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지도

지리산 영신봉 靈神峰 1,691.9m

benel_jt 2016. 7. 31. 16:15


《지리산 영신봉 靈神峰  1,691.9m》









‘지리산(智異山)’은 문수보살의 산이다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롭게 달라진다.’고 하여 ‘지혜로운 이인(異人)의 산’이란 의미로  이름이다.


<영신봉>

지리산 고봉 70여 봉우리중 가장 영험이 있어 영신봉이라 한다.  영신봉 아래  대성폭포 위에 신라때의 절 영신사지에 영신대가 있다.
"이 영신봉은  낙남정맥(洛南正脈)이 시작되는 출발점이며 이곳에서 물길이 세 갈래로 낙동강, 섬진강, 금강으로 나뉘어 흘러든다.


<영신대 靈神臺>
영신봉 아래 대성골 큰세개골 대성폭포 위에 신라때의 절 영신사지에 영신대가 있다. 고려말 극성 했던 왜구들은 잔인한 도적들이다.
숯불로 돌부처의 살을 지져 소망을 바랬던 일과  천왕봉에서는 짙은 물감으로 성모석상을 농염하게 화장 시켰다.
이곳 영신대 돌부처에도 똑똑하게 흔적을 남겼으니……돌부처의 한 부분을 조금씩 태우면 미륵세상을 만날 것이라 하여 이렇게 상처를 남겼다.
북쪽의 두 바위가 높이 솟았는데  창불대다. 동쪽 벼랑에는 영기가 흐르고 서쪽 바위틈에는 샘이 솟는데 이 샘을 옥천이라 불렀다.


《지리산 세석평전細石平田》
우리나라 국립공원1호 지리산은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노고단(1,507m)의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는 20여개의 긴 능선상에 촛대봉(1,703m)과 영신봉(1,652m)  사이의 광활한 고원지대가 세석평전이다.
 
<세석평전>

지리산 세석평전(세석고원)은 해발 촛대봉과 영신봉을 좌우로 하고 둘레 12Km에 걸쳐 넓게 펼쳐져 있는 평원이다.
세석평전 잔돌이 많은 평야 세석평전이다. 광대한 30만평의 드넓은 평원으로 남녘 최대의 고원. 지리 10경 중 8경으로 이 평원은 신라 때는 화랑의 수련도장이기도 하였다.
최고봉인 촛대봉에서 서남 방향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펼쳐지는 세석평전은 상, 중, 하로 식물군락이 나뉘어지는데 상층은 황량한 초원지대로서 지보초, 좁살풀, 산새풀 등 여러 종류의 초생식물이 군락을 이루고, 중간층은 철쭉이 집단서식하는 관목지대이며 하층은 구상나무와 굴참나무 등 상록수와 활엽수가 혼유림을 이루고 있어 등고선별  식물생태 분포가 명확하게 나타난다.
해마다 6월초순(철쭉이 연분홍빛 화원을 이루고 있으며 바래봉의 철쭉이 선홍빛의 강열한 모습이라면 이 곳 세석철쭉은 연분홍빛의 가냘픈 소녀 모습이다.


