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량포구 - 최초 성경 전래지기념관, 아펜셀러순직기념관
마량포구 - 최초 성경 전래지기념관, 아펜셀러순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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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전래지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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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국사편찬위원회 조선왕조실록
순조실록
순조 16년 7월 19일
순조실록 19권, 순조 16년 7월 19일 병인 2번째기사 1816년 청 가경(嘉慶) 21년
이재홍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 척이 표류해 온 일을 보고하다
충청 수사(忠淸水使) 이재홍(李載弘)의 장계에,
"마량진(馬梁鎭) 갈곶[葛串] 밑에 이양선(異樣船) 두 척이 표류해 이르렀습니다. 그 진(鎭)의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지방관 비인 현감(庇仁縣監) 이승렬(李升烈)이 연명으로 보고하기를, ‘표류하여 도착한 이양선을 인력과 선박을 많이 사용하였으나 끌어들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14일 아침에 첨사와 현감이 이상한 모양의 작은 배가 떠 있는 곳으로 같이 가서, 먼저 한문으로 써서 물었더니 모른다고 머리를 젖기에, 다시 언문으로 써서 물었으나 또 모른다고 손을 저었습니다. 이와 같이 한참 동안 힐난하였으나 마침내 의사를 소통하지 못하였고, 필경에는 그들이 스스로 붓을 들고 썼지만 전자(篆字)와 같으면서 전자가 아니고 언문과 같으면서 언문이 아니었으므로 알아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좌우와 상하 층각(層閣) 사이의 무수한 서책 가운데에서 또 책 두 권을 끄집어 내어, 한 권은 첨사에게 주고 한 권은 현감에게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 책을 펼쳐 보았지만 역시 전자도 아니고 언문도 아니어서 알 수 없었으므로 되돌려 주자 굳이 사양하고 받지 않기에 받아서 소매 안에 넣었습니다. 책을 주고받을 때에 하나의 작은 진서(眞書)가 있었는데, 그 나라에서 거래하는 문자인 것 같았기 때문에 가지고 왔습니다. 사람은 낱낱이 머리를 깎았고, 머리에 쓴 모자는 검은 털로 만들었거나 노끈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동로구(銅鑪臼)와 같았습니다. 의복은 상의는 흰 삼승포[三升布]로 만들었거나 흑전(黑氈)으로 만들었고 오른쪽 옷섶에 단추를 달았으며, 하의는 흰 삼승포를 많이 입었는데 행전(行纏) 모양과 같이 몹시 좁게 지어서 다리가 겨우 들어갈 정도였습니다. 버선은 흰 삼승포로 둘러 쌌고, 신은 검은 가죽으로 만들었는데 모양이 발막신[發莫]과 같고 끈을 달았습니다. 가진 물건은 금은 환도(金銀環刀)를 차기도 하고 금은 장도(金銀粧刀)를 차기도 하였으며, 건영귀(乾靈龜)를 차거나 천리경(千里鏡)을 가졌습니다. 그 사람의 수는 칸칸마다 가득히 실어서 자세히 계산하기 어려웠으나, 8, 90명에 가까울 듯하였습니다. 또 큰 배에 가서 실정을 물어 보았는데, 사람의 복색, 패물, 소지품이 모두 작은 배와 같았고, 한문이나 언문을 막론하고 모두 모른다고 머리를 저었습니다. 사람의 숫자는 작은 배에 비하여 몇 갑절이나 될 것 같은데, 배 위와 방 사이에 앉아 있기도 하고 서 있기도 하였으며, 가기도 하고 오기도 하는 등 매우 어수선하여, 하나 둘 세어 계산하기 어려웠습니다. 서책과 기물(器物)은 작은 배보다 갑절이나 더 되었습니다. 큰 배나 작은 배를 물론하고 그 제도가 기기 괴괴하며, 층이나 칸마다 보배로운 그릇과 이상한 물건이 있었고, 기타 이름을 알 수 없는 쇠와 나무 등의 물건이 이루 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그 가운데 또 여인이 있었습니다. 