樂山

남해구 노도의 노도봉..서포 김만중의 유허지를 찾아 20170426 수

benel_jt 2017. 4. 26. 23:05

남해 노도의 노도봉..서포 김만중의 유허지를 찾아

20170426 수 솔로(등네미팀)



주제가 있는 남해 트래킹

20170426 수
<류,석,임,이,강>


처음 계획은 귀비산, 하지산, 천황산 원점회귀였다.
그런데 일기 예보와는 다르게 아침부터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한다.
들머리인 남해힐튼CC에 도착할 때까지도 귀비산의 정상을 구름이 막아 열어주지를 않고 비옷까지 입고 오르기는 좀 마음이 내키지들 않는 분위기다.
5명이 성이 제각각 다르듯 성격도 각각이다.
그렇지만 조정은 잘 되는 터라, 서포 김만중의 유배지인 노도로 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노도 선착장이 있는 벽련마을로 네비를 설정하고 출발했다.
가는길에 보니 임진성 안내가 있었다.
산행을 정상으로 했다면 당연히 이곳을 경유하게 되어 있었는데, 차를 세우고 잠시 돌아보기로 했다.
물론 복원한 성터이겠지만 위치나 주변의 지세는 변한 게 없으니 그리 높지 않는 산에 수축한 성이라 옛날의 방어 시설로는 중요한 곳이었으리라.


선착장에 도착하니 12:30 출항하는 배시간이 40분 정도 여유가 있어 간단히 점심 요기를 하고 배낭을 차에 두고 배를 탄다. 나는 스틱과 가볍게 배낭을 챙겼다.
배 타는 시간은 5분 정도다.
30분에 출발한 배가 노도 선착장에 접안한 시각이 12:35이다.
하선하여 우측으로 가면 작은마을이 비탈진 곳에 형성되어 있다.
서포김만중선생유허비가 바다를 향해 세워져 있다.
정치적인 문제로 유배형을 당한 서포의 사연을 생각하며 오늘의 현실도 다를 바없다는 생각이 든다.
노도마을쉼터에서 마을의 좌측으로 등로가 있고, 신축 건물이 있는데 서포문학관을짓는다고 한다.
건물은 지어졌고, 내부와 주변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길은 잘 다듬어져 있다.
먼저 좌측으로 해안에 가까운 곳으로 내려가는 듯하면서 유배지 초옥터와 우물터가 안내되어 있는 곳으로 갔다.
그 곳까지도 길이 잘 나 있다.
되돌아 나가서 길 따라 가려다가 초옥터 뒤로 공사용 모노레일이 정상 가까이까지 이어져 있어 모노레일을 따라 지름길로 올랐다.
우측에 만든지 얼마 안되어 비에 진흙이 미끄러운 길이 이어져 있다.
이 길을 오르지 않고 갔다면 우물터는 못보고 지나칠뻔 했다.
그런데 우물터의 위치가 초옥터보다 한참이나 위쪽에 있으니 이해가 안된다.
초옥의 위치가 그 곳이라면 우물도 가까이 있는 게 당연할텐데, 아니면 우물의 위치가 그 곳이라면 초옥의 위치가 더 올라가든지...
다듬지는 않았지만 초옥터에서 정상쪽으로 곧 제대로 된 길을 만들 것 같다.
모노레일의 끝 지점은 공원을 조성하고 있다.
아직 공사중이지만, 서포문학공원 정도 될 것 같다.
공사 안내판은 만들어져 있는데 공사명이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 박석을 깐 너른 공간이 있어 처음에는 헬기장으로 만든 거라 생각했는데, 아마도 공사기간 중에는 장비 등을 운반하는 헬기장이 되다가 나중에는 공원시설로 전용될 것 같다.
올라가면서 보니 박석으로 꾸민 작은 공간들이 몇 곳이나 되었다.
바닥이 진흙이라 비가 올 때를 생각하고 미관도 고려한 걸까.
원형의 중간에는 나무를 심을 공간이 있는 것 같다.
정상 부근에 가니 정자 하나가 세워져 있고 계단에는 아직 줄을 쳐서 오르지 못하게 하고 있다.
바로 뒤쪽이 정상이다.
노도봉이라고 한단다.
정상에서 오르던 길의 반대 방향으로 내려가려는데 길이 뚜렷하지는 않지만 흔적은 있는 듯 하다.
조금 내려가니 돌계단이 보인다.
돌계단의 최상단 위에 비석이 하나 있고 서포 김만중 유허(허묘)가 있다.
돌계단은 직선으로 내려가다가 좌로 90도 방향으로 꺾는다.
바로 이어서 초옥 가는 길과 만난다.
만일에 우리가 이 길로 되돌아 나와서 허묘 방향으로 왔다면 우물터와 공사중인 공원, 정자 등은 보지도 못하고 내려갔을 수도 있었겠다.
그 곳들의 안내가 거의 없었으니..
우물터도 초옥 부근에서 찾다가 없다는 생각만하고 포기할 뻔했으니까.
14:00에 출항하는 배에는 우리팀 5명만 탔다.
14:05에 벽련항에 도착하였다.
벽련항에서 노도까지는 도선비는 왕복 4,000원이다.
단체 15명 이상이면 3,000원이다.
1일 4회 운항을 벽련 출발 09:00, 12:30, 14:30, 16:30, 노도출발 08:30, 12:00, 14:00, 16:00