<세석평원의 호야. 연진 전설>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에 제일 먼저 들어온 사람은 한쌍의 남녀가 아득한 옛날에 대성동 계곡에서 살았다고 한다.
남자의 이름은 호야(乎也)요, 여자의 이름은 연진(蓮眞)이라고 하였다.
이들은 이곳 지리산 자락에서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가정을 꾸미고 맛좋은 산채와 과일을 따서 배부르게 먹으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으니 슬하에 자녀를 두지 못함이 한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러던 어느날 남편인 호야가 산과(山果)를 따기 위해 산골 깊이 들어가고 없는 사이에  근처에 살고 있던 검정 곰이 연진을 찾아와서
“이곳에서 얼마 멀지 않은 세석평원에는 아들, 딸을 낳을 수 있는 음양수라는 신비의 샘이 있다.”
고 자랑삼아 알려주었다.
이 말을 들은 연진은 기뻐 하면서 남편과 상의할 겨를도 없이 혼자서 단숨에 음양수 샘터로 달려가서 기적의 샘물을 실컷 마셨다.
그런데  평소에 곰과 사이가 좋지 못한 호랑이가 곰과 연진이 주고받은 이야기를 엿듣고는  지리산 산신령에게 고해바치니 산신이 대노하여  음양수의 신비를 인간에게 발설한 곰을 토굴속에 잡아 가두었다.
호랑이는 그 공으로 백수(百獸)의 왕이 되었고 또 음양수의 샘물을 훔쳐먹은 연진 여인에게도 무거운 벌을 주어 잔돌평전의 돌밭에서 평생토록 외로이 철쭉꽃을 가꾸게 되었다.
그래서 세석의 철쭉꽃은 절세가인 연진 여인의 애처로운 모습을 닮아 그처럼 청초하게 아름답고 또 연진 여인의 슬픈 넋이 꽃잎마다 서려있다.


<촛대봉1,651m>
연진 여인은 촛대봉 정상에서 산신령에 속죄를 빌다가 그대로 망부석이 되었다.
촛대봉의 앉은 바위는 가련한 연진 여인의 굳어진 모습 그것이다.


<호야봉 乎也峰>
한편 연진 여인의 남편인 호야는  사라진 부인 연진을 찾으려고 날마다 계곡과 그리고 밀림, 산령을 넘어 지리산 일대를 헤매였다.
그때 칠성봉 중턱에서 까마귀로부터 연진의 소식을 듣고 세석평원으로 갔으나 산신령의 저지로 못만나고 세석평원 중턱 능선의 높은 봉우리에서  연진을 날마다 목청껏 불렀다.
그래서 칠성봉에서 세석으로 올라가는 가파른 절벽 위에 우뚝 솟아있는  호야봉(乎也峰)은 그때 그가 애태우며 섰던 자리 그대로 망부석이 되어 서 있는 호야의 굳어진 그대로라 한다.


<음양수>
세석평원에서 대성골가는 길 옆 큰바위 아래 왼쪽(음) 오른쪽(양)  양쪽에서 나오는 물이 바위 중간에서 합수하여 음양수 샘을 이루어 기적의 샘이다.
천왕봉 산신령도 연진 여인의 가련한 희생을 보고서는 인간에 대한 노여움을 풀고 기적의 샘 음양수를 인간에게 개방하였다.


《지리산 거림. 거림계곡》


<거림(巨林) 이름>
큰숲의 마을 거림마을은 세석고원으로 가는 길로 가장 가까운 길이다.
거림마을에서 시작 되는 등산로를 따라 8km 3시간 가량 오르면 세석평전에 도달한다.


<북해도교.팔천교>
세석평전은 거림에서→천팔교→북해도교→전망대→세석교→세석평전에 도착한다.
거림골에서 제일 추운곳이라 하여 북해도교.
1,008m에 위치해 있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천팔교가 있다.


<거림계곡>
세석고원은  촛대봉과 영신봉 두 봉우리 사이로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광활한 고원지대를 형성하고, 세석고원에서 거림까지 거림계곡 이다.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깊은 물줄기가  계속되면서 중간 중간 남부능선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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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무동

<백무동> 백명의 무당이 배출되었다는 뜻에서 유래되었다고 하고 또하나의 설로는 임진왜란 당시 왜적과 맞서싸울 무사 백명을 이곳에서 훈련시켜 배출시켰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도 한다.


◎ 마고 할미 : 함양군, 마천면, 강청리 백무동마을의 이름은 창조신화의 여신 마고할미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신 마고가 반야와 결혼한후 그의 딸들을 전국의 무당으로 배출하였데 지리산 에서 그 딸들이 내려왔던 통로가 바로 이 백무동 마을이라고 한다.