눈앞에서 본 것은 단지 한 명뿐이었는데, 흰 베로 머리를 싸매고 붉은색 치마를 입었습니다. 두 배에 모두 대장간이 설치되었는데, 만드는 것은 모두 대철환(大鐵丸), 화살촉 등의 물건이었습니다. 첨사와 현감이 배에 내릴 때에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책 한 권을 가지고 굳이 주었는데, 작은 배에서 받은 두 권과 합하면 세 권입니다. 그러는 사이에 서북풍이 불자 크고 작은 배가 불시에 호포(號砲)를 쏘며 차례로 돛을 달고 바로 서남 사이 연도(煙島) 밖의 넓은 바다로 나갔습니다. 그래서 첨사와 현감이 여러 배를 지휘하여 일시에 쫓아갔으나 마치 날으는 새처럼 빨라서 사세상 붙잡아 둘 수 없었으므로 바라보기만 하였는데, 앞의 배는 아득하여 형체가 보이지 않았고 뒤의 배는 어슴프레 보이기는 하였으나 해가 이미 떨어져서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두 배의 집물 적간건기(什物摘奸件記)와 작은 배에서 얻은 한 폭의 진서전(眞書牋)을 모두 베껴 쓴 다음, 첨부하여 올려보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작은 배에서 얻은 한 폭의 서전(書牋) 내용에, ‘영길리국(英吉利國)123) 수사 관원(水師官員)에게 글을 주어 진명(陳明)하는 일로 해헌(該憲)에 보내니, 잘 알기 바랍니다. 금년 윤6월 초순 사이에 우리 영길리국에서 5척의 배로 우리 영국왕(英國王)이 차정한 사신과 수행한 사람들을 보내어 천진(天津) 북연하(北蓮河) 입구에 도착하여, 지금 왕의 사신 등이 모두 북경에 나아가 황제[萬歲爺]를 뵈었으나 천진 외양(外洋)의 수심이 얕은데다가 큰 바람까지 만나 배의 파괴를 면할 수 없기 때문에, 각 선척이 그곳에 감히 정박하지 못하고 지금 월동(粤東)124) 에 돌아가서 왕의 사신이 돌아오기를 기다려 귀국하려고 합니다. 이에 그곳을 지나게 되었으니, 해헌(該憲)은 음식물을 사도록 해 주고 맑은 물을 가져다 마시고 쓰도록 해 주십시오. 왼쪽에 우리 왕께서 보낸 사신의 인장(印章)이 찍혀 있으니 증거가 될 것입니다. 가경(嘉慶)125) 21년126) 월 일에 씁니다.’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01면
【분류】
외교-구미(歐美)
[註 123]
영길리국(英吉利國) : 영국.
[註 124]
월동(粤東) : 광동(廣東)의 별칭.
[註 125]
가경(嘉慶) : 청나라 인종의 연호.
[註 126]
21년 : 1816 순조 16년.
○忠淸水使李載弘狀啓以爲:
馬梁鎭葛串下, 異樣船二隻漂到。 該鎭僉使趙大福, 地方官庇仁縣監李升烈聯報以爲, ‘漂到異樣船隻, 雖多費人力, 多用船隻, 莫可曳入。 故十四日平明, 僉使縣監, 同往異樣小船所浮處, 先以眞書問之, 以不知搖頭, 更以諺文問之, 又以不知揮手。 如是詰難者移時, 終不得問答, 畢竟渠自執筆書之, 而似篆非篆, 似諺非諺, 莫可通辨。 其左右上下層閤間, 無數書冊中, 渠又拈出二卷, 一卷給僉使, 一卷給縣監。 故開卷見之, 則亦是非篆非諺, 又莫能曉解, 還爲授之, 則固辭不受, 納之袖中。 冊子與受之際, 有一眞書葉紙, 似是該國去來文字, 故取之以來。 人物則箇箇削髮, 頭著則或以黑毛爲之, 或以繩爲之, 形如銅鑪臼。 衣服則上衣或白三升, 或黑氈, 右袵結單錘, 下衣多着白三升, 而如行纏狀, 其製甚狹, 僅容其胯。 襪子則以白三升揮裹, 履則以黑皮造之, 狀如發莫, 以纓納之。 所持之物, 或佩金銀環刀, 或佩金銀粧刀, 或佩乾靈龜。 或持千里鏡。 而其人名數, 間間滿載, 難以詳計, 似近八九十名。 又往其大船而問情, 則人物服色所佩所持, 一如小船, 而以眞以諺, 俱以不知搖頭, 名數比小船似可屢倍, 船上房間, 或坐或起, 或往或來, 極其紛錯, 難以指的計數。 而書冊器物, 倍加於小船。 毋論大小船, 蓋其製樣, 奇奇怪怪, 層層間間, 寶器與異物, 其他鐵木等物名不知者, 難以勝計。 而其中又有女人。 目下所見者, 只爲一名, 而白布裹頭, 着紅色裳。 兩船俱設冶所, 鑄者皆大鐵丸箭鏃等物。 僉使縣監下船之時, 其中一漢, 持一卷冊固授, 與小船所受二卷, 合三卷。 於焉之間, 西北風正吹, 大小兩船, 不時放砲, 次第擧帆, 直放西南間烟島外洋。 故僉使縣監, 指揮諸船, 一時追及, 則其疾如飛, 勢無以執留, 只自看望, 則前船杳無其形, 後船隱然有迷見之狀, 而日已落地, 莫可瞭望。 兩船什物摘奸件記及小船中所得一幅眞書牋, 竝謄書粘付上送’ 云。 小船中所得一幅書牋謄書, ‘英吉利國水師官員下, 書爲陳明事。 送該憲知悉。 據本年閏六月初旬間, 有我英吉利國五隻船, 送我英國王差定, 從各人到天津 北蓮河口, 今王差等, 俱進京朝, 見萬歲爺, 因天津外洋水淺, 遇有大風, 免不得壞船, 故各船, 不敢在彼處碇泊, 今要回粤東候, 王差回國, 玆經過此處。 請該憲給以買食物, 自取淸水飮用也。 左有蓋我王差印爲據矣。 嘉慶二十一年月日書。’"
