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화순 쌍산의소[和順雙山義所]

benel_jt 2016. 5. 8. 18:53

.화순 쌍산의소[和順雙山義所]








유황굴터
문화재명 : 쌍산의소 사적 제485호
소재지 : 화순군 이양면 증리 산 172번지
지정년월일 : 2007.8.8
이곳은 1907년~1909년까지 이 일대를 중심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면서 탄약을 만들기 위해 유황을 채취하던 곳이다.

유황굴터
사적 제485호(2007년 8월 3일 지정)
전라남도 화순군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군에 맞서 싸운 한말 의병활동의 사적지 가운데 하나이다.
예로부터 계당산 일대는 쌍산, 쌍봉 또는 쌍치라 불리었는데, 이것에서 유래하여 쌍산의소(雙山義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쌍산의소에는 무기 및 탄약을 공급하는 무기 제작소와 유황의 저장고인 유황굴, 의병훈련 및 주둔 시설인 의병성(일명 막터, 진터)의 흔적이 남아 있는데, 이곳은 유황을 저장했던 유황굴이 있는 곳이다.
2014년 9월부터 11월까지 전남문화예술재단 전남문화재연구소에 의해 대장간터와 유황굴에 대해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전언에 의하면 이곳에 유황을 저장하여 대장간터에서 만들어진 총기에 사용하였다고 한다.

화순쌍산의소[和順雙山義所]
전라남도 화순군 이양면 증리에 있는 한말 의병의 대표적인 창의소 유적지. 사적 제4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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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기념물 제153호. 한말 의병의 대표적인 창의소(倡義所)이다. 화순 계당산(桂棠山)을 중심으로 형성된 의진(義陣)은 원래 1907년 음력 3월 9일 양회일(梁會一)·임창모(林昌模)·안찬재(安贊在)·이백래(李白來)·임노복(林魯福)·임상영(林相永) 등이 주축이 되어 거병하여 능주(綾州)와 화순 관아를 공격하며 무장을 강화하였으나, 도마치(刀摩峙) 전투에서 패전하자 의병지도자 대부분이 체포되어 지도(智島)에 유배되었다.
이후 풀려나 다시 재거를 도모하였는데, 임창모·안찬재·이백래·안규홍(安圭洪)의 의병활동이 두드러졌다. 특히 임창모부자와 안찬재 등을 중심으로 결성된 쌍산의진(雙山義陣)은 1909년 증동(甑洞)·묵석동(墨石洞) 전투에서 장렬하게 전사함으로써 그들의 창의는 호남지역 의병사에 길이 빛나고 있다.
의병유적으로는 쌍산의소 본부와 군기제조소지(軍器製造所址)·의병성지(義兵城址) 및 막사터 등이 있다. 쌍산의소 본부는 이 마을의 개인 소유 가옥인데 의병지도자들이 모여 창의를 계획하고, 의병처의 본부로 사용하였던 곳이다.
현재 가옥은 6·25 직후 개축한 것이다. 군기제소소지는 마을 동남방 약 300m 지점의 밭 언덕에 위치하며 쇠물덩어리가 여기저기 산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대장간터로 보인다. 현재 높이 약1m, 길이 약7m의 석축 시설이 남아 있다.
의병성지는 마을 동북방 약 1㎞ 가량 떨어진 곳의 계당산에 위치한 대규모의 석축유적지이다. 현재 0.5∼1m 정도의 높이로 돌담 흔적과 아울러 원형 또는 각형의 크고 작은 석축 막사터 20기가 남아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화순쌍산의소 [和順雙山義所]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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