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울진 왕피천 트래킹 20180821 화

benel_jt 2018. 8. 22. 12:07

울진 왕피천 트래킹

20180821 화 일요산

코스 : 굴구지 - 제1탐방관리고 - 용소 - 학소대 - 거북바위 - 원점회귀 후 - 삼층석탑

<10.1km/12:33~17:07>


울진군 금강송면 왕피리와 왕피천의 유래는 왕이 피난 왔던 곳이라는 공통적인 이약는 있지만, 삼척부근에 근거를 두었던 실직국왕, 고려태조 왕건, 고려 공민왕의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어느 쪽이 진실일까.
왕건의 이야기는 어느  방송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방송을 이제는 신뢰할 수가 없다.

왕이 피신할 만큼 오지라는 말은 사실이다.
버스가 들어가면서 엄청난 긴장감을 가지고 갔다.
길이 좁아 언덕으로 떨어지는 듯한 느낌...
이 길을 조금이라도 손보는 게 더 우선이 아닐까 싶다.
길을 손보고 나면 80명으로 제한 하기가 쉽지 않겠지.
10:30 정도면 도착할 수 있지 않을까 했는데 여러 가지 이유로 11:40에 도착했다.
먼저 탐방안내소에서 모형지도와 판넬들을 보면서 왕피천 탐방에 대한 안내를 박았다.
사전 교육이 끝나고는 굴구지마을에서 운영되는 식당에 갔다.
그런데 이곳의 원주민은 거의 없고 외지인들이 자리잡고 있다고 한다.
점심을 식당에서 함께 하고 트래킹을 시작하는데, 점심식사가 너무 느긋하다.
먼저 일어나서 천천히 올라갔다.
오늘 계곡의 물을 밟는 건 피하기로 하고 왕피천의 분위기나 보려고 했다.
용소는 물에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바위에서 바라보았다.
위험하다는 안내의 금줄이 쳐져 있어 멀찌기서 사진에 담아 왔는데, 험한 경사를 올라서 능선을 돌아넘어 내려가니 전망대가 하나 있다.
용소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위치다.
'용머리바위'가 정말 용머리를 닮았다.
맨눈으로 볼 때는 용머리의 윗턱부분에 사람의 얼굴 모양이 보이는 듯하더니, 사진으로 보니 그 부분을 포함하여 용머리가 느껴진다.
학소대까지 올라갔으나 학소대는 물 건너 있는 선바위처럼 생긴 곳이다.
사진에만 담고는 경사로와 계단을 올라가서 다음의 거북바위 등을 찾으러 갔지만 정확하게 찾지 못하고 도로 내려왔다.
아마도 우리는 천변으로 갔는데, 거북바위는 생태탐방로에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림이 정확하지 않으니...
지류의 작은 도랑에서 탁족을 하는데 물이 매우 차다.
더위를 싹 날려주었다.
계곡수는 어느 곳이나 비슷하여 뜨거운 햇살을 받으면서 미지근할 따름인데...
하산종료 시간에 여유가 있어서 더 내려가서 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을 보고 올라왔다.
하산후식을 굴구지 마을에서 하려다가 너무 어두워지면 좁은 길을 나가는데 안전의 문제가 있어 돌아오는 길에 영덕의 휴게소에서 간단히 후식을 하고 왔다.
귀가 시간은 22:00 정도 되었다.
문자가 와서 보니 목요일의 괴산 사랑산,갈모봉 산행은 태풍(솔릭)으로 취소한다고 한다.
처음 간 산악회인데 여기는 조금 느슨하다.
젊은이들이 제법 보인다.
일정표를 보니 대마도가 많고, 주로 해외 원정산행을 많이 한다.

집에 와서 정리를 하려는데 너무 피곤하다.

어제 밤의 수면 시간도 적었지만 업다운이 심한 코스에 피로했던 것 같다.

버스에서의 긴장도 적지 않은 문제였을 것이다.










 

램블러의 기록으로 보면 너무 험한 길이 아닌가 싶을 정도이다.



 

같은 폰으로 트랭글의 기록은 조금 다르게 나타났는데 거리마저 다르다.

업다운의 모양도 더 부드러워 보인다.

실제 모양은 이것이 더 가까울 것 같다.






 


가는길에 망양휴게소에서 잠시 쉬었다.

 

 이 동네에 재배하는 음나무가 많다. 엉개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올라가면서 뒤돌아 좌측으로 보이던 산, 내려오면서 우측으로 다시 보이는 저 봉우리의 시설이 있는 곳은 분명히

재작녀엔가 다녀온 대령산, 소령산, 남소산의 남소산인 듯하다.

아래 보이는 왕피천의 천변 암벽도 절경이다.





 


 


 

용소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왕피천 일대는 원시 자연환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위기종과 희귀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는 뛰어난 생태관광 명소다.
이러한 왕피천의 우수한 자연생태계와 동물들의 서식지 보전을 위해 왕피천 일대는 국내 최대 규모의 생태경관보전지역(총 면적 103㎢)으로 지정되었다.
이 일대는 약 20억년 전에 지하 깊은 곳에서 강한 압력으로 만들어진 화강편마암(화강암이 열과 압력을 받아 만들어진 암석)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서에서 북동방향으로 흐르는 강을 가로질러 많이 발달한 갈라진 틈(절리)으로 인해 하처의 모양이 구불구불하게 되었다.
또한 왕피천에서는 암석의 갈라진 틈을 따라 암석 조각들이 떨어져 나가면서 만들어진 학소대와 거북바위와 같은 명소와 더불어 물살을 따라 움직이는 자갈이 주변 암석을 오목한 모양으로 깎아 만든 용소와 용머리바위 등의 지질명소도 찾아볼 수 있다.

