분 이른 시간에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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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장산[方丈山] 높이 : 734m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신평리와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백암리에 걸쳐 있는 산.

방장산은 중국 삼신산의 하나에서 빌려온 이름으로 '산이 넓고 커서 백성을 감싸준다.'는 뜻이다.
한국은 중국의 삼신산을 본떠 금강산을 봉래산, 지리산을 방장산, 한라산을 영주산으로 불렀다.
호남 지역에서는 방장산, 무등산, 지리산을 삼신산으로 불렀다.

 

전라북도는 일봉래로 변산을, 이방장으로 방장산을, 삼영주로 두승산을 삼신산으로 하였다.

예전에는 이 산을 방등산 또는 반등산으로 불렀다. 반등산은 산이 높고 장엄해서 절반 밖에 오르지 못한다는 의미다. 그러나 조선 인조 때 청나라에게 멸망한 명나라를 숭상하던 조선 사대부들이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방장산을 닮았다는 이유로 이름을 방장산으로 고쳤다.

 

『증보문헌비고(增補文獻備考)』 권106 악고(樂考) 17에는 「반등산곡(半登山曲)」으로 나와 있다. 『삼국유사(三國遺事)』와 『고려사(高麗史)』 권71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백제 유민이 부르던 노래 5곡으로 「방등산가(方等山歌)」·「지리산가」·「선운산가」·「정읍사」·「무등산가」 등이 나와 있는데, 그중 「방등산가」은 도적 떼에게 잡힌 여인이 자기를 구하러 오지 않는 남편을 원망하며 부르는 노래다. 이곳에 등장하는 방등산과 반등산은 방장산을 지칭하는 것이다.

방장산은 고창 지역에서 가장 높은 으뜸 산으로 지리산·무등산과 함께 호남의 삼신산으로 추앙 받아 왔다. 방장산은 벽오봉[방문산]·724봉·742.8봉·써래봉 등 4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호남정맥인 내장산 까치봉과 백암산 중간 지점의 순창새재에서 서쪽으로 갈려 나온 영산기맥이 입암산과 갈재를 지나면 고창의 관문인 방장산이 있다.

 

방장산의 물줄기는 북쪽은 용추계곡과 갈곡천을 지나 서해, 남쪽은 영산강을 통해 목포 앞바다로 흐른다.

 

1997년에 환경부에서 실시한 자연환경조사에 의하면 방장산의 식물은 76과 193종 25변종 1품종으로 총 219종류로 확인되었다. 정상 부근에는 떡갈나무·졸참나무·쇠물푸레나무가 우점하고 있다. 낙엽 교목인 자작나무과의 서어나무, 관목인 자작나무과의 개암나무가 있으며, 지표 식물인 부처손과의 부처손군락, 돌나무과의 바위채송화와 기린초, 고란초과의 일엽초, 장미과의 돌양지꽃 등이 있다.

정상 부근에 서식하는 졸참나무와 쇠물푸레나무는 특정 식물 3등급에 속한다. 높이 300~650m의 중간 지역에는 침엽수의 소나무 군락이 우점하고 있고, 벼과의 조릿대가 많다. 높이 100~300m의 민가와 농경 지역에는 특정 식물종 4등급의 쥐방울덩굴·까치고들빼기, 2등급의 갓대 등이 있으며, 정밀 생태종 4등급의 쥐방울덩굴이 있다.

 

식생이 인근 내장산에서 확인된 총 518종류에 비하여 매우 단순한 이유는 8부 능선까지 소나무가 우점종으로 식재되어 있고, 도로 공사 등 인위적인 생태계 파괴가 심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식물상의 다양성을 유지하기 위한 보호 대책이 필요한 상태이다. 조류 중에는 제비가 가장 많이 서식하고, 까지·귀제비·참새·찌르레기·직바구리 등이 서식하고 있다.

