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무주 덕유산 산행 20190105 토

benel_jt 2019. 1. 5. 22:26

무주 덕유산 산행 20190105 토

무주 덕유산 향적봉(1614m)

안성탐방지원센터-칠연폭포-동엽령-백암봉(1500m)-중봉(1594m)-향적봉(1614m)-백련사-구천동주차장


09:58 안성탐방지원센터 도착
10:01 출발
10:02 칠연의총[50m]
10:04 칠연정, 칠연의총
10:06 [칠연의총50m, 칠연폭포1.5, 동엽령4.2]
10:23 [안성탐방지원센터1.2, 칠연폭포0.3, 동엽령3.0]
10:29 칠연폭포
10:54 [동엽령2.0, 안성탐방지원센터2.2, 칠연폭포1.3]
11:11 [동엽령1.3, 안성탐방지원센터2.9, 칠연폭포2.0]
10:45 상고대 절정 지역
10:48 동엽령 [향적봉4.3, 안성탐방4.2, 삿갓대피소6.2, 남덕유산10.5]
12:40 백암봉 [향적봉2.1, 송계사6.2, 횡경재3.2, 동엽령2.2, 삿갓대피소8.4]
12:50 [향적봉1.6, 동엽령2.7, 남덕유산13.2]
13:03 중봉(1504m), [향적봉1.1, 동엽령3.2, 오수자굴1.4]
13:09 주목
13:18 [향적봉0.3, 남덕유산14.5]
13:20 주목, 구상나무군락지
13:23 향적봉대피소 [향적봉0.1, 남덕유산14.7, 설천봉0.6, 백련사2.4]
13:30 향적봉정상(1614m) [설천봉0.6, 백련사2.5, 향적대피소0.1, 남덕유산14.8, 동엽령4.3]
13:36 [향적봉0.2, 향적봉대피소0.1, 백련사2.3]
14:21 [백련사0.5, 향적봉대피소2.0]
14:22 겨우살이군락지
14:30 백련사대웅전 [향적봉2.5]
14:34 [오수자굴2.8, 향적봉2.7, 구천동탐방지원센터6.0]
14:38 일주문, 매월당 부도
14:55 안심대
15:37 구천동탐방지원센터 [백련사5.0, 향적봉7.5, 중봉9.2, 오수자굴7.8, 주차장1.0]
13:45 탐방안내소
15:54 구천동 주차장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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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 남덕유를 포함하여 10여 차례나 다녀왔지만 거의 겨울이었다.
소위 눈산행이라는 이름으로...
무슨 눈에 그리도 마음을 두는지...
7,8월에 한 번씩 다녀왔는데 8월에는 주로 남덕유 서봉을 중심으로 야생화를 보러 간 것이다.
그 때가 가장 편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는 날씨가 비교적 따뜻하다.
정상의 풍속이 14m/s로 예보되어 있어 능선에 오르면서 옷을 고쳐 입고 법석을 떨었지만 그다지 심한 바람은 아닌 것 같았다.
등로에 4발 아이젠으로 편하게 올라갔는데 하산길에 이어지는 빙판에 아이젠도 바꾸었다.
매번 늦어지는 이유로 오늘도 풀코스로 가는지 확인을 하는 바람에 사진찍기 줄이고 후미 무시하고 갈 각오를 하며, 중간 중간에 추월도 하며 부지런히 걸었다.
날씨가 좋아 원경도 보여 가야산, 지리산 등의 주변 산세를 즐기며 갈 수 있었지만 늘 그랬듯이 줄곳 홀로 걸었다.
길 잃을 염려야 없으니 시간만 지키면 된다는 생각에서...
남들이 찾지 않는 '칠연의총'이 들머리에서 50m 좌측에 있는 걸 먼저 챙겨보았다.
구한말 의병활동의 흔적이다.
무척에서 설천봉에서 안성으로 하산할 때도 늦어 칠연폭포를 미련을 떨쳤는데, 오늘은 일찍 시작하여 7시간을 산행시간으로 안내했고, 칠연폭포도 코스에 잡았으니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빙판의 폭포이지만 일곱의 소가 이루어진 폭포라는 뜻의 칠연을 헤아리며 보고 내려왔다.
이미 다른 대원들은 모두 지나가고 없다.
빠르지 않은 J님과 동행이 되었는데, 동엽령에 오르는 동안 점점 뒤처지기에 무시하고 올랐다.
내가 오르는 방법은 스틱으로 앞을 짚고는 몸을 당기며 오르면서 속도를 내는 것이라 힘이 많이 들지 않고 빠르다.대신에 하산길에는 절대 속도를 내지 않고 한발 한발 디딜 곳을 헤아리며 조심하느라 늦다.
J는 하산이 빠르기에 맞출 수가 없다.
게다가 동엽령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니, 나는 항상 차에서 미리 식사를 한다.
그래야 빠른 사람들이 잠시 식사라도 하는 시간에 이동을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이 팀은 앉아서 식사하는 장면을 거의 볼 수가 없다.
산행 중에도 앞으로 급히 지나치는 이들은 거의 이 팀이다.
나도 몇 차례 추월을 하는데 보통은 옆으로 비키는데 초등학생 하나가 두어 차례 함께 앞을 막아 피로했던지 지금까지 없었던 우측 장단지의 근육에 마비가 와서 잠시 쉬며 물과 간식을 먹었더니 풀렸다.
그런데 하산 후에 버스에서는 좌측 대퇴부 근육에 심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살짝 움직이면서 곧 풀렸다.
아무튼 오늘은 지나치게 달린 듯 하다.
그래도 빠른 사람과 한 시간 가까이 차이가 났지만....
꽃피는 계절 외에는 이제 덕유를 찾고 싶은 생각이 별로 없다.
내가 파르티잔도 아닌데...
늘 그랬던 것처럼 하산길이 참 지루하다.
처음 갔을 때야 그 이름 하나 하나 일일이 챙기면서 갔는데...
마감을 한 시간 이상 남기고 마쳤으니 오늘은 체력 테스트를 해 본 것 같다.





