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정안산 산행 20190618 화
하동 정안산 산행 20190618 화 백호
고려 무신정권기 정안 장군의 흔적이 있는 정안산을 찾아
코스 : 횡천교 부근 전주이씨 비석-전주이씨묘-밧줄구간-삼각점(271m)-매봉(358m)-마치고개-철탑-깨진바위-산불감시초소-정안산정상(448m)-정안산성-모구재-갈림길(우)-갈림길(우)-폐축사-용소보-용소주차장
이 코스는 2009년 5월에 국제신문에서 소개한 곳이다.
우리는 이 코스의 역순으로 택했다.
용소보의 물이 있기 때문이다.
이 지도의 상황은 현재 상당히 바뀌어 있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횡천역의 위치가 바뀌었고, 용소보 앞의 철로는 이미 폐철이 되어 다른 활용을 기다리고 있다.
북천역 부근의 철로는 코스모스축제, 양귀비축제 등과 결합하여 관광상품화 된 레일바이크가 자리하고 있다.
같은 하동군에 속해 있다.
용소보에서 출발하여 200m 고지 즈음 위치한 임도이탈은 역순으로 갔기에 임도이탈이 아니고 임도를 따르게 되어 있다.
주의할 곳은 임도가 좌로 꺾어져 내려갈 무렵에 생각없이 가다가 길을 잘못 찾는 경우도 발생하였다.
이 지도 역시나 마찬가지다. 단지 산이야 어디로 가랴...
공항이라도 만든다고 정수리를 깎아내리지 않는다면...
횡천역 구역이 있엇던 곳에는 골프장...
철로가 직선화 되면서 경전선의 이동 속도도 약간은 개선이 되었지만
역마다 세우는 무궁화만 다니니 아직은 열차 이용이 불편하다...
같은 폰에서 세 기록의 결과가 약간 다르게 나타났다. 어쨌든 10km미만이다. 용소보의 제방까지...
구역은 지금 골프장인 듯하다. 원곡교보다 북동쪽으로 있던 것이 원곡교를 기준으로 서쪽으로 옮겼다.
철도는 기술이 뛰어나 직선화되었다. 미래를 위한 설계라고나 할까.
시골 노인들에게는 매우 불편한 위치가 아닐까.
사는 곳에서 많이 떨어진 위치에 역사가 있으니...
내가 겪어본 역 중에 진영역, 함안역, 진주역, 남원역 등이 생활중심과 떨어져 있어 차량으로 이동해야하는 불편을 겪었다.
물론 대중교통과 연계를 했으리라마는...
들머리의 정안봉 등산안내도, 전주이씨의 묘비2기...아마도 신도비를 세울 처지는 안되었나보다. ...
들머리의 등산안내도와 전주이씨 비석2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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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진한 치자꽃, 그런데 밤꽃 향기에 밀렸다.
개망초 판이다. 미운 오리새끼에게는 선물하기에 알맞은 꽃...
오늘의 최고 향기는 밤꽃향이었다.
능선의 산들바람에서 조차도 밤꽃 향기가 넘쳤으니..
그래서인지 치자꽃 향기는 바람에 사라졌지..
곧 한여름이 온다는 뜻이겠지. 큰까치수염의 소식이...
가지가 튼실하게 자란 자리공
개망초...망초가 나라가 망할 때 들어온 외래종이었다든가... 이름 만으로는 사촌간이다.
여름을 재촉하는 큰까치수염(영)
지칭개...지친 개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엉겅퀴도 상당히 보였는데..
개망초와 지칭개 어울리지 않나...
노루발풀
삼각점이 있는 272m봉
매봉? 이 무덤의 주인공은 전주이씨가 아니고 성주이씨다. 성주이씨라면 벽진이씨?
마치고개 임도, 마치재
우산나물, 족두리풀꽃, 본래 꽃이 눈에 잘 보이지도 않지만 시들기까지 한 족도리풀꽃이다.
철탑 지나고 완만하다가 겅상 가까이 가면 급경사에 밧줄, 산수국
깨진 바위..
바위가 얼마나 볼 게 없으면 '깨진바위'로 기억할까...
정안장군과 관련한 이야기꺼리라도 하나 만들어 보시지...
이게 아마 섬진강만 건너 있었어도 이미 만들었을 것 같은데...
정안산(鄭晏山) 정상의 정자, 통신시설, 그리고 산불초소..
산불초소까지 오르는 길은 급경사에 조심스런 구간이 된다.
참나리가 오늘의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 길은 정자에 올라 쉬고, 정상석과 안내문을 보고 도로 2m 정도 내려서야 좋은 길, 정비된 길이다.