◎ 하동바위 : 백무동 산행들머리에서 40여 분 거리 하동바위. 바위가 하동방향을 보고 서 있어 하동바위라 한다 하기도 하고, 하동군수가 여기서 비를 만나 길을 헤맷기 때문에 하동바위라 부른다고 한다. 등산로는 웅장한 하동바위 앞을 가로 질러 나 있다.


◇ 한신계곡


◎ 깊고 넓은 계곡 : 「깊고 넓은 계곡」의 의미로 한신계곡이며 다른 하나는 한여름에도 몸에 한기를 느낀다 해서 한신계곡이라 부르기도 한다.
지리산 북부의 깊고 넓은 한신계곡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에서 세석고원까지의 10Km 한신계곡은 영롱한 구슬이 구르듯 맑고 고운 물줄기의  폭포수의 계곡이다.


◎ 농악의 소리 : 옛날 한신이란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몰죽음을 당했다고 해서 한신계곡이 되었다는 사연이 있는데 지금도 비가 오는 날이면 계곡에서 꽹과리 소리가 들린다는게 이 지방사람들의 이야기다.


◎ 첫나들이 폭포 : 20여개의 물줄기를 자랑하는 이 폭포는 바람폭포로도 불리고 있다. 한신계곡의 옥수가 처음으로 사바세상에 나와 흐르는 폭포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철제다리 아래로 쏟아지고 있는데 다리 위에서 보다 아래서 위로 보는 폭포수가 더욱 장관이다.


◎ 가내소 폭포 : 가네소는 15m높이의 폭포이며 50여평의 검푸른 소를 만들고 있어 그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 가내소 폭포전설: 먼 옛날 한 도인이 이곳에서 수행한지 12년이 되던 어느날 마지막 수행으로 가내소 양쪽에 밧줄을 묶고 눈을 가린채 건너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도중에 지리산 마고할매의 셋째딸인 지리산녀가 심술을 부려 도인을 유혹하였고,
도인은 그만 유혹에 넘어가 물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도인은 '에이~ 나의 도는 실패했다. 나는 이만 가네'하고 이곳을 떠났다 하여 '가내소'라고 불리우게 되었고,

◎ 가내소 기우제: 가내소에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영험스런 곳으로 전해진다.
기우제 방법도 특이해 부녀자들이 홀치마바람으로 앉아 방망이를 두드린다.
방망이 소리는 통곡을 대신하는 것으로 이는 지리산  마고할매의 통곡을 유도, 그 눈물이 비 가되어 속세를 적시게 한다는 주술적 방법이다.
또 한가지는 돼지를 잡아 피를 바위에 뿌리고 머리는 가내소에 던지는데 이는 산신이 산이 더럽혀지면 씻어내기 위해 비를 뿌릴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 오층폭포 : 폭포가 5단계로 길게 이어져 독특한 아름다움을 연출하는 오층폭포가 있다. 오련폭포라고도 한다. 본격적인 산행은 가네소에서부터 세석가지의 7Km구간이다.


◎ 한신폭포 : 한신계곡은 첫나들이폭포-가내소폭포-오층폭포-한신폭포로 이어진다.
한신폭포는 2단 폭포는 대략20여m가 넘어보이는 절벽에서 떨어진다.
폭포상층부는 넓고 매끈하여 접근이 불가하고 물줄기가 떨어지는 곳은 바위협곡 높이가 30m이상이다, 웬만한 간큰 사람아니고서는 접근할수 없는 장관이다.
한신계곡은 수많은 폭포수를 빚어놓은채 끝이나고 마지막 1Km거리는 칼날같은 바위길을 따라 세석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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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거림계곡>
◆ 거림. 공덕림(功德林) : 공덕을 많이 쌓은 것이 마치 숲과 같음을 이르는 말로, 거대한 수림으로 뒤덮인 골이란 뜻의 거림은 화엄경의 공덕림에 유래를 볼 수 있다.
거림마을은 세석고원으로 가는 길 가운데 가장 가까운 길이다.
거림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를 따라 8km/3시간 가량 결으면 철쭉이 장관을 이루며 만발하는 세석에 도착한다.

