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칠곡 자고산(작오산)-관호산 호국의길 20181205 수

benel_jt 2018. 12. 5. 19:55

칠곡 자고산(작오산)-관호산 호국의길
20181205 수 솔로



이번 주에는 비가 잦은 편이다
날씨는 추워지고, 비까지 맞으면서 산행하기가 좀 주저해진다.
화, 목 계획이 있었으나 적은 비라지만 비가 내리면 조망도 역시 볼 일이 없어진다.
마침 수요일이 비가 없고 날씨도 비교적 좋은 편이다.
어제 일찌감치 기차를 왕복 예약했다.

네이버HD지도를 바탕으로 산길샘에서 루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GPX파일로 변환하여 locus앱에도 설치하였다.



07:26 화명역 출발
08:59 왜관역 도착
15:05 왜관역 출발
16:48 화명역 도착


시간은 참 좋다.
여유도 있는 편이다.
9시부터 출발이다.
처음에 루트를 그릴 때는 작오산만 갔다가 올 때는 도로를 따라 왜관역으로 올까 했는데 시간이 너무 남을 것 같다.

그래서 은근히 고대하던 관호산을 같이 잡았다.

 

왜관역(09:02)-칠곡애국동산(09:16)-흥국사(09:34)-자고산(10:14)-갈림길(10:31)-산불초소(10:35)back-갈림길(10:44)-칠곡호국평화기념관관람(11:07~11:54)-칠곡보(12:06)-관호산성길(12:12)-관평루(12:20)--백포산신라토성유지(12:28)-호국철교(13:30)-왜관재래시장(13:45)-왜관역(14:10)


느긋하게 걸었지만 역에서 한 시간이나 남았다.
앱의 기록을 정리하고도 시간이 남았다.
기차 시간도 왕복 3시간이라 90쪽 작은 문고 한 권을 읽었다.
몇 년 전 자전거 타고 갔던 칠곡 전적기념관의 뒤에 새로 지은 호국평화기념관은 건물규모나 전시물의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었다.
전시공간을 한바퀴 돌면서 영상물도 제법 많은 종류를 보고 읽을 꺼리는 대충 사진에 담아오고, 40분 정도는 보낸 것 같다.
55m의 대형태극기는 보기에도 자랑스럽다.
이른 시간에 산에 오르면서 날씨가 너무 추워 핫팩을 꺼집어 내려다가 장갑을 바꾸었더니 한결 낫다.
얼마 전 버스에서 산 발열장갑 끼고 갔다가 동상 걸릴 뻔 했다.
겨울에는 사용할 수 없는 장갑이라고 보아야겠다.
자고산의 정상에 있는 한미전몰장병추모비를 보니 자고산에서의 전투가 치열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호국평화기념관에 자고산전투에 대한 안내가 있었다.
이 산의 이름이 네이버지도에는 작오산으로 되어 있다.
칠곡휴게소에 들릴 때마다 이 산이 눈에 자꾸 들어오던 것을 오늘에야 답사하게 되었다.
정상에서 친절한 현지인 한 명을 만나 주변에 대한 안내를 많이 들어 방향을 관호산으로 바꾸었던 것이다.
일단 저 앞의 산불초소까지는 가서 칠곡휴게소를 바라보고 되돌아 나와서 갈림길에서 호국평화기념관을 보러 갔다.
관호산정의 '관평루'는 아직 편액도 달지 않았지만 그 친절한 분의 안내로 이름을 알게 되었다.
'평화를 바라보는 누각'이라는 뜻으로 지어진 것이라고 한다.
진실로 허황한 평화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인간관계도 그러하거니와 서로 잘 지내려면 지난 잘못에 대한 사과가 있어야 할텐데.....
김정은이 와서 천안함 전몰 용사들 앞에 이벤트성의 묵념이라도 할 수 있을까...
관호산에 올라가서 '백포산신라토성유지비' 앞에 전망안내판이 있는데, 그 곳에서 6.25 당시의 상황을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특히 인상 깊었던 건 '융단폭격 현장'이 '약목' 부근이라는 것이었다.
융단폭격하는 전투기의 사진은 몇 번 보았지만 현장을 본 건 처음이다.
걸어서 왜관역까지 가는 동안 6.25 때 끊었던 다리를 건넜다.
'호국의 다리'라고 명명된 그 다리를....
재래시장을 둘러보면서 시간을 조절하려고 했는데도 역에 도착하니 약 한 시간 정도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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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PS 트랙 첨부 :  Tr181205왜관자고산관호산.gpx


