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고리봉 산행 20180310 토
남원 고리봉 산행
20180310 토 산하
산행 코스 : 남원 금지면 서재교-그럭재-두바리봉-삿갓봉-고리봉-만학골갈림길안부-만학골능선-천만리장군묘소-만학골능선-만학골-매촌-방촌 <11.8km/5:57>
고리봉(708.9m)
20180310 토 산하
그럭재~두바리봉(555m)~삿갓봉(629m)~고리봉(708.9m)~만학재~만학골~방촌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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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봉의 이름을 걸고 세째번의 도전이다.
처음은 수술 후의 안전을 생각해서 줄이고,
둘째는 후미팀의 속도에 맞춰 줄여 그럭재에서 하산했다.
이번에는 서재교에서 약 2.9km를 가면 그럭재다.
그럭재는 해발 340m이고, 서재교는 약 100m 되는 곳으로 완만하게 올라간다.
A팀의 경우 이번에는 비홍재가 아니고 금풍재에서 부터 시작이다.
금풍재에서 서매교까지는 약 10분 정도 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덕천동에서 이동 시간은 07:30 출발하면 휴게소 포함해서 약 3시간 정도 걸릴 것이다.
아마도 10:30이 되기 전에 산행이 시작될텐데, 6시간을 주면 16:30 정도로 하산 예고할 것 같다.
30분간의 간단한 후식 후에 17:00 정도 출발할텐데, 조금 늦어질 것 같고, 21:00 정도면 귀가할 수 있을 듯하다.
지난 산행에 이어 반월마을 서재교에서 출발하여 그럭재까지 2.9km를 아마도 홀로 올라가게 될 것 같다.
기온은 -2℃/14℃로 예보되어 있다.
바람도 1~2m/hr로 심하지는 않다.
지난 주처럼 더워질 수도 있으니 가벼운 티셔츠 하나를 준비해야겠다.
그래도 자주 시린 손 때문에 핫팩 하나는 아침부터 터뜨려 가야겠다.
그럭재에서 고리봉까지 가는 길은 위험구간이라고 네이버지도에 표시한 곳이 몇 곳 있다.
눈이 아직 남아 있을테니 신발에 유의해야할 것 같다.
장갑은 미끄럽지 않은 것을 선택해야겠다.
파이프를 잡기에 좋은 것은 손바닥에 페인트를 입힌 것이 좋았다.
이전에 천만리장군 묘소와 환봉서원을 탐방했을 때도 고리봉까지는 못갔었다.
정보가 너무 없었기 때문인데, 지금 정도였다면 아마도 만학재에서 하산했을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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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 금풍제 앞에서 하차/A팀"문덕,고리 출발
10:24 서재교 하차/나홀로, 그럭재 방향, 고리봉
11:14 그럭재(해발340m)<서재교에서 3km/50'>
11:52 [그럭재2.4, 고리봉3.4]이 이정표의 거리는 틀렸다., 그럭재까지 2.4km라면 고리봉까지는 1.1km 정도가 맞다.
그럭재에서 고리봉까지 약 3.5km가 된다.
12:03 (2965) 두바리봉(555m)<그럭재에서 1.5km/50'>
12:16 밧줄, 보조발판 등이 이어짐
12:25 삿갓봉(629m)<그럭재에서 1.9km/1:10>
12:28 삿갓봉아래묘,[문덕봉7.0, 그럭재3.5, 고리봉3.5]이 이정표도 맞지 않는다. 참고하지 않는 게 좋겠다.
12:31 [삿갓봉0.3, 고리봉3.53, 임도1.8]
고리봉이 더 멀어졌다. 도대체 무엇으로 계산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이정표...
12:46 문덕봉에서 온 한 명이 추월했다.
13:16 고리봉 아래[고리봉→, 만학골2.9]
13:33 철난간
13:42 본격적으로 얼음, 눈이 쌓여 있다.
13:44~48 고리봉 정상(708.1m) 묘 <그럭재에서 3.5km/2:30>
이정표 2개가 떨어져 나가고, 약수정사 2.0km만 남아 있다. 좌측 계단으로 하산.
14:00 바위 옆의 철난간
14:05 만학골 정상 [고리봉0.9, 만학골2.0, 천장군묘 0.5, 고리봉능선0.7] 이 이정표도 오류가 있다. 천장군묘소가 100m 정도는 더 가야 하는데, 고리봉 능선이 더 멀리 되어 있는데, 이건 만학골로 내려가는 능선이 아니라면 할 말이 없다. 천장군묘소 0.5는 맞다. 고리봉은 0.3이고, 만학골로 이어지는 고리봉능선은 0.4라고 해야 한다.
14:21 고리봉 능선 위 [고리봉1.0, 만학동계곡1.8] 여기 고리봉은 0.7이라야 맞다.
14:24 천만리장군묘소
14:28 다시 고리봉능선 위
14:30 철난간
14:44 밧줄
14:46 데크계단
14:52 개암나무(?)
14:55 철난간
15:10~27 만학동계곡/휴식 [고리봉능선1.8, 만학동계곡↑]
15:44 만학골 [고리봉2.9, 그럭재9.9, 문덕봉13.4]
이 이정표도 맞지 않는다. 그럭재에서는 6km 정도다.