◆ 거림계곡 : 세석고원의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흘러내린다.
촛대봉과 영신봉 두 봉우리 사이로 광활한 고원지대를 형성하는 이 고산대의 세석과 남부능선 사이로 수려한 골을 만들며 거림마을깢 이어진 계곡이다.
촛대봉과 연하봉 사이에서 만들어진 도장골과 거림마을에서 합류한 거림게곡은 아래곡점까지 계속된다.거림계곡은 깊은 물줄기와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세석고원까지 8km 가량 계속되면서 중간 중간 남부능선에서 내려오는 물줄기를 받아들인다.
◇ 자빠진골 : 거림골과 남부능선을 잇는 자빠진골은 한국전쟁 당시 빨치산들에게는 은신처였다.
'자빠진골' 혹은 '엎어진뜰'로 부르는 남부능선상의 이 계곡은 이름 그대로 산이 자빠진 듯, 엎어진 듯한 경사를 보여준다.
골짜기가 자빠지고 엎어지면서 엉겁결에 파인 듯 원시성이 돋보인다.
너덜로 이루어진 계곡형 골짜기로 생각하면 된다.

◆ <촛대봉 아래 청학연못>
촛대봉 아래 청학연못은 지리산 천왕산이 집법을 펼쳐 만든 연못으로, 청학이 살았다는 전설의 못이다.

<지리산 학>
청학은 날개가 여덟에 다리가 하나요, 사람의 얼굴을 하고 새의 부리를 한 상상의 길조라 한다.
청학이 한 번 울면 태평성대가 온다고 한다.
옛 선인들은 지리산을 학에 비유했다.
지리산의 북쪽 면을 백학에 비유했고, 남쪽 면을 청학에 비유했다.
즉 남비청학 악양면, 북래백학 산내면이라 했다.
남쪽에 날아간 청학은 악양면에 갔고,
북으로 온 백학은 산내면에 앉았도다.

옛날부터 악양은 이상향을 찾아 전국을 떠돌았던 비결파들이 마지막으로 회향하던 곳이다.
산남강북 지형으로 양기가 뭉친 명당이다.
이런 지형을 동천이라 부르고, 그래서 악양동천이란 말이 나왔다.

<청학연못 형성>
촛대봉과 시루봉(장군봉) 능선 중간 서쪽 아래 해발고도가 1500m도 넘는 세석고원에 신비한 연못이 있다.
자연 상태의 연못이 아니고 청학동의 이상향을 완성시키는 의도에서 옛 선인들이 의도적으로 지형을 갖추려는 듯 인공으로 조성된 연못이다.
대슬랩이 앞 물을 막아주고 둥글게 돌조각을 세워 뒷물길을 막았다.
청학 연못의 길이는 대략 10~15m, 폭은 대략 6~7m 정도 되며, 깊이는 대략 1m 내외로 짐작되는 타원형의 연못이며 대슬랩에 새겨진 몇 개의 파자(破字)가 있는데 정확한 해석은 아직도 궁금증을 자아낸다.
청학못의 조성 시기는사람에 따라 대략 150년 전 쯤 됐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가 있는가 하면, 선인들의 기록을 기초로 하여 멀리 고려조까지 거슬러 말하는 이도 있다.
연못에서 심심찮게 용오름 현상이 일기도 하고 연못 풍경을 찍을라치면 여태 문제 없던 카메라가 갑자기 작동을 멈추는가 하면 갔던 길을 딸 다시 찾아오면 어디로 사라졌는지 연못이 보이지가 않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지리산 남쪽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신선의 땅 청학동이 실재한다면 하동 악양 땅과 더불어 ( ) 곳이 세석고원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다면 연못의 바닥 어딘가에 청학동으로 가는 비밀의 문이 있는 것은 아닐까.

