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지석영
benel_jt
2015. 11. 18. 20:52
지석영
2007-08-09
종두법의 지석영
지석영의 자는 공윤(公胤), 호는 송촌(松村), 본관은 충주로 1882년에 식년문과 을과에 급 제했다. 전적과 지평을 역임하고 1885년 『우두신설(牛痘新設)』을 저술했다. 1886년 장령 으로 시폐를 논하다가 1887년 전라도 강진현 신지도에 유배되기도 하였다. 1892년에 석방 된 후 형조참의, 승지를 거쳐 1895년 동래부사 및 부산재판서 판사가 되었다. 동래의 동래 부사 재임시 선정을 베풀었다.
그뒤 그는 경성의학교 교장과 학부내의 국문연구소가 설치 되자 그 연구원이 되었으며, 1906년에는 『자전석요』를 집필하는 등 국문연구에도 공이 컸다. 그가 서울에서 1935년 2월 1일 별세하자 사회장으로 장의가 집행되었으며 그의 공덕 비가 1988년에 동래 금강공원 안에 동래부사 송촌 지석영선생 공덕비란 이름으로 세워졌 다. 그의 개화의지를 높이 산 것이다.
그는 1876년 수신사의 수행으로 일본에 갔던 그의 스 승 박영선으로부터 일본인의 「종두귀감」을 전해 받고 천연두 예방접종 종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그러나 실제로 종두를 얻는 방법과 접종하는 방법을 알 수 없었다. 그는 1879년 부산에 있는 일본인 병원인 제생병원으로 와서 종두접종 방법을 배워 그해 겨울 충 주 덕산면의 그의 처가 가족들에게 종두를 최초로 실시했다. 그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종두 시술이었다.