15:48 선지다, 매월당
15:59 춘향골매촌포도집하장/여기서 버스를 세워도 될 듯/송촌으로 가는 길을 약간 둘렀다.
16:42 송촌 주차장 산행 종료
2904,1318 개암나무인 듯
2909 버들강아지
물소리가 콸콸 흐른다.
그럭재 쪽은 죽산박씨의 땅이었나. 온통 비석이 있다.
매촌으로 하산하는 길에 보니 온 마을에 인구수보다 많은 무덤인 것 같다.
경지면적과 거의 맞먹을 정도인 듯한 느낌이다.
지나치는 길의 환봉사는 진양하씨 사당이다.
반대편 500m의 환봉서원, 환봉사는 천만리장군의 사당이다.
고리봉 정상 부근에는 얼음 알갱이들이 깔려 있었다.
겨울이라면 피해야 할 산이다.
나홀로 여기서 버스에서 내려 올라갔다.
그럭재(해발340m), 2년 전에 비홍치에서 문덕봉 거쳐 여기서 서재교로 하산했었다.
나에게는 적당한 거리였다.
오늘은 서재교에서 올라왔는데 3km/50분이 소요되었다.
뒤돌아 보니 문덕봉과 고정봉
삿갓봉 정상
삿갓봉 바로 아래 이정표..거리 표기는 참고하지 말고 방향만 참고해야겠다.
안전시설은 많은 편이지만 주의해야
천만리 장군묘
내려가는 계단이 제법 길다
위험 구간들이 많아
능선에서 건너편 문덕-고리 능선 조망
고리봉능선 하산길에 만나는 만학골의 물을 건너는데 다리는 없다.
며칠 전에 내린 비로 수량이 많아 ..
만학골 이정표
매촌, 만학골 들머리의 문덕봉-고리봉 등반안내도
매월당/천지다
도롯가의 가로수에도 까치집
진양하씨의 환봉재
가까이에 있는 환봉사. 환봉서원은 천만리 장군의 사당이다.
2010.6.24에 다녀온 천장군묘소와 환봉서원, 환봉사
환봉서원(環峰書院)
환봉서원은 임진 정유의 왜란을 진압하기 위해 명나라의 구원군 철기(鐵騎) 2만을 거느리고 원정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총독장(總督將) 천만리(千萬里)를 주향(主享)하고 함께 원정 온 상(祥)과 희(禧)의 두 아들을 아울러 배향하고 있다.
주향자의 자는 원지(遠之), 호는 사암(思庵), 영양(潁陽) 사람이며, 천씨종문의 중시조이다.
1543년에 태어나서 13세에 어린 나이로 경과시(慶科試)에 합격하여 황제의 후한 상을 하사 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더니, 1571년의 무과시(武科試)에서도 또한 장원급제로 특출하였다.
1575년에 총절사(總節使)의 임명을 받고 북로(北路)에 출진하여 큰 공을 세우자 이듬해인 1576년에 황제의 명으로 내위진무사(內衛鎭撫使)에 보임되어 궁궐 경비의 중책을 맡았으며, 1588년에는 황궁의 태청전(太淸殿)을 친위(親衛)하는 수위사(守衛使) 겸 병부 대도독부의 오군수(五軍帥) 총독을 주관하는 중책에 발탁 승진되었다.
1592년 임진에 왜적이 파죽지세로 이 땅에 밀고 들어오자 우리 정부는 명나라에 구원병을 요청하였다.
이 때 이여송(李如松)제독과 천총독장이 조병영양사(調兵領糧使)의 중책을 맡고 출정하여 평양성(平壤城)의 수복전에서 대승하였으며, 정유재란 때는 직산전(稷山戰)에 이어 동래전(東萊戰)에서 대첩하는 빛나는 전공을 세웠다.
이를 세상에서 천장군의 삼전삼첩(三戰三倢)이라 일컬어 칭송하고 있다.
왜란을 지압한 후 이 땅에서 터전을 잡기로 굳히자 우리 임금께서는 난중의 공훈을 포상하시어 정2품 자헌대부(資憲大夫) 봉조하(奉朝賀)에 특별 제수하고 화산군(花山君)으로 봉하시었다.
봉조하는 종2품 이상의 중신이 물러날 때 실무를 맡지 않고 의식 때만 참석하면서 녹봉을 종신토록 받는 벼슬이고, 봉군은 나라에 크게 이바지한 공신과 중신들에게 내리는 벼슬이다.
또한 사패지(賜牌地) 30결의 하사에 이어 자손의 세록(世祿)으로 장자 상(祥)은 종2품 가선대부(嘉善大夫) 한성부좌윤(漢城府左尹), 들째 아들 희(禧)는 종6품 행평구도 찰방(行平邱道 察訪)에 임용되는 특전을 베풀어 주시었다.
숙종조에서는 우리 나라를 구원한 명나라 황제에 보답하기 위해 마련한 대보단(大報壇)에 종사(從祀)되고 망배(望拜)의 반열에 들어섰으며, 순조조에서는 그 예우의 영원함이 천명되었다.
그리고 순종조에서는 전국 유림의 열정어린 주청으로 중시조의 충절과 공훈이 다시 헌창되어 충장(忠壯)의 시호가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