 

방장산의 높이는 734m이다. 방장산 서쪽 기슭의 용추계곡에는 수심이 깊어 용이 살았다는 용소와 20m 높이의 용추폭포가 있다. 남쪽에는 방장산 휴양림이 조성되어 있고, 이곳에서 20분 쯤 오르면 『고려사』에 등장하는 도적들의 근거지였던 방장동굴이 있다. 방장산의 남쪽에는 방장사가 있고, 남서쪽 기슭에는 상원사가 있다. 주변에는 내장산 국립공원·선운산 도립공원·석정온천·고창읍성과 장성군의 장성 입암산성·백양사 등 명소가 많다.

 

한편, 방장산에 일제 강점기의 일본인과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 나온 명나라 이여송 장군이 방장산의 신령스럽고 수려한 산세를 보고 큰 인물이 나올 것을 우려해서 쇠말뚝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1995년 방장산에 쇠말뚝이 박혀 있다는 신고를 향토사단이 받고 쇠말뚝 탐지 작업을 벌였으나 정확한 위치를 찾지 못하고 제거에 실패한 일이 있기도 하다.

 

방장산 산행 코스는 두 가지이다. 1코스는 양고살재-방장사-579봉-벽오봉-고창고개-방장산-문바위재-봉수대-서래봉-장성 갈재의 구간으로 거리는 12.8㎞이며, 5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2코스는 장성갈재-734봉-725봉-방장산-고창고개-벽오봉-고창수월공설운동장으로 5시간 정도 소요된다.

 

참고문헌
신경준, 『산경표』(1769)
『고창(8-7) 자연환경 생태조사보고서』-제2차 전국자연환경조사(환경부, 1997)
조석필, 『태백산맥은 없다』(사람과 산, 1997)
김정길, 『전북의 백대명산을 가다』(신아출판사, 2001)
『고창군지』(고창군지편찬위원회, 2009)

[네이버 지식백과] 방장산 [方丈山]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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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종의 앱이 각기 조금씩 다르게 기록...

 

 

 

 

 

 

노령[蘆嶺]/갈재/위령(葦嶺)<높이 276m>

(이 도로는 220m)
 
전라남북도를 경계 짓는 것이 노령산맥이다. 그것은 신태인~장성 사이에 노령이 자리 잡고 있는 사실과 관련되며, 노령은 우리말의 갈재를 한자화한 것이다. 갈대는 습지뿐만 아니라 산지에서도 잘 자라는데, 이를 산 갈대로 표현한다. 노령산맥은 전남으로 내려오면서 두 갈래로 나누어진다. 하나는 금성산 → 추월산 → 병풍산으로 이어지고, 다른 하나는 입암산 → 병장산 → 불감산으로 이어진다. 갈재는 후자의 줄기에 자리 잡고 철도와 고속도로에 의하여 전라남북도를 연결하는 말안장구실을 하는 곳이다. 주변에 산 갈대가 우거졌기에 갈재라는 이름이 생겨난 배경이 되었다.

《동국여지승람》의 <정읍조>에는 ‘위령(葦嶺)은 노령이라고도 하는데, 현의 남쪽 30리 지점의 장성 경계에 있다’고 썼다. 또한 ‘소위령(小葦嶺)이 있는데 흥덕현에 있다’고 기록했다. 결국 위령과 노령은 같은 의미로 사용하는 갈재를 뜻하지만, 소위령은 작은 갈재를 의미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윤보선 전 대통령의 아호도 이것과 관련되어 바다갈대의 뜻을 담은 해위(海葦)이다.

소위령의 가까운 곳에 배풍헌(培風軒)이 있었는데, 지대가 높아 산바람이 많이 부는 데서 붙여진 현판이다. 남곤은 시에서 ‘깎아 세운 듯이 잇닿은 봉우리는 천만 개인데, 아지랑이는 큰 바람에 막혀있네’라고 읊었다. 또한 김종직은 ‘백치(白痴)의 높은 성 천 길의 봉우리라, 올라보니 봄은 마치 바람을 탄듯하네’라고 했다. 이것은 지대가 높고 기상 변화가 큰 산악 환경을 서정적으로, 잘 묘사한 시구로서 갈재에 부합하는 내용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령 [蘆嶺] - 갈재 (땅 이름 점의 미학, 2008. 5. 15., 오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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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이 276m. 일명 ‘갈재’라고도 한다. 지명의 기원은, 전설에 의하면 기생 노아(蘆兒)와 관련이 있다고 한다. 옛날부터 노령산맥을 가로질러 호남평야와 전남평야를 잇는 주요교통로 구실을 하였다.