노도에서 나오니 날씨가 너무 화창해진다.
2시면 본래 계획했던 산을 타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쉬움을 남긴 채 후일을 기약하고, 이락사와 충렬사, 이락산을 답사하기로 했다.
이락사는 이순신순국공원으로 조성되어 5월2일부터 유료입장이라고 했다.
공원을 먼저 돌아보았다.
이곳이 관음포다.
이락사가 있는 곳이기도 하지만, 팔만대장경 판각지이기도 하다.
어린이 청소년들의 교육과 놀이 체험장이 되었다.
어영담, 나대용, 충무공과 한글로는 동명인 방답첨사 이순신 등의 이야기도 안내되어 있었다.
이락사는 공원 옆의 능선을 따라 해안으로 벋은 반도 지형에 있다.
사당은 첫머리에 있고 반도의 끝에 노량해전의 현장이 뵈는 첨망대라는 정자를 세워두었다.


나와서 이락산으로 가는 길은 큰 길로 가지 않고 바로 좌측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네비를 켜서 밖의 도로를 따라 이동하여 주변 정찰의 기회가 되었다.
좁은 농로 같은 길이 산 정상까지 이어져 있다.
차로 산을 종주한 셈이다.
이락산은 관음포와 멀지도 않은 거리에 있다.
내려와서는 남해충렬사로 이동하였다.


충렬사는 남해대교 부근이다.
명량승첩의 명량해협에 진도대교가 있는 것과 비슷하다.
노량해전의 바다에는 남해대교가 있다.
섬에서 대교 방향으로 가다가 대교 직전에 노량으로 나가는 길이 우회전한다. 내려가면 충렬사가 우측에 있다.
남해를 몇 번이나 갔을까. 그런데 노도, 이락사, 충렬사는 초행이다.
맨 처음 본 충렬사는 고등학교 시절 배타고 수학여행을 갔던 통영의 충렬사였다.
사당 뒤에 충무공의 최초의 가묘가 있다.
가묘가 여기만 있는 게 아니다.
고금도에도 있다.
지금은 아산 현충사에 묘소가 있다.
충렬사 입구의 옆이 대원군의 척화비 1기가 쓸쓸히 자리를 잡고 있다.
자주정신은 높이 평가할 수 있을지 몰라도 국제정세의 파악에는 지극히 모자람의 평가를 받아야할 것이다.
경상도 경주에서 태어난 최재우의 동학이 전라도에 가서 농민봉기로 결실한 동학혁명, 우리가 어릴 때는 동학난이라고 배웠지만...
그들의 꿈이 좌절된 것은 일본, 중국 등의 외세에 의한 것이 아니던가.
아무래도 그들이 꿈꾸던 세상은 오지 않을 것 같다.
정치꾼들은 다수라는 엉성한 이름으로 횡포를 저지르고 자리다툼이나 하는데 무슨 좋은 세상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