【태백산사고본】 19책 19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8책 101면
【분류】
외교-구미(歐美)
국사편찬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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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성경전래지 마량포구>
* 한국 성경 전래와 그 의의
1. 영국 함선의 마량진(馬梁鎭) 도래와 기독교적·문화적 의의
영국 함선의 마량진 도래와 성경 전수 : 순조(純祖)실록 권 19 [국사편찬위원회 편『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제 48권], 순조 16(丙子, 1816년)년 7월19일 병인(丙寅)조에는 충청수사(忠淸水使)이재홍(李載弘)이 충청도 마량진 갈곶 밑에 이양선 두척이 표류해 온 일을, 다음과 같이 장계로서 보고하고 있다.1816년 9월 4일과 5일(음 7월18일과19일), 영국의 함선Alceste호(함장 Murry Maxwell)와 Lyra호(함장 Basil Hall)가 비인현 마량진 앞 갈곶에 도착했다. 이 배는 이 해 영국 정보가 중국파견하는 사신 암허스트(J.win.Am-herst)를 태우고 중국에 도착, j이들일행을 광동에 내려놓고 대기하는 동안 본국 훈련에 따라 조선의 서해안일대를 탐험하면서 해도를 작성하는 중이었다.이들 두척의 배가 마량진에 도착했을 때 마량진 첨사 조대복(趙大福)과 비인현감 이승렬(李升烈)이 문정(問情) 차 두 배에 승선, 검사하고 모두 세 권의 책과 몇 건의 문서를 받았는데 그 받은책이 다름 아닌 성경이었다. 부연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9월 4일에는 노대관 한 사람[조대복]이 몇몇 종자를 거느리고 리라호와 알세스트호를 차례로 문정하였고, 그 이튿날에는 새벽부터 어제의 그 노대관[조대복]과 친구 [이승렬]이 문정했는데 이날 그들은 선실에서 서가에 가득한 책들과 지구의 천구의 등을 보면서 신기한 태도를 보였다. 이승렬은 아담하게 정리된 서가를 보면서 그 중 책한권을 뽑아 갖기를 원했는데 그것이 바로 대영백과사전 전질 중의 한 권이어서 주지 못하고 그 대신 다른책 한 권을 주었는데 그것이 성경이었다는 것이다. 해도 작성을 끝낸 이들이 출항하려 할 때 첨사 조대복은 며칠 더 기다리면 조정의 답신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그러나 리라호가 이미 출발했기 때문에 알세스트의 함장 맥스웰은 더 기다릴 수가 없었다. 아쉬워하는 첨사에게 맥스웰은 책 한권을 선물로 남기고 떠났는데, 그것도 성경이었다. 조대복은 아무런 선물도 받지 않으려 했을 뿐만 아니라 이 책[성경]을 주려 했을 때 거절했다. 그러나 선실을 떠날 때 맥스웰이 다시 권했더니 사양하지 않고 감사한 표정으로 받았다고 한다.첨사에게 성경을 준 장면에 관해 영국측 기록에는 “그는 어떠한 선물도 받으려 하지 않았지만 우리의 친절에 무척 기뻐하고 어느 정도 속이 풀렸다. 우리가 성경을 그에게 주었더니 감사한 모양으로 받아 가지고 퍽 우정적인 작별을 고하였다.(한국최초성경유입기념사업회 발기인대회, <성경유입참고문헌>참고)”고 했다. 그러나 충청수사 이재홍의 장계는 그 표정이 다르다. 두 기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조선측 자료는 충청수사 이재홍이 두 사람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보이는 것이 책 세 권에 약간의 문서가 있었다고 한 듯하다. 그러나 영국측 자료는 두 권의 성경을 당시 조대복과 이승렬에게 각각 준 것만 밝히고 있다. 당시 영어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조선측이 자기들이 받은 것이 성경인 것을 알지 못했지만 영국측 기록에 의해 이 때 받은 것이 성경임을 알게 되었다.