정상석을 보고 그 방향으로 바로 나가면 길이 헛갈리게 두 방향으로 나는데 우측으로 가야 한다.
그보다 되돌아 이 이정표에서 난 길을 따르는 게 권할만하다.
이 정상석은 어느 산악회의 등반기념석보다 어둡다. 정안산(鄭晏山)이라는 공식명칭을 사용했지만...
안내판은 빛에 바래져서 식별하기가 불편하다.
좀 바꿔줄 수 없을지...
산성의 문인 듯하지만 너무 초라하다.
국가 수호보다는 가족 보호의 흔적일까...
고려후기 무신통치기간이었는데 중앙에서 밀려난 정안이 쌓은 성이라고 하는데..
임도를 만나면서 거의 다왔을까 했는데..아직도 급경사 내리막이 남았다.
결국 한 번 곤두박질로 넘어졌었다. 다친데는 없지만 조심해야지..
폐축사,, 배고픈 강아지 두마리가 올ㄹ아서 짖는다. 호소하듯...
배고픈 강아지는 말도 잘 듣는다.
모두를 배고프게 해 보아라...
용소보
이 철도는 이설된 경전철과 역사의 위치 변경으로 휴면 중이다. 북천역의 경우는 레일바이크로 관광객을 유치하고 있는데...
저 앞에 가로지르는 교량 위로 새로운 경전선 철로가 ....
용소 유원지 주차장, 휴가철이 아니기에 대형버스를 주차할 수 있어 우리들 세상...
정안[鄭晏]
고려 후기 하동 출신의 문신.
본관은 하동(河東). 자는 화경(和卿), 초명은 정분(鄭奮). 할아버지는 형부상서를 지낸 정세유(鄭世裕)이며, 아버지는 평장사를 역임한 정숙첨(鄭淑瞻)이다. 무인집정인 최우(崔瑀)와 처남 매부의 관계이다.
정안(鄭晏)은 총명하여 젊어서 과거에 급제했으며, 음양·산술·의약·음률에도 두루 정통하였다. 과거에 급제한 후 진양(晉陽)의 수령이 되었으나 연로한 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사직하고 고향인 하동에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이후 집권자 최우의 추천으로 국자좨주[國子祭酒]에 제수되었으며, 1241년(고종 28)에는 동지공거(同知貢擧)로 과거를 주관하였다. 최우의 횡포가 날로 심해지자 화가 미칠까 두려워 남해로 내려가 은거하였다. 불교를 독실하게 믿어 명산의 큰 사찰들을 순방하였으며, 자신의 재산을 희사하여 『대장경(大藏經)』의 일부를 간행하게 하였다.
최우가 죽고 최항(崔沆)이 집권하자 1251년(고종 38) 지문하성사(知門下省事)에 제수되었으며, 뒤이어 참지정사에 올랐다. 문하생인 낭장 임보(林葆), 내시 이덕영(李德英), 함주부사 석연분(石演芬) 등과 시사(時事)를 논하면서 최항이 사람을 함부로 죽이는 것을 비판하였는데, 그 말이 알려져 황해도 백령도에 귀양을 갔다가 살해되었다.
[네이버 지식백과] 정안 [鄭晏] (한국향토문화전자대전)
- 고려시대 정안 장군 이름에서 산 명칭 유래
정안산 산행의 날머리인 횡천면 횡천리는 조선시대 한때 하동군의 고을 현청이 있었을 만큼 번성했던 지역이다. 2번 국도변에 자리잡아 하동읍에서 청학동과 진주로 갈때 반드시 거쳐야 하고 경전선 횡천역까지 있어 교통의 요충지이기도 하다. 정안산 정기를 받아서인지 인물도 많이 난다. 현 고려대 총장인 이기수 교수도 횡천리 횡계마을 출신.
정안산이라는 이름은 고려시대 무인정권기 장군인 정안(鄭晏) 장군의 이름에서 따 온 것이다. 하동 출신으로 인근 고을 최대 갑부이기도 했던 정안 장군은 고려 중기인 13세기 최씨 정권때 최우가 집권하자 고향인 하동으로 낙향해 노모를 모시면서 산 정상에 산성을 쌓았는데 이 산성이 바로 정안산성이다. 그는 최우 사후에 최항이 집권하자 다시 벼슬길에 나섰지만 최항의 폭정을 비판하다 백령도로 귀양간 후 그곳에서 독살당했다. 의기가 충만하고 무인으로서 무술 뿐 아니라 음악 의술 등에도 능했던 장군으로 칭송받고 있다.
<국제신문의 인용 2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