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성의 진원성
장성의 진원성
천년고성 진원성
진원현의 행정중심지
1894년2월29일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112호
해발 약40m의 작은 봉우리에 있는 산성으로 낮고 평평한 분지형의 두 봉우리를 연결하여 축조된 진원현의 縣城이었다고 전해진다.
진원현은 백제때 구사진혜현(丘斯珍兮縣)이었다가, 통일신라 경덕왕 때 진원으로 고쳐져 갑성군(지금의 장성군)에 속하였다.
고려시대에는 나주에 이속(移屬)되었고, 조선시대 정유재란의 피해를 입어 읍의 세력이 약해지자 1600년(선조33년)에 장성현에 합해졌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장성도호부조에 보면 구진성으로 기록되어 있고 길이 400자, 높이 2자였음을 알 수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길이는 약 800m로 표고 40m 정도의 작은 봉우리에 위치한 포곡형(包谷形) 산성이다.
낮고 평평한 분지형의 두 봉우리를 지형에 따라 연결한 형태로 성벽은 내탁법에 의해 구축하였고, 성벽의 안쪽 내벽은 경사지며 물빼기를 편리하게 하기 위한 형태로 축성하였다.
3개의 골짜기를 끼고 있으며 '서고동저'형의 석축산성인 진원성은 성 내외벽이 모두 2~3단으로축조되어 있다.
초축 이후 내외벽 모두 한 겹의 석축이 덧대어져 축조된 점이 특징이다.
성 아래 비석거리에는 진원현감 최희설의 선정비 등 석비 6묘가 남아 있다.
고려시대 명종(재위 1170~1197) 때의 문인인 김극기(金克己)의 시에 진원성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 12세기 이전에 현성을 쌓아서 정유재란으로 폐허가 돼기 이전까지 고을을 다스린 성으로 추정되며 임진왜란 때 일부 붕괘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