2. 마량진 성경전수의 역사적인 위치
1816년 9월 마량진에 일시 정박한 영국함선은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성경을 전해주고 갔다. 그 성경의 전수가 한국사 및 한국기독교사에서 갖고 있는 역사적인 위치는 어떤 것일까? 이 점은 한국에 기독교의 전래와도 어느 정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마량진 사건 이전에 한국에 성경이 전래되었을 가능성과 실제로 남겨진 기록의 유무에 대해 살펴보았다. 마량진사건 이전에 성경이 한국에 전래되었을 가능성을 전혀 배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성경이 소개되었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겨진 것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따라서 현재까지의 연구나 기록의 발견으로 봐서, 마량진 사건은 기록으로 확인된, 한국 최초의 성경전수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최초의 이 성경 전수 사건은 그 뒤에 복음전파의 열매를 맺는 과정으로 연결되어 갔는가 하는 점이 확인되지 않기 때문에 ‘최초의 성경전수’에 값하는 영예를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며, 다만 단회적인 역사 사건으로 기억되고 있을 뿐이다.
3. 성경 전수와 한국 기독교의 출발
19세기에 들어서서 몇 차례에 걸쳐 유럽 계통의 개신교 선교사가 한국을 찾았다. 1832년 충남 홍주만의 원산도를 찾은 독일인 칼 귀츨라프 목사와, 1865년과 그 이듬해에 한국에 왔다가 죽임을 당한 영국인 토마스 목사가 그 좋은 예다. 귀츨라프는 1831년 이듬해 충남 홍성군 고대도에 상륙하여 조선 조정에 교육을 청하였다가 거절당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역성경을 민들에게 나눠주며 기독교를 전파하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감자 심는법과 포도 재배법을 가르쳐 준 뒤, 약 1개월만에 마카오로 돌아갔는데 이 때의 항해 경험을《Journal of three voyages along the coast of China in 1831, 1832 and 1833》으로 남겼다.
그가 한역성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에는 이미 모리슨이 와서 성경을 한문으로 번역 출판했었기 때문이다. 토마스 목사는 대원군의 쇄국정책과 천주교박해 정책이 추진되고 있을 때 두 차례나 한국을 방문, 이 땅에서 피를 흘린 영국 선교사다. 그는 런던선교회의 파송을 받아 중국 상해로 왔으나 그의 아내 케럴라인의 죽음과 상해 주재 선교책임자 무어헤드와의 불화로 런던 선교회를 사임, 잠시 해관에서 근무한 적이 있다. 그 뒤 스코틀란드성서공회 윌리암슨 선교사의 도움을 받아 1985년 9월 13일 한국에 와서 2개월 반동안 중국 성경을 나눠주고 복음을 전했으며 그 이듬해 1866년 8월 16일에는 미국상선 제너럴셔먼호에 승선, 향도 자격으로 평양에 들어왔으나 9월2일 27세의 나이로 대동강가에서 피를 흘렸다.그는 최후의 순간에 그가 가져온 한문성경을 한국인에게 전했다고한다.
그가 한국에 왔을 때엔 중국에서는 이미 모리슨 역 성경과 문리 역 성경 등 몇 종류의 번역성경이 있었다. 그가 죽음에 앞서 남긴 성경이 그 뒤 선교사의 도래 후에 그 자손들에 의해 선교사 마펫과의 접촉을 가능하게 했다는 전언이 있다.
