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영동 학무산 지장산 봉대산 20190625 화
충북 영동 학무산 지장산 봉대산 20190625 화 한마음
코스 : 반교개-잠시 향토유적 하나 찾아보고-과수원길을 따라 옆을 치고 올라-학무산-지장산-봉대산-황간초교앞
11:00 반고개 도착
11:08 신안리 석불입상
11:15 과수원임도
12:08 학무산(678m)
12:13 헬기장
12:15 시멘트옹벽, 군막사터
12:17 참나리
13:34 지장산(772m)
14:13 백선군락지역
15:16 봉대산(654m)
17:02 함양오씨공원
17:16 황간초등학교앞/산행종료
학무지장봉대산GPX트랙 파일 첨부 : 영동.학무지장봉대산2019-06-25_11-00-54.gpx,
Tr영동학무지장봉대산201906251101.gpx
충북 영동 학무산(鶴舞山682m).지장산(芝藏山, 772m).봉대산(烽臺山, 654m)
■학무산(鶴舞山 682m)은 학이 춤추는 형국이라 불리어진 이름의 산이다. 학무산은 예부터 곰이 살았다고하여 '곰산''웅이산(熊耳山)'이라고도 불렀다. 충청북도 영동군의 추풍령면 웅북리(熊北里) · 지봉리 · 신안리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조선 후기의 지리지와 고지도에 학무산(鶴舞山)과 용문산(龍門山)으로 각각 기록되어 있다. 동일한 산을 마을에 따라 달리 불렀음을 알 수 있다.
학이 춤을 추는 풍수 형국을 가졌다는 것과 옛날에 곰이 살았다는 점, 그리고 이 일대에서 가장 높아 머리처럼 우뚝 솟았다는 유래가 언급되어 있다. 이는 모두 한자 지명을 단순하게 뜻풀이한 것이다.
■지장산(芝藏山772.4m)은 언뜻 떠오르는 것이 불교의 지장보살이다. “지옥에 있는 중생 마지막 하나까지 교화하기 전에는 결코 성불하지 않으리라” 했다는, 석가불이 입멸한 뒤 미륵불이 출세하기 전까지 세상을 관장하는 보살이다. 이 산은 고려 초 불교를 국교로 삼았을 때 지장보살을 모시면서 이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사찰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아쉬움이 있다.
■봉대산(烽臺山, 654m)은 충북 영동군 추풍령면과 황간면계에 있는 산이다. 산 주소는 충북 영동군 황간면 광평리 산18-1 이다. 옛 지도에 소이산봉대 혹은 소이산(所伊山)이 표기되어 있다. 『한국지명총람』에는 봉대산(鳳臺山)으로 기록되어 있다. 봉대산은 조선 시대에 '소이산'으로 불리었고 봉수대가 그곳에 있었다. 이 봉수대 때문에 후에 봉대산(烽臺山)으로 바뀐 것으로 보인다.
■백두대간의 국수봉 남쪽 용문산 북쪽의 734m에서 동쪽으로 분기해서 북동쪽으로 흘러가며 여남재 백운산(631m) 기양산(705m) 수선산(683m) 옥녀봉(520m) 형제봉(532m) 비봉산(122m)을 솟구치고 낙동강 지류인 감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5.5km의 짧은 지맥을 기양지맥이라 한다. 그 기양지맥이 분기하는 백두대간의 맷돌봉 인근에서 서쪽으로 이어지는 능선-학무산. 지장산. 봉대산을 지나 충북 황간면 소재 석천에서 그 맥을 다하는 단맥이 있다. 그중 학무산 산행은 반고개 신안리 보건진료소 가기 전 언덕베기 가기전 왼쪽 대나무밭 사이로 올라가며 시작된다. -퍼온 글-
들머리 반교개, 반교개라는 말은 서울까지 가는 길의 절반이라는 뜻에서 유래한 말이란다.
산행팀은 여기서 약간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바로 산으로 붙고, 몇 명은 반대편으로 향했다.
저 언덕의 전각 안에 있는 향토문화재 하나 찾아보고 가려고
영동군 향토유적 제20호로 등록된 '신안리 석불입상'이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
석불입상 부근은 과수원이다. 자두..
되돌아오는 길에 과수원으로 올라가는 가장 긴 포장 길을 택하여 등로에 붙는다.
엉겅퀴가 꽃이 진하다.
과수원길을 지나 무덤이 있는 곳에서 산으로 치기 전에 희귀종인 참좁쌀풀이 노랗게 꽃을 피웠다.
꽃의 안쪽에 붉은색 무늬가 있다.
왕피천에 갔을 때 '참좁쌀풀이 희귀종'이라고 안내되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보았다.
학무산까지 오르는 동안은 급경사가 이어진다.
동쪽으로 되돌아 보면 얼마 전에 다녀온 문암산 방향이다.
헬기장은 사방으로 전망대가 된다.
오래된 콘크리트 시설은 옛 군사시설인 듯하다. 360도 회전하는 포대도 설치되어 있었던 것 같다.
급경사지를 절개하여 만든 작전도로, 지금은 관리가 잘 되지 않는 길이다.
삼각점이 있는 지장산을 오르는데도 가파르다.
지장산 정상에 오르는데, '달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인상깊은 전화다.
달마와 지장..참으로 어울리는 조합이다.
지장산 능선 부근에는 백선이 엄청나게 많았다.