 GPS 트랙 첨부 :  Tr무주덕유산190105.gpx


 

 


 

 

 


 

 들머리..버스가 여기까지 올라왔다. 들머리 바로 앞에 칠연의총 안내가 있다.


 

 


 

 

칠연의총七淵義塚
전라북도기념물 제27호
칠연의총은 구한말에 일본군과 싸우다 목숨을 잃은 의병장 신명선(申明善)과 그의 부하들이 잠든 곳이다.
시위대 소속 군인이었던 신명선은 순종 원년(1907) 정미칠조약이 체결되어 우리의 군대가 해산 당하자 무주에 들어와 덕유산을 거점으로 의병을 모집하고, 박춘실, 김동신, 문태서 등과 무주, 장수, 순창, 용담, 거창 등지에서 일본군과 싸우면서 많은 공을 세웠다.
순종 2년(1908) 4월 신명선은 계속된 전투로 인해 피로에 지친 부하들과 함께 이곳 칠연계곡 송정골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미리 정보를 입수하여 기다리고 있던 일본군에게 기습을 당하였다.
이에 마지막까지 목숨을 걸고 싸웟으나 수적인 열세로 150여명의 대원과 함께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그 얼마 후 생존해 있던 의병과 인근 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유해를 수습하여 이곳 저곳에 묻어두었던 것을 1969년 이 고장 향토예비군들에 의해 흩어진 유해를 다시 수습, 성분하고 묘역을 정리하여 백의총으로 부르다가 문화재로 지정하면서 칠연의총이라 했다.
칠연의총은 기울어져 가는 조국을 수호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선열들의 넋이 서린 곳이다.

 


 

 폭포 이정표를 보고 계단으로 300m 정도 올라가면 폭포전망대가 몇 곳 있고 얼어버린 폭포가 있다.

일곱 개의 아름다운 연못이 있다고 '칠연'폭포라고 한다.


 

 


 

 안성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가는 길은 거의 응달이어서 눈과 얼음이 쌓여있다.


 동엽령이 가까울수록 상고대가 나무가지 끝에 붙어 있다.

 

백암봉에서는 지봉 갈미봉을 거쳐 신풍령으로 이어진다. / 중봉은 제2덕유산이라고도 부르는 것 같다. 



덕유산 정상은 인증하는 이들이 줄을 늘어지게 서 있다.











백연사 가까이 가니 능선에 겨우살이 군락이 있다.



 


 

구천동 33경 탐방루트 안내판이 절의 바로 아래 오수자굴 갈림길 부근에 있다.

<덕유산 33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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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월당 김시습의 부도탑, 전북유형문화재 제43호.







안심대와 김시습, 사육신의 시신을 거두어 묻고는 관군에 쫓겨 여기까지 와서 쉬니 안심대였던가..