한국의 개신교사가 시작되는 것은 일반적으로 1885년 4월5일 부활 주일에 한국에 입국한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등 복음선교사들에 의해서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서양의 복음선교사가 도래하기 전에 성경이 한국어로 먼저 번역되고 번역된 성경이 용감한 한국인 선배 신자들에 의해 한반도 안으로 전래되어 개종의 역사가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역사는 먼저 만주 지역을 통해 일어났다. 만주 지역과 관련해서는, 스코틀랜드 연합 장로교회 소속의 선교사였던 로스 목사와 매킨타이어 목사를 잊을 수 없다.
그 중 로스는 처음부터 만주의 우장·영구로 들어왔고 그뒤에 봉천으로 옮겨 선교활동을 펴면서 한국에 복음 전할 기회를 갖고자 동만주의 한만 국경지대를 순례하기도 했다. 뒤에 매킨타이어와 합류한 그는 1870년대 중반에 만주에 왔던 이응찬, 백홍준, 서상륜 등 한국인 청년들을 만나 한국어를 교습 받은 한편 한글 성경 번역에 동참시켰다. 이어서 1879년에는 네 사람의 의주 청년이 세례를 받게 되었으며, 그 뒤 1882년에는 성경 번역과 출판에 참여한 김청송과 서상륜도 로스 목사로 부터 세례를 받았다. 187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성경번역 사업은 1882년 3월에는 누가복음서가, 5월에는 요한복음서가, 그 이듬해에는 사도행전이 각기 출판되었다. 한국어로 번역 출판된 최초의 성경이었다.
한국 기독교가 세계 선교사상 유례없는 성장과 발전을 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된다. 바로 그런 역사에 마량진 성경 전수 사건은 비록 뭍혀 있어 큰 빛으로 나타나지 않지만 거름이 되고 한 알의 밀알이 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교통정보>>
[열차]
- 장항선 서울∼서천 약4시간 소요
- 경부선 부산∼대전∼서천(버스) 약 5시간 소요
[시외버스]
- 서울∼서천 (약 4시간 30분 소요)
- 대전∼서천 (1시간 40분 소요)
[자가용] 생략
주변관광 : 문헌서원, 한산모시관, 신성리갈대밭, 금강하구둑 철새도래지, 천방산풍광, 희리산 자연휴양림, 동백나무숲,춘장대해수욕장
특 산 물 : 한산세모시, 한산소곡주, 자하젓, 공작선, 도토리묵, 서천단감, 갈꽃비, 까나리액젓, 서천쌀, 서천김, 꽃새우, 죽염장, 버섯, 청국장
<정보제공 : 충청남도 서천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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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출과 일몰 풍경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지형 서천 마량진, 2003년부터 마량진 일대를 성역화하려는 서천군기독교연합회 등 지역교계와 지방자치단체의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 됐다.
1816년 9월 5일 영국 함정 알세스트호 맥스웰 함장이 한반도 서해안 탐사 도중 마량진 갈곶에서 만난 조대복 첨사에게 성경을 전한 일이 우리나라 최초 성경전래 사건이 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성역화 활동이 본격화됐다.
그로부터 15년여에 걸쳐 여러 고증 작업을 거쳐, 당시 영국 함대가 정박했던 바닷가에 2004년 12월 31일 기념표석이 세워진 것이 첫 번째 성과였다.
그후 2016년 ‘한국 최초 성경전래기념관’(관장:이병무)을 개관 했다.
성인 아이들 모두 쉽게 충분히 배우고 즐길 수 있는 전시내용들을 갖춘 덕에 기념관을 찾는 연령층의 폭은 넓다. 예배실을 겸한 다목적 강당과, 마량진 전체를 한 눈에 전망할 수 있는 카페테리아 등 다양한 시설들도 잘 갖춰져 있다.
지난해에는 전문 해설사 양성교육이 시행돼, 기념관 운영과 탐방객 안내가 한층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게 됐다.