현재는 호남선철도와 호남고속도로가 각각 터널을 통하여 이 고개를 넘어간다. 특히, 호남고속도로가 통과하는 호남터널은 694m로 우리나라 고속도로에 있는 터널 가운데 가장 길다.

호남터널과 호남선이 지나는 갈재굴 부근에는 장성댐이 있고 내장산국립공원도 가까이 있어, 남쪽의 장성 백양사와 북쪽의 정읍 내장사를 잇는 관광교통로 구실을 한다. 또한, 노령은 장성일대의 평야에서 산출되는 쌀과 보리 등의 농산물유통로로도 이용된다

[네이버 지식백과] 노령 [蘆嶺]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들머리 장성갈재 해발220m, 노령(갈재)의 본래 높이는 276m, 도로가 아래쪽에 만들어진 듯

 

 

 

 

 

 

 

 

 

 

 

 

 

 

 

 

 

 

 

 

 

 

 

 

 

 

 

 

 

 

 

 

 

 

 

 

 

 

 

 

 

 

 

 

방장동굴

 

 

 

방장동굴[方丈洞窟]

전라북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남쪽 중턱에 있는 굴.

방장동굴과 관련된 노래인 「방등산가(方等山歌)」가 『고려사』 권 71에 삼국속악조(三國俗樂條)에 그 제목과 유래만 전하고 있다. 「방등산가」는 신라 말기에 장일현(長日縣)의 한 여인이 지은 것으로 전해온다. 신라 말년에 온 세상이 어지러워 도둑들이 고창 방등산(方等山)의 방장동굴에 본거지를 두고 고창 지역의 풍요로운 들녘에서 생산된 곡식을 훔치고 양가의 부녀자들까지 납치해 갔다. 그 가운데 도둑들에게 잡혀간 장일현의 한 여인이 남편이 자신을 구하러 오지 않음을 탄식하여 부른 노래가 「방등산가」이다.

방장동굴이 방장산에 있어서 붙은 이름이다. 방장동굴은 도적굴이라고도 한다.

방장동굴 주변에는 전설을 간직한 양고살재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방장산 자연휴양림 및 방장산, 패러글라이딩 활공장으로 유명한 벽오봉[방문산] 등이 있다.

방장동굴은 방장산 자연휴양림 맨 위에 있는 산림문화휴양관 왼쪽의 산책로 및 숲 탐방로를 알리는 안내판을 따라 짧은 나무다리가 있는 곳이 들머리다. 이 다리를 건너 산길의 울창한 수림을 20분쯤 오르면 여인의 애닮은 전설이 서린 방장동굴이 암벽 아래에 자리잡고 있다. 굴 입구가 좁아서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면 넓은 공간에 30명쯤 서 있을 수 있다

 

 

 

 

 

 

 

 

방장사의 마음이 엿보이는 새 모이

 

 

 

양고살재

 

 

 

양고살재[陽古殺재]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석정리에서 전라남도 장성군 북이면 죽청리로 넘어가는 고개.

고창 출신 박의(朴義) 장군이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청나라 누루하치 장군의 사위인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한 것을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박의 장군은 1599년(선조 32) 고수면 초내리 산양동에서 관찰사 양오공의 종손으로 태어났다. 말을 잘 타고 총을 잘 쏘아 박포수로 불릴 정도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발발하자 임금은 남한산성으로 피난하였다. 고창 사람 박의(朴義)가 수원 광교산 전투에 참여하여 적장 양고리(陽古利)를 사살하였다.

다른 명칭 유래를 살펴보면 큰 재[峙]와 작은 재[峙] 두 개가 있다 하여 양고령이라 불렸으며, 양고령 발음이 변화함으로 인해 '양고살재'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도 있다.