빨강색은 처음 계획한 루트 트랙

파랑색은 이동 경로 트랙

 

 

 왜관역에서 출발하고 마무리했다.

우는 칠곡애국동산, 위로 올라가면 우측으로 등산로와 이어진다.


 

 


 

 저 아래는 흥국사인데 지금 포크레인이 무슨 작업을 하고 있다.


 

  

 저 아래가 칠곡보, 바로 뒤로 관호산, 저 멀리 구미 금오산, 그 좌로는 영암산, 선석산, 비룡산, 시묘산이 있다.

 

자고산 정상

 

자고산의 유래
칠곡군 석적읍 중지리와 왜관읍 석전리, 아곡리의 경계에 위치하는 자고산은 해발고도 303.2m의 산이다.
옛날 이 산에 자고라는 새가 살았다 해서 자고산이라고 부르며 일명 작오산(鵲烏山)이라고도 한다.
6.25 전쟁 때 유엔군과 북한군 사이에 격렬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으로, 곳곳에 진지의 흔적이 남아 있고 산 정상부에는 당시 전사한 미군 장병들을 추모하는 기념 표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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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새 [鷓鴣- , partridge]
 
꿩과(科)의 새. 메추라기와 비슷하며 날개 길이는 약 17㎝. 가을에 떼를 지어 다니며, 사해 부근에 많이 서식한다. 이 새는 알을 많이 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특히 다른 새의 알을 훔쳐다가 품는 습성이 있다고 한다. 선지자 예레미야는 불의한 방법으로 재산을 모은 자들을 자고새에 비유하였다(렘 17:11). 즉, 훔쳐온 알을 부화시켜 키웠지만 새끼가 자란 뒤 둥지를 떠나 버림으로써 그 동안의 모든 노력이 헛된 것처럼 불의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은 자는 종말에 가서 허망한 결과를 얻게 될 뿐이라는 비유다.


[네이버 지식백과] 자고새 [鷓鴣-, partridge]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생명의말씀사)


예레미야 17:11
불의로 치부하는 자는 자고새가 낳지 아니한 알을 품음 같아서 그의 중년에 그것이 떠나겠고 마침내 어리석은 자가 되리라.


한글 성경에는 단 한 번만 자고새가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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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무 [蔡楙]
조선 후기의 문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1645년 연원도찰방으로 재임시에는 선정을 베풀어 거사비가 세워졌다.
출생-사망 : 1588 ~ 1670 
본관 : 인천(仁川)
자 : 자후(子後)
호 : 백포(栢浦)·귀은자(歸隱子)
주요저서 :《백포문집》
본관은 인천(仁川)이다. 자는 자후(子後)이고, 호는 백포(栢浦)·귀은자(歸隱子)이다.
정한강((鄭寒岡)의 문인으로 1612년 진사시에 합격하고, 1633년(인조 1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성균관 학유에 임명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고향에서 의병을 조직하여 남한산성으로 갔다.
1645년(인조 23) 연원도찰방(連原道察訪)으로 재임시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고 세금과 부역을 줄여 백성들의 고통을 덜었으므로 거사비(去思碑)가 세워졌다.
이후 성균관전적·병조좌랑 등을 역임하다가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빈한한 가운데 학문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고, 유진(柳袗)·김응조(金應祖) 등과 교유하였다.
경상북도 약목(若木)의 소암서원(嘯岩書院)에 배향되었다.
시문집인 《백포문집》 4권이 전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채무 [蔡楙] (두산백과)

 

 

 능선 저 끄트머리에 산불초소가 보이고, 아래로 고속도로가 지나가는 곳에 칠곡휴게소..