더불어 인근 동백정교회의 아펜젤러선교사순직기념관, 월남 이상재 선생 생가, 김인전 목사 기념공원 등과 연계해 서천 일대를 기독교 관광자원화하는 데도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20180831,교협신문 벌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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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최초성경전래지 지도↓
http://map.daum.net/?urlX=388081&urlY=732967&itemId=12664803
성경전래지기념관 지도↓
아펜젤러순직기념관(동백정교회)↓
답사기 1↓
http://jhdyys.tistory.com/1286?category=356845
답사기 2↓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hyechon49&logNo=220750221033
답사기 3↓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dove2255&logNo=220967686840
위의 소개글 <서천군청 제공자료>↓
https://tip.daum.net/openknow/48414946?q=%EC%84%9C%EC%B2%9C%20%EB%A7%88%EB%9F%89%EC%A7%84%20%EC%B5%9C%EC%B4%88%20%EC%84%B1%EA%B2%BD%EC%A0%84%EB%9E%98%EC%A7%80
지난 6월 9일과 20일에 군산과 서천을 갔던 시간대의 기차가 변경되었다.
그래서 잘 이어지던 그 차를 탈 수가 없어 다른 방법을 탐색....
1. 화명역에서 서천역까지 기차로 이동<<22,900/32,700/6시간40분+>>
0603-0959 무궁화 화명-천안<14,800/21,100/약4시간>대기약50분
1049-1238 새마을 천안-서천<08,100/11,600/약1시간50분>
2. 구포역에서 서천역까지 기차로 이동<<31,300/44,800/4시간40분+>>
0451-0705 구포-천안아산 KTX <26,100/37,300/2:15/휴식40'식사>
0742-0934 아산-서천 무궁화 <05,200/07,500/1:50>
가장 좋은 시간이지만 너무 이른 시간이다. 그래도 최상이다.
이동간 시간 손실이 거의 없다.
단 월요일에만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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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의 요일에는 화명역~서천역 <<30,300/43,300/6시간+>>
0637-1005 구포-천안 새마을 <22,200/31,700/약3:25>
1049-1238 천안-서천 새마을 <08,100/11,600/약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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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역까지 이동시간을 생각하면 3번보다는 1번이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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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화명-대전으로 가서 버스 이용
0603-0906 화명-대전 무궁화 <11,600/16,600/3시간10분>
대전역-서대전
대전역-대전서남부터미널 일반201,613,615,314,316,202번, 급행1번, 좌석2002번,약35분
택시 약7000원/6.4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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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서남부터미널/서천/11,300
09:10 11:10 무궁화로 연결 불가, 구포에서 KTX 가능
대전복합터미널에도 3회 있으나 첫 차가 7:00에 있다.
대전복합/서천/11,300
07:00 09:30
12:40 15:05
16:40 19:10
월요일 0451-0635 KTX라면 연결이 가능하다,
택시로 이동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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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 0626 - 대전 0818 <20,200/26,000>평일
<31,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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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부산 동부터미널 - 군산 - 서천
화명-노포동 <이동시간:1시간>
노포동-군산 07:00 11:00 / 28,400
군산 - 서천 - 마량포구 2시간40분/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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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포-대전
0451-0635(ktx주초 월요일에만)
0626-0818(주초복잡)20,200
역-터미널
급행2번/16분
간선611, 201, 501
터-서천터미널 : 11,300원/2:30 소요
07:00-09:30
12:40-15:05
16:40-19:10
이 3회 뿐이라 07:00를 타려면
구포역 04:51KTX라야 당일 가능
주 1회만 가능하다.
서천-대전복합
15:00-17:36
16:10-18:45
18:15-20:50
5/8화 04:51 구포역 KTX
5/14월
5/21월
5/28월
대전역 06:35
대전복합 07:00
서천터미 09:30
마량리까지 1:30소요
대전에서 군산 8,800/1:30소요
군산에서 서천 2,300/50분 소요
요금, 시간이 같다.
군산에서 서천으로 이동하는 게 낫다.그런데 서천으로 가는 시간이 적당하지 않고 시간 손실이 생긴다.
군산으로 가는 첫차는 08:30이고 10:00 군산 도착이다.