안심대와 김시습의 이야기
조선시대 생육신은 단종이 숙부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기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거나 아예 벼슬길에 나서기를 거부한 인물들이다.
이들은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키며 세조의 즉위를 부도덕한 행위로 비난하였다.
원호, 이맹전, 조려, 성담수, 남효원, 그리고 김시습이 이 생육신들이다.
서울 성균관 부근에서 태어난 김시습은 3세 때부터 글자를 배우기 시작해 5세 때 이미 시를 짓는 천재였다.
이후에도 끊임없이 학문에 매진해 이른 나이에 '맹자, 서경, 주역'을 읽었으며, '제자백가'는 홀로 독학하였다.
하지만 15세 때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간의 무상함을 느끼고 속세를 떠나 절에 들어가 공부에만 매진하였다.
21세가 되던 해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은 '계유정난'을 겪자 3일간 통곡 후에 읽고 있던 책을 모두 불사른다.
'책에 아무리 인간의 도리가 쓰여 있으면 무엇하는가? 나라의 임금이 이미 인간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는 것을.'
김시습은 이후 떠돌이 승려가 되어 전국을 돌아다니는 방랑길에 오른다.
그러던 중 김시습은 끔찍한 소식을 전해 듣는다.
단종을 왕위에 다시 올리려다 발각되어 처형당한 선비들의 시체가 길가에 짐승의 먹이처럼 내던져졌다는 이야기였다.
훗날 사람들이 사육신이라 부른 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시신이었다.
'의를 행하다 목숨을 잃은 위인들을 그렇게 버려둘 수는 없다.'
김시습은 당장 한양으로 걸음을 옮겼다.
한양에 올라와 보니 사육신의 시체는 길가에 버려져 있고 그 주변을 관군들이 지키고 있었다.
그 주위로 파리때만 요란하게 윙윙거릴 뿐 사람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모두들 겁이나 아예 사육신의 시체 주변에 얼씬거리지를 못하는 것이었다.
관군들은 싳 가까이로 다가서는 승려 김시습을 막아섰다.
"여보시오, 스님 뭐 볼 게 있다고 개만도 못한 죄인들을 보러 옵니까?"
"죄를 지은 인간이라도 그들을 극락에 보내기 위해 기도해 주는 것이 이 승려의 몫이지요."
"하, 죄가 어디 보통 죄인가? 역모를 꾸민 자들의 시체요."
"진짜 역모를 꾸민 개는 따로 있지 않소?"
승려의 말에 관군들은 눈을 치켜 떴다.
하지만 목탁을 두드리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우며 물러서는 김시습에게 뭐라 할 수는 없었다.
김시습은 뒤돌아 서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개만도 못한 것은 의를 행하 선비들이 아니라 역모를 꾸민 자의 사냥개로 일하는 관군들이다."
잠시 물러 서 있던 김시습은 그 주위를 종일 지켜보았다.
그리고 새벽녘에 관군들이 잠시 쉬기 위해 사라진 틈을 타 시체들을 모두 수습하였다.
그리고 양지바른 곳에 그들을 모두 묻어주었다.
그리고 그들이극락에 이르도록 기도를 올렸다.
"언젠가 후세 사람들이 당신이 지키려 했던 수호의 마음을 칭송할 것입니다."
다음 날 날이 밝자 관군들은 발칵 뒤집어졌다.
그들은 승려인 김시습을 의심하고 수배령을 내려 그의 뒤를 쫓았다.
이미 한양을 떠난 뒤였지만 김시습은 그 후로 계속해서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추적을 피해 전국 각지를 떠돌던 김시습은 마침내 무주 덕유산에 이르렀다.
관군은 덕유산의 험한 산세에서 길을 잃고 김시습을 그만 놓치고 말았다.
김시습은 구천동의 한 여울목에 이르러서야 잠시 발을 멈추고 쉬었다.
더는 관군이 쫓아올 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바위에 기대어 한시름 놓고 쉬던 김시습은 자기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여보시오, 스님!"
누군가 부르는 소리에 김시습은 깜짝 놀라 눈을 떴다.
멀리 탁발을 나갔다가 백련사로 돌아가던 노승이 그를 발견한 것이었다.
김시습이 자던 곳은 백련사와 구천동을 오가는 승려와 신자들이 개울물을 쉽게 건널 수 있어 자주 찾는 곳이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깜빡 잠이 들었나 봅니다."
그런데 그 스님은 김시습을 보고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아니, 저 밑에 관군들이 나를 붙잡고 한참을 수색하지 뭐겠소."
"그런가요. 무슨 큰 일이라도 벌어졌을까요."
김시습은 그 노승이 혹시나 자신에 대한 말을 들었을까 싶어 모르는 척 했다.
"큰 일이겠지. 한 스님이 의를 행했으나 억울하게 죽은 자들의 장례를 치러주었으니 말이오."
"그렇습니까? 누군지 참 훌륭한 일을 했군요."
그는 김시습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아이고, 이거 거짓말을 못하는 스님이구먼. 얼굴에 다 쓰여 있으니 말이오."
김시습은 한숨을 내쉬고 자신이 했던 일을 모두 털어놓았다.
"자, 이제 안심하십시오. 이렇게 나와 만난 것도 다 부처님의 뜻이오니 나를 따라 백련사로 갑시다."
노승은 김시습을 백련사에 숨겨 주었다.
며칠간 덕유산 자락을 뒤지던 관군은 어쩔 수 없이 물러서고 말았다.
그 후 김시습이 쉬어 간 이 여울목을 생육신 김시습이 안심한 곳이라 하여 '안심대'로 부르게 되었다.


자전거 탐방 이용 안내 / 구천동 어사길, 박문수가 지났던 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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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유산 33경
01경 나제통문
02경 은구암
03경 청금대
04경 와룡담
05경 학소대
06경 일사대
07경 함벽소
08경 가의암
09경 추월담
10경 만조탄
11경 경파회
12경 수심대
13경 세심대
14경 수경대
15경 월하탄
16경 인월담
17경 사자담
18경 청류동
19경 비파담
20경 다연대
21경 구월담
22경 금포탄
23경 호탄암
24경 청류계
25경 안심대
26경 신양담
27경 명경담
28경 구천폭포
29경 백련담
30경 연화폭포
31경 이속대
32경 백련사
33경 향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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