 

정상 바로 아래의 낙동강과 금오산이 조망되는 위치의 전망대에 셀프카메라를 위해 만들어 둔 박스가 있어서 펜으로 클릭해 보았다.

 산불초소


 

  


 칠곡호국평화기념관의 55m 대형 태극기

55m 대형태극기
호국평화의 도시 칠곡은 6.25 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 전투의 전략적 요충지로서 55일간(1590.8.1~9.24)의 치열했던 대혈전 끝에 승리를 쟁취하고 자유민주주의와 대한미국을 수호한 역사적인 지역이기에 55m 대형태극기를 세워 그 뜻을 기리고자 합니다. <칠곡군>


발에 착고를 찬 채 기관총을 쏘고 있는 인민군...결국 너는 죽어달라는 말이 아닌가.

잔인한 놈들...

그러니 고사총으로 조준사격하여 죽이기까지 하는 것 아닌가...

 


 


 관호산성 둘레길과 관호산 안내


관호산성
관호산성은 삼국시대 신라가 처음 쌓은 토성이다.
내성(內城)은 동서 18m, 폭 50m 정도이고, 외성(外城)은 북쪽에 흔적만 남아 있다.
성의 동쪽지역과 남쪽지역의 절벽 아래에는 낙동강이 흐르고 있어 자연지형을 그대로 활용해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선조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지금도 성터 곳곳에 삼국시대 토기 조각 등이 발견되고 있다.
특히 이곳은 조선시대 백포 채무선생의 올곧은 선비정신과 기개가 깃든 곳이다.
백포 선생은 1645년 잘못된 제도를 개혁하고 세금과 부역을 줄여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푼 대쪽같은 선비였다.
또 의병을 조직, 선봉에 나선 기개있는 선비이기도 하다.
그런 백포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나 여생을 보낸 지역에 자리하고 있어 <백포산성>으로도 불린다.
삼국시대부터 1500년을 이어온 관호산성은 유구한 역사만큼 뼈아픈 질곡의 역사도 간직하고 있다.
왜인들이 한 때 이곳을 거점으로 활동했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당시 왜인들이 관호산성을 점령, 군사 거점으로 사용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조선지', '칠곡지' 등 문헌에 따르면 왜인들이 교역을 하면서 물품을 쌓아 보관하거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이곳에 담장을 쌓았다는 기록도 전해진다.
산성의 동쪽 끝 지점과 낙동강 양수장이 맞닿은 곳에는 가파른 절벽 모서리가 하나 있다.
'왜성모퉁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왜가 쌓은 성의 모퉁이'라는 뜻이다.
왜성모퉁이 절벽 위에는 크고 평평한 바위를 볼 수 있는데, 과거에 이곳에서 마을 어른들이 시를 읊고 술을 기울이며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관평루 / 아직 누각의 현판도 없는 상황이다.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았는지 앞에는 금줄이 쳐져 있다.



 

한바퀴 도는 동안 성터의 흔적이라고 할 수 있는 건 이 정도만 보이는데.

비석을 보니 신라토성이라니 다시 생각해야겠다.

관호산의 전체가 성으로 이루어진 셈이다.

작은 산이지만 3~4부능선과 7~8부능선에 토성이었다고 볼만한 흔적이 ...

산의 정상부는 넓은 터를 가진 평평한 곳으로 되어 있다.

높은 곳에 올라가서 아래를 상대로 싸우는 유리한 지형이라고 보아야겠다.

임진왜란 때의 왜군 점령이 안내되어 있지만, 왜관이라는 지명과도 관련된 곳이 아닐까.



관호산의 북쪽 끝부분 높은 곳에 가니 비석이 하나 있다.

'백포산신라토성유지'

비석 앞에는 전망판과 안내글들이 7개가 있는데 하나는 바닥에 떨어져 있다.




본래 이 순서로 놓여 있는 것이다. (클릭 확대)




Tr181205왜관자고산관호산.gp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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