대전/군산/등급/요금
08:30 10:00 일반 8,800
09:30 11:00 일반 8,800
10:30 12:00 일반 8,800
11:30 13:00 일반 8,800
12:30 14:00 일반 8,800
13:30 15:00 일반 8,800
14:30 16:00 일반 8,800
15:30 17:00 일반 8,800
16:30 18:00 일반 8,800
17:30 19:00 일반 8,800
19:00 20:30 일반 8,800
군산/대전/등급/요금
08:05 09:45 일반 8,800
09:10 10:50 일반 8,800
10:10 11:50 일반 8,800
11:10 12:50 일반 8,800
12:10 13:50 일반 8,800
13:10 14:50 일반 8,800
14:10 15:50 일반 8,800
15:10 16:50 일반 8,800
16:10 17:50 일반 8,800
17:10 18:50 일반 8,800
19:00 20:40 일반 8,800
서천/대전/등급/요금
07:05 09:40 일반 11,300
09:00 11:35 일반 11,300
11:00 13:35 일반 11,300
13:10 15:45 일반 11,300
15:00 17:35 일반 11,300
16:10 18:45 일반 11,300
18:15 20:50 일반 11,300
19:00 21:35 일반 11,300
대전/서천/등급/요금
07:00 09:30 일반 11,300
12:40 15:05 일반 11,300
16:40 19:10 일반 11,300
결론은
주초에 하루를 잡아 0451 출발하는 KTX를 이용하여 대전이나 군산으로 가야 당일 운영이 가능하다.
041-953-1779 서천시외버스터미널
서천-동백(비인,동백,춘장)11회(07:10-20:00)
서천-동백(비인,춘장,동백)11회(07:30-21:00)
상세시간표 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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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천역에서 서천터미널 이동 버스로 가면 사곡리를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
택시를 타는 게 유리하다.
터미널까지 택시비 약 4,000원(3,770원/2.03km/4분
서해내과,사곡휴먼시아정류소까지는 2.14km 약5분 4,000원,(3,940원)
서천시외버스터미널 전화 041-953-1779...09:30에서 10:00 사이에 마량리 가는 버스 시간 확인하고
터미널이나 서해내과병원 방향으로 택시의 방향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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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서천-동백(비인)(서천터미널)마량리 하차/1시간15분/41정류장이동/0600-2000/15회
4.서천-동백(비인.춘장)(서천터미널)마량리 하차/1시간21분/44정류장이동/0730-2100/12회
3.서천-동백(비인.춘장)(사곡리)마량리 하차/1시간16분/40정류장이동/0730-2100/12회
2.서천-동백(비인)(서천터미널)마량리 하차/1시간15분/41정류장이동/0600-2000/15회
1.서천-동백(비인)(사곡리)마량리 하차/1시간16분/41개정류장/0600-2000/15회
=====귀가시 차량=========
서천-대전서남부(2:30소요)
07:35 10:05 일반 11,300
08:40 11:10 일반 11,300
09:05 11:35 일반 11,300
09:40 12:10 일반 11,300
10:35 13:05 일반 11,300
12:25 14:55 일반 11,300
12:45 15:15 일반 11,300
13:40 15:10 일반 11,300
14:50 17:20 일반 11,300
17:45 19:15 일반 11,300
18:45 21:15 일반 11,300
19:45 22:15 일반 11,300
20:10 22:40 일반 11,300
20:15 21:45 일반 11,300
------
서천-대전복합(2:35소요)
10:05 12:40 일반 11,300
15:00 17:35 일반 11,300 <-13:30 서천버스> 택시 18:12-19:57/ktx/20,200원
19:20 21:55 일반 11,300 <±17:20 서천버스> 택시 22:13-00:00/ktx/20,200원
서남부터미널에서 대전역 택시 20분/6,000원, 버스40분/1,250원~1,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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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복합-부산서부
18:30 21:40 우등 22,900
대전복합-부산종합
08:00 11:00 우등 23,300
10:00 13:00 우등 23,300
12:40 15:40 우등 23,300
14:40 17:40 우등 23,300
17:00 20:00 우등 23,300
19:00 22:00 우등 23,300
-----------------------
서천역-아산역
16:00-18:00 무궁화/5,200원-이동-19:21천안아산역-21:36구포역 ktx/26,100원
18:01-20:08 무궁화/5,200원-이동-21:49천안아산역-00:00구포역 ktx/26,100원
20:01-21:48 역이동 시간이 있어 21:49연결 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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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04:50-07:50/구포-천안아산/ktx/26,100원
도보이동 15분
07:41-09:34/아산역-서천역/무궁화/5,200원
택시이동 5분 /4,500원/서천역-서천터미널(또는 서해병원앞)
버스이동/동백,비인,마량리확인/1시간30분소요
11:30 마량리 도착
성경전래지 기념공원-500m-기념관 : 041-951-1816
-800m,아펜셀러순직기념관 : 041-952-1885
중식..
버스로 이동
16:00-18:00 서천역-아산역 / 무궁화
석식/
19:21-21:36 천안아산-구포 / ktx
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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