용소, 용머리바위, 학소대, 거북바위



 

용소와 용머리바위
'하늘과 단풍을 다 담아낸 용소'
용소는 65.9km에 달하는 왕피천에서 가장 폭이 좁고 깊은 곳이다.
협곡인만큼 용이 살다가 승천했다는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을축년 대홍수를 예감한 용이 용소에서 금빛 비늘을 번쩍이며 하늘로 올라가는 것을 왕피리에 사는 새댁이 굴구지 친정으로 만삭의 몸을 풀러 가다가 보게 됐다고 한다.
새댁은 그 자리에서 눈이 멀게 됐고, 새댁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마을 원로들의 판단으로 전 주민이 대피하여 온 동네를 휩쓸고 지나간 대홍수의 피해를 면했으며, 그 후 새댁이 낳은 아이의 몸에는 금빛 비늘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또한 실제로 용이 어른 5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크기로 입을 벌리고 있는 모양의 환상적인 용머리 바위가 보인다.
용소는 하천 양쪽 높은 암벽 사이에 깊은 하천이 형성되어 있는데 과거에는 기에 눌려 사람들이 절대 지나다닐 수 없는 곳이었고 신성한 곳으로 기우제도 지냈다고도 전해오며 깊은 협곡에 존재해 왕피천 수계 중 가장 아름답지만 사람의 접근이 어려운 곳이다.

용소와 용머리바위의 어울림...왕피천의 백미라 할만하다.


이 부분은 사람얼굴 같기도 하다.


 

 

 

 




 

학소대를 배경으로 서서..

학소대(鶴巢臺)
학소대 이야기는 구산3리에 있는 굴구지 마을의 앞으로 흐르는 냇물 가운데 우뚝 솟은 큰 바위에 학의 집이 있었다는 암석 전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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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남면 구산3리 굴구지마을 앞 양쪽으로 흐르는 냇물 속에 우뚝 솟은 큰 바위 위에 학의 집이 있었다고 하여 이를 학소대(鶴巢臺)라 부른다.
약 200년 전 어떤 사람이 이 대(臺)의 바위에 흙을 덮고 조상의 분묘을 만들었으나 홍수로 유실 당하였다고 한다.
또 이곳은 많은 선비들이 찾아와 절경에 흥취되어 시를 지었다는 설도 전해진다.
현재 '청송백운학(靑松白雲鶴), 학소운만리(鶴巢雲萬里)'라는 글이 남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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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울진문화원에서 간행한 '울진의 설화'에 채록 내용이 실려 있다.

 

왕피천 본류에 들어가기 전의 지류에 흐르는 물이 깨끗하다.

 


숯가마터
목탄이라고도 하며 재료로는 일반적으로 재질이 단단한 나무가 사용되며, 한국에서는 참나무류(갈참나무, 굴참나무, 물참나무, 줄참나무)가 주로 사용된다.

1700˚C의 고온에서 일주일 정도 목재를 넣고 공기의 공급을 차단하고 가열하거나 공기를 아주 적게 하여 가열하였을 때 생기는 고체생성물이다.
참나무류로 만든 숯을 참숯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질이 낮은 검탄(黔炭)과 질이 좋은 백탄(白炭)으로 분류된다.
숯에는 이 밖에 건류탄과 뜬숯이 있다.
그리고 숯을 만들 때는 목가스, 목초산, 목타르 등이 부생(副生)한다.
제탄법에는 무개제탄법(無蓋製炭法), 퇴적제탄법, 갱내제탄법, 축요제탄법(築窯製炭法) 등이 있으나 한국에서는 주로 축요제탄법이 사용되고 있다.
축요제탄법이란 숯가마를 쌓고 그 안에 목재를 넣어서 굽는 방법인데 검탄과 백탄은 이 방법으로 만든다.
가정용 연료로 많이 사용되었으며, 연탄, 석유, 전기, 가스 등의 이용률이 커짐에 따라 가정용으로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삼층석탑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
보물 제498호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구산리 1494-1
울진 구산리 삼층석탑은 2층 기단을 구비한 평면 방형의 일반형 삼층석탑으로 높이는 3.94m이다.
기단부는 2층으로 구성되었으며, 상·하층 기단 면석에는 양 우주隅柱와 탱주撑柱 1주가 모각모각되어 있다.
탑신부는 3층으로 구성되었으며, 탑신석과 옥신석은 각각 별도의 돌로 만들었다.
탑신석의 각 면에는 양 우주가 모각되어 있으며, 특이하게 1층 탑신석의 남면南面에는 문비門扉가 장식되어 있다.
또 각 층의 탑신석은 위로 올라가면서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옥개석의 처마는 수평이고 받침은 모두 5단이다.
상륜부相輪部는 현재 노반만 남아 있다.
이 석탑은 2004년 해체수리하였다.
이 삼층석탑은 비록 규모는 작으나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잘 계승한 탑으로 건립시기는 통일신라 후기, 즉 9세기 후반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이 탑이 있는 절터는 청암사터靑岩寺址로 전해오며, 2006년 학술발굴조사를 실시하여 금동불상, 중국동전, 기와 및 자기 등 다량의 유물이 출토되어 귀중한 학술적 자료를 제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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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유리.... 아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