별처럼 생긴 게 열매일까..꽃봉오리일까. 백선은 나무처럼 보이지만 여러해살이풀이다.
개화기가 5~6월인데 꽃은 하나도 보이지 않고, 열매들만 많이 보았다.
봉대산에도 삼각점이 있다.
지금까지 제대로 된 정상석이나 이정표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봉화대의 흔적은 남아 있지 않았을까...
봉대산 정상부근에서부터 오래된 녹슨 철조망이 등로의 좌로나 우로, 바닥에까지, 심지어 머리부분에까지 철조망이 있다.
조심스럽게 지나왔지만 머리를 철조망에 한 번 부디쳤다.
다행히도 모자에 충격을 주었을 뿐이다.
아찔한 상황이었다.
아마도 사유지라는 뜻이겠지만 이건 너무 심하다. 철거되어야 안전할 것 같다.
이 이유로 이 산은 비추.
나중에 보니 옆자리의 JS님은 손과 발에 약간 심한 상처를 입었다.
동행하던 KBH님은, 맨 선두에서 질주하다가 배가 고픈데 아무도 식사를 하지 않고 가더라며 홀로 앉아 식사하고는 맨 후미에 처진 분을 기다리는데, 하산시간을 재촉하는 이 팀의 특성때문에 함께 오지도 못하고 달렸다.
도중에 몇 차례 전화를 하니 그 분이 매우 피곤한 듯 다리에 지가 내려서 기다리고, 쉰다고 기다리고 엄청 고생을 하다가 중간 탈출을 했지만 제법 늦었다.
공개되었던 이 코스의 트랙은 4시간30분 정도였는데 내가 6시간을 넘겼고, 그 뒤로 탈출한 K님과 2명이 하산했다.
시간이 늦어 향토 문화유산인 가학루와 황간향교를 바로 옆에 두고 지나쳤다.
다음에 아직 미답인 월영봉을 기차로 올 시간이 된다면 여기를 들렀다가 가면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미루었다.
봉대산을 하산하면서 뒤돌아보니 측면은 어느 산에나 마찬가지로 가파르기 한이 없다.
노루발풀꽃이 피어 있다.
능선의 끝 부분에서 삼각점이 하나 있다.
능선 끝은 함양오씨 묘역이다. 묘역이라기 보다는 '함양오씨공원'이라고 표현해 두었다.
묘역에서 나오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거꾸로 오를 수도 없고,,,
철문을 통과할 수 밖에...
이 마을이 구교리다.
선답자의 산행기에 이 마을 이장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들머리에서 신안리 석불입상을 보고 지나갈 때도 농기구를 타고 가는 한 사람이 약간 시비에 가깝게 어디갔다오냐고 묻는 게 좀 이상할 정도였다.
배낭을 진 4명, 아마도 농산물절도단 정도로 보았던 건지...
추풍령을 경계로 한 오랜 접경지역의 경계심의 발로였을까.
황간 남성근린공원에 있는 가학루, 시간 때문에 위치만 보고 패스...
영동가학루(永同駕鶴樓)
충북 영동군 황간면 남성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누각.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2호. 1393년(태조 2) 황간현감 하첨(河詹)이 창건하고 경상도관찰사 남공(南公)이 ‘駕鶴(가학)’이라는 편액을 달았다.
이 건물의 명칭은 세월과 세상이 바람 따라 떠다닌다는 뜻으로 가학루라 하였다는 설과, 누각이 새의 날개와 같아 가학루라 하였다는 설이 구전되어온다.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서 광해군 때에 현감 장번(張蕃)과 구장원(具長源)이, 숙종 때에는 현감 황도(黃鍍)가, 정조 때에는 현감 이운영(李運永)이, 그리고 1930년에는 군수 김석영(金錫永)이 각각 중수하였다.
이 누각의 평면은 장방형으로 정면은 네 칸이나 측면 한쪽은 세 칸, 또 한 쪽은 두 칸인 특이한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이는 뒤에 중수할 때 일부를 변형시킨 것으로 보인다. 익공계 양식(翼工系樣式)이고 1고주5량(一高柱五樑)에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기단은 콘크리트로 처리하고 자연석 초석을 놓았으며, 건물 바닥은 지면에서 약간 띄워 마루를 깔았고, 네 면은 모두 개방되었으며, 마루 주위는 난간으로 돌렸다. 외부 기둥은 둥근 기둥, 내부 고주(高柱)는 네모 기둥으로 되어 있다.
외부 기둥머리 부분에는 창방(昌枋)과 직교(直交)하여 초익공이 끼워지고 주두(柱枓)에는 2익공이 첨차(檐遮)와 함께 짜여 있어, 이것이 창방 위에 있는 화반(花盤)과 함께 주심도리(柱心道里) 밑의 장여를 받치고 있다.
내부의 가구(架構)는 연등천장(서까래가 드러난 천장)으로 내부 고주는 측면 세칸 쪽에 있는 네 개의 기둥 가운데 세 번째 기둥과 같은 줄에 배열되어 후면으로 치우쳐 있고, 두 번째 기둥 위 보와 측면 두 칸 쪽에 있는 중앙기둥 윗부분의 보는 충량(衝樑)으로 대들보 위에 얹히게 된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다. 처마는 홑처마이며 막새기와는 사용하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백과] 영동가학루 [永同駕鶴樓]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황간초등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