양고살재의 북동쪽에 방문산과 방장산을 잇는 등산로가 있고, 동쪽에 있는 지방도 15호선 도로를 따라가면 방장산 자연휴양림과 예전에 도적들의 근거지인 방장동굴이 있다.

양고살재는 고창읍과 호남고속도로 백양사 나들목을 잇는 지방도 15호선에 있는 고개로 고창군과 전라남도 장성군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박의 장군의 묘소는 고수면 예지리 양정마을에 있고, 후손들은 고수면과 아산면에 살고 있다. 양고살재에서 서쪽으로 지방도 15호선을 따라가면 석정온천이 나온다.

 

참고문헌
김정길, 『전북의 백대명산을 가다』(신아출판사, 2001)
『고창의 마을유래』(고창문화원, 2003)
『고창군지』(고창군지편찬위원회, 2009)
국토지리정보원(http://www.ngi.go.kr/)

[네이버 지식백과] 양고살재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양고살재에는 에어건이 있어 먼지를 털 수 가 있다.

성능도 좋다.

 

그런데 주차장의 화장실이 닫혀 있어 주변이 매우 불결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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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읍성, 모양성


고창읍성은 백제시대의 지명은 모양부리에서 유래하여 모양성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3대 읍성 중 하나로 꼽히며, 조선시대 단종 때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당시에 여러 공력을 들여서 3년간 쌓은 성으로서, 고창지역의 통치와 외적의 방어라는 2가지 목적을 두고 만들어졌다.

1. 보존상태

현재 고창읍성의 보존상태는 우수하다. 고창읍성은 우리나라 3대 읍성 중에서 하나로, 낙안읍성, 해미읍성과 함께 중요한 읍성유적.
동문, 북문, 서문 3문, 치성 6, 그리고 수구문 2, 옹성.

고창읍성은 1976년에 발굴조사를 하면서 서문지와 동문지를 확인,
최근들어 보수공사를 하여 원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복원.

2. 역사적 사실

고창은 백제시대 때는 모양부리. 고창읍성을 모양성이라고 부름.
그 당시에는 지금의 모습처럼 돌로 쌓은 석성이라고 하기 보다도 토성이었을 가능성.

고창읍성이 지금의 모습처럼 세워진 것이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크게 2가지 설.
숙종 때 이항이라는 분이 주민들의 힘을 빌려서 8년만에 쌓았다는 말이 있고,
1450년, 즉 세종 32년에 건립을 시작하여, 1453년, 즉 단종 1년에 건립되었다는 설.

3. 가치의 의의

조선시대 읍성에서 흔히 보이는 홍예문과 초루를 세운 방식이 아닌, 누문을 사용하였다.

홍예문은 아치형, 즉 둥그런 무지개 모양의 문.
초루는 성 위에 세운 누각.
누문은 성문을 나무로 된 누각을 세워서 만든 것.
누문의 주춧돌 마다 그 크기가 다른데, 이는 당시의 기후를 생각하여 비가 어느정도까지 오는가, 그리고 그 방향이 어디인가를 분석하여 세운 것.
즉 나무에 비가 계속 닿으면 썩고, 이는 건물의 붕괴를 몰고 올 수도 있는데, 이러한 점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하여 주춧돌을 높게 세운 것.
성벽을 자세히 보면 군데군데 축조 방식이 다르다.
이는 당시에 고창의 여러 마을들이 동원되어 자신이 맡은 구역에 따라 성을 쌓았기 때문으로 보임. 

4. 소재지 및 근처 유적지
현재 전라북도 고창군 고창읍 읍내리.
정문 앞에는 판소리의 명인이었던 신재효 고택, 고창판소리박물관 

고창읍성 내에는 객사, 감옥 등.
구한말 흥선대원군이 서양인들을 배척한 흔적인 척화비 

5. 건립 목적

외적의 방어, 행정적인 역할.
평지성이 아닌 평산성의 모습.
평산성은 평지와 산에 성을 쌓은 것으로 대표적인 예가 고창읍성과 수원화성.
외적의 방어에는 평산성이 좀 더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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