◆ 지리산 팔대(八臺)
지리산에는 옛사람들이 올랐던 팔대(八臺)가 있다.
팔대(八臺)를 모두 올라야 비로소 지리산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대(臺)는 높은 언덕, 전망이 좋고, 풍수지리상 명당에 해당하는 곳이다.
모두 영험한 기도터로 알려져 있다.

1. 금대(金臺) : 함양군 마천면 가흥부락에 있다.
지리산 일대에서 제일가는 수도처로 금대를 꼽는다.
전설에 의하면 지리산 산신이 여자인데, 금대의 산신은 나ㅏㅁ자이기 때문에 지리산 여산신의 정기가 금대에 다 모여든다는 것이다.

2. 마적대(馬跡臺) : 함양군 휴천면 세동(細洞)부락에 있다.
최치원이 이 곳에 머무르면서 말에다 바구니를 묶어 함양장날에 심부름을 보내곤 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그러면 말이 바구니에다 필요한 물건을 담아서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바구니 속에다가 쪽지를 넣어서 보냈던 모양이다.
말과 관련이 있어서 '마적대'라는 이름이 붙었다.

3. 문수대(文殊臺) : 함양군 마천면 군자리에 있다.
불교에서 문수보살(文殊菩薩)은 반야경을 편찬하신 분으로 지혜의 완성을 뜻하는 화신이다.
따라서 이러
한 지혜를 구할 수 있는 자리라 함은 예사롭지 않을 것이다.
노고단 정상 부근에 있는 우측 철조망을 따라 피아골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오는 삼거리에서 좌측 바로 위에 건물로 서 있다.
직진하는 길은 왕시루봉과 돼지평전 가는 길이다.
문수암의 전망은 지리산 명당으로 꼽히는 상무주암(上無住庵)보다도 시우너하게 터져서 좋지만, 방향이 북향이라서 겨울에는 좀 춥다.

4. 연화대(蓮花臺) : 뱀사골 뒤의 산내면 와운리에 있다.

5. 묘향대(妙香臺, 卯向臺) : 구례 산동의 반야봉에 있다.
이 곳은 개운조사(開雲祖師)의 전서로, 지리산을 수 백 번 올라가 본 마니아들 사이에서는 200살이 넘는 개운조사가 신선이 되어 아직까지 생존해 있다고 믿는 이들이 있다.

6. 만복대(萬福臺) : 구례 산동에 있다.
'萬'이란 수의 개념이 아니라 '모두', '전부'를 뜻하는 무한의 개념이다.
따라서 만복이란 이 세상의 모든 복, 즉 복의 근원을 의미하고, 그러한 장소라면 누구라도 복을 받을 수 있는 곳이라는 뜻이다.
구도의 길을 찾는 정확한 수도처는 아직 찾아내기 못하였으나 아마도 아름처럼 모든 이가 복을 받을 수 있는 너른 터이리라.
오르는 길은 정령치나 성삼재, 그리고 상위마을에서 묘봉치나 다름재를 거쳐 오를 수 있다.

7. 수성대(守城臺) : 남원 인월면 중군리에 있다.
덕두산 중턱에 위치하며, 임진왜란 때 군사요충지였다.

8. 청신대(淸信臺) :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상황마을에 있다.
삼봉산에 위치하며, 금대산과의 연결산행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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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10대 : 문수대, 종석대, 묘향대, 서산대, 무착대, 향운대, 문창대, 영신대, 향적대, 금강대

천왕봉 5대 : 향적대, 문창대, 영신대, 소년대, 향운대
반야봉 7대 : 문수대, 묘향대, 종석대, 만복대, 금강